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주기도문

주기도문⑦ 하나님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마 06:12).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7. 9. 20. 04:17
728x90

스코틀랜드의 문학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Balfour Stevenson, 1850.11.13.~ 1894.12.3]이 남태평양 사모아 섬에서 살 때의 일입니다경건한 생활을 위해 매일 아침 가정예배를 드렸는데 하루는 마지막 주기도문을 암송하다 갑자기 멈추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항상 몸이 약한 것을 알고 있는 부인이 뒤따라가서 조용하게 물었습니다. 여보, 오늘 어디 아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몸은 아프지 않은데 마음이 불편하오. 아직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주기도문을 드릴 수 없소.

 

상대방에 대하여 죄를 용서하는 것과 용서를 받는 것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못지않게 중요한 기도 제목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이 살기 위하여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셨으며, 영혼이 살기 위해서는 죄를 용서받도록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다 불완전한 사람이고 허물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죄인입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03:10).

 

누구나 죄인인 줄 알고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께 죄 사함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그 죄가 자기를 옭아매어 파멸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기도문 7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에 이어 「하나님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롬 03:10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①원죄(Origin sin).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 위치에서 지은 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죄를 전가 받아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중(胎中)에서부터 조상 대대로 전하여 죄업을 받은 이 죄를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는 인간의 완전 타락이라고 합니다.

 

②자범죄(Self sin). 원죄의 영향을 받아 인간 스스로가 고의나 혹은 무의식 가운데 짓는 죄를 말합니다. 원죄는 하나이나 자범죄는 여럿이 되는 셈입니다.

원죄와 자범죄가 있는 이상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세상에서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요일 01:08, 10). 죄에 대하여 마태와 누가가 기록한 주기도문을 원문으로 보겠습니다.

 

마 0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눅 11:04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마태는 죄의 용어로 οφειληματα(오페이레마타)를 사용하였습니다. (負債. debt)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께 마땅히 행할 바를 하지 않은 빚입니다.

반면 누가는 죄의 용어로 αμαρτιας(하마르티아)를 사용하였습니다. 표적(과녁)을 벗어났다는 뜻으로 잘못해서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죄로 번역된 대부분 단어가 과녁을 벗어났다는 αμαρτιας입니다.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과 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죄에 대하여 마태와 누가가 왜 달리 기록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칠 때 헬라어가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쓰던 아람어이기 때문입니다.

 

마태가 성경을 헬라어로 옮기면서 수신자인 유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빚(οφειληματ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빚이란 당연히 갚아야 합니다.

누가도 성경을 헬라어로 옮기면서 수신자인 헬라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과녁을 빗나갔다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아마 마태의 기록이 주님 말씀을 제대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따라서 누가의 기록은 2차 해석으로 보아야 합니다. 마태가 주님의 뜻을 더 잘 반영했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나 누가가 다 죄(, 과녁을 빗나감)를 해결하지 못하면 심판(지옥)을 받을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습니다그래서 심판을 예방하기 위하여 οφειληματα(오페이레마타) αμαρτιας(하마르티아)로 기록했는데 그 뜻의 의미는 결국 같습니다.

 

 

2. 성도 간의 죄를 반드시 해결하여야 합니다.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빚은 당연히 갚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갚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채권자에 의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수도 있습니다( 18:24~34).

사람이 경제 활동을 하는 동안 종종 채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때 빚을 진 쪽에서 원만하게 채무를 상환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부도(不渡)가 됩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흔히 빚은 살림 밑천이라고요. 그런 말 하면 안 됩니다. 크든 작든 빚으로 인해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감당하기 어려운 죽을 맛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는 동안 빚 없이 살고 싶지만 때로는 주택 구입, 자녀 양육, 사업 실패 등 여러 이유로 빚을 지고 삽니다. 더러는 빚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 악성 부채는 엄청난 부담이 옵니다. 오죽하면 빚을 감당 못해서 목숨까지도 내 던지겠습니까? 반대로 급할 때는 빌려 쓰지만 못 갚는 순간이 오면 빚진 자의 마음이 서서히 무디어져 배 째라는 식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이 굽은 사람을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마음가짐을 빚진 자의 심정이라고 표현합니다( 01:14, 08:12).

