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8년 말씀

[추수감사주일]불행 공장 폐업, 감사 공장 개업( 126:01~0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8. 11. 10.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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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사고방식] 책을 저술한 노만 빈센트 필[오하이오주 Norman V. Peale 1898.5.31.~ 1993.12.24.] 박사가 어느 날 여행을 위하여 기차를 탔습니다. 때가 되어 열차 식당에 들어갔는데 바로 옆자리에 초로의 부부가 식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식사하면서 계속 불평을 합니다. 채소가 신선하지 않은 것 같다. 고기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라고 불평하더니 이내 날씨가 왜 이렇게 변덕스럽고 좋지 않은가? 오늘 여행은 잘못 떠난 것 같다며 계속 불평합니다.

남편이 옆에 앉은 필 박사에게 민망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양해를 구합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 아내의 직업이 그래서요. 필 박사는 직업이 뭔데 이렇게 불평을 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실례지만 부인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남편이 말합니다. 제조업입니다. 무엇을 만드는데요? 하고 재차 묻자 남편은 민망한 얼굴로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불행제조 공장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불행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말과 행동, 사고 하나하나가 불만인 사람은 자기도 불행하고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결국, 그런 사람은 불행 열차를 탄 사람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복이 들어오겠습니까? 들어왔던 복도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B.C. 500~A.D. 500년까지 유대인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지혜들을 10년에 걸쳐 2천여 명의 학자들이 해설집으로 만든 탈무드(Talmud)가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한쪽 다리가 부러졌으면 두 다리가 부러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십시오. 두 다리가 부러졌으면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십시오. 목이 부러졌으면 더는 고민할 것이 없음을 감사하십시오

아주 좋은 잠언입니다. 다음 주일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범사에 감사 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하여 불행 공장 폐업 감사공장 개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불행제조 공장 이제 폐업합니다.

 

0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았습니다. 남쪽의 이집트로부터 침략 북쪽의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입니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 왕국 유다 백성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세 차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1, 유다 왕국 18대 왕 여호야김 제3년에(01:01~06), 2, 19대 왕 여호야긴 때에(왕하 24:14), 3, 마지막 왕 시드기야 때입니다(왕하 25:07). 나라가 망해서 포로로 끌려간 자들의 삶을 어떻게 말로 설명 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의 고달픈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137:0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하나님은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되자 마침내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대하 36:22).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바벨론 포로 칠십 년이 차면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29:10)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이를 역사에서는 고레스 칙령(勅令)이라 하는 데 바사(Persia) 왕 고레스가 이렇게 선포합니다.

 

대하 36:23.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바벨론 포로 생활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선포입니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 꿈 같은 일이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숨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 가족끼리 뿔뿔이 흩어져 살아온 세월, 좌절과 울분과 원망으로 살아온 세월을 마침표 찍는 순간입니다.

지난 세월 돌아보면 인생을 송두리째 도둑맞았고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혔지만, 이 모두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니 불평과 원망이 달아납니다. 불행제조 공장을 폐업하니 웃음이 가득 살아납니다. 입술에 기쁨의 찬양이 묻어납니다. 하나님께서 큰일 해 주셨음을 감사로 고백하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 불평과 원망의 창고를 지으려고 온갖 노력을 합니다. 잠깐만 틈을 보이면 불평과 원망의 창고를 지어버립니다. 그 창고 안에는 각종 씨가 있습니다. 마귀가 보관해 놓은 씨인데 불평과 원망의 씨, 미움과 질투의 씨, 욕심과 허영의 씨 등입니다.

그리고 이 씨는 어느 곳 누구이든 뿌리기만 하면 싹이 잘 납니다. 그런데 한 곳에서는 이 씨가 뿌리를 전혀 내리지 못합니다. 아무리 뿌려도 싹이 트지 않습니다. 바로 감사하는 공동체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일단 감사부터 하는 공동체와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를 뿌리지 못합니다.

 

칠십 년이나 포로 생활을 하면서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혀 있던 이스라엘이 고레스 왕의 이 말 앞에 모든 슬픔과 원망을 지워버립니다. 예루살렘에 성전 건축하러 가도 좋다. 갈 사람은 누구든지 이 포로수용소 같은 곳을 떠나라. 하나님의 백성은 조건 없이 해방하겠다(대하 36:23). 이 말에 이스라엘의 근심과 원망이 떠났습니다. 찬양과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불행제조 공장이 웃음제조 공장으로 바뀌었습니다.

 

 

 2.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냄을 받아야 합니다.

 

0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하나님은 불행제조 공장을 끝낸 이스라엘에 웃음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 큰일을 해 주셨으니 기쁩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번 기뻤다고 그것으로 문제가 다 풀린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풀어야 할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남방은 유다의 불모지인 네게브(Negev) 사막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사막은 평소에는 마른 상태로 있습니다. 그러다 가을이나 겨울에 많은 비가 내리면 일순간에 흙탕물이 가득한 격류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런 특징을 염두에 둔 기자는 하나님, 이제 포로 생활을 마치고 은혜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남방 시내들 물길이 열린 것처럼 일순간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은혜의 물길을 열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와 사는 가운데 그곳에서 그럭저럭 적응하였고 사람에 따라서는 높은 관직에도 올라 왕의 총애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삶의 여건이 열악한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선언은 그리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남방의 시내들같이 돌려보내 달라고 기도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하나님과의 신령한 시간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감사하며 살 때입니다. 불평을 멀리 던져 버리고 살 때입니다. 감사하는 일에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불평하는 일에 사탄이 거합니다. 원망하는 일은 마귀를 불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다르게 말합니다. 항상 낙심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 이는 마귀 안에서 너희를 향한 나의 뜻이니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분들 되기를 원합니다. 감사할 것인가? 불평할 것인가는 내가 선택하면 됩니다. 같은 환경이지만 감사의 생활을 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풍요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같은 환경이지만 불평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그 인생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를 회복하는 일에 기도로 집중하십시오. 이것이 복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의 휴대전화에 입력된 연락처가 몇 개쯤 됩니까? 그분들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여전히 인맥을 돈으로 생각합니까? 최근에는 인맥 다이어트, 친구 감량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와 SNS에 등록된 친구를 삭제하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연락처는 저장되어 있지만,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다면 사실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과감하게 정리하여 거기서 나오는 시간을 주님께로 돌립시다

