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8년 말씀

나는 너그러운 믿음입니까? (행 17:10~1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1. 2. 18. 04:12
728x90

옛날 어느 시골에 수박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박이 익어갈 때쯤 수박밭 주인에게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한밤중에 수박밭에 몰래 들어와 수박을 따가는 아이들 때문입니다소위 수박 서리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입니다수박만 따가면 별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는 어두운 밤에 몰래 따가니 수박 넝쿨이 다 망가지는 일입니다.

수박밭 주인이 이 일을 놓고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다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하여 수박밭 주인은 원두막 앞에 이런 글을 써 붙였습니다여기 수박 한 통에는 농약이 들어있음. 주인만 알고 있음. -주인 백- 그러자 그날부터 수박 서리가 없어졌습니다. 누가 따먹겠습니까? 죽을 수도 있는데.

 

주인은 그날부터 평안히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며칠 후 원두막 앞에 깜짝 놀랄 글이 붙어 있습니다. 뭐라고 썼을 것 같습니까?

여기 수박 두 통에 농약이 들어있음. 한 통은 주인이 알고, 또 한 통은 도둑이 알고 있음. 도둑 백. 만약 도둑이 수박 한 통에 진짜 농약을 넣었다면 그해 수박 농사는 낭패입니다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악으로는 악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복수로는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라는 교훈으로 볼 수 있습니다.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데살로니가 사람의 거친 정치 성향이나 투박한 학문 자세와 비교하면 베뢰아 사람은 순수한 성품과 세련된 학문 자세를 가졌다는 의미입니다오늘 우리도 베뢰아 사람들처럼 너그러운 자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베뢰아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기에 너그럽다는 소리를 들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나는 너그러운 마음입니까? 라는 주제로 강론하겠습니다.

 

 

 1.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면 너그러운 성도가 됩니다.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본문의 앞 상황을 보면 바울 선교팀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자 유대인들로부터 극심한 훼방과 핍박을 당합니다이 일로 바울 선교팀이 남서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진 베뢰아로 피난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복음을 전하자 베뢰아 사람들은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 자세를 누가가 너그러운 마음이라고 표현합니다.

베뢰아는 마게도냐 평원 남쪽 올림퍼스 산맥 기슭의 작은 언덕에 있는 도시로서 많은 사람이 살고는 있으나 정치면에서는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하는 곳입니다.

 

특히 마게도냐의 수도 데살로니가에 비하면 아주 작은 지역에 속하지만, 저자 누가의 시각에서 볼 때 베뢰아 사람들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자로 인식되었습니다.

무엇이 누가의 눈에 그렇게 너그러운 모습으로 비쳤겠습니까? 외모와 윤리 면에서 아름다운 예절이겠습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너그럽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럽다는 의미는 그들이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합니다.

 

사실 낯선 사람이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사람들은 아예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과 복음을 듣기는 해도 건성으로 듣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나이가 많고 인생 경륜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마음은 더욱 경직되고 완고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사람은 남의 말을 좀처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상당히 고상한 마음 너그러운 품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해도 되겠습니다

바울의 전도 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면 베뢰아 사람 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역시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에 루디아를 들 수 있습니다.

 

행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 지라.

 

후일에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도 전도자의 말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믿음의 소문이 나기도 하였습니다(살전 02:13).

김삼일 가족 여러분, 다윗왕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지요? 이스라엘의 막강한 권세를 가진 왕임에도 궁중을 출입하는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책망을 달게 받았습니다.

심지어 다윗은 피난길에서 시므이의 저주를 들었을 때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내버려 두라고 하였습니다(삼하 16:11). 우리에게는 이런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나는 다 안다, 나는 다 배웠다, 훤히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말씀에 대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데 이런 마음이 문제입니다.

 

 

 2. 받은 말씀을 날마다 상고할 때 너그러운 성도가 됩니다.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성경을 상고(ἀνακρίνω)하므로. 상호 검토하다. 심문하다. 라는 의미로서 성경을 상고(詳考)한다고 했으니 골라낼 것은 골라내어 양식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즉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 선교팀의 메시지를 듣고 구약성경을 자세히 살펴 그 본의를 다시금 잘 새겼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그러니까 베뢰아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통하여 얻은 지식과 헬라의 철학사상 그리고 그들의 생활 체험 등을 바탕으로 바울이 전해 준 설교를 관찰한 후에 신중하게 받아들였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뚜렷한 주관이 있었다는 말입니다말씀의 바른 뜻을 바로 깨닫기 위하여 공부하는 처지에서는 얼마나 좋은 자세입니까? 지혜로운 자는 언제나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 탐구하는 자세를 가짐으로 시험의 돌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잠 02:0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0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김삼일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합니까? 전하는 말씀이 성경에 근거한 것인지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자세를 가지느냐 말입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면 이단이 창궐하는데 왜 그렇게 되어 가는지 아십니까?

