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8년 말씀

[제11대 사사 압돈] 압돈은 자손이 잘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삿 12:13~1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8. 3. 10. 06:54
728x90

새가 날개를 잃으면 무엇을 잃습니까? 날아오를 수 있는 하늘을 잃습니다. 인생이 꿈을 잃으면 무엇을 잃습니까? 미래를 잃습니다. 새가 날개를 잃으면 아무리 푸른 하늘이 있어도 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꿈을 잃으면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결국 내일을 잃고 맙니다. 믿음의 꿈을 활짝 폅시다. 우리의 믿음이 진짜처럼 보이지 말고 진짜가 되도록 믿음으로 힘써 봅시다.


저는 지금까지 틈틈이 열 두 사사에 관한 메시지를 차례로 전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전쟁 사사들처럼 힘 있는 믿음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때로는 행정 사사들처럼 조용하게 일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어 갈 줄 믿습니다.

거룩한 척 하기는 쉬워도 거룩하게 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사사들의 장점을 통해서 믿음이 있는 척 하는 우리의 외식을 무너뜨리기를 원하였습니다. 동시에 순수한 믿음으로 무장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오늘은 소사사 트리오 입산, 엘론에 이어 압돈에 관한 말씀을 전하는 시간입니다. 압돈은 자손들이 형통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압돈이 받은 복처럼 우리도 이런 복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압돈은 자손이 잘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로 정했습니다.

  

  

  1. 압돈의 집안과 소속지파를 보겠습니다.

 

13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10대 사사 엘론의 뒤를 이어 압돈이 등장합니다. 이 압돈에 대해서는 두 가지 부분으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부모와 소속 지파입니다. 먼저 압돈의 부모를 보면 아버지 이름이 힐렐(הִלֵּ֖ל)입니다.

성경에서 그의 부모와 아들을 동시 소개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힐렐의 이름 외에는 더 행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힐렐의 아들 압돈이라고 합니까? 이는 베냐민 지파의 계보에 나오는 동명(同名) 압돈(대상 08:23,30; 09:36)과 구별하기 위해서 아버지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혹 혼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이 압돈의 아버지 외에 또 다른 힐렐이라는 이름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리새파 힐렐(Rabbi Hillel)입니다. 율법해석에 큰 영향을 미쳐 이스라엘의 샴마이 학파와 쌍벽을 이루는 힐렐학파의 원조입니다. 하루는 힐렐에게 한 사람이 율법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네가 싫어하는 것을 너의 이웃에게 하지 마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부연설명이다. 로 답했습니다.

 

다음으로 압돈의 소속 지파를 보겠습니다. 15절에 의하면 에브라임 지파입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 지파 출신인데 여호수아의 배경을 이점으로 삼아 에브라임은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강력한 지파로 성장하였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야곱이 요셉 대신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지파로 삼을 때 장자보다 차자인 에브라임을 더 앞세움으로 주목을 받은 지파입니다(48:20).

훗날 4대 사사 드보라도 이 지파에서 나왔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총회를 주재하였고, 지파의 영토 안에 실로와 베델 등 신앙센터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에게 교만이 찾아 왔습니다. 좀 잘 나가는 지파이기 때문에 교만한 마음이 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교만인지 그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출신 사사 드보라에 이어 므낫세 지파 출신 기드온이 5대 사사로 등장하여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입니다.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와서 시비를 겁니다.

왜 우리를 전쟁에 부르지 않았느냐? 그런 중요한 일은 우리 지파와 먼저 상의해야 하고, 우리에게 도움을 받아 승리의 영광을 이루어야 하지 않느냐 라는 트집입니다.

 

08:0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 지라.

 

이후 8대 사사 입다가 등장 할 무렵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암몬 군대의 침략으로 18년 동안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기생의 아들 출신 입다가 암몬 군대를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전번 기드온 때와 같은 시비를 합니다. 왜 우리를 전쟁에 부르지 않았느냐는 시비입니다. 그런 중요한 일은 반드시 우리 지파와 먼저 상의를 해야 한다는 말도 안 통하는 트집을 부립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과 암몬 사이에 어떤 전쟁을 하였느냐가 아니라 왜 입다가 자기들을 제쳐놓고 주도권을 잡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누가 뭐래도 자기들이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대표성을 띄고 있는데 감히 첩의 아들 주제에 자기들을 무시했다는 시비입니다. 이런 역사의 배경 아래서 11대 사사 압돈이 등장하자 여호수아 시대 이후 별 주목을 받지 못하던 에브라임 지파가 명성을 다시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2. 압돈은 자손이 잘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14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자식의 많음을 복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 크다는 의미에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127:03). 이런 문화 속에서 압돈이 아들 40, 손자 30명을 두었다면 대단한 자랑거리입니다.

아내 혼자서 낳은 것이 아니라 다수의 후실에서 난 자식입니다. 이스라엘 문화의 특성상 여자는 종종 계수에서 생략합니다(14:21). 그러면 14절 말씀에 기록이 안 되었을 뿐 딸과 손녀도 상당히 많았다는 뜻입니다. 한 가정에 이토록 많은 후손이 있으니 복 중의 복으로 보아도 되겠습니다.

 

거기다 아들 40, 손자 30명이 각각 어린 나귀를 타고 다녔으니 무려 70마리의 나귀가 동원 된 셈입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좀 부정의 관점으로 보면 압돈이 자녀들을 너무 사치스럽게 키웠다는 뜻입니다.

