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예수님의 팔복

[팔 복 ④] 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마 05:0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1. 1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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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네 종류의 형태로 구분합니다. 첫째, 욕망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육신이 원하는 대로 욕망과 쾌락을 좇아서 사는 동물 같은 사람입니다.

둘째, 육신의 필요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의식주에 관한 일에 올인합니다. 오늘 당장 필요한 향락 거리만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의미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성과 지식의 판단에 따라 바른길, 가치 있는 일, 보람 된 것을 구하며 사는 철학적인 사람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삶의 기초로 삼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주님의 뜻을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구할 최고 가치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말씀처럼 세상의 삶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06:33).

여러분은 무엇에 목마릅니까? 돈에 목마릅니까? 돈에 목마른 사람은 돈만 있으면 다 될 줄로 생각합니까? 그러면 부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행복하십니까? 그들은 고민거리가 더 많습니다.

 

두 손에 가득 쥐어도 결국 빈손입니다. 아무리 세상 것을 자랑해도 순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죽음을 맞이합니다.

김삼일 가족이 구해야 할 것은 목이 말라 죽어가는 사람처럼, 배가 고파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엇을 구하며 살아왔습니까? 혹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에 목숨을 걸었습니까? 이제는 그런 것에서 해방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무엇입니까?

 

0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주님께서 말씀하신 의()란 무엇을 말합니까? (δικαιοσύνη 디카이소쉬네)란 성경에서 매우 넓고 중요하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의는 하나님 뜻에 합당한 모든 것과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행위, 하나님의 법을 말합니다.

좁은 의미에서 의는 구원의 관점으로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이 의(稱義)는 두 가지 의미입니다.

 

행위로 나타나는 의와 마음에 품고 있는 의입니다. 이 두 가지가 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겉으로 나타나는 의에 더 비중을 둡니다.

반면 하나님은 마음에 품고 있는 의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사실 세상의 법은 마음에 품은 것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표출된 것만 문제로 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법은 겉으로 나타난 행위뿐만 아닙니다. 마음에 품은 생각까지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깁니까?

당당하다면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생각합니까? 세상 사람이야 겉으로 나타난 행위로만 평가하기 때문에 남의 눈에 노출만 안 되면 됩니다.

들키지 말라는 11계명만(?) 지키면 된다는 말입니다. 마음에 품은 나쁜 생각들을 평가에서 제외하고 그저 의롭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한두 끼 밥을 먹지 못하면 허기를 느끼지 않습니까?

사람에 따라 한 끼만 굶어도 눈알이 빙빙 돈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요즘이야 다이어트 시대 아닙니까? 자주 굶고 식사량을 줄여 배가 고파도 잘 참아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린다는 의미는 몇 끼 굶어서 허기진 상태를 말하지 않습니다목마른 것도 운동하면서 땀을 흘린 후에 느끼는 정도의 갈증을 말하지 않습니다. 주린다는 말은 계속 식량 공급이 잘되지 않아서 굶주리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우선 바라는 것은 언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느냐입니다. 목마르다는 것도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못해 탈진하여 목숨이 끊어질 것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본문을 외형으로만 이해하면 육신의 주림이나 목마름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20절을 잘 보십시오.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에 대한 기준입니다. 예수님은 20절에 대한 해석을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들어주셨습니다(18).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두 사람의 기도를 비교하여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2. 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까?

 

0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자기의 삶이 완전히 무너질 것처럼 여깁니다. 누가복음에는 주린 자에 대해서(06:21) 단순히 지금 주린 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는 그 주림의 목적을 의라고 밝힙니다. 주림과 목마름은 세상에 사는 모든 인생이 겪는 육신의 기갈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해 겪는 심각한 영적 기근입니다(08:11~14). 이런 굶주림과 목마름은 믿음으로 거듭난 자들이 구하는 새 생명의 영적 욕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 나는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하나님만 갈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지 않으시면 내 생명이 여기서 끝날 것 같습니다. 나를 외면하시면 이 죄인이 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라며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습니까? 그래서 간절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까? 목마른 사람이 시냇물을 찾듯이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립니까?

 

시 42:0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 이다. 0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것 하나 아십시오. 사탄은 우리를 재물에 목마르도록 유혹합니다. 성공과 출세에 목말라야 재물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세상의 것을 아무리 가져도 그 목마름이 해갈되지 않습니다. 내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지 않고는 사는 길이 없습니다. 혹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좀 자랑스러운 일이 있었습니까? 그것도 별거 아닙니다.

