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블레셋 군대에 의해 아들 요나단을 비롯한 세 아들과 함께 길보아산 전투에서 불행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런 전란의 혼란 속에서 요나단의 다섯 살짜리 아들 므비보셋을 유모가 데리고 급히 피난 가다 그만 땅에 떨어뜨려 두 발 저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된 므비보셋은 왕손이라는 것 때문에 후환이 두려워 그 신분을 감추고 요단강 동쪽 로드발 마길의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였습니다. 다윗이 남북으로 나누어진 나라를 통일하고 나라가 안정되면서 우선으로 사울의 후손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미래의 후환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전임자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 맺은 약속을 생각하여 그 혈통을 돕기 위함입니다.
마침 형제애를 맺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마길의 집에서 지내고 있음을 알고 그를 궁중으로 데려왔습니다. 이어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인해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약속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사울의 소유였던 기브아의 밭을 네게 돌려주겠고 다윗과 언제든지 함께 식사하는 영광과 아름다운 교제와 서로 간에 왕래도 하겠다는 약속입니다(삼하 09:07~11). 이에 므비보셋이 다윗 왕에게 절을 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종이 무엇인데 왕께서 죽은 개와 같은 저를 돌아보십니까? 자신을 죽은 개로 표현한 것은 가치 없고 아무것도 아닌 자기에게 은혜 베푸시는 그 사랑이 놀랍고 크다는 뜻입니다.
이후 다윗의 말년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이 황급히 왕궁에서 맨발로 나와 울며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피난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삼하 15:30). 다행히도 압살롬의 반역이 제압되고 다윗은 왕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다윗의 사랑을 듬뿍 받은 므비보셋의 처신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몸과 마음을 다해 충성한 므비보셋」이렇게 제목을 정했습니다.
1. 므비보셋은 다윗을 끝까지 신뢰하며 섬겼습니다. |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사울 왕이 죽은 후 남북으로 갈려서 나라를 세웁니다. 북쪽에는 이스보셋이 마하나님에서 왕으로 세움을 받고 남쪽에는 헤브론에서 다윗이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건국 과정의 중요 인물을 보면 남쪽에는 다윗의 심복 요압이라는 장군이 실세고 북쪽에는 이스보셋의 심복 아브넬이 실세입니다. 그 외에도 중요한 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당시 정치 이해관계를 따라 배반도 하고 나라를 넘기는 반역의 길도 걷습니다.
한 마디로 시기와 질투와 반역의 역사인데 이런 일들이 고대 사회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런 반역자들의 소용돌이에서 한 번 마음을 정한 이상 끝까지 주군을 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므비보셋입니다. 이 므비보셋이 다윗을 끝까지 신뢰하며 섬깁니다.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예루살렘보다 낮은 지대인 요단강변 계곡으로 다윗을 맞으러 내려갔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이 정리되고 다윗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므비보셋이 다윗을 맞이하는 현장입니다.
다윗이 즉각 므비보셋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피난 길에 동행하지 아니하였느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특별한 은혜를 입은 너만은 따라와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입니다.
이에 므비보셋이 억울한 일들을 해명합니다. 저는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므로 종 시바에게 나귀에 안장을 지워서 타고 왕과 함께 피난 가도록 준비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종이 제가 타고 갈 나귀에 자기를 위한 목적의 뇌물을 싣고 혼자 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왕위 찬탈을 위한 어떤 준비를 한다며 저를 모함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아첨하여 저의 모든 재산까지 가로채었습니다.
삼상 16:03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므비보셋이 왕에게 고합니다. 제가 감히 반역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그런 일을 일절 행한 일이 없습니다. 종 시바가 일을 꾸며 왕께 모함을 한 일입니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십니다. 왕의 처분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억울한 모함을 받은 므비보셋, 그래도 그는 말없이 충성하였습니다. 누가 오해하여도 묵묵히 자기의 일을 찾아서 충성하였습니다. 왕이 자기를 오해하여 재산을 시바에게 모두 넘겨주어도 충성하였습니다. 진정으로 넓은 마음입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 채 주변 환경 따라 흔들리지 않고 자기 일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대부분 가치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일에 에너지를 투입합니다. 그래도 므비보셋은 사울 왕의 손자이니 왕손 아닙니까? 다윗이 떠난 예루살렘에서 압살롬에게 빌붙어 뇌물과 아첨으로 자기의 장래를 보장받는 일을 시도해 봄 직합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한 번 다윗을 향한 충성의 마음을 정한 이상 어떤 상황을 만나도 그 충성심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거둬들인 왕의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반면 므비보셋 가문과 베냐민 지파의 사람은 므비보셋을 멸시하였을 것입니다. 사울 왕가 사람 시므이는 다윗이 피난 갈 때 지조 있게 훼방하였는데 므비보셋은 다윗의 밑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은 누가 뭐래도 묵묵히 자기가 정한 의리의 길을 갔습니다.
