은혜의 강단/열두 사사

[제8대 사사 입다] 불행한 입다도 쓰임을 받았습니다(삿 11:01~4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2. 10. 14:35
728x90

한때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직업을 기준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직업이 천하면 천한 사람으로 좀 괜찮으면 귀한 사람으로 대우하였습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일본 강점기 시절을 지나면서 우리나라 사람 사고(思考) 깊숙이 직업에 대한 귀천(貴賤) 의식이 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가 바뀌자 이런 사고가 많이 지워졌습니다. 이제는 돈 잘 버는 사람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의식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그 사람의 직업이 어떠하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행실이 좀 불순하게(?) 여겨진 다말이나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나 모압 여자 룻, 밧세바 등이 예수님의 조상으로 쓰임 받았음을 전합니다.

 

사사시대의 사사 가운데 사람의 관점으로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왼손잡이 에훗이 있었습니다. 오른손을 잘 못 쓰는 사람인데 사사로 쓰임 받았습니다.

또 정욕에 불탔던 삼손도 잘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 믿음의 가족은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야 합시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쑥 한 그릇 놓고 팔아도 사장님이라 부릅니다. 우리 모두 밖에 나가면 사장님, 회장님 소리 듣지 않습니까?

다 귀한 분이에요. 알아서 귀하게 모십시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교회에서 귀하신 분을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귀하신 분과 함께 예배드리게 되니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 저와 꼭 친하게 지냅시다. 잘 부탁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8대 사사 입다는 어떤 사람입니까? 출신 성분으로 보면 기생(妓生)의 아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입다처럼 쓰임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불행한 입다도 쓰임을 받았습니다.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1. 입다가 사사로 부름을 받기 전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삿 10:0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 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사사가 등장할 무렵은 그 시대의 어두운 모습들과 신령한 일에 대한 암흑의 현장들이 나옵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8대 사사 입다가 등장하기 전 이스라엘이 처한 사회 분위기나 신령한 면의 상태를 보면 완전 절망의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이스라엘이 신령한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까지 듭니다. 지금 읽은 말씀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모습으로 보입니까?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이스라엘이 이방 신을 이만큼 섬기던 때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섬기고 있는 우상의 목록을 같이 헤아려 보겠습니다.

 

바알들, 아스다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의 신들, 블레셋 사람의 신들입니다. 이 일곱 신 모두가 복수로 나옵니다. 무슨 우상 박람회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안 듭니까?

 

바알과 아스다롯.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는 신 가운데 가장 높은 신입니다. 모든 신의 아버지 격인 엘이고, 엘의 아내가 아세라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아들 신이 바알입니다. 아스다롯은 바알의 아내로서 기후를 주관하여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주는 농경신(農耕神)입니다.

 

아람의 신들. 아람(Aram)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영토 전역에 걸쳐 살고 있던 셈족의 한 부류인 아람족과 그들의 영토를 가리키며, 좁은 의미로는 시리아(Syria)입니다.

이들이 섬기는 신은 가나안 헷 족속이 섬기는 신입니다. 그 대표 신들로 폭풍 신 아닷과 테슛 그리고 태양 여신 아린나 등이 있습니다.

 

시돈의 신들. 시돈(Sidon)은 두로의 북쪽 36km 지점에 있는 지중해 연안의 국가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에쉬문(Eshmun)을 섬겼는데 이 에쉬문은 두로의 멜카르트(Melqart)와 더불어 근동 지방에서 많이 숭배되던 풍요의 신입니다.

 

모압의 신들. 모압의 신으로는 전쟁의 신인 그모스가 유명합니다( 21:29). 암몬의 몰록(몰렉) 신과 그모스 신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암몬 사람이 믿으면 몰록, 모압 사람이 믿으면 그모스 신으로 불립니다. 정결 의식의 목적으로 자식을 제물로 드려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인신 제사입니다.

 

암몬 자손의 신들. 암몬의 국가 신은 몰록(왕상 11:05, 07, 33)입니다. 철로 만든 거대한 마귀처럼 생긴 형상에다 황소 뿔 같은 것을 달고, 가슴팍에는 불을 때는 아궁이를 만들어 그 안에 어린아이를 던져서 태우는 희생제 사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신들. 블레셋의 국가 신으로는 다곤(Dagon)을 들 수 있습니다( 16:23; 삼상 05:02~07). 이 다곤은 메소포타미아 북서부에 살던 셈족 다산의 신으로 쟁기를 발명한 전설상의 신이며 물, 생선, 어업을 주관하는 신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원주민 신들인 바알과 아스다롯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동서남북 여러 나라의 우상들을 들여와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아예 타락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타락했습니까? 풍요와 쾌락이라는 달콤한 이방 문화 때문입니다.

