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열두 사사

제5대 사사 기드온④ 성공 후에 왜 실패합니까? (삿 08:22~3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2. 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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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점기 때의 일입니다. 평안남도 강서군의 한 두메산골에 가난하지만 똑똑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한 부잣집 상점에서(15~22) 머슴살이 일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년은 자기의 처지를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으며 22세가 될 때까지 날마다 주인의 요강을 정성스레 닦아 놓았습니다.

그러자 청년의 성실함을 지켜본 주인은 머슴살이로 마치기에는 아까운 청년이라 여겨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입학시키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학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이어서 일본 메이지대학 유학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五山學校)의 교사가 되었고 2년 후에는 교사들 전원의 추천으로 교장이 되었습니다.

신실한 신앙인이요 민족주의자인 독립운동가 조만식(1883.2.1.~1950.10.18.)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이 조만식 장로에게 사람들이 성공의 비결을 물으면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요강 잘 닦는 사람이 돼라. 작은 일에도 정성을 쏟아붓고, 작은 일을 소중히 하라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큰일을 감당할 수 있고,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성공입니까? 그러면 지금 앞에 있는 작은 일에서부터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리하면 성공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성공이라는 주문에 매달리다 보니 성공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또한, 성공하였어도 그 성공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실패의 자리로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공 후에 실패의 길을 간 기드온 말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성공 후에 왜 실패합니까?로 정했습니다.

 

 

1. 기드온이 믿음으로 성공하는 모습입니다.

 

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성도 여러분은 기드온의 삶의 절정을 어느 때로 생각합니까? 병사 삼백 명으로 십삼만 오천 명의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치는 현장이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그 현장( 07:22~25)이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이 해방을 받는 날이기 때문에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대단한 성공의 현장입니다.

어쩌면 기드온 생애 최고의 순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사기가 다루는 기드온의 성공 포인트는 미디안 부족을 물리치는 그 승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사사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치는 현장보다 더 큰 기적의 현장이 또 있습니까? 전혀 안 보입니다. 그러나 영의 눈을 뜨고 보면 더 큰 성공의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기드온의 성공 정점이 바로 이 고백입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자기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에게는 그런 능력이 조금도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기드온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찾아와서 간절히 청을 합니다.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고(22). 얼마나 대단한 요청입니까?

여기에다 기드온이 나이가 들어 물러나면 후임자로 그 아들이 왕이 되어 다스리고, 이후에는 그 손자가 자신들을 다스려 달라는 요청입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큰 성공이 어디 있습니까? 기드온이 이스라엘에서 막강한 실력자로 부상(浮上)한 일에 대한 충분한 증명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은혜로 미디안 군대를 물리쳤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대다수의 요구에 예상 밖의 답을 합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얼마나 멋진 믿음의 답입니까?

 

기드온은 보잘것없는 농부 출신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말씀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자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드온은 매우 답답한 자입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은 끝까지 붙들어 쓰셨습니다. 알고 보면 기드온은 하나님께 겨우 순종하여 승리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스스로가 보아도 조금도 내 세울 것이 없는 자임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합당하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마음가짐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는 이런 사람을 믿음의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많은 사람이 자기를 왕으로 추대하려 할 때 분명히 자기 이름을 높일 기회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바꾸지 않았습니다기드온은 성공을 이유로 세상 권세를 탐하지 않았습니다.

성공의 무대에서 떠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될 때는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자기가 부족함에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그 자체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성공은 지배가 아닙니다. 박수갈채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성공의 참된 의미는 그저 말없이 나눔과 섬김의 자리를 지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를 위하여 나의 부족하고 연약한 삶이 하나님 앞에 쓰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 진정한 우리의 성공입니다.

이런 모습은 신약성경에서 세례 요한이 보여 준 감동의 장면을 연상시켜 줍니다. 요한도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 등장하자 자기는 뒤로 물러나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 0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2. 기드온은 진리 문제를 방심합니다.

 

24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 지니라. 하였으니….

 

기드온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것도 잘 알았습니다. 이렇게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드온은 에봇을 하나 만들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영원히 기념하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에 기드온은 왕이라는 대단한 자리를 사양한 뒤에 한 가지 정중한 요청을 합니다. 미디안 사람에게서 탈취한 전리품 가운데 금귀고리를 달라는 요청입니다.

 

25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기드온의 요청에 백성들이 내어놓은 금귀고리의 무게가 천칠백 세겔(Shekel)입니다.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그 외에도 다양한 물품도 있습니다(26). 천칠백 세겔이면 그 무게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한 세겔이 약 11.4g 정도 되니 19kg이 넘습니다.

이를 우리의 무게 단위로 나누면 5,168돈 더 줄이면 516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금 시세는 1돈에 도매가 183,500원입니다. 여기에 부가세와 금은방 중간이윤이 포함되면 순금의 소매가가 되는데 일단 도매가로 환산하면 948,328,000만 원입니다.

