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예수님의 팔복

[팔 복 ①] 나는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마 05:01~03).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1. 1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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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에는 예수님의 팔 복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천국 시민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이 팔 복을 빗대어 마귀 팔 복이라는 글도 있습니다. 비록 지어낸 글이지만 한번 들어 볼 만한 글인 것 같습니다.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예배에 빠지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나의 믿을 만한 일꾼이 될 것이요, 목사의 잘못이나 흠을 보고 트집을 잡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할 것이요, 교회에 나오라고 통 사정해야 나오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교회의 말썽꾼이 될 것이요,

남의 말을 옮기기를 좋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다툼과 분쟁을 일으킬 것이요, 걸핏하면 삐지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교회를 떠날 것이요,

헌금에 인색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나의 일을 가장 잘 돕는 자가 될 것이요. 형제와 이웃을 미워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영원한 나의 친구가 될 것이요. 성경 읽고 기도할 시간이 없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꾐에 넘어가 수치를 당할 것이라.

 

김삼일 가족은 마귀의 팔 복을 들으면서 혹시 가슴에 찔리는 부분이 있습니까? 영적으로 빨간불이 켜졌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속히 믿음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의 파산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팔 복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복이 있나니, 복이 있나니 이런 식으로 8번 반복됩니다. 이 복이 원문에서는 최상급의 복입니다. 오늘은 첫째 복을 살펴보면서 제목을 나는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로 정했습니다.

 

 

1. 나는 심령이 가난합니까? 물질이 가난합니까?

 

0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은 누가 복이 있는 사람이냐를 놓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반면 평행 본문 눅 06:20 절에는 가난한 자 앞에 심령이란 말이 없습니다. 심령이란 말을 제하고 가난한 자를 해석하면 이는 구걸 수준의 가난이 됩니다.

심령의 가난이 무엇입니까? 심령은 영혼을 뜻하기 때문에 분명히 경제의 궁핍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물질의 가난이나 궁핍을 미덕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마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는 데 비해 누가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마태와 누가 양자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심령(心靈) 즉 마음과 영혼이 가난하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마음속에 있는 세상의 재물욕, 권세욕, 명예욕 등에 대한 탐심을 비우기 위해 애쓰는 상태입니다. 이런 것들을 비우려고 애를 쓸 때 과연 과연 욕망이 비워집니까?

비우려 함에 앞서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보면서 이 일을 어찌하여야 할 꼬? 하며 가슴을 치는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동시에 자기의 무능함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라는 고백도 하여야 합니다. 이런 행동들이 따를 때 심령이 가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욕심은 우리의 영혼을 혼탁하게 합니다. 영혼의 판단력을 무디게 합니다. 무엇이 참된 가치인지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하지 못합니까? 아직도 심령이 가난한 상태가 아닌 증거입니다.

 

계속 경건한 생활을 하기 원합니까? 욕심을 심령에서 덜어내는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성도와 재물의 관계입니다. 성도가 재물이 많으면 심령이 가난해질 수 없습니까? 모든 물질을 버려야만 심령이 가난하고, 재물이 많으면 정말 심령이 가난하지 못하느냐 말입니다.

 

우리는 재물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복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약시대 믿음의 3대 족장을 보십시오. 그들은 많은 재물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잘 활용하였습니다. 신약에서 권력자요 부자였던 두 사람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장례 현장에 아리마대 요셉( 27:57)과 니고데모( 19:39)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부자였고 권력자이면서도 심령이 가난하였습니다.

세상 재물이 넉넉하여도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처럼 심령이 가난한 성도가 있습니다. 반면 재물이 없어도 마음에 탐심이 가득한 사람도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행복을 여는 첫 열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심령의 가난함입니다. 그러나 물질의 가난과 심령의 가난은 성격이 다릅니다.

요즘 매스컴을 통해서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는 말입니다자기 집을 가지고 있지만, 집을 살 때 받은 대출 이자를 갚느라 살림이 매우 힘든 사람을 말합니다.

집을 살 때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많은 대출을 받았지만, 집값이 오르지 않고 금리만 올랐습니다. 당연히 수입 대부분이 이자로 빠져나가 쓸 돈이 거의 없습니다.

 

캠퍼스(campus) 푸어라는 말도 있습니다. 비싼 등록금에 학자금 대출을 받았지만 높은 이자까지 겹쳐 아르바이트로는 대학 생활을 할 수 없는 가난한 대학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웨딩(wedding) 푸어라는 말도 있습니다. 결혼하면서 신혼집 장만하고 또 결혼 비용 지출하느라 빈곤해진 신혼부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외형으로는 제법 그럴듯하게 보여도 현실의 가난한 사람은 주님께서 찾으시는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심령에 주님을 모신 그런 가난한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2. 심령이 가난하면 복이 임합니다.

 

0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우리나라는 복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새해가 되면 한결같이 복 받으십시오. 라고 인사를 하는데 들으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좋은 인사법이죠. 그래서 이 복을 베개에도 이불에도 막 새겨 넣습니다. 그렇게 해서 복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 그렇게 해 봅시다.

