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주기도문

주기도문⑥ 하나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마 06:1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7. 9. 20.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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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42대 대통령(1993.1.20~2001.1.20)을 역임한 빌 클린턴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47세에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이때 상대 당인 공화당 후보는 아버지 부시(H. W. Bush)로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현직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선거 뚜껑을 열어보니 빌 클린턴이 무난하게 이겼습니다. 그 승리의 원동력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선거 구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때 선거 구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이후부터 세계의 대선이 시작되는 곳에는 이 문구가 거의 등장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 구호도 경제와 관련 있는 문구가 많았습니다. 1956년 대통령 선거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이런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그러자 여당인 자유당이 내건 구호는 갈아봤자 더 못 산다. 갈아봤자 별수 없다. 이었습니다. 1960년대는 대통령 선거에 단골로 출마하던 한 후보가 배고파 못 살겠다. 죽기 전에 살길 찾자. 라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누가, 어떻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 것이냐? 이것이 당시의 문제로서 그야말로 우리 국민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겨운 삶을 살았습니다.

 

한때는 배고파 죽겠다던 말이 요즘에는 배불러 죽겠다. 로 바뀌었습니다. 실제로 못 먹어서 위장병 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먹어서 위가 뚫려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안내해 주시는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입니다. 이 말씀만 보아도 당시의 어려웠던 시대상이 짐작됩니다.

경제면에서 매우 어려울 때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시대의 상황을 조명하면서 「하나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현재 우리의 주변 환경은 먹을 것이 넘쳐납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문제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합니다. 요즘은 아침과 점심을 먹는 브런치(brunchbreakfast+lunch) 시대입니다. 아점 시대라는 말입니다.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즘 부인이 남편을 어떻게 봅니까? 삼식이(三食) 보다 이식(二食)이가 좋고, 이식이 보다는 일식(一食)이가 더 좋고, 일식이 보다는 영식(零食)이가 최고입니다.

세계 식량 생산은 인류의 2배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양식이 차고 넘칩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굳어지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음식이 넘치지만 소외된 지역에서는 굶주려 죽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굶주린 이웃을 생각해서라도 음식물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감사가 회복될 것입니다.

하루 한 끼만이라도 맘대로 먹을 수 있다면 행복으로 여겨도 됩니다.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8억 명의 사람들보다 분명히 났기 때문입니다.

집에 전기만 들어와도 전기 혜택 없이 사는 20억 명 이상의 사람보다 충분히 감사할 조건이 됩니다. 집에서 부담 없이 샤워하거나 물을 마실 수 있다면, 그렇지 못해 아무 물이나 마시는 10억 명 이상의 사람보다 넉넉한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체포와 협박, 학대와 고문,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없이 교회에 나갈 수 있다면, 이 세상 30억 명의 사람보다 감사할 이유가 충분히 됩니다.

집 안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내 몸에 맞는 옷이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세상 사람 75%보다 더 감사할 조건입니다. 빈곤 문제는 식량의 문제가 아니라 유통의 문제입니다.

 

일용할 양식(ἄρτος)을 주시옵고. 양식(糧食)이란 음식물을 나타내는 용어로써 원문에는 빵입니다. 이는 유대인이 빵을 주식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권 사람은 밥을 주식으로 삼습니다. 성경을 우리나라 입장에 맞추어서 번역하다 보니 양식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밥은 사람이 열심히 노력만 하면 먹을 수 있는데 무슨 기도가 필요한가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얻을 수 있으며, 하루의 양식을 구하는 것은 나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물론 우리 현실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라는 기도는 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식량이 차고 넘쳐서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덜 먹고, 찐 살도 줄이려고 극심한 다이어트를 하는 실정입니다오늘 말씀은 우리의 현실로 이해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 아래 처하여 곤궁이 매우 심한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는 밥()을 배불리 먹는 것은 소수에만 해당하였습니다반면 대다수 사람이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환경이었습니다특히 이 기도는 하루에 한 번 급료를 받아 생활하는 노동자에게는 만일 며칠을 앓아눕기라도 하면 그만큼 굶을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생활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고민, 아픔, 쪼들리는 살림살이, 상처, 피곤함을 보살펴 주십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성도를 회복시킵니다. 상처를 고쳐 주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에 관해 이야기할 때 기적을 주십니다. 이 양식을 결코 하찮거나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2.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공유하여야 합니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무엇입니까? 나와 상대방을 포함한 다수를 가리키는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매우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기본입니다. 세상이라는 공동체, 교회라는 공동체는 우리라는 구성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구원의 자리로 부름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그 구원의 공동체는 나만을 위한 공동체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입니다.

이웃에게도 예수님 사랑을 전하는 함께 공동체를 구축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가치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할 때 더욱 빛납니다. 나만을 위한 삶에서 우리라는 공동체로 옮겨갑시다.

