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8년 말씀

서로 사랑의 손을 잡을 때입니다.(갈 02:01~1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8. 12. 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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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축구를 결산하는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챔피언 결정전이 123일과 71, 2차전을 통해서 열립니다. 1차전을 앞두고 2일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 회관에서 차범근 감독(수원 삼성)과 셰놀 귀네슈 감독(FC 서울)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선전을 다짐하는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1차전이 열렸는데 수원 삼성과 FC 서울이 11 동점으로 비겼거든요.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2차전을 대비하면서 비록 적군(?)이지만 상대방과 서로 사랑과 격려의 악수입니다. 서로가 선전하자는 뜻 아닙니까?

 

저는 지금 축구에 대한 흥미가 있어 여러분에게 K-리그 2008 챔피언 결정전 홍보를 위해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지난 수요일 열린 1차전도 찬양기도회 하느라 보지 못했고 그런 게임이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오늘 오후에 있을 2차전도 현재로선 볼 계획이 없습니다. 그러면 제가 왜 축구 이야기를 할까요? , 게임을 앞두고 적군 관계로 형성되어 있는 감독과 선수들끼리 서로서로 사랑으로 격려하며 페어플레이를 치르자는 악수 때문입니다.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풀어 가는 실마리는 상호 간의 인사입니다. 이 인사에 의해 사람은 많은 영향을 받으며 또 인사를 어떻게 잘하느냐에 따라 서로의 느끼는 정도 달라집니다. 나라마다 인사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얼굴과 얼굴을 어긋맞기며 포옹하는 포즈, 입맞춤, 손등의 키스, 악수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에 악수가 제일 무난하고 편한 것 같습니다.

오늘 김해삼일교회에 오시면서 성도들끼리 반가움을 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인사를 하셨을 터인데 아무래도 악수가 제격입니다. 이 시간 두루두루 힘 있게 잡아주는 악수 잠깐 합시다.

09절에 의하면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인 야고보와 원 사도인 게바, 요한 등을 만났는데 그들이 바울 자신과 교제의 악수를 하였다고 전합니다. 사람이 만나서 악수하는 일이야 흔히 있는 일인데 그 악수 한 번 한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강조를 합니까? 그 의미를 살피면서 오늘 말씀을 열어가겠습니다.

 

 

 1. 사도들이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인정하며 존중하는 악수입니다.

 

09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사도(使徒)란 예수님께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선택한 열두 명의 제자에게 불리던 명칭입니다(10:0204; 06:1316). 헬라어 아포스톨로스(apostolos)에서 유래하는데 보냄을 받은 자, 혹은 대리자라는 뜻으로서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도 하나님의 사도라 하였습니다(03:01). 

후에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가 사도로 가입되었는데(01:1526), 사도가 되는 데는 엄격한 자격과 기준이 따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고 3년 동안 훈련을 받아 파송을 받은 자. 권능을 부여받아서 직권적 능력을 행하는 자.

예수님의 시종 행적에 대한 목격자(24:38; 01:22; 고전 09:01)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나중에는 열두 제자에 국한하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위임받은 사람도 실질적인 사도라 불렀습니다(고전 09:01, 02).


바나바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도 사도로 불리는 것이 그 때문인데(14:14; 01:19) 이들은 초대교회에서 권위자로서 높은 신분의 소유자이며 성경 정경(正經)과 신조(信條)의 확립에도 큰 역할을 한 교회의 창설 직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박해하던 유대교의 바리새 출신 사울이라 하는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복음을 전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나는 이방인의 사도다. 하면서 선전을 하고 다닙니다. 그러자 바울의 사도 문제로 교회마다 성도들이 제각기 수군거립니다. 좀 시끄럽습니다. 마침내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의문이 예루살렘의 원 사도들에게 보고되어 사이비론과 치리론 까지 등장을 하는데 그런데도 바울은 계속 자신이 사도임을 주장합니다.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바울은 자신이 기록한 서신들의 서두에는 언제나 자신이 사도이며 이 자격은 사람의 뜻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주님께서 친히 주셨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을 때 원 사도들이 서로 교제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바울의 사도권을 조금도 의심 없이 인정하고 믿어 주는 표시이며 조화와 일치를 이루는 사랑의 악수가 아니겠습니까? 나아가서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더 문제로 삼지 않겠다는 표시이고 함께 복음 전하는 동역자임을 인정하여 서로 존중히 여기자는 뜻으로 손을 잡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 안에서 혹 서로 의심하고, 시기하고, 헐뜯었던 모순 된 문제들이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그 부분들을 긴급히 정리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복음의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성도들 간에 시기와 질투라고 하는 곳에 귀한 삶의 에너지를 쏟지 맙시다. 이제부터는 서로서로 존중하고 섬기겠다는 사랑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악수의 삶 속에 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2. 각기 받은 사명대로 복음을 전하자는 악수입니다.

 

09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복음을 전하는 데는 국경이 없고 이념과 사상이 달라도 주님 안에서 능히 하나가 되어 충성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09절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끼리 서로 간에 주님 안에서의 역할 분담을 하자는 겁니다.

