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1년 말씀

예수님을 닮는 생활을 합시다(롬 08:29; 벧후 01:04~0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1. 1. 2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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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북서쪽의 머지사이드 리버풀시에 있는 리버풀 대학교(University of Liverpool 1881년 설립)의 한 연구진이 이런 실험을 하였습니다. 부부 사진 160쌍 얼굴 사진을 섞어 놓고 부부를 짝맞추는 일입니다. 160쌍이면 320명입니다.

그런데 거의 맞추었습니다. 부부는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감정을 나누기에 얼굴 감정선이 같아져서 결국 모습까지도 닮아 갑니다.

실제 부부는 감정 표현도 같아지고, 식성도 같아지고, 취미도 같아지고, 가치관이나 생각까지도 같아집니다. 심지어 부부는 병도 같아진다고 하는데 이는 식성과 운동량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결혼하면 3주간 연구하고, 3개월 사랑하고, 3년 싸우다 30년을 참고 견딥니다. 다름으로 만나 같음으로 사는 것이 부부입니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만난 성도는 신령한 면에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저는 새벽기도회를 가면 마지막에 오늘도 주님을 닮는 생활로이런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 마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신령한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15:16). 예수님의 모습을 닮으면서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삶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 닮는 삶을 막연한 관념 상태로 이해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사고(思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모습을 입고 약 2025년 전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 친히 십자가의 고난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분을 우리가 그리스도로 믿고 닮아 가는 생활을 합니다. 이런 삶이 우리의 인생 목적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하루에 약 육만 가지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김삼일 가족은 그 많은 생각 중에 예수님을 닮으려는 생각은 얼마나 합니까? 이 삶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예수님을 닮는 생활을 합시다로 정했습니다.

 

 

1. 예수님을 닮는 삶은 여러 형태입니다.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닮는 삶이 무엇입니까? 어떤 생활이 예수님을 닮는 삶입니까? 성경은 그 삶을 한 방형이 아니라 여러 모습으로 안내합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02:21)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04:13)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라(23).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05:01)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02).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요삼 01:11).

 

본문 중 롬 08:29 절을 봅시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다는 의미를 살펴봅시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백성이 예수님 닮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아들의 형상(εἰκών)을 본받게. 형상의 헬라어 의미는 닮음, 우상 이런 뜻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23번 나오며 바울서신에는 9번 나옵니다.

바울은 형상이라는 말을 통해서 1세기 때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을 닮는 생활을 주문합니다. 이 형상이란 단어는 구약시대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창 0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우리의 형상(צֶּלֶם 첼렘). 우리의 모양이라는 의미입니다. 형상과 모양은 조각품이나 모조품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구약성경에 정통한 바울은 형상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첼렘(צֶּלֶם)을 헬라어 에이콘(εἰκών)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외형과 속성을 모두 닮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기록한 성경 곳곳에 이 형상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새로운 피조물(고후 05:17)이 됩니다. 성령님의 감동과 은혜를 입어 점점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갑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과연 예수님을 닮는 생활을 잘 이루어 가느냐입니다. 1세기 때만 해도 예수님을 닮는 인물이 많이 나와서 신앙의 전통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경건한 믿음의 전통이 서서히 무디어져 중세 가톨릭 시대에 와서는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경건 전통이 세속에 물들어 변질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닮는 모습이 상실된 것을 다시 닮는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에서 가끔 경건이란 말을 합니다. 경건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해를 돕는 설명을 하자면 하나님을 닮는 삶을 말합니다. 경건이란 꼭 외형으로 나타나기보다 마음에 자리 잡은 신령한 상태입니다.

 

경건은 사람의 내면세계에 자리 잡은 은혜의 감성입니다. 그러면 경건한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지식은 이론이 아닌 생명의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생활에서 믿음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경건한 열매를 맺습니다.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닮는 성숙한 삶으로 표현됩니다. 경건한 자의 목표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으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제일로 여깁니다.

 

 

2.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일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입니다.

 

벧후 01:04…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신성한 성품이 무엇입니까? (θεος)의 성품 즉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고(κοινωνός)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닮는다는 단어로 형상(εἰκών)을 제시하였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닮는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닮는다는 뜻입니다. 믿음 생활 핵심 중 하나가 예수님을 닮는 삶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은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과 함께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경건 생활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형상을 깨뜨리는 쪽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결과는 불행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이제부터 신앙인의 삶은 깨어진 형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닮아 가는 생활 중요합니다. 우리 김해삼일교회 가족 모두가 예수님을 닮는 경건한 삶에 푹 젖어 들어가야 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말 다시 정리합니다. 하나님을 확실하게 닮아 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닮아 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원론에서 성화(聖化)라고 합니다.

제가 구원론을 10단계로 설명할 때 8번째 과정에 속합니다. 우리 모두 성화의 과정에 있습니다. 이 성화야말로 예수님을 닮는 삶의 기둥과 같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이해할 때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관심 세 가지를 찾아야 합니다. 이 일이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생활과(06:06), 그리스도를 닮는 삶과(08:29),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이루어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17:04).

