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8년 말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면 망합니다.(왕상 12:25~33)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8. 11. 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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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세 번 남북정상회담, 여러 번 한미정상회담, 한 번 북미 정상회담을 하였습니다. 내년 초쯤 또 북미 정상회담 예정입니다. 이로 인해 도발은 중지할 것이고 주식시장이 출렁이는 위기는 일단 벗어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북한 주민의 탈북은 더욱 철저하게 감시하며 막습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자칫 체제전복의 도화선이 될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은 매우 못사는 나라, 미 제국주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나라로 현혹합니다

그런다고 그들이 그렇게 믿겠습니까? 이미 많은 정보 매체가 흘러 들어가 그들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마 잘 안 믿을 겁니다. 그래도 흑색선전과 중상모략은 그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 시대가 끝난 후 남북으로 나라가 나누어졌습니다. 역사는 북 왕국을 이스라엘, 남 왕국을 유다라 칭했습니다. 그런데 남북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비교하면 북 왕국 이스라엘이 군사력과 경제력과 지파 별 인구 면에서 월등히 많았습니다

열두 지파 중 남 왕국에는 다윗과 솔로몬을 배출한 유다 지파와 여기에 가세한 베냐민 지파 정도입니다. 우리는 열왕기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동족이 꼭 남북으로 나누어져야 하는가에 대해 안타까움으로 한 가지씩 잘못을 보겠습니다.

 

먼저 남 왕국 르호보암 왕에 대한 평가입니다. 솔로몬 왕의 아들로서 왕위를 물려받았으면 고율의 세금정책부터 낮추어야 하는데 더 높인 일입니다. 다음으로 북 왕국 지파가 일시의 고충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파 감정에 사로잡혀 다윗 왕조와 결별하였습니다

그래도 참아야 했는데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이럴 때는 어느 왕국을 지지해야 합니까? 나름 양자가 다 당위성이 있는데 말입니다. 기준은 하나님이 어느 쪽에 정통성을 인정해 주시느냐입니다. 비록 남 왕국의 허물이 클지라도 하나님은 메시아의 계보가 있는 남 왕국에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면 망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1.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여로보암은 뿌리 깊은 지파 감정 영향으로 온 백성 지지를 받아 북 왕국 초대 왕에 추대되었습니다. 새로운 나라를 세웠으니 당면 문제가 무엇입니까? 체제를 정비하는 일입니다. 동시에 정치와 종교의 구심점 역할을 할 도읍지를 선정하고 건축하는 일입니다. 건국(建國) 초기라 백성들이 힘써 협조하였습니다.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도읍지 세겜(שְׁכֶם)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58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의 사방으로 통하는 교차 지점입니다. 동시에 수도(首都) 세겜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동쪽 외곽지역 부느엘(08:085 브누엘, 32:30 브니엘)에 요새를 세웠습니다. 국가의 기초를 세웠는데도 여로보암은 내심 불안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다 거룩한 성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속마음을 표현하는 구절이 26절입니다.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확보했으나 메시아 계보인 다윗 왕조와 결별하였고,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성전이 남 왕국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이런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렸습니다

다윗왕 이후로 제사를 신앙의 중심지가 된 예루살렘에서 지내라 했기 때문입니다(왕상 09:03). 그러나 여로보암은 북 왕국 사람이 제사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만은 절대 막아야 할 처지입니다나라의 기초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종교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특별 대책을 속히 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대책이 여로보암 우상 숭배 정책입니다. 그런데 이 정책은 경건한 신앙인들에게는 오히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 왕국으로 탈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대하 11:13~16).

 

이에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둘을 만들고는 백성들에게 이제는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없다. 이 금송아지가 우리의 하나님이다(28). 라고 선언합니다. 눈으로 보는 하나님을 섬기려는 이스라엘 백성은 왕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하여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벧엘과 단에 두었습니다

왜 벧엘에 두었습니까? 벧엘이 유다 국경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벧엘과 그 부근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게 하려는 유인책입니다. 또 하나는 북쪽 단에 두었습니다. 북쪽에 있는 백성이 쉽게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배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멀리 가면 힘드니 가까운 곳에서 섬기라는 은근한 회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바꾸면 멸망을 만납니다명백한 하나님의 의도를 사람의 생각으로 바꾸는 일, 내가복음을 만드는 일은 죽음입니다. 이런 자의(自意) 해석이 국가도 가정도 망하게 합니다이 여로보암의 우상 죄에서 나온 불행한 속담을 아십니까?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라는 말입니다(왕상 15:34, 16:02, 16:19, 22:52).

 

 

 2. 여로보암은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무너뜨립니다.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이스라엘의 구심점 역할 하는 곳이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여로보암은 이 예루살렘 성전 제사에 대응하는 조처로 곳곳에 산당을 짓고 제사장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산당(בָּמָה 山堂)들을 짓고. 이 산당은 가나안 원주민이 섬기는 우상 숭배 산당과는 구별되는 곳으로서 단순한 제사와 기도의 장소입니다. 사무엘 시대에는 실로에서 성막 제사를 제대로 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산당에서 드렸습니다(왕상 03:03, 04). 단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까지로(限時) 우상 숭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여호와의 제단입니다.

이에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미련을 갖지 못하도록 옛 산당 제사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산당에는 예루살렘 성전과 달리 법궤와 하나님의 임재가 없습니다. 가나안 종교의 우상 숭배 의식과 결합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장소입니다.

 

보통(קָצָה 카차)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우리말에서 보통(普通)이 갖는 순한 어감(語感)과 달리 황폐하다. 는 뜻을 가진 좀 냉소(冷笑)스러운 말입니다. 아무나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다는 뜻인데 하나님의 법도에는 레위인만이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28:01~04). 그런데도 여로보암은 보통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고 제사를 주관하게 했습니다.