오늘 주님께서 부르시고,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심도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함이지 나 혼자만 간직하고 누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0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사도로 세우심을 입은 것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의 불모지를 개척하기 위함이라고 힘주어 말하였습니다. 나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무엇인가를 한번 살펴봅시다

우리 모임의 구성원들 제각기 받은 사명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나의 능력을 따라 무엇으로 복음전파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시란 말입니다. 전도자로서의 뜨거운 열심입니까? 복음전파를 위해 뒤에서 열심히 기도로 동참하는 자입니까? 이웃에게 사랑의 봉사자로 다가가는 자입니까

교회 안에도 복음 전하는 여러 단체가 있습니다. 각 전도회 등, 나는 어느 부서 어느 위치에서 어떤 일로 복음전파에 동참합니까? 모두가 다 한길로 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각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이 다르기 때문이며 제각기 신앙의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12:0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시각 장애인인 한나라당 정화원(鄭和元) 전 국회의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다짐의 글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좋은 말입니다. 우리가 모두 제각기 받은 은혜를 따라 복음의 아름다운 일터를 만들어 갑시다. 지금은 여러 분야에 나의 능력을 갖추고 들어가서 선교의 꽂을 피워야 할 때임을 기억하십시오.

 

고전 04:0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0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귀하게 쓰임 받던 사도들, 굳은 악수하면서 각자 받은 재능대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던 일군들은 모두 다 주님의 나라를 든든히 세우는 데 크게 이바지를 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3. 서로 돕고 협조하자는 상부상조의 악수입니다.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주로 그 생활이 복음의 초창기에 물질 면에서 심히 궁핍했으며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서민층(에세네파)이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모임이나 단체나 가문에서 출회(黜會)를 당하기가 일수였습니다.

그래서 흉년과 핍박이 겹쳐 올 때 그 곤경을 극복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당연히 고달픈 생활 아니겠습니까? 신앙의 시련기를 만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할 때 이방 교회에서는 예루살렘 모체 교회를 돕자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바로 이 분위기를 지금 바울이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πτωχός) 자들. 이에 해당하는 의미는 궁핍을 뜻하는 일상용어로써 돈이나, 재산이나, 생활 수단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는 뜻으로 쓰인 단어입니다. 신약에서는 걸인에게도 사용되었는데(16:20) 당시 가난한 자들은 복음전파의 주요 대상이었습니다(11:05). 초대교회 성도들은 구제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행하여야 하는 임무로서 모두에게 인식되어 있었으며 교회가 감당했던 사명입니다(24:17).

 

나도 본래 힘써 행하여 왔노라. 구제를 언제부터 실행해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울의 생애 가운데 구제의 사건은 여러 번 등장합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교회가 모금한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도 갔으며(11:29, 30) 여러 곳에서 구제에 대하여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15:25~27).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봅니까? 바울의 힘써 행하는 구제는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외식의 생색을 내는 구제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구제에 대한 교훈을 여러 차례 남겼으며(12:13; 04:28; 딤전 06:18), 가난한 자를 돕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그 일을 위하여 정직하게 살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런 선행이야말로 살아있는 믿음이요(02:14~17) 믿음의 진실성을 측정하는 기준 아닙니까?


요일 03: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성도는 서로 간에 상부상조의 손을 잡아야 하며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로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상부상조하는 가운데 교회가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반면 서로 불화하는 곳엔 교회는 쇠하여 가는 것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지체들로서 서로서로 도와야 할 의무가 있으며 물질로서, 기도로서, 말로서, 몸으로서, 도와야만 하는 그 의무는 더욱 중요합니다.

 

과거 60년대 한강 다리에 잠깐만 참으세요. 라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한강 다리에서 투신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를 만류하는 내용입니다. ,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못 견딜 만큼 힘든 상황을 맞이한 한 남자가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는 침울한 표정으로 종이 위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한참 단어를 이어 쓰던 어느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리고 힘차게 자리를 박차며 일어섰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종이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 자살자, 살자, 살자, 살자… 

김삼일 가족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가정임을 아십시오. 무슨 말이냐고요? 우리는 주님 안에서 형제애로 격려하며 붙들어주어 신앙의 길을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형제가 어려움이나 고통, 슬픔의 현장에 놓일 때 적극적으로 위로하고 도울 힘을 배양해야 하며 이것이 주님의 뜻임을 한시라도 잊지 맙시다.


고전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나라의 88올림픽의 성공의 배경을 아십니까? 이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 실패로 끝난 데로부터 유래합니다. 왜 모스크바 올림픽이 실패했습니까? 이유는 당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기 때문에 미국 측에서 인권을 짓밟는 그곳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느냐며 카터 대통령이 올림픽에 참여할 선수들에게 출국증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서방 세계를 선동하여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 운동을 벌여서 결국은 반쪽 대회가 되고 말았는데 이는 미국은 인권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4년 후인 1984L. A 올림픽 역시 상업적인 면에서는 성공이었으나 역시 반쪽 대회로 실패를 기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서 4년 전의 일에 대한 보복으로 보이콧 운동을 전개하였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정치 논리입니다.


그 이후 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라는 개혁 진보 인물이 나왔는데 이때 미국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할 때였습니다. 양국의 대통령이 중거리용 전술 핵무기 감소를 위한 군축회의를 미국에서 열면서 그 회의 끝에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보시오, 우리 88올림픽 성공시킵시다. 라는 제안의 악수를 청하였습니다. 이때 만일 레이건의 손을 고르바초프가 '' 치고 외면하였더라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굳은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 뒤 소련에서 전략 무기 감축 회의차 레이건 부처가 참여하였는데 이번엔 그 회의 끝에 고르바초프가 이보시오, 우리 88올림픽 성공시킵시다. 는 말을 하며 레이건에게 악수하였습니다. 레이건 역시 동서 화해의 분위기를 살려 화답의 손을 잡으므로 그 결과는 우리나라의 88올림픽이 성공되었고 1980, 5.17의 부정적인 모습도 당시에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우리도 화해의 악수, 행복의 악수, 문제를 풀어가는 악수를 잘하여 공동체를 아름답게 가꾸고 공동체 안의 성도를 잘 섬기는 믿음의 가족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