2. 므비보셋은 다윗의 마음을 헤아리며 섬겼습니다. |
24….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므비보셋은 다윗이 떠난 후 예루살렘이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어도 주군을 기다리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치안과 시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어디 정상으로 유지됩니까? 유언비어가 난무합니다. 흉흉한 소문도 막 나돕니다. 그중에는 다윗을 따르는 무리를 완전히 제압했다는 소문부터 이웃 나라가 쳐들어온다는 소문까지 극심한 사회 불안입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뜻이 있는 사람은 지방으로 피신을 하기 바쁩니다. 그런데도 므비보셋은 다윗 없는 예루살렘에 남아서 다윗을 생각하며 눈물로 고달픈 처지에 동참합니다. 다윗을 향한 충성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므비보셋은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 길에 오른 다윗의 고생을 생각하며 발을 닦지 않고 지냅니다. 다윗이 피난을 한 곳은 광야입니다. 먹을 물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발 씻는 일이야 어디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발을 못 닦을 주인을 생각하며 자기는 물이 있어도 발을 닦지 않고 지냅니다.
수염도 깎지 않고 지냅니다. 다윗이 황급히 피난하면서 신도 신지 못했을 뿐 아니라 머리도 정돈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어찌 수염이나 깎겠느냐는 겁니다. 거기다 옷도 빨지 않고 지냅니다. 냄새나는 옷 그대로 입고 지내는 것은 다윗도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지낼 것인데 어찌 자기만 깨끗한 옷을 입고 지낼 수 있겠느냐는 양심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이 이렇게 지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으로부터 큰 은총을 입었으니 자기도 왕이 고생할 때 함께 고생에 동참하겠다는 자세입니다. 누가 알아주느냐 않느냐를 떠나서 다윗을 향한 자기의 마음이 이러므로 절제하며 지내는 겁니다.
동고동락하겠다는 마음이야말로 신하 중의 신하입니다. 므비보셋의 행동은 마치 부모님 상(喪)을 당한 자식과 같은 마음입니다.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다윗 왕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깊은 충성의 표현입니다.
현재의 집권세력인 압살롬 체제 아래서 다윗 왕을 위해 이렇게 마음을 써는 것은 다윗만을 왕으로 섬기겠다는 일종의 시위입니다. 므비보셋의 이런 모습은 아첨이나 하고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시므이나 시바 같은 부류의 악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충성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화려한 언변보다 좀 투박할지라도 진실하게 살아가는 삶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마 25:40). 마침내 므비보셋은 압살롬 정권이 무너지고 다윗이 왕궁으로 귀환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쁩니까? 왕을 환영하기 위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결코, 보여 주기를 위한 쇼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 모습으로 다윗에게 나아갔습니다.
다윗으로부터 받은 은총이 므비보셋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므비보셋의 심장은 다윗을 향한 사랑으로 고동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을 향한 충성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다윗을 만나는 그날까지 세상의 즐거움은 내려놓고 오직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다윗은 밖에서 고생하고 므비보셋은 안에서 고생하였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고난을 겪지만, 므비보셋은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하였습니다.
잠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3. 므비보셋은 물질을 초월하여 다윗을 섬겼습니다. |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다윗의 피난 길에서 주인 므비보셋이 반역한다고 모함하였습니다. 이 일로 다윗은 화가 나서 므비보셋의 밭을 시바에게 넘겼습니다(16:04). 그런데 다윗의 예루살렘 환궁 일정에서 시바가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산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다윗은 자초지종을 알았으니 므비보셋에게 시바가 차지한 재산을 되돌려야 합니다(09:07~11).
