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허풍쟁이 할머니가 자식 자랑으로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할머니가 자랑합니다. 울 아들은 교회 목사라오. 남들은 울 아들더러 하나님의 종이라고 한다오. 그러자 두 번째 할머니가 끼어듭니다. 그려? 울 아들은 추기경인디. 넘들은 내 시끼더러 아주 거룩한 분이라고 그런 뒤야.
세 번째 할머니가 여유를 부리며 가소롭다는 듯이 말합니다. 워매~ 울 아들은 교황이라나 뭐라나. 그짝에서는 더이상 높은 사람이 없다지 아마. 이렇게 자식 자랑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별 자랑할 것이 없는 네 번째 할머니가 오기가 나서 말합니다.
이걸 어쩌노. 울 아들은 보는 사람마다 하나님이라고 부르는구먼. 어따 대고 하나님 앞에서 감히 자랑질이여? 그러자 다른 할머니들이 기가 차서 몰아붙입니다. 아니 할매 아들은 곰보고 숏다리에다 뚱보이며 백수건달로 알고 있는데 무슨 소리여? 그러자 이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우리 아들보고 하는 소리 못 들었는가? 우리 아들을 보는 사람은 한결같이 oh! my god! 한당께. god이 하나님이여.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는 자식 자랑을 좋아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자식을 아주 쎄게 자랑합니다. 자랑거리가 있으면 마음껏 하십시오. 내가 믿음으로 교육하여서 현재 감사의 생활, 은혜의 생활을 잘하고 있으면 하십시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만일 자식이 믿음의 자리에 있지 않고 세상 조건으로 좀 잘 되는 것처럼 보이면 그때는 그런 자랑 절대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한 번 불어버리면 단번에 날아갈 것 가지고 자랑하면 오히려 같이 욕이 됩니다. 학개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향해 이런 경고를 했습니다.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많은 것을 원함에도 적고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도 남는 것이 없음은 하나님이 불어 버렸기 때문이다(학 01:06, 09).
성도 여러분, 자녀 잘되기를 원하시지요.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아 무엇보다 믿음을 유산으로 전해 줄 수 있는 교육을 하십시오. 이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지도자 모세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모세가 어떻게 믿음의 사람, 능력의 지도자가 되었는지 그 출생과 성장 배경을 성경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이스라엘 정신으로 자란 모세」 이렇게 정했습니다.
1. 모세의 출생 과정을 보겠습니다. |
0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0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출애굽기 01장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해야 했던 이유에 대한 기록이고 02장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지도자를 예비하는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02장을 읽을 때 하나님이 장차 출애굽 지도자를 어떻게 출생하게 하시고 어떻게 훈련하시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01절을 보면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레위 여자와 결혼한 일을 소개합니다.
출 06:16~20절을 보면 레위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첫째가 게르손, 둘째가 고핫, 셋째가 므라리입니다. 이 중 레위의 둘째 아들 고핫이 네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이 아므람입니다.
또 아므람이 그 아비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출 06:20). 고모와 결혼 한 셈인데 율법 시대 이전에는 가끔 근친결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미리암과 아론이 태어났고 모세가 태어날 무렵 이스라엘의 환경은 대단히 불행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생육이 크게 번성하여 애굽 사람이 염려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등장했습니다. 애굽의 18대 왕조 세 번째 왕 투트모세(Thutmose I, B.C. 1493~1482 재위) 1세로서 이전 셈족 중심의 힉소스 왕조와는 달리 이방 족속에게 강력한 탄압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에 대하여 강력한 인구억제 정책을 시작했습니다(출 01:08~10). 그런데도 이스라엘 인구가 계속 번성하자 바로 왕은 특별 산아제한 정책을 발표합니다.