 

오늘 우리에게(ἡμῖν 헤민). 나만을 위하여 구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구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는 나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대신 우리라는 단어만 6번 나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우리의 몸은 각 지체끼리 돌아보고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해집니다. 조화를 못 이루면 병약해서 무너집니다. 김삼일 가족 공동체 구성원도 서로 간에 사랑의 배려와 관심이 오고 가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이런 모습을 잘 실천했습니다.

주님께서 들려주신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와( 12:13~21) 날마다 비단옷을 입고 잔치나 하며 지낸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16:19~36) 보십시오.

 

두 부자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라는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일입니다한 마디로 세상을 보는 사랑이 없습니다. 음식은 함께 먹어야 더 맛있습니다. 은혜도 함께 받아야 행복합니다. 나만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를 잘 가꾸어야 합니다.

나 개인에서 우리로 옮겨 갈 때 비로소 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공동체는 나의 헌신과 양보를 통해 아름답게 가꾸어져 갑니다.  이것 하나는 머리에서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는 저절로 잘 가꾸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공동체이니 그저 잘 굴러갈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누군가의 헌신이 있고 누군가의 사랑이 있을 때 굴러갑니다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해 이렇게 권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04:03). 좋은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수고가 꼭 필요합니다.

 

고전 0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김삼일 가족은 이 시간 이렇게 각오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위해 창조되었다. 우리는 공동체를 위해 구속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변화된다.

우리의 공동체를 위하여 사랑의 마음을 먼저 회복하십시오. 식탁 문화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십시오. 예수님께서 양식을 구하는 일에 우리에게 기도하라 하신 뜻의 무엇입니까?

 

지금 내 이웃이 먹지 못하는 형편에 있는 것은 아닌지 기본 생활에 대한 고민으로 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고 관심을 가지라는 주문입니다.

선을 행하고 일용할 양식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13:16). 예배에서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 은혜가 공동체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3. 김삼일 가족이 구해야 할 양식은 무엇입니까?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일용할 양식(ἐπιούσιος ἄρτος). 이 양식은 일차로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육신의 양식입니다. 사람의 기본 생활 단위입니다.

예수님은 평소에도 생명의 떡을 강조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육신의 떡을 구하라고 가르치신 곳은 주기도문 1, 2 본문에만 나옵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간구가 7( 6가지)가지 됩니다. 거룩한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 일용할 양식, 죄 용서, 시험에서 지켜주심, 악에서 구원 등입니다. 이런 청원을 보면 모두가 물질 가치가 아니라 신령한 가치에 관한 일입니다.

 

일용할 양식도 문맥 흐름이 육신의 양식과 함께 신령한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예수님 없이는 잠시라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기도의 통해서 공급하십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이 기도는 주님, 제가 주님을 갈망합니다.

주님, 저를 만나주십시오. 저에게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어야 할 일용할 양식은 두 가지입니다. 육신의 양식과 영혼의 양식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주신 진정한 의도가 바로 이것입니다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06:32).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심은 믿음의 감각을 잘 유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오늘(σήμερον). 부사로서 오늘, 하루 이런 뜻이고 제2 본문 누가복음에는 부사구 날마다(το καθ ημεραν  11:03)로 나옵니다.

현재 명령형의 적극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태나 누가가 다 한 주일, 한 달, 평생의 분량을 쌓는 일에 마음 빼앗기지 말라고 권합니다.

오늘, 날마다 이 의미는 매일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라는 뜻입니다. 자기 분수에 맞춰서 매일매일 양식을 구하라는 기도문입니다.

 1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분이나 한 달 분 등 그렇게 한꺼번에 주시지 않았습니다.

 

출 16:04 그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 부분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라는 기도문의 근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그날에 필요한 만큼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앞두고 이틀분의 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에서 겪는 목마름과 배고픔의 문제를 기도로 풀기를 원하였습니다. 만나의 신령한 가치가 무엇입니까?

장차 오실 신령한 떡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데 있습니다. 그 증거가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신 예수님 말씀( 06:29~59)에 잘 나타납니다.

 

 0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듣다 보면 혹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내일에 대한 준비로서의 계획, 저축, 저장 등 장래 문제를 전혀 하지 말아야 합니까? 내일을 위하여 준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십시오.

내일을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의식주에 대한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의 은행과 창고보다 자기의 창고와 은행에 집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물질에서 여유로운 사람은 일용할 양식에 대하여 별 감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벌어 그날 먹어야 하는 자들에게는 절박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복을 받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 응답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다면 달리 복을 받을 곳이 없지 않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구하십시오. 물질생활에 필요한 것을 간절히 구하고, 지나친 욕심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면 과감히 내려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메시지는 한평생 먹고도 남을 것을 쌓아놓고도 세상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의 신앙 자세를 교정하는 메시지로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