그런데 시바에게 절반만 돌려주라고 명령합니다(29). 재산 절반만 므비보셋에게 환수시킨 것은 불공평한 처사입니다. 다윗이 시바의 모함과 므비보셋의 결백을 확인하고서도 이렇게 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전 재산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면 앞서 16:04 절에서 내린 그의 결정이 경솔한 것으로 판명되어 왕의 약점이 노출되고 체면도 말이 아닙니다.
또 다윗이 피난 시절 시바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에 따라 시바와 일단 약속한 내용을 완전히 저버리기도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절반의 판정을 내린 것은 다윗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통치 원리 때문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 환궁과 왕위에 복권하는 처지에서 그 누구라도 보복하지 않고 원만한 탕평(蕩平)책을 시행하려 했습니다. 불만의 싹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므비보셋이 과감한 결단을 합니다.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셨으니 시바로 재산 전부를 차지하게 하십시오. 재산을 다 자기를 모함한 시바에게 주라고 합니다. 이 말로 다윗 왕의 체통이 완전히 살아납니다. 당시 다윗은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자가 되었다가 돌아온 것뿐만이 아닙니다. 다윗과 그의 집안에 대해서 여러 사람이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밧세바 일로 인한 우리아 장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고, 다윗의 아들들 소위 왕자의 난으로 골육상쟁이 벌어지고 있었고(삼하 13장), 거기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 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다윗은 최고의 위기를 만난 때입니다.
민심이 혼란스럽고 다윗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시기에 얼마나 왕을 무시했으면 시므이라는 사람은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갖은 저주를 하였습니다(16:05~08). 이럴 때 므비보셋이 과감한 결단, 재산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결단이야말로 다윗 왕가에 대한 멀어진 민심을 돌아오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여러분이 므비보셋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한마디 하고 재산 절반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왕이여, 저 배반자 시바 용서할 수 없는 놈이지만 왕께서 재산을 절반 나누라 하시니 받아는 들이겠습니다. 저 시바를 앞으로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라고. 므비보셋은 재산보다 왕의 은혜를 입고 왕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겼습니다.
다윗의 복위가 이루어졌으니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므비보셋의 관심은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자신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주신 다윗 왕 자체입니다. 이 일 후에 시바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바가 므비보셋의 자비로움에 감격해서 다시금 충직한 종이 되어서 평생을 잘 섬겼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조금 손해 보는 듯 삽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조선시대 역사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 새 임금 중종은 공신들의 득세로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공신들을 견제하려고 개혁파의 중심인물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영입하였습니다. 4년간 걸쳐서 개혁 정책을 펼쳤으나 결론은 실패였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중종이 소신이 없는 탓입니다.
중종은 하루아침에 조광조에게 실패의 책임을 물어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1519년 기묘년 정광필(鄭光弼 1462~1538)과 안당(安瑭 1460~1521)이 중종을 만난 자리에서 사형을 재고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종은 말합니다. 지금 처벌하지 않으면 더욱 정치가 그르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사약을 가지고 능주로 내려온 금부도사로부터 잠깐 시간을 얻은 조광조는 시 한 수를 지었습니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아쪄 모셨고 나라를 내 집같이 근심하였네. 밝은 해가 세상을 굽어보는 날 충성된 마음 밝게 비추리.
조광조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관을 두껍게 만들지 말게. 먼 길을 가는데 더딜까 두렵네. 38살의 조광조는 사약을 받았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이들에게 관을 두껍게 만들지 말라고 유언한 배려하는 마음이 멋있습니다.
므비보셋은 한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입니다. 그는 빼앗긴 재산이나 명예와 권력보다는 다윗왕과 화목한 관계를 소중한 재산으로 알았습니다. 이제라도 다윗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니 종 시바가 재산을 다 차지할지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재물은 있을지라도 언제든 떠날 수 있으나 왕의 은총은 떠나서는 안 될 영원한 재산으로 알았습니다.
주군 다윗을 향한 충성을 재물보다 값진 것으로 알았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고난에 처하였을 때 그 고난에 동참하기를 자원하였고 마침내 다윗이 처한 왕권의 곤경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진정한 충성의 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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