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2년 말씀

나는 영혼의 잠을 자지 않습니다(사 29:09~14 ).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2. 1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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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5월 8일 미국의 John Pemberton(1831.7.8.~1888.8.16) 약사에 의해 발명된 코카콜라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무려 136여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탄산음료입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약사가 펩시콜라를 만들었습니다. 이 두 탄산음료를 도심에서 행인들에게 상표를 가리고 마시게 하여 선호하는 콜라를 물었습니다. 결과는 절반 이상의 참가자가 펩시콜라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코카콜라 매출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유는 맛이 아니라 습관과 선입관 때문입니다. 펩시콜라에서 이 결과를 1975년에 발표하자 양사의 매출이 많이 좁혀졌습니다. 그러나 상표를 노출한 여러 실험에서는 대부분 참가자가 코카콜라를 선택하였습니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대니얼 카너먼은 이런 현상을 대표성 추단법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맛의 비교가 아닌 시장의 1등 제품에 대한 브랜드 선호라는 뜻입니다.

 

제가 이런 실험의 결과를 소개하는 것은 복을받는교회가 가야로 479번지에 왔지만,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기에 마음껏 교회를 소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 교회 성도 한분 한분 면면을 보면 어떤 교회의 성도보다 우수합니다. 그런데도 복을받는교회에 속한 성도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모두 복을받는교회를 담대하게 소개하며 살아갑시다. 복을받는교회에 오면 복을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친절한 믿음의 성도라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라마 나욧의 공동체를 잘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가족이 되기를 바랍니까? 아멘입니까? 아멘은 마음으로 하는 것보다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보다 행동으로 하는 것은 더욱 좋습니다. 행동은 잠을 잘 때는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나는 영혼의 잠을 자지 않습니다.」로 정했습니다.

 

 

 1. 우리 모두 영의 눈이 감기지 않아야 합니다.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오늘 말씀의 배경을 먼저 알아야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사야 29장을 잘 보시면 비참해진 유다 백성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취하여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취하여 비틀거린다는 말은 포도주나 독주를 심하게 마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취한 상태입니다. 독주와는 거리가 멀어도 비틀거리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0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포도주 때문에 취하거나 독주 때문에 비틀거리면 술이 깬 다음에 정상으로 돌아올 여지가 있습니다. 술 중독자는 술이 없어도 취하고 손이 떨리고 비틀거립니다. 폐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은 술과 상관없이 비틀거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통하여 유다 백성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놀랄 것이다. 맹인이 될 것이다.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나갔다는 말입니다. 엄청난 충격, 살이 떨리는 충격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부어 주셨다는 말씀을 보십시오. 유다 백성의 취함과 맹인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상을 섬긴 결과입니다. 유다 백성만 영혼의 잠이 들었습니까?

국가의 안위를 놓고 기도하며 왕에게 고하는 선지자들과 지도자인 선견자들까지 영의 눈이 감기게 하셨습니다. 지도자가 눈이 멀면 어떻게 됩니까?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 15: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든지 먼저 마음을 드리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마음이야말로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솔로몬이 전하는 메시지 가운데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잠 04:23). 정신이 있어야 기도를 할 수 있고, 정신이 온전해야 시험을 이겨낼 수 있고, 걸음걸이가 온전해야 바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일 계속 비틀거리면 멸망의 길로 들어선 것과 같습니다.

 

저는 2021년도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났던 분이 있습니다, 시각 장애인으로 안마 바우처로 안마를 받기 위해 만났습니다.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하면 때로는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분에게는 어떻게 위로를 해 주어야 좋을지 고심을 합니다. 아직은 겨울입니다. 김해는 눈이 잘 오지 않지만 혹 작은 눈이라도 내리면 보기에 좋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 좋구나. 이런 감탄사가 나올 때 행복합니다. 저는 밤에 우리 교회 십자가와 간판을 보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십자가 불빛을 보고 교회 한번 와 봤다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건 육신에 속하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눈이 감기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을 떠야 한다는 말입니다.

 

 

 2. 유다 백성은 지식의 눈이 감겼습니다.

 

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여기에서 계시(חָזוּת 하주트)는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예언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계시의 책이 봉해졌다고 말합니다. 감추어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모든 계시가 감추어져 버렸습니다. 심지어는 유식한 자에게 계시를 읽으라고 해도 읽지 못한다고 말하는 처지였습니다. 왜, 지식의 눈이 감겼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먹고살아야 할 양식이 무엇입니까? 물론 육신의 양식입니다. 사람인 이상 밥을 안 먹고야 어디 살 수 있습니까? 문제는 하나님과 신령한 통로가 막혀서 눈과 귀와 입이 막혀버린 일입니다.

 

예루살렘에는 말씀 전하는 율법사와 서기관이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이 있습니다. 은혜의 길을 안내해 주는 일종의 가이드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다 백성은 눈과 귀와 입이 막혀 버렸습니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당시의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주시는 거룩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이 말씀을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책(סֵפֶר 세페르)으로 만들어진 성경입니다.