반면 긍정의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렇게 된 일입니다. 10:04절에 보면 7대 사사 야일도 아들 30명이 있어서 각각 어린 나귀를 타면서 성읍을 하나씩 차지하여 살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때도 말씀을 드렸지만 나귀를 타고 생활하는 것은 부의 상징입니다. 압돈이 아들 40명 손자 30명이 각자 나귀를 타고 다닌 것은 그만큼 하나님으로부터 부의 복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연 권세를 부리면서 호화로움을 상징하는 일로만 보입니까? 저는 이 부분을 권세와 호화로움의 상징보다는 겸손의 상징으로 봅니다. 이유는 당시의 가나안의 수준과 이웃 나라들의 문화 때문입니다.

압돈이 가나안에서 그의 자녀들의 잘 됨과 권력과 부요함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면 굳이 어린 나귀를 타지 않았을 것입니다. 5대 사사 기드온 시절 미디안 군대가 공격용으로 타고 왔던 낙타나(07:12), 가나안에서 철병거에 사용 된 말(04:03)이나, 애굽으로부터 말 정도는 얼마든지 구입이 가능했습니다.

 

압돈에게는 그럴 정도의 재력과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압돈은 그런 호화로움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에서 나귀를 타는 것은 최고의 호화로움이 아니라 넉넉하게 사는 자의 수준입니다. 넘보지 못할 수준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일반 가정도 나귀를 더러 키웠습니다. 이것은 자가용의 의미도 있지만 농사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키웠습니다(06:04). 그렇다면 어린 나귀를 타는 것은 권세를 부리는 것보다 겸손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기 전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 때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21:07).


권세와 호기를 부리려 한다면 말이나 낙타를 얼마든지 탈 수 있습니다. 압돈의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이 나귀를 타고 각 성들을 돌아보았다면 압돈은 자기 혼자 일하기보다는 아들과 손자들을 활용한 지혜로운 사역으로 보아야 합니다. 압돈은 자손이 많은 것을 분복으로 여기고, 자손들에게 국가를 위해 일하도록 일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자손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어 맡은 자로서의 일을 하였습니다.

 

 

  3. 압돈은 사사 팔년 사역을 잘 마쳤습니다.

 

15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인명이든 지명이든 이름의 뜻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도 이름을 붙일 때는 반드시 그 상황 설명이 이면(裏面)에 있기 마련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이름 따라 사는 인생입니다.

압돈(עַבְדּ֥וֹן)은 하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압돈은 그 이름처럼 낮아져서 겸손한 생활을 하는 중에 사사로 부름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름 힐렐이 13절에 이어 15절에도 나오지만 더 이상 행적은 없습니다. 이는 압돈이 사사로서 혈연에 의한 연대감보다 지역과 정치의 연대감으로 일했다는 뜻입니다.


아쉬운 것은 압돈의 사사 기간이 8년입니다. 다른 사사들에 비해 좀 짧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하여 일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세월이 길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별 의미 없는 육체의 삶이라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반면 믿음으로 부름을 받고, 믿음으로 직분을 받아 일한다면 그 기간이 짧을지라도 가치 있는 삶입니다.

 

압돈이 아말렉 사람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다는 말씀을 보십시오. 비라돈은 에브라임 지파의 땅이며, 압돈의 고향입니다. 압돈은 자기의 고향에 묻혔습니다. 이곳은 세겜 서쪽 10km지점 아말렉 사람의 산간지방에 있는 좀 척박한 곳입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땅과 연관되어 아말렉 족속이란 말이 삿 05:14절에도 나오고 본 절에도 나옵니다. 아말렉 족속은 어떤 자들입니까? 에돔 사람들로부터 갈라져 나와 시나이 반도를 유랑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던 유목민들입니다(36:11,12).

바로 에서의 후손이고, 훗날 역사에서는 유대인을 죽이려 했던 하만의 족속이고, 멀리는 예수님을 죽이려 한 이두매(에돔)인 헤롯의 족속입니다. 이런 족속이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른 이스라엘을 보자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침해를 두려워하여 이스라엘의 후미를 기습 공격하였습니다.

 

25:18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에서 처음으로 공격을 당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에 관한 내용이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자세히 나옵니다. 당시의 전쟁 장면을 잠깐 보겠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피곤해서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형국(形局)입니다.

그러자 아론과 훌이 평평한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편안하게 앉게 하고는 모세의 피곤한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좌우에서 붙들었습니다.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되자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물리쳤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모세가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여호와의 깃발)라고 하였습니다.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비라돈은 에브라임 지파에 배정 된 땅입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 아말렉 사람의 산지가 있는 것은 사사 시대 초기에 아말렉 족속 중 소수의 무리가 남쪽에서 이동해 와 에브라임 지파 산지 비라돈에 굳게 자리를 잡은 결과입니다.

아직 쫓아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압돈의 장지를 통하여 비라돈에 자리를 잡은 아말렉을 언젠가는 쫓아내야 한다는 의미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11대 사사 압돈과 12대 사사 삼손의 연결점에서 압돈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이어 하나님은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13:01). 압돈의 행적을 보면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이 나름대로 순회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였는데도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침략으로 40년이나 지배를 당합니다.

사사 압돈의 행적을 볼 때 자기의 당대는 나라를 잘 다스렸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서 전쟁준비, 믿음준비를 제대로 못한 것 같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위기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극적인 상황에서만 증명되는 것도 아닙니다. 평범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사는 인생이라면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평범한 사역에서 맡겨진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믿음도 훌륭한 믿음입니다. 입다 이후에 입산, 엘론, 압돈까지 이스라엘은 특별히 큰 대적이 없었습니다. 소사사들은 평범한 때지만 하나님이 세우실 때 신령한 기둥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각자 만난 삶에서 믿음의 꽃을 피우고,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은혜의 삶을 잘 관리하여야 합니다. 시간은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현재의 시간 관리를 믿음으로 잘 하여 장래의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