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B.C. 4000~B.C. 3000년경)로 나일강 중심의 이집트 문명,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중심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강 중심의 인더스 문명, 황하강 중심의 황하 문명을 들 수 있습니다. 인류는 물이 풍부한 강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문명의 발전을 해 왔고, 세계 어느 도시든지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사람은 물이 없으면 금방 사나워집니다. 사람만 그렇습니까? 모든 동식물도 물이 없으면 곧 죽고 맙니다. 물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 살아가는 데 있어 절대 필요한 요소입니다.
오늘 말씀은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고통받는 한 장면입니다. 물이 없으면 당연히 원망과 불평의 사나운 기질이 발생합니다.
물 때문에 벌어진 살벌한 현장을 모세가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도 잘못되고 모세도 불행하게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현장을 우리가 유의해 봅시다. 지금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 삼십팔 년 만에 가나안과 경계를 이루는 광야의 한 귀퉁이 가데스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삼십팔 년 전 모세가 열두 명 정탐꾼을 가나안을 정탐하러 보냈던 그 지역 인근입니다. 그때 마음만 잘 먹었으면 며칠 내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 명 정탐꾼의 불신앙 보고와 이에 편승한 이스라엘의 원망으로 광야를 떠돌다 38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가데스로 데리고 온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은 가나안 남방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사막의 오아시스로 불리었습니다.
시내와 샘이 여러 곳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과거에 이곳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았습니다. 이곳으로 올 때는 그 옛날 넉넉하게 흘러가던 물을 생각하고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한 가뭄으로 인해 모든 샘과 시내가 말라버렸습니다. 마실 물이 없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지도자 모세를 향하여 폭동을 일으킬 정도의 분위기로 돌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옛 모습이 또 나옵니다. 살벌한 분위기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진단하면서 「혈기 부리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로 제목을 정했습니다.
1. 이스라엘은 버렸어야 할 원망과 불평을 지금도 합니다. |
0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여러분은 성경이나 설교를 통해 므리바라는 지명을 보고 들으셨을 것입니다. 이 므리바와 관계가 된 사건이 성경에 두 번 나옵니다.
첫째 사건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르비딤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마실 물이 없자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원망하며 돌로 쳐 죽일 듯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며 폭동을 일으켰습니다(출 17:01, 02).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셨습니다. 모세야 너는 호렙산에 올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반석을 치라 그러면 그곳에서 물이 나올 것이다.
이에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부터 사용하던 지팡이를 들고 호렙산으로 가서 그 반석을 치니 과연 물이 강같이 흘러나와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이후 모세는 그곳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지도자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불신한 일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출 17:06, 07). 일명 르비딤 므리바입니다.
둘째 사건은 오늘 말씀입니다. 일명 가데스 므리바입니다. 03절 말씀을 보십시오. 백성이 모세와 격렬하게 다툽니다. 그 내용을 보십시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의 출애굽 세대인 20세 이상 민족이 약 삼십칠 년간 광야 생활에서 죽은 이유가 하나님의 심판 때문입니다(민 14:22~24).
반면 출애굽 2세대는 자기들 조상의 죽음을 하나님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사(自然死)로 이해하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고난의 현장을 놓고 그때 우리도 죽는 게 차라리 더 좋았겠다며 불평 공장을 다시 돌립니다. 이 불평은 르비딤 므리바 때의 불평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데스 므리바의 불평에다 38년 전 르비딤 므리바의 불평을 합치니 불평 시너지 효과가 대단합니다. 그 장면을 보겠습니다.
0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십 년 광야 생활 전 기간을 매일 매일 만나를 내려 주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불편한 환경을 만나면 원망과 불평을 앞세워 은혜를 막 쏟아버립니다.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니 사탄이 틈을 탔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옛 습관에 다시 사로잡혀 버립니다. 이스라엘이 40년간 광야 생활을 한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불신앙의 모습, 옛사람의 모습을 청산하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준비를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의 모습이 사십 년 전 때와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도무지 변화의 모습이 안 보입니다. 당장 먹을 물이 없는 것과 환경이 좀 안 좋다고 이스라엘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출 17:0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출애굽 후 르비딤에서)
민 14:0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0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출애굽 2년 가데스 바네아에서)
민 20:0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0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출애굽 40년 가데스)
2. 세상의 것만 바라보면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
0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복을 받는 일에 걸림돌 되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일과 물질에 마음을 빼앗긴 일입니다. 이스라엘 모습을 보십시오.