그런 심리적 부담을 가진 사람에게는 생활의 열매가 안팎으로 나타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마태는 주기도문을 통해서 성도 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안내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죄를 당연히 갚아야 할 무시무시한 그 빚(οφειληματα)으로 비유합니다. 그런데 교단에 따라 사죄의 교리를 잘못 가르치는 곳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소위 구원파는 깨달음이 구원받는 것인 줄 가르치고, 예수교장로회 총공회에서는 중생한 사람의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 중생한 다음에 죄를 짓는 것은 마음과 몸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거 대단히 위험한 영지주의 발상입니다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짓지 않는다. 전혀 아니지요. 우리는 사는 날만큼 죄를 더해갑니다. 한 공동체에서 지내다 보면 서로 간에 허물이 발생합니다. 마음의 살인, 마음의 간음, 마음의 도적질, 거짓말 등으로부터 자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죄를 짓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살면 살수록 죄가 누적되어 갑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이 자기의 죄가 누적되어 가는 것을 모릅니다.

자기는 깨끗하고 허물없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모두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에 갇혀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선순위로 김삼일 공동체 안에서 서로 간에 발생한 허물을 풀어야 합니다. 불편한 마음을 제거하십시오. 자존심 내려놓으십시오. 상대방을 존중해야 해결됩니다.

 

마 0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자기가 똑똑하면 얼마나 똑똑하며, 완벽하면 얼마나 완벽합니까? 내 믿음의 그릇에 담겨 있는 불신앙의 찌꺼기를 비우십시오. 아직도 상대방에 대한 안 좋은 선입관이 남아 있습니까? 이것 가지고 있으면 믿음 생활의 걸림돌만 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서로 간에 이런 고백 따라 합시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오늘 이 예배 시간이 마지막 용서를 주고받을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자존심 내 세우지 말고 양심을 따라 서로 용서를 주고받으십시오. 주님께서 원하시면 반드시 해야 합니다내가 잘못했습니다. 좁고 교만한 마음 용서해 주세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이 말씀 앞세우고 문제를 다시 풀어갑시다.

 

 

3. 하나님께 사죄의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죄로 말미암는 형벌도 면제받았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매일매일 죄로 말미암는 불행한 현실에 직면합니다. 교회를 출입한다고 다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벗어나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의 은총을 꼭 받아야 합니다. 죄를 용서받는 것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분기점입니다. 사죄의 은총을 받지 않고는 행복이 머물지 않습니다.

 

마 06: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미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면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죄의 은총을 받지 못하면 상급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사죄를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반드시 제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끼리 용서하는 모습입니다.

이 용서의 경험과 있어야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용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는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용서한 그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사죄의 은총을 입고 심령의 평안을 누립니다. 주기도문을 고백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용서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는 주기도문을 고백할 자격이 없습니다.

 

시 32:0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0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불행의 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용서하는 일입니다. 이 용서를 근거로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의 은총을 입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제부터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가 깨어지지 않도록 잘 유지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유지하여야 합니까? 공동체 회원 간에 불평 뚝, 원망 뚝으로 살면 됩니다. 행복한 공동체의 특징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공동체 특징이 무엇이어야 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의 은총을 입는 일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죄의 은총을 받은 성도가 모여 부르는 찬양 280장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 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전부터 계시 주께서 영 죽을 죄인을 보혈로 구해주시니 그 사랑 한없네.

나 예수 의지함으로 큰 권능 받아서 주님께 구한 모든 것 늘 얻겠습니다

(후렴)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김삼일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용서입니다. 제일 쉬우면서도 제일 어려운 이 용서가 인간에게 꼭 필요합니다.

죄인에게는 용서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은 없으며 용서받는 일보다 더 좋은 일도 없습니다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 죄를 멀리 옮겨 버린다는 뜻입니다. 우리 죄를 예수님의 피로 완전히 지워 버린다는 뜻입니다( 102:12,  43:25).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는 일은 우리의 삶에서 최고 가치입니다. 또한 서로 용서하는 일이야말로 서로를 치료하는 최고의 명약입니다. 전도자 스데반이 마지막에 용서를 실천한 모습을 보겠습니다.

 

행 0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