이 세 요소가 성경 바닥에 흐르는 큰 물줄기입니다. 이 물줄기를 타야 우리는 성경을 이해할 수 있고 신령한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이 세 물줄기를 타고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닮아 갑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예수님을 얼마나 닮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목사 로버트 머리 맥체인(Robert Murray M'Cheyne, 1813.5.21.~1843.3.25.)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재능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그렇습니다. 다양한 재능 가운데 가장 탁월한 재능은 주님을 닮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주님을 닮은 인격에서 꽃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올 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날 때 변화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마침내 주님을 닮아 가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건강하게 예수님 닮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룻밤 사이에 예수님을 온전히 닮는 것이 아니라 믿기로 작정한 날부터 서서히 닮아 갑니다.

 

엡 04:15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3. 나는 예수님을 닮아 가는 일에 맹인은 아닙니까?

 

0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맹인이라(τυφλός 튀플로스). 눈은 정보를 얻는 주된 통로입니다. 그런데 시력을 완전하게 잃었거나 심각한 시각 장애를 입었을 때 맹인(盲人)이라 합니다.

한때는 장님, 시각 장애인이 많이 임명되던 조선시대 특수 관직에서 유래한 봉사(奉事), 소경으로도 불렀으나 현재는 시각 장애인이라 통칭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전하는 관점에서 개역 개정판이 정한 명칭을 따라 맹인이라 칭하겠습니다. 시각 장애인과 잠시라도 지내보신 분은 알겠지만 여간 힘든 삶이 아닙니다. 09절에서 맹인이 어떤 의미로 사용이 된 것 같습니까?

시각 장애인으로서 고난을 잘 극복하였다는 불굴의 정신 긍정의 의미입니까? 아니면 사물을 보지 못해서 자기의 앞을 가로막는 부정의 의미입니까?

부정의 의미지요. 09절을 봅시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이란 05~07절에서 언급한 여러 덕목으로서 08절에도 이런 것이라고 표현한 그 덕목이 무엇입니까?

 

0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0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0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신약성경에서 맹인의 영적 의미는 진리를 보는 것을 거절하거나 보지 못하는 자들을 은유로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15:14; 23:16; 06:39; 9:40, 41; 02:19). 맹인인 만큼 당연히 멀리 보지 못합니다(μυωπάζω 뮈오파조).

맹인과 멀리 보지 못한다. 두 단어가 결합하여 영적으로 완전히 어두워진 상태를 뜻합니다. 앞서 언급한 덕목들을 갖추지 못하여 진리의 자리에 자리 잡지 못한 상태를 뜻합니다.

말씀에 대한 영적 안목이 어두워진 자들을 칭합니다. 예수님을 닮는 삶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가 이런 특징을 가졌습니다.

 

계 0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과거에 받은 세례에 대한 언급입니다. 09절에서 베드로가 전하는 메시지는 처음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였을 때 청산한 죄의 생활로 왜 다시 돌아가려느냐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물세례는 죄를 씻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죄에 머물지 않고 성결한 삶을 살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닮는 생활을 멈추면 사죄의 은총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영적 맹인입니까? 예수님을 닮는 일꾼입니까? 믿음의 시야를 넓혀 신령한 것을 잘 분별하는 일꾼이 됩시다.

맹인의 자리를 떨쳐버리고 나오지 못하면 현실의 물질과 향락 요소에 마음이 빼앗깁니다. 신령한 가치관을 가지지 못합니다. 천국도 소망도 없는 우매자(愚昧者)와 다름없습니다.

 

요 03:0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 생활이 최고의 가치관입니다. 그러나 이 가치관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이웃에게 걸림돌 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서서히 닮아 가는 생활을 하면 그때는 디딤돌로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닮아 갑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을 체험으로 알고 그 체험에서 나오는 능력으로 예수님을 온전히 닮는 생활 합시다.

대부분 사람은 자기가 아닌 상대방이 변화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며 신앙생활 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닮는 모습은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예수님을 닮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하여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옛 생활과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04:22).

둘째는 사고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04:23),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12:02).

셋째는 거룩한 습관을 길들여야 합니다. 습관이 길들여 지면 성품이 됩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23:39).

 

김삼일 가족은 주위로부터 어떤 소리를 듣습니까? 저분 말하는 것이 진짜 예수님을 닮았네. 저분 행동하는 것이 꼭 예수님을 닮았네.

이 소리처럼 귀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혹 교회 다니는 당신이나 안 다니는 나나 똑같네. 라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민망한 일입니까?

역시 교회 다니는 사람은 다르구나. 하는 소리를 듣는 게 예수님을 닮아 가는 증거입니다. 내가 교회에 출석하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릅니다.

이 사실 꼭 기억하십시오.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는 교회를 다닌 만큼 믿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닮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출석하여도 즐거움이 없고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건 생명이 싹트지 못한 것입니다. 아니면 생명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 귀한 일꾼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