제사장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이 제사를 주관하면 그런 제사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제사가 되겠습니까? 옛날 광야시절 나납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제사를 지내다 징계를 받아 죽임을 당한 사건이 있습니다(26:60, 61).

 

나답과 아비후 이 둘은 레위인이며 아론의 후손 정통 제사장입니다. 그런데도 제사 방법을 위반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로보암이 보통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으니 하나님의 법을 고의로 위반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있을 수 없는 무서운 일입니다. 레위인이 한 사람도 없어서 이런 불법한 일을 저질렀습니까? 아닙니다.

레위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레위인을 배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법도를 떠나 자기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계획 때문입니다(대하 11:15).

 

대하 11:15 여로보암이 여러 산당과 숫염소 우상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하여 친히 제사장들을 세움이라.

 

여로보암이 숫염소 우상을 도입한 것은 애굽의 신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고, 송아지 우상을 도입한 것은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한 일에서(32:01~04) 멸망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왕이 이런 일을 벌이니 이스라엘 전역에서 율법과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레위인들이 자기들 사명이 무너진 줄 알고 대거 남 왕국 유다로 망명하였습니다(대하 11:13~15).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여로보암은 절기의 날짜도 자기 마음대로 변경시켰습니다. 23:34절은 715일에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였는데 여로보암은 815일로 변경시켰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분명히 섬겼습니다. 산당을 세웠고 제사장도 세웠고 절기도 지켰으나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성경과 다른 사람의 생각입니다. 결국, 여로보암은 자기뿐만 아니라 온 백성으로 죄를 짓게 하였습니다.

 

 

 3.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면 멸망이 옵니다.

 

왕상 14:16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 하고 이스라엘로 범죄 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여로보암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첫 왕 아닙니까? 나라의 기초를 세우고 믿음의 질서를 세우는 일에 막중한 사명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사람의 방법으로 섬겼습니다. 백성들까지 자기의 방법을 따르도록 공권력을 동원하였습니다

파멸의 길을 닦고 말았습니다. 결과는 이스라엘 전체를 불행으로 오염시킨 원조가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여로보암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라는 파멸의 길을 내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무서운 선고입니다. 여로보암은 이런 선고가 나오기 전에 하나님께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면 여로보암이 혹 회개한 기미라도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할 만한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이라도 있습니까

아니면 형식이라도 좋으니 회개의 모양을 취한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여로보암은 오늘 말씀 왕상 12:25~33절 후에도 계속 악의 길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성경으로 간단하게 보겠습니다

여로보암이 보통 사람을 산당 제사장으로 삼은 후에 제사장 물갈이를 자주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 드리는 신령한 직분을 웃음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악한 일 중의 악한 일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예고하십니다.

 

왕상 13: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을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자신도 죄를 짓고 이스라엘 공동체도 죄를 짓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로보암은 심령이 완전히 굳어져서 회개의 자리에 들어오지 못했고 여로보암의 사후 자취도 남지 않는 멸망을 만나고 맙니다.

왕상 15:25~30절을 보면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즉위하였지만,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다 2년 만에 전쟁터에서 바아사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이후 바아사(בַּעשָׁא)가 정권을 잡고 왕의 자리에 올랐는데 제일 먼저 한 일이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멸망시킨 일입니다. 여로보암 가문이 완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길, 파멸의 길에 들어섰을지라도 그 길에서 돌아서면 은혜를 베푸십니다. 다윗처럼 탄식의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요를 적시면(06:06) 살아납니다.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습니다(51:03). 라고 고백하면 살아납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회개의 자리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반면 목이 곧은 사람은 회개의 자리가 없습니다. 죄인과 의인의 차이는 그 사람의 행한 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여부로 나타납니다. 사람이 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때문에 망합니까? 회개하지 않아서 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을 아십니다. 지난 허물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통곡의 눈물을 흘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회개의 수고는 하지 않고 내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풀리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는 과정이 열왕기나 역대기에 나옵니다. 남 왕국 유다나 북 왕국 이스라엘이 다 건국 초기입니다. 남북이 한 사람이라도 세력을 더 모으기 위해 지파 별로 각축전을 벌일 때 베냐민 지파가 남 왕국 르호보암 편에 동참하였습니다. 냐민 지파는 초대 왕 사울을 배출한 지파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이어 왕이 되자 다윗 왕조와는 매우 불편하게 지냈습니다(삼하 02:15; 03:07~ 16:05~ 20:01, 02). 

남과 북이 각각 건국하는 과정에서 베냐민 지파는 정서 면에서 북 왕국 여로보암 편에 서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가 남 왕국 르호보암 편에 섰습니다. 왜 남 왕국을 택했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해석해 보지만 설득력 있는 해석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해가 좀 될 만한 단서를 찾는다면 다윗의 후손이 계속해서 왕위를 잇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삼하 07:11~16). 

이런 약속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베냐민 지파는 믿음의 눈으로 메시아 계보가 이어지는 남 왕국을 택했습니다. 르호보암 왕 자체는 싫지만, 남 왕국에는 메시아의 신령한 계보가 이어지고 있고 또 예루살렘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 신령한 복을 우선순위로 보았으며 신령한 복을 지키기 위해 남 왕국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세상의 복보다 신령한 복이 더 가치 있음을 아는 자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북 왕국 이스라엘 편에 선 사람들은 나라가 유지되는 동안 거의 신령한 생활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된 여로보암의 길, 멸망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럴 때 김삼일 가족은 여호수아가 임종하면서 남긴 말을 받아야 합니다.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