남달리 신비스럽고 능력이 있는 것 같이 보이면 그 사람이 전하는 말은 어떤 말이라도 검토하지 않고 아멘을 동원하기 때문입니다이단 추종자들을 보십시오. 한결같이 성경과는 도무지 빗나간 말을 하는데도 그 말을 진리인 줄 알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는데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가까이하지 않기 때문이요 말씀과 더불어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능력 있는 말씀처럼 보일지라도 그 말이 성경에 이탈되었으면 그는 이미 이단의 범주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한때 박 모 장로 하면 얼마나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까? 자신이 참 감람나무라고 주장하던 사람으로서 **관을 창립하여 교주로 지냈습니다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성경에서 빗나가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예수는 마귀 대장의 아들이요 성경의 98%가 거짓이므로 불살라야 하고 십자가는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 모두 아멘 했습니다나중에는 자신의 나이가 5,786 ()라고 했다가 다시 15천억 세로 주장하더니 마지막엔 자기가 새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추종자들은 아멘 했으니 정말 어이없는 일입니다.

 

이후 전도관에서 이탈하여 **교 ** 제단을 세우고 교주가 된 조 모 씨는 자신이 하나님이요, 생미륵불이요, 정도령이요, 참이슬이요, 구세주라고 자처했습니다.

자신을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주장하자 그의 추종자들은 열렬하게 아멘 하였습니다그가 1994년도에 사기죄로 걸려 감옥 생활 하는 중에 올해 우리나라에 가뭄이 든 것은 자기를 감옥에 넣어서 그렇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 말에도 그의 추종자들은 오직 아멘이었습니다.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상고하면서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이며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이 말씀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탐구하는 자세로 말씀을 대할 때 환희와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유명한 성경학자)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급한 사람아 조용히 앉아서 욥과 교제하라.

완고한 사람아 베드로와 모세의 기사를 자세히 읽어라. 유약한 사람아 엘리야를 만나라. 마음의 노래가 없는 사람아 다윗에게 들어라. 정치가가 된 사람아 다니엘서를 읽어라.

실망과 암흑에 빠진 사람아 이사야를 읽어라. 마음이 차가워진 사람아 사랑의 사도 요한을 가까이하라. 신앙이 엷어진 사람아 바울을 주의해서 보라. 안일한 자리에 있는 사람아 야고보서를 잊지 말라. 장래의 소망을 잃은 사람아 계시록에서 약속의 땅을 받도록 하라.

 

 

 3.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므로 나타나는 두 가지 결과가 있습니다.

 

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①).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바울이 베뢰아의 회당에서 성경을 가지고 이론 체계를 세워 설명하고 설득한 부분이 무엇입니까그것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 선교팀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행 17:0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베뢰아 성도들이 회당에서 바울의 메시지를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 그 결과가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땅을 일구고 복음의 씨를 뿌린 결과가 무엇이냐는 말입니다.생각해 보건대, 믿는 자가 많다는 것은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자신이 믿은 후에 사람들에게 전도하였다는 뜻 아닙니까

이렇듯 전도의 의무를 다하는 중에 불신자들이 몰려옵니다. 어떤 교회에 신자가 모여듭니까?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많이 믿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란 세상 가치관으로 보면 상류 사회에 속해 있어서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자들입니다.

바로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복음은 헬라인과 유대인의 구별 없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01:16).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②

 

이처럼 베뢰아에서 믿는 사람이 날로 증가한다는 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의 사악한 유대인들은 무려 2백 리나 떨어져 있는 이곳 베뢰아까지 달려왔습니다.

또 군중들을 선동하고 폭력배를 동원하여 믿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소동을 일으켰습니다그러나 본문을 볼 때 그 선동은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를 못하였습니다.

이는 이 소동의 무리에 베뢰아의 유대인들이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왜 가담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베뢰아의 유대인들이 적어도 바울 일행에 대해 적의(適意)를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때 베뢰아의 성도들은 새 가족이며 작은 유혹이나 시험에도 넘어지기 쉬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만일 이때 베뢰아의 유대인들이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과 합세를 하여 바울 선교팀을 대적하였다면 얼마나 큰 어려움과 위기를 만났겠습니까?

어쩌면 죽음이었을는지도 모릅니다동시에 베뢰아의 성도들도 교회라는 곳이 이렇게 복잡한 곳이구나. 자칫 예수님을 믿다 죽음을 만나겠다. 하고 얼른 피신해 버리거나 낙심을 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뢰아의 성도들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말씀에 굳게 서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데살로니가에서 온 유대인들 소동으로 바울은 안전하게 거할 곳이 없어지자 그곳 성도들이 힘써 도와 베뢰아를 떠나 바다까지 무사히 빠져나가게 합니다.

베뢰아의 성도들은 주님을 영접한 지 얼마 되지 않는데도 주님의 종들을 구하고 이제 시작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이미 주님을 위하여는 순교도 감당하겠다는 믿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각오가 있었습니다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너그러운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신앙은 행동하는 신앙입니다. 말씀에 자리를 잡은 믿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의 생명까지 구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