 

내 영의 생명이 하나님을 향한 의로 잘 다듬어져 있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는 이상 믿음을 논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열심히 쌓아놓은 재물이 내 영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여러분은 무엇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까? 재물입니까? 의입니까?

 

성도 여러분, 제 이야기를 듣고 더듬어 보면 기억 하나가 살아날 것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의 일입니다. 한국이 16강에 오르자 나라 전체가 난리 났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성적을 거두자 집마다, 거리마다, 응원하는 곳마다, 서로 얼싸안고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짝짝짝, 대부분 사람이 축제 분위기였지요. 그때 우리나라 팀을 16강으로 이끈 히딩크 감독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16강 이만하면 대단하다고 여겼던 우리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말이었습니다. 16강 진출에 만족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어 8강에 오르고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4강에 오르고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이 말을 신령한 주림과 목마름에 적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신령한 변화가 일어나면 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픕니다.

목마름과 허기짐이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신령한 면에서 배가 고파야 합니다. 은혜는 아무리 받아도 돌아서면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근본은 죄인입니다. 원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수님 은혜로 구원의 자리에 들어왔을 뿐입니다.

구원의 자리에 들어왔으면 더 이상의 의에 대해 주림과 목마름은 필요 없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더욱 의에 대해 주린 목마름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성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림과 목마름은 진행되어야 합니다.

 

시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름의 복을 받습니다.

 

0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늘 굶주려서 허기가 진 사람은 배불리 먹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육신의 배부름이 아님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는 말씀 자체가 육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 배부름은 심령에 즐거움이 채워진다는 뜻입니다. 언제 신령한 즐거움이 채워집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받을 때입니다.

 

구원의 자리에 들어오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만족함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어디에서 만족함을 찾으려 할까요?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목말라 합니까?

돈에 너무 목말라 합니까? 돈이면 다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까? 기본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어도 신령한 것을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도 때가 되면 다 내려놓고 갑니다. 세상 불의와 자기 죄 때문에 탄식하십시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자리에 서십시오.

그런 분은 영원한 천국의 만족과 배부름을 맛볼 것입니다. 천국에는 굶주림이 없고 목마름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가 넘쳐흐르는 영원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함을 입으면 죄가 사하여집니다. 다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그렇게 갈망하던 목마름과 허기가 채워집니다.

이런 것을 배부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의인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아직 완전한 의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의인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면 부족하고 결함투성이인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어느 한 사람도 구원의 자리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다. 우리에게 완전무결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힘쓰는 것을 귀하게 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예배를 드리거나 말씀을 듣는 일에 우선순위를 둡니까? 그렇게 생활합니까? 그러면 신령한 배부름과 신령한 부유의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자기 의로 가득 찬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신령한 굶주림과 신령한 목마름은 하나님을 만나야만 채워지는 줄 믿습니까? 아멘입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신령한 배부름을 교회 밖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신령한 갈증과 배고픔은 해결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요 0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Amazing Grace를 번역한 찬송가 305장이 있습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런 찬송을 부르는 즐거움과 신령한 배부름을 체험한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림과 목마름 때문에 방황합니다. 문화가 발달할수록 더욱 주림과 목마른 사람이 넘쳐 납니다. 현재 세계가 생산하는 식량은 세계 인구의 두 배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정도로 넉넉합니다. 한 마디로 식량 과잉 공급입니다.

그런데 세계 인구 절반은 기아에 시달립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런 목마름을 겪어야 합니다. 혹 자는 세상 공평하지 않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사람의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달리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세상의 것이 아닌 영의 차원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 주림과 목마름이 진정한 복이라고 하십니다.

많이 주리고 목말랐습니까? 예수님께서 신령한 배부름을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셨습니다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일입니다. 내 한목숨 바칠 만한 사랑의 대상이 있으면 행복합니다그 대상이 예수님이라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일입니다.

 

암 0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영의 양식이 있는 곳에는 신령한 배부름이 있습니다. 그 신령한 배부름은 오직 주님만이 주십니다. 이런 찬송을 부르며 살면 어떻겠습니까? 450장입니다. 행복이 어느새 가슴에 채워질 것입니다.

 

①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②꿈같이 헛된 세상일 취할 것 무어냐? 이 수고 암만 하여도 헛된 것뿐일세. ③살 같이 빠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 온몸과 맘을 바치고 힘써서 일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