세상 물질의 풍요와 육체의 쾌락은 선민 이스라엘의 자부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습니다. 이 모습이 혹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상황에 이르렀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가 광야 시절을 마무리할 무렵 이스라엘에 특별 부탁을 하였습니다.

 

 08: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2. 입다가 사사로 부름을 받는 과정을 보겠습니다.

 

0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앞서 살펴본 대로 이스라엘은 제7대 사사 야일이 죽자마자 이내 하나님을 떠나 여러 우상과 이방 신을 7가지나 섬겼습니다.

우상 박람회처럼 동서남북 사방의 우상을 도입해서 섬기면 멸망 길입니다. 이에 따라 어떤 결과가 왔습니까? 우상을 섬긴 만큼 복을 받았습니까?

복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진노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과 암몬 두 나라에 파셨습니다(10:07). 파셨다는 말은 블레셋과 암몬 이 두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국가 신 다곤과 암몬의 국가 신 몰록을 섬겼는데도 서쪽에서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왔고 동쪽에서 암몬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우상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 우상은 아무리 섬겨도 그것들이 사람에게 복과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이스라엘이 이들 나라의 우상을 섬김에도 그 우상이 이스라엘을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침략해 왔습니다.

 

암몬이 먼저 요단강 동쪽 길르앗을 쳐서 억압한 세월이 무려 18년입니다. 이어서 요단강을 건너 서쪽으로 넘어와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블레셋과 연합하여 학대함으로 이스라엘은 심히도 딱한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선민이라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면 이런 결과를 맞이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은 후 길르앗의 실력자 입다를 찾아갑니다.

입다가 누구입니까?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복형제들로부터 괄시와 천대를 받다가 집에서 쫓겨나고 만 서자(庶子) 출신입니다.

이렇게 소외당한 입다가 특별히 갈 곳이 있습니까? 그저 요단강 동쪽 돕으로 가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 지내는 고달픈 처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입다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 줄을 든든히 잡고 있었습니다. 이런 입다에게 신분 차별과 서러움을 받은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경제면에서 상처 입은 자, 가방끈 짧아 거절 받은 자, 출신이 천하여 버림받은 자, 온갖 잡류 인생들, 상처 입은 인생들입니다.

입다는 자기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길르앗의 실력자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이런 입다에게 길르앗 장로들이 찾아와서 구원을 요청합니다. 자기들의 통치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러자 입다는 과거 자기가 아버지 집에서 쫓겨날 때의 일을 거론합니다. 내가 형제들에게 내어 쫓김을 당할 때의 불의한 일을 알고 있느냐?

그런 불의한 일을 당할 때 알면서도 방임하며 동의하였느냐? 쫓아낼 때는 언제고 이제 어려움을 당한다고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느냐? 라는 질책입니다.

이에 길르앗의 장로들이 파격 제안을 합니다. 함께 전쟁에 동참하면 자기들뿐만 아니라 길르앗 지역 모든 사람의 머리로 삼겠다는 제안입니다(08).

 

그러자 길르앗 장로들에게 입다가 다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셔서 암몬의 군대를 물리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다짐입니다.

그때는 변덕 부리지 않고 나를 통치자로 인정하겠느냐? 라는 다짐입니다. 입다는 자기 힘으로 암몬 군대를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물리쳐야 할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에 길르앗의 장로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다짐합니다. 당신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는 확고한 다짐입니다(10). 이에 입다가 미스바에서 사사로 취임합니다.

 

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3. 입다가 사사로 부름을 받은 후의 활동 상황입니다.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입다가 사사로 등장하는 과정과 다른 사사들이 등장하는 과정을 비교해 봅시다. 차이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사에게는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그를 사사로 세웁니다( 03:10, 06:34, 13:25). 그런데 입다는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과정이 없습니다.

대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입다를 미스바로 모셔 와서 지도자로 세웁니다. 그래서 더러는 입다를 정말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우셨는가? 하는 의문점을 가집니다.

 

이 문제에 대해 삿 11장은 여호와께서 입다에게 암몬을 넘겨주시고,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고, 여호와 앞에 아뢴다. 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이 반복됩니다.

성경은 이런 면에서 입다를 사사로 공인합니다. 동시에 입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사에 대한 증명을 히브리서도 공인합니다( 11:32).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이제 요단 동쪽 길르앗에 길르앗(人名)이란 사람이 한 기생에게서 낳은 아들 입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입다는 지도자로 세움을 입은 후 먼저 이스라엘의 요단 동쪽 길르앗을 침략한 암몬 왕에게 사신을 보냅니다(12~17).

외교로 문제를 풀기 위함입니다. 요즘처럼 전통문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신이 오가고 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주고받습니다.

입다의 외교 문서를 받은 암몬 왕은 과거사를 거론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영토를 빼앗았다면서 그 땅을 먼저 반환하라고 말합니다(13).