출 01: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 두라. 하였더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아들이 태어나면 무조건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정책입니다. 이런 시대에 이스라엘의 남자로 태어난다는 게 얼마나 불행입니까? 무조건 나일강에 빠져 죽어야 하는 환경이고 혹 간신히 살아남는다고 해도 평생 노예로 고생하며 살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모세가 태어난 해는 B.C. 1526년입니다. 출애굽 연대가 B.C. 1446년이고 당시 모세의 나이가 80세였음을 볼 때 모세는 B.C. 1526년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잘 생겼다는 말은 용모가 준수했다는 의미 이상을 내포하는 말씀입니다. 장차 특출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살리기로 작정했습니다.
발각되면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잘생긴 아들을 보호했습니다. 그러나 더이상 아들을 숨기며 키우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대책을 세웁니다. 갈대 상자를 만들어 역청과 진을 안팎으로 발라 방수 처리를 하고 그 속에 이 아들을 눕힙니다. 나일강 갈대 사이에서 서서히 떠내려가게 하려는 계획입니다.
하나님 뜻이 있음을 알고 누가 건져낼 수 있도록 여러 형태로 보호하는 지혜입니다. 아들을 보호하려는 아므람과 요게벳의 정성 높이 살 만합니다. 오늘의 우리 부모들도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12대 사사 삼손의 출생 배경을 눈여겨보십시오. 그의 아버지 마노아가 삼손을 임신한 후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삿 13:12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2. 모세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계획을 세웁니다. |
0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아므람과 요게벳은 하나님 뜻이 깃들어 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한 세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제 나일강에서 서서히 떠내려가는 갈대 상자가 바로의 딸 공주가 자주 목욕하러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 그 앞으로 흘러가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미리암이 이 상황을 몰래 지켜보고 있습니다(04). 앞으로 될 일에 대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지켜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살리려는 최선의 일입니다.
0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바로의 딸이면 상당한 권세가 있는 공주 아닙니까? 이 공주가 시녀를 보내어 갈대 상자를 건져 오게 합니다. 갈대 상자를 열어보니 아기가 막 웁니다. 공주가 히브리인 아기임을 알고도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불쌍한 마음이 안 들었으면 나라의 정책을 알고 있는 이상 이 잘생긴 아기의 생명도 여기서 끝입니다.
0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불쌍히 여겨(חָמַל 하말). 긍휼히 여기다. 라는 뜻으로서 여기서 하나님의 긍휼이 유래하였습니다( 사 63:09). 긍휼의 마음이야말로 참사랑의 원천입니다(마 09:13). 공주가 아기를 보는 순간 히브리 사람의 아기라고 단정을 합니다.
아기의 용모에서 셈족의 특징을 알았을 것이며, 당시 아기를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은 히브리 민족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으며,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주권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벧전 01:0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이때 미리암이 공주의 행동과 마음을 읽고 다가가서 말합니다. 제가 가서 공주님을 위하여 히브리 사람 중에서 젖을 먹일 유모를 소개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미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공주가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합니다. 이에 미리암은 대기하고 있는 어머니 요게벳을 유모로 소개하고 공주는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고 부탁합니다.
동시에 그 수고비와 삯도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요게벳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게 되니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기만 합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바로 왕의 딸 공주를 감동하게 하심으로 된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왕의 딸인 이 공주가 누구인가를 간단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투트모세 1세의 딸로서 이름은 핫셉수트(Hatshepsut B.C. 1508~1458)입니다. 모세를 나일강에서 건져준 자비심이 많은 공주입니다
핫셉수트는 투트모세 1세가 죽은 후 투트모세 2세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아들을 낳지 못함으로 투트모세 2세는 조카를 양자로 들입니다. 반면 투트모세 2세는 병약하여 왕이 된 지 십 년 만에 죽고 맙니다. 양자로 들인 아들의 나이가 어리자 핫셉수트는 상당한 기간 섭정 통치하는 애굽의 권력자입니다.
3. 모세는 동족을 돌아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모세의 어머니이면서 유모의 신분이 된 요게벳은 모세를 신앙으로 길렀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친어머니라는 사실도 알렸습니다. 10절을 보시면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갔다고 나옵니다. 히브리인은 대부분은 3살 정도에서 젖을 뗍니다(창 21:08; 삼상 01:22~24). 따라서 이 아이(모세)가 3, 4세 때쯤 핫셉수트의 양아들로 입양된 것 같습니다.