 

그래서 글깨나 알고 쓸 수 있는 소위 지도층에게 이 책을 읽고 해석해 달라고 하면 당연히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 책이 봉해져 있으니 읽지 못한다. 라고 답을 합니다.

아니 글을 읽을 줄 알고 소위 지식을 갖춘 지도층인데도 읽고 해석하지 못해서야 됩니까? 이렇게 된 까닭은 신령한 통찰력이 없는 외식자이기 때문입니다(사 06:09). 그래서 이렇게 합니다.

 

그 책의 글을 모르는 일반 백성에게 책을 주면서 해석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하나입니다. 나는 글을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요 07:15)? 라는 답변입니다(12).

그야말로 유다 백성에게는 굳게 닫혀서 도무지 열 수 없는 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고 하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일 대신 우상에 빠져 버린 결과입니다. 거기다 하나님의 선지자라 하는 자들 가운데 가짜 선지자가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말씀의 통로 기도의 통로 묵상의 통로가 막히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육신의 양식을 위하여 배를 불리고 사치하며 호화로운 집에 거하면서도 영의 양식을 먹는 일과 기도 생활 성전생활을 형식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일들과 우상을 섬기는 일에 마음이 빠져 하나님을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말씀을 잃어버리면 그 삶이 어떻게 됩니까? 형식 신자로 전락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까? 심령이 굳어지면 안타까운 마음마저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직전 40일 금식하신 후 세 번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다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여 물리치셨습니다(마 04:01~11). 인용하신 말씀은 당연히 구약성경입니다. 첫 시험을 물리치실 때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인용하셨는지 아십니까? 신 08:03 말씀입니다.

 

마 04:0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3. 영혼의 잠을 자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거두십니다.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살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시대든지 참된 소리는 귀 밖으로 흘려버렸습니다. 외식은 사람의 안일한 사고력에 파고들어 믿음의 균열을 일으킵니다. 

0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누가 전하는 메시지입니까? 유다 백성의 마음을 꿰뚫어 아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가까이하며(נָגַשׁ. 나가쉬) 공경하나(כָּבֵד 카바드). 두 단어는 각각 분리되는 말이 아니라 병행(竝行)하는 말입니다. 공식으로 행하는 예배를 뜻하는 낱말입니다. 당시 유다 왕국은 히스기야 왕의 주도로 예루살렘에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종교 정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교도의 관행과 우상들은 여지없이 척결되었고 모세 때 제정한 고유의 예배 의식이 부활 되었습니다(왕하 18:04). 그런데 이 종교개혁은 모든 백성이 자원한 개혁이 아니라 위로부터 일방으로 하달된 개혁입니다.

 

따라서 유다 백성의 내면까지 바꾸는 데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종교개혁의 모양은 있으나 종교의 핵심인 마음과 경외심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입술의 종교를 원치 않습니다. 이런 행위를 훗날 예수님께서 입술과 혀로 자기의 경건을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적용하셨습니다.

 

마 15:0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0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렇게 외식에 젖어 있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이하고 가장 기이(奇異)한 다른 이상한 일을 행하신다는 말씀 뜻이 무엇입니까? ➊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질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➋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질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유다 백성이 의지하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과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와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과 율법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율법사 그리고 일상생활을 판단하는 재판관이 대면합니다. 이 다섯 부류의 직분자는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 같은 인물입니다.

 

유다 백성은 이들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된 삶을 누립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지혜와 총명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합시다. 그런 상황에서 외국 군대가 침략해 오면 어떻게 됩니까?

군대 장관이 정보 분석과 판단력을 상실하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습니까? 또 외교를 위해 외국 사절을 만나야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이런 국가 혼란을 놓고 이사야가 이렇게 전합니다.

지혜(חָכמָה 호크마)가 없다 총명이 가려진다.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의 지혜와 총명을 거두신다는 선언입니다. 영혼의 잠을 자면 무서운 심판을 만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뜻을 멀리한 채 살아가는 자들을 깊은 잠에 빠진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잠드는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란 뜻입니다. 정의와 공의를 저버린 사람은 영혼의 잠을 자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향해 자기의 의(義)에 사로잡혀 정작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 즉 색맹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09:41). 한 마디로 무서운 심판을 의미합니다.

 

요 0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계 01:0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욕망을 삶의 토대로 삼는 사람은 좀 배운 사람이나 덜 배운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근사한 말을 늘어놓고 교양 있는 태도로 사람을 대하다가도 자기 이익이 침해를 받는다고 여기면 단번에 거친 자아를 드러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봉한 책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연약하여 짓는 허물은 웬만하면 참아주십니다. 회개하는 사람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참지 않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진실하지 못함과 미지근함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것과 뜨거움이 없는 이 두 가지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열정이 없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계 0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