 

기드온은 이 많은 금을 받아서 고향 오브라로 돌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에봇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브라 성읍에 걸어두었습니다. 에봇이란 대제사장의 의복으로 앞으로는 가슴을, 뒤로는 등을 덮었던 조끼 모양의 상의입니다.

기드온은 이 에봇을 통하여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심으로 미디안 전쟁에서 승리하였음을 기념하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알리기 위한 하나의 상징의 도구로 에봇을 만들었으니 기드온이 이 에봇을 만든 것까지는 별 시빗거리가 없어 보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기념하려는 것은 조금도 나무랄 데 없는 일입니다.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려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기드온이 에봇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교훈이 잘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의 실패가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이렇게 되고 보니 상징을 만드는 것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믿음의 교육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승리의 상징물인 에봇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당연히 참여하여야 할 제사가 실로에 있는 성막 제사입니다.

그런데 성막 제사를 등한히 여기고 반대로 기드온의 고향 오브라에 가서 제사를 지내며, 점차 에봇을 우상으로 섬겨 하나님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상징을 남기면서도 그 상징의 본래 교훈을 전달하지 못하면 그 상징은 우상의 시험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결과는 에봇이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의 길로 나가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이 금으로 만든 에봇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숭배함으로 하나님을 등지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출 20: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3. 기드온의 성공이 믿음의 실패가 되었습니다.

 

33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 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기드온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의 성공 신화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믿음으로 전해지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만든 승리의 기념물이 금으로 만든 에봇 아닙니까?

기드온이 비록 좋은 뜻으로 에봇을 만들었을지라도 그 에봇으로 인해 이스라엘 많은 사람이 믿음의 길을 이탈하였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기드온에 대해 돌아봅시다. 기드온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난 이후 하나님의 명을 따라 아버지 요아스가 섬기던 바알 우상을 찍어내었습니다. 이에 따라 바알과 싸운다는 뜻에서 여룹바알이라는 칭호를 받은 자입니다(06:25~33).

이런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본의 아니게 불행의 길을 연 결과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성공한 후에 커다란 실패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하였다고 했는데 이 음란이란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와 관련한 용어입니다. 하나님을 등지는 불행한 용어입니다. 27절을 다시 읽읍시다.

 

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칠 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미디안 세력이 철저히 무너짐으로 이스라엘에는 다시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평화 뒤쪽에는 타락의 움직임이 점점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이 만든 에봇을 우상으로 계속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27).

이런 상황 가운데 지도자 기드온이 세상을 떠나자 이스라엘 백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을 등지고 바알을 열렬히 숭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유와 평화의 시기를 맞았을 때 이를 신앙 성숙의 기회로 삼지 않고 도리어 육신의 정욕을 충족시키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05:13). 한 마디로 패악한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바알 들을 따라가. 기드온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과 직결입니다(02:19, 03:12, 04:01, 06:01).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던 바알 종교로 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여호와 신앙과 대척점에 선 우상이 무엇입니까?

바알을 섬기는 일입니다. 이 바알은 가나안의 대표 우상으로 주로 비와 폭풍을 주관하는 곡물(농사)의 신, 가축 떼를 주관하는 풍요와 다산의 신, 전쟁을 주관하는 신입니다.

 

지역마다 각각의 바알이 있으며, 그의 아내 역할을 하는 신을 아세라(복수로서 아스다롯)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바알브릿은 무엇입니까? 당시 세겜 지역에 존재했던 가나안 원주민의 신으로서 언약의 바알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기드온의 성공 기적이 믿음으로 전승되지 못하였습니다. 이유는 기드온의 사후 이스라엘 백성이 이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것 같습니까? 본서의 저자(사무엘?)는 바알 종교를 따라갔기(33~35)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결국,  숭배는 복을 가로막는 방어벽입니다.

세상의 다양한 우상 섬기는 모습을 보십시오. 굳이 새겨진 이방 신 형상이 아니라도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황금만능주의, 출세 제일주의, 지식 우선주의 등은 우상 숭배나 다름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34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기드온의 행한 업적은 길이길이 전할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성공을 성공으로 전승시키지 못하였으니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기드온은 성공 이후에 진리 문제에 방심하여 우상의 올무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놓았습니다.

자녀 교육에도 천추의 한이 되는 실패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고 세상의 욕망으로 빗나가는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겠습니다.

 

삿 09:05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06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으로부터 구하는 일에 잘 쓰임을 받았습니다. 나도 내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진정한 믿음의 고백 아닙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말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아비멜렉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지 않고 형제 칠십 명을 한날에 죽이고 스스로 왕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결국, 기드온의 바람은 자식들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승리의 기념인 금 에봇도 우상의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실패 중의 실패입니다. 기드온의 신앙 마무리에 대한 실패를 거울로 삼아 우리는 혹시 인생 마무리에서 신앙의 실패를 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고 믿음의 길로 힘차게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