40년 전 출애굽 할 당시 옛 모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 이런 것은 아무리 오래 가지고 있어도 골동품 되지 않습니다. 과감하게 폐기해야지, 계속 품고 있으면 은혜의 그릇을 뒤엎고 맙니다.
뭐가 좋다고 이런 것들을 계속 품고 있습니까? 품고 있으면 결국 신령한 복에서 끊어집니다. 물욕의 시험을 만나면 자칫 멸망으로 나아가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거치게 하는 곳은 믿음으로 받고 감당해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와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가데스 므리바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이곳을 꼭 통과해야 할 곳으로 보고 여기에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의 지도자가 알아서 하시겠지, 지금까지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거야라고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오히려 원망과 불평만 합니다. 이런 마음은 대부분 마귀가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사고력을 봅시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רָעָה 라)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직역하면 아무 쓸모 없는 땅으로 인도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도무지 생존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가데스 르비딤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이곳에는 없고, 없고, 없고, 없고, 없도다(5회).
가데스는 불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지에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 03:08, 13:05).
그러면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가데스 르비딤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누구인가 부추기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보겠습니다. 불평이 진원지는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 곧 잡족입니다(출 12:37, 38).
이 잡족 수가 많습니다. 잡족이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출애굽 과정에서 정체성 없이 그저 따라나선 이들입니다. 모세는 이들이 원망과 불평의 원조임을 밝힙니다
민 11:0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 뜨겁고 건조한 광야를 무려 사십 년이나 가게 하실 때는 그만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3. 모세는 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 하리라. 하시니라.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행태를 보십시오. 원망과 불평 구덩이입니다. 모세가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으로 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원망과 불평과 변덕이 심한 이스라엘 백성을 놓고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민 11: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모세가 가데스 르비딤에서 물 사건을 놓고 힘들어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여기서 반석(סֶלַע 셀라)은 바위 절벽 높은 요새를 의미합니다.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니라 절벽처럼 높다란 바위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반석을 향하여 물이 나오도록 명령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솟아 나와 이스라엘 백성과 모든 짐승이 마음껏 마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모세가 무엇을 잘 못 했습니까? 11절 말씀만 보면 모세가 그렇게 잘못한 것이 안 보입니다. 전에도 르비딤의 호렙산 반석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쳐 물이 나게 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출 17:06).
출 17:06 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08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로 모든 회중 앞에서 반석을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완악하고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상당한 혈기가 올라 있습니다(10). 사람의 관점에서 모세를 보십시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일들을 보면 혈기가 오를 만도 합니다.
모세가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반역한 너희라고 하겠습니까? 얼마나 화가 났으면 고함을 지르겠습니까? 그리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칩니다.
반석을 두 번 치니.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명령하여 물을 내라 그러면 물이 넉넉하게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내려쳤습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혈기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조용하게 능력을 나타내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결과가 어떠합니까?
신 03: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이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더는 가나안에 관하여 말하지 말라. 너는 여기까지다. 이제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는 내게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첫째 모세가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앙의 죄이고, 둘째 이스라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은 죄입니다.
분노로 인해 감정조절을 실패한 것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분노는 나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성령님의 감동을 입어야 마음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어느 날 한 청년이 노를 젓는 배를 탔습니다. 청년이 노인 사공에게 말하기를 제가 노를 대신 저어 드리겠습니다. 노인은 청년에게 그렇게 하라며 노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한쪽 노에는 기도하라고 쓰여 있고 다른 노에는 일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청년이 이 모습을 보고 말합니다.이렇게 바쁜 세상에 일만 하면 되는 것이지 기도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이 말을 듣고 노인이 점잖게 말합니다. 기도하라 쓰인 노를 젓지 말아보시오. 그래서 청년은 한쪽 노만 저었더니 배가 계속 제자리에서 맴돕니다. 그때 노인이 말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일만 하면 제 자리지요.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천국의 소망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열 번의 성공보다 한 번의 실패가 치명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공동체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나는 신뢰받는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날마다 자기에게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를 잘 돌아볼 수 있습니다.
감정조절에 힘을 씁시다. 분노의 감정이 계속 내 마음에 일어날 때 성령님의 감동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고 말씀이 필요합니다. 자기를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며 삽시다.
약 0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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