그의 이름을 모세(מוֹשֶׁה)라. 애굽어로 모(Mo)는 물이란 뜻이고, 우세스(Uses)는 건져냄을 받았다.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애굽 식 이름인 모두세스는 핫셉수트 공주가 아기를 나일강에서 건져낸 것을 기념하여 붙여준 이름입니다. 이 애굽 식 이름이 히브리인의 발음으로 모세입니다.
요게벳은 유모가 되어 합법으로 모세를 이스라엘 믿음으로 길렀습니다. 친어머니이기에 당연히 히브리 민족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신약시대 전도자 스데반에 의하면 이때부터 40세가 되기까지 권력자의 양아들로서 애굽 궁중의 모든 학술을 다 익혔습니다(행 07:22). 여기서 학술이란 철자법, 문법, 역사, 산술, 의학, 기하학, 천문학 등의 통칭입니다.
모세는 지식을 비롯한 여러 훈련을 통해서 지도자가 되었고 훗날 모세오경을 기록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모세가 장성하였을 때 애굽의 권력 구도를 간단히 보겠습니다. 핫셉수트 권력 아래서 정통성을 가진 투트모세 2세에 의해 양아들로 입양된 투트모세 3세가 자라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파워게임 상대자 모세도 자라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둘 사이에 애굽의 바로 왕권을 놓고 갈등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약간 보이기 때문입니다(15). 그러나 모세는 그런 세상 권력이나 보화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히브리서 저자는 본문에서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다고 기술합니다. 이는 모세가 믿음으로 메시아를 대망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전 10:04 절에서 바울은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면서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밝힙니다.
자기 형제(אָח 아흐)들에게 나가서. 모세는 애굽의 궁중에서 생활하면서도 우상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동족의 아픔에 동참하였습니다. 만약 모세가 권력투쟁으로 방향을 틀기만 하면 애굽의 바로 왕이라는 타이틀에 도전할 수도 있습니다.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런 세상 욕심에 대하여 마음을 비우고 동족을 돌아보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모세의 마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했다고 전합니다(히 11:24, 25). 모세는 바로의 권력 아래서 노예의 신분으로 추락한 동족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랑으로 다가갔습니다.
형제의식 이거 매우 귀합니다. 어머니 요게벳의 신앙교육에서 형제의식이 나왔습니다. 매사에 어머니의 신앙교육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출애굽의 지도자가 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어머니의 눈물겨운 기도가 일찍부터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잠 22:0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요즘을 신앙교육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시대라고 합니다. 신앙교육의 장점 속에 세속의 방법을 너무 많이 도입하였기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자녀에게 또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상당한 고심을 하여야 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이런 시가 있습니다. 아이가 비평을 들으며 자라면 그 아이는 남을 저주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적대감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남과 싸우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조소를 받으며 성장하면 그 아이는 열등 인간이 될 것입니다. 아이가 수치심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죄의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참고 견디는 가운데 자라면 그 아이는 인내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칭찬을 받으며 성장하면 그 아이는 자신감을 가질 것입니다.
아이가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 그 아이는 감사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올바르게 자라나면 그 아이는 정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인정을 받으며 자라면 그 아이는 자기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관용과 우정 속에 자라면 그 아이는 세상에서 사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녀를 축복하십시오. 마음껏 축복하십시오. 자녀가 축복을 받으며 자라도록 하십시오. 축복하고 축복을 받는 가정에는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고, 미래가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축복받는 자녀들을 통해서 이루어져 갑니다.
'은혜의 강단 > 2019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상의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대하 22:01~12 (0) | 2019.05.18 |
---|---|
[어버이주일] 불효자의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삿 09:22~55). (0) | 2019.05.11 |
니느웨에 심판의 메시지가 임했습니다(나 01:01~08). (0) | 2019.04.27 |
[부활주일]나는 예수님 부활의 증인입니다.(행 05:29~32) (0) | 2019.04.20 |
[종려주일]예수님은 나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사 53:01~06) (0) | 2019.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