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사도신경

[사도신경⑦] 하늘로 올려 지신 예수님(막 16:19; 히 07:2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1. 1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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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늘에 올라간다는 일은 대단히 흥미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비행기를 개발하게 되었고 우주여행의 길도 활짝 열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기술로는 좀 꿈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그런 것이 없어도 인간은 하늘에 오를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셔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우주 공간으로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다는 뜻입니다.

 

사도신경에는 예수님께서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라는 말씀에 이어 바로 하늘에 오르시어 라고 나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40일 간 행적을 더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으면 후대의 사람들이 훨씬 실감 나게 믿을 수 있을 것인데 좀 아쉽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의 40일 간 행적이 사도신경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거의 생략되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승천에 관한 일들은 여러 곳에 나옵니다. 그만큼 승천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사도신경 강론 7번 째 시간으로하늘에 올려지신 예수님이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하늘로 올려 지셨습니다.

 

01:0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날을 지내신 후 예루살렘을 떠나 겟세마네 동산 감람산 산등성이 베다니 동쪽에 오르셨습니다. 이어서 제자들과 잠시 담소하신 후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올려 지셨습니다.

이때의 일을 누가는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01:09)고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제자들이 계속 하늘을 쳐다보고 있자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전했습니다(01:10, 11).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행 01:09~11절 사이에서 본다는 말이 5번이나 나옵니다. 09. 그들이 보는데.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11. 하늘을 쳐다보느냐.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왜 이렇게 보는 것을 강조합니까? 예수님의 승천 사건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기삿거리가 아니라 실재 일어났던 일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승천(昇天) 기록은 어떤 수식도 붙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을 확신시키기 위한 어떤 시도도 없이 단순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사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부활하여 계신 주님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하늘에 오르신 사건에 있어서는 그 결과가 안 것이 아니라 승천 그 자체를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하늘에서 무엇을 하실 것인가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떼어놓고 부활 그 자체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의 첫 설교를 부활로 시작하여 승천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02:32~35).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승천에 대하여 12회 정도 나오는데 이 가운데 예수님이 승천에 대하여 아주 인상 깊게 전한 말씀이 있습니다.

 

16:0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셨고, 이미 구원 사역의 목적을 이루게 되면 하늘에 오르실 것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동시에 자신이 떠나면서 보혜사(保惠師)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만 해도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로 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야 이 말씀을 이해하였으며 그래서 승천이 진정 자기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하늘로 오르셨는가? 하는 의문점입니다. 이왕 부활하셨으면 세상에 계속 더 머물면 되지 않는가의 의문점입니다. 우리의 짧은 소견으로는 예수님의 뜻을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경의 다른 본문들을 병합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승천 이후 우리를 향한 구원의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늘뿐만 아니라 땅에도, 그 어떤 곳에도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르신 하늘은 천국의 상징이요, 분명한 공간이요, 장차 우리가 가서 지낼 곳입니다(04:01, 21:01, 02). 관념이나 꿈, 환상으로 느끼는 곳이 아니라 분명한 장소이며, 장차 오실 예수님께서 분명히 계시는 곳입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이 구절은 두 개의 상호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의 사역을 마치신 후 하늘로 올려지신 일과, 다음은 예수님께서 영광과 권위를 상징하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계시는 공간은 우리가 사는 공간과는 다른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입니다. 인간이 가지는 판단과 기준으로는 측량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그러면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은 어떻게 계시는지 성경이 묘사하는 모습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6:19.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02:35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07:55.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08:34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03:0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12:02.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벧전 03:22.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왜 사도신경이나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다고 나옵니까? 예수님이 공회 앞에서 재판받으실 때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는 말씀 때문입니다(22:69).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뜻은 은유(隱喩) 형태의 표현으로서 문구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늘에 올려지신 일을 놓고 먼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06: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께서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간다고 했는데 이전에 있던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다고 안내를 합니다(08:01).

여기서 우편이란 말부터 먼저 생각해 봅시다. 우편이란 공간의 개념으로서 우편이 아닙니다. 공간의 관점에서 우편이라면 하나님은 공간에 제한된 분이 되고 맙니다. 이 말은 상징으로서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 능력, 영광 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구원 사역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후 본래의 영광과 권세의 위치로 복귀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우편에 앉으셨다는 표현을 휴식의 개념이 아닌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을 안내할 때나 우리가 예수님을 찾을 때 우편에 앉으신 분으로 소개합니다(0301).

때로는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있는 모습도 있습니다. 그 예로 스데반이 순교의 현장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있음을 보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순교의 현장에 놓인 스데반의 믿음을 격려하는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0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은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을 전합니다. 우리도 장차 그 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앉게 될 것이며(02:06), 사도 요한도 주님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구원받은 성도는 존귀와 승리의 상징인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보좌에 앉게 될 것을 전합니다(04:04).

 

 

 3.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무엇을 하십니까?

 

07:25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어떤 일을 하십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탈하여 곁길로 나갈 때 친히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제사장으로서 중보자의 역할을 하십니다.

간구하심이라(ἐντυγχάνειν 엔튕카네인). 중재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계속 중보의 일을 하십니다. 성경은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사역을 여러 갈래로 소개합니다.

 

첫째로, 보혜사 사역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해 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습니다. 무엇을 구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속량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중보자로 계시므로 그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월절에 성령님을 보내셨고(02:04), 다소 사람 바울에게 나타나셨고(09:05), 시험받는 자들을 도우시며(02:18),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07:26). 하늘에 오르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단지 육체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제는 성부 하나님과 더불어 인류 구원의 완성을 위해 세상의 주관자로서 일하십니다.

 

둘째로, 대언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으므로 아버지께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2천 년 전에 지셨지만 그 십자가의 능력은 당시뿐만 아니라 앞으로 믿을 모든 사람에게도 효력이 있습니다.

오늘 나를 죄에서 구원하고, 또 구원 이후 매일 범하는 죄까지 용서해 주실 수 있는 것은 주님은 우리의 대언자(Παράκλητο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 범죄가 아닌 어떤 죄라도 자백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사해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도우심을 얻어 승리합니다.

 

요일 02:0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셋째로, 통치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교회를 통해 우주 만물과 세상만사를 다스립니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개인사, 가정사, 민족사, 인류의 역사, 교회의 역사, 우주 만물 등을 총망라해서 통치하십니다.

 

0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동시에 장차 우리가 지낼 곳을 예비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14:02.03). 그동안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04:16). 성도 여러분,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 외에도 일반 사람과는 달리 하늘로 올려 짐을 받은 사람을 소개합니다. 구약시대의 인물 두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인물은 에녹입니다. 믿음으로 살면서 특별히 하나님과 3백 년 간 믿음으로 동행을 하다가 들림을 받았습니다(05:24).

 

0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둘째 인물은 엘리야입니다. 이 선지자는 마지막에 후계자 엘리사에게 갑절의 능력을 전수하고 회오리바람을 따라 들림을 받았습니다(왕하 02:11).

 

왕하 02: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이처럼 승천의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승천의 사건을 꾸며낸 이야기나 혹은 상징과 비유의 의미라면 장차 임할 예수님의 재림도 상징이나 비유에 불과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가령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부활도 한 신화에 불과하다면 믿음의 모든 행위가 헛것이고, 우리야말로 더욱 불쌍한 존재입니다(고전 15:14, 19).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살아나셨고, 승천하셨으며, 장차 심판하러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굳게 믿고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고 기다립니다.

 

24: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