 

이에 입다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다. 그 땅이 욕심이 있어서 침략한 것이 아니다. 하고 맞섭니다(16~18).

서로 간에 일치될 수 없는 일로 팽팽하게 논쟁하다(28) 결국 전쟁으로 돌입하였습니다. 한판 벌어졌는데 어떻게 결론이 납니까? 32, 33절이 말해줍니다.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33….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입다와 주변 사람이 모두 변변찮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까? 입다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 면면을 보십시오.

잡류입니다(רֵיק 레크 03). 잡류(雜類) 잡담이나 하는 부류로서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을 말합니다. 불량하고 무가치한 부류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도 행복이 있고 거기에도 사람 키우는 공간은 있습니다. 잡류의 장점은 야성입니다.

 

거리에 굴러다니면서 자란 사람은 잡초같이 억세고 강합니다. 입다는 겉으로 보기에는 잡류와 어울리며 지낸 한심한 사람입니다.

세상 조건으로는 기생인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형제들에게 아버지 유산이 혹 돌아갈까, 봐 일찍 쫓겨났습니다. 그런데도 입다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세상 것을 다 잃어도 믿음 줄 하나만은 든든히 붙잡았습니다.

하나님과 교통의 끈을 계속 유지하였습니다. 입다가 미스바에서 사사로 취임할 때 한 말과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믿음으로 고백한 말을 보면 그의 믿음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09),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11).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29).

입다는 지난날 불행하게 지내던 때에도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믿음 줄 하나가 조국을 구하는 사사의 자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8대 사사로 부름을 받은 입다의 믿음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은 어떤 일이라도 감당한 믿음의 결단력입니다.

입다가 암몬과 전쟁에 앞서 특별 서원을 하였습니다. 이번 전쟁에 이기고 집에 돌아올 때 먼저 영접 나온 자를 하나님께 번제(עוֹלָֽה)로 드리겠다는 서원입니다. 그런데 입다가 승리하고 돌아올 때 제일 먼저 영접을 나온 사람은 자기의 무남독녀입니다.

 

그러자 입다는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35). 하면서 탄식합니다.

입다의 서원 기도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번제(燔祭)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이 단어의 문자만 놓고 보면 사람을 태워 하나님께 제사를 지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율법에서 이미 금지하였습니다( 18:21;  12:31).

그러면 이 번제의 의미와 36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히브리어 원문을 한글 성경으로 보면 어휘상 조금 과장되게 번역된 부분 때문에 더 오해된 것 같습니다.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라. 35절 번역이 아무래도 조금 과하다는 말입니다.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라는 말을 너는 나를 당황하게 하는구나. 정도로 했으면 좋았을 건데 너무 심각한 불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35절 흐름을 보면 입다는 딸이 죽임을 당하는 불행을 예상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입다의 관점은 무남독녀 딸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성전 봉사에 평생 바침(번제)이 되는 일입니다. 기업을 계승하지 못함에 대한 탄식입니다. 이어 입다의 딸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입다의 딸은 아버지께서 하나님 앞에서 서원 기도하셨으니 변경하지 말고 그대로 행하라고 독려합니다. 딸이 아버지에게 믿음의 인격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께서 하나님 앞에 서원하셨으니 그대로 행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딸, 아버지께 순종함으로 효도하는 딸, 사람 앞에서 아버지의 의리(義理)를 위해 자기가 희생되는 일도 하나님의 일이니 상관없다고 말하는 딸입니다. 이후 서원 기도를 한 일에 대하여 믿음으로 행하는 일들을 재해석하겠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입다의 딸이 죽어 번제물이 되었는가? 입니다. 37절 하반과 38절 하반의 처녀로 죽음으로 인하여. 이 부분을 온전히 해석하면 됩니다.

처녀로 죽음을 이 부분을 나의 처녀 됨에 의하여. 이렇게 번역하면 의문점이 다 풀립니다. 그러면 딸이 하나님께 올려바침이 된 번제의 의미도 풀립니다.

결국,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리는 사건은 그녀가 평생 결혼하지 못하고 성막에서 수종을 드는 여자로서의 삶이 된 것을 가리킵니다이 해석이 옳다고 여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입다의 믿음의 수준으로 보아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서원할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를 등용하려고 찾아온 길르앗의 장로들 청원을 매우 세밀하게 검토한 후에 받아들였습니다(07, 09).

입다가 암몬 왕에게 전한 말(15~26)을 보아 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적(事蹟)도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구약 율법에 자녀를 불로 태워 바치는 것은 극악한 죄로 규정되어 있음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18:21, 20:02~05).

입다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신뢰하는 인물이었던 만큼(09, 11),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죄악을 행하리라고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만일 입다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인신 제사를 하였다면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6년 활동이 불가했을 것입니다(12:07). 무엇보다 신약성경이 입다를 신앙의 인물로 칭찬합니다( 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