사실 가난을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에 대한 가난이냐가 중요합니다. 가난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분명히 복이 임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누가 복의 주인공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이 말의 뜻은 물질의 가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과 물질에 속박되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0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진정한 복의 근거가 심령의 가난에서 출발한다는 뜻입니다. 더러는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다고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의 믿음과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욕망이 다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입니까?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왔으며 그 출처는 마귀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일 0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 욕망을 비우기 위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그 길에 심령의 가난함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평행 본문 눅 06:20 절에는 심령이란 말이 없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렇게 나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 가난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최 극빈을 나타내는 가난입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가난입니다.

 

극빈자일수록 외부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가난을 해결할 길이 없으니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라는 뜻입니다성도 여러분, 여기서 하나 이해하고 넘어갑시다. 그것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경제의 가난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특별한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하라는( 01:27, 28) 물질의 부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마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심령의 가난이나 물질의 가난이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어떻게 받아 누리느냐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팔 복을 보십시오. 같은 반복 스타일입니다.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주님께서 친히 복이 있다고 선언하시는 이 말씀을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려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 팔 복만큼은 내가 반드시 받기를 원합니다. 주시옵소서. 이렇게 간절하게 고백하여야 합니다.

 

왜 팔 복을 받아야 합니까천국 시민은 경건 생활이 절대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03절 말씀처럼 심령이 정말 가난해지기를 원합니까? 세상 재물에 대한 탐심을 버리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 66:0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의 복을 받습니다.

 

0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만이 천국의 문을 여는 신앙의 마스터키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는 복의 종착점이 어디입니까?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했으니 바로 천국입니다. 여기서 천국은 단순한 세상 국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권과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말합니다.

리가 흔히 쉽게 말하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천국입니다. 그러나 03절에서 말하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천국과 함께 살아서 체험하는 신령한 천국도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죽어서 천국만 가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을 때도 영원한 천국을 내다보며 살게 하십니다.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하면 당연히 천국이 되겠지요.

 

그러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가난한 심령이 아니고는 천국을 체험할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습니다.

김삼일 가족들은 이 천국을 지금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여러분 혹 이런 말을 들어 보았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천국을 체험하지 못하면 죽어서 천국을 간다는 말도 믿을 수 없다. , 천국은 땅 위의 생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주님께서 천국에 대하여 앞으로 천국을 가게 될 것이다. 라는 미래형이 아닙니다. 현재형을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아, 이제부터 너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시작될 것이다. 라는 천국 임재의 선언입니다.

 

김삼일 가족은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천국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심령이 가난하게 되기를 원하는 삶에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천국의 행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이미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거하십니다. 천국이 임하였습니다.

이런 신령한 천국이 아닌 사람의 수고로 인해 천국의 기쁨 같은 것을 누리는 일은 그 수명이 매우 짧습니다. 잠깐 지나가고 맙니다.

 

고후 0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어느 상이용사의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기도문. 강한 사람이 되어 많은 것을 성취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약한 사람이 되게 하시어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순종하는 진리를 터득하게 하셨다.

건강한 사람으로 더 큰 일을 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장애인이 되게 하시어 더 좋은 일을 하게 하셨다. 부자가 되어 성공하게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빈곤하게 하시어 지혜롭게 살게 하셨다.

권력을 가지고 남을 위해 살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힘이 없는 약자가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필요를 느끼고 의지하게 하셨다.

인생을 즐길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지만, 간절하게 구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희망했던 모든 것을 얻었다. 현재 처해 있는 처지가 이러해도 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사람 중의 하나이다.

 

성도 여러분, 내 심령이 가난해지지 못하도록 걸림돌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로부터 환호 받을 때가 있습니까? 그럴수록 심령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칭찬을 듣고 성공 궤도를 잘 달리고 있습니까? 더욱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부유하고 부족함이 없을 때, 늘 깨어 기도하면서 천국이 임하는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구약시대 최고의 복이 무엇일까요?  06:24~26절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심령에 심읍시다.

 

민 0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지니라.. 하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 영국과 싸우다 2,338일을 교도소에서 지냈습니다. 그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평생 산상수훈을 애독하였고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특별한 선물로 마 05~07장을 읽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말씀을 생활의 기본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간혹 빚을 받으러 갈 때는 이것을 읽고 갔다고 합니다. 혹 사람으로서 못 할 짓을 할까여서 입니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예수님의 교훈대로 살려고 힘을 썼습니다. 반면 기독교인인 우리는 산상수훈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지 제대로 아십니까? 그 말씀을 실천합니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10가지 특징. 자기의 약한 참모습을 바로 본다(고전 01:26~31). 적은 것으로도 감사한다( 12:37~50).

하나님 앞에서 항상 마음이 겸손하다( 57:15). 자기가 죄인임을 늘 깨닫는다( 03:23).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으로 살아간다( 02:04). 어린아이의 심령같이 순수하다( 18:03). 항상 하나님을 찬양한다( 01:46~48).

자기를 항상 부인하며 포기한다( 09:23).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한다( 42:01). 천국을 사모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다( 03:01, 02).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복의 개념은 만사형통입니다. 잘 되고, 또 잘 되고, 많고, 더 많고, 높고, 더 높고, 더 우아하게 되는 것을 복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 05장의 팔 복을 통하여 신령한 복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을 앞세우고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