저도 좀 정리를 했는데 아주 편합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도 불필요한 부분을 정리하고 거기서 나오는 시간을 하나님과 만남으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감사가 회복되도록 집중하여야 합니다. 남방 시내들이 물길을 연 것처럼 우리의 감사를 하나님께로 열어야 합니다. 열었으면 그 은혜의 물꼬가 닫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3. 눈물이 있는 수고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0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편은 바벨론에서 고레스 왕의 조서를 접하고 놀라며 감격하던 그 현장에서 바로 기록한 시가 아닙니다. 이 시는 그 후 예루살렘에 돌아온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 때보다 더 가난과 고생과 낙담과 또 다른 위협에 놓인 상황에서 지은 시입니다.

사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이스라엘의 현실은 비참하였습니다. 경제는 피폐하였고 생활 양상은 바벨론 포로 시절보다 더 열악합니다. 거기다 성전도 완전히 파괴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때가 아닙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전 건축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자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일이 곳곳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이 일을 당연히 감당해야 할 우선순위로 여기니 눈물로 감당 할 수 있었습니다.

 

시편을 읽으면서 보시면 150장까지 대부분 제목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의 시, 아삽의 시, 고라 자손의 시, 현악기에 맞춘 노래 등입니다. 이 가운데 15개의 시편(120~134)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있습니다.

이런 제목의 시편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32(18)을 제외하면 모두 짧은 구절(03~08)로서 깊은 경건심이 들어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갈 때 부르는 노래라면 올라가는 그때가 언제입니까? 이스라엘 남자들이 1년에 세 번 올라가는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16:16) 때입니다.

 

이때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선창하고 이어서 뒤에 오는 사람이 따라 부르면서 성전산으로 올라갑니다. 시편은 찬송가 가사이기 때문에 선창을 따라 틀리지 않게 따라 부르려고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성전산에 도착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십시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온갖 방해를 무릎 쓰고 성전 건축을 완공한 후에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감격과 눈물의 고백을 한순간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아까운 현장입니다. 그래서 그 옛날 포로로 잡혀가던 시절부터 고레스 왕의 해방선언과 종의 신분을 벗고 돌아오는 과정, 고국에 돌아와서 성전 건축을 하는 동안의 과정을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역사의 과정을 찬송시로 짓기는 하였는데 언제 어디서 부를 것이냐를 놓고 제사장이 공적으로 인정해주느냐? 해주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부를 것이냐가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최종 결정된 것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표제에서 보는 것처럼 이 노래는 이스라엘이 성전에 오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르는 찬양 기도문입니다. 이 시편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작자 미상(未詳)이라고 합니다. 혹 성경 연구가들은 126편 배경과 당시의 상황을 볼 때 학개, 스가랴, 에스라 등으로 지목하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상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고레스 왕의 해방선언을 상기시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포로들이 마치 꿈꾸는 것 같던 감격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남방의 시내들이 흘러감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고국으로 돌아온 일을 상기시킵니다.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무리에 맞서 믿음으로 밀고 나간 일을 눈물로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라고 비유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의 가슴에 담아야 합니다. 교회 일에도 단순한 수고가 아니라 눈물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06:0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0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된 한 노인이 찌그러진 듯한 빵 하나를 식탁 위에 놓고 두 손을 모은 채 하나님께 머리 숙여 기도하는 그림(1918) The Grace가 있습니다. 감사의 기도입니다. 미국의 사진작가 엔스트롬(Eric Ekstrom)이 미네소타의 보베이(Bovey) 탄광촌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 신발 흙 털개를 팔러 온 Charles Wilden이라는 분을 찍은 모습입니다.

엔스트롬은 식사하는 이 노인을 처음 보았을 때 비록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지지는 못했지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니 어느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림의 원작 사진 작품은 흑백과 세피아톤 사진으로만 현상되었습니다. 훗날 엔스트롬의 딸 로다 나이버그(Rhoda Nyberg)가 유화로 그렸는데 지금 우리가 보는 작품입니다. 그 밑에 어느 시인의 글귀가 하나 적혀 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자는 인생의 맛을 모른다. 라는 글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볼 때면 마음이 저립니다. 그림 속 노인의 식탁 위 그릇에 담긴 수프 한 그릇과 접시도 없이 식탁 위에 놓인 마른 빵 하나 그리고 옆에 놓인 성경과 안경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십시오.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불평과 원망이 많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은 눈물 젖은 빵 하나를 놓고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위에 은혜를 주십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열정과 수고를 말합니다. 땀도 열정이겠지만 눈물은 더 간절한 정성으로서 인간 편에서의 최선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있어서 좋은 결실을 보려면 먼저 열정과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눈물의 수고가 없이는 거두지 못합니다

정성과 열정을 쏟지 않고 기쁨을 갖지 못합니다. 땀을 흘리고 눈물로 수고해야만 기쁨의 요소가 찾아옵니다. 이제 불행제조 공장 폐업하였습니다. 동시에 감사제조 공장 개업하였습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에는 진정한 구원의 감격과 눈물의 감사 그리고 눈물의 열매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