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 때부터 복음의 무대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겼습니다. 유럽의 첫 사역지 빌립보에서 전도사역을 잘 마치고 데살로니가로 옮겼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의 수도로서 정치, 문화, 상업의 중심지입니다. 바울 선교팀은 이곳에서 3주 정도 머물면서 전도를 한 결과 데살로니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너무 심해서 사역지를 고린도로 옮겼습니다. 바울은 비록 몸은 고린도에 있지만 마음은 데살로니가교회에 있었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불안한 가운데서도 궁금해하였습니다. 마침 마케도니아에 두고 온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의 동요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온갖 박해와 고난을 만나도 잘 감당하여 그리스 전역에 믿음의 본이 되고 있고, 또 각처에 좋은 믿음의 소문을 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3). 믿음의 소문, 이거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좋은 소문이 나야 하고, 반면 좋지 못한 소문은 교회를 퇴보로 이끌어 갑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분이 믿음으로 좋은 소문 나기를 원하십니까?
대답이 좀 시원찮네요. 아멘입니까? 진정 믿음의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 믿음의 좋은 소문이 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오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받기를 축원합니다.
좋은 믿음의 소문을 내기 위하여 내가 하여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03절이 그 원리를 자세히 소개합니다. 03절 말씀을 중심으로 오늘 가슴이 찔리고, 양심의 울림이 오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리로 알고 그대로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김해삼일교회도 믿음의 소문을 냅니다. 로 정했습니다. 믿음의 몸부림을 쳐야만 제목처럼 믿음의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살아있는 믿음이 좋은 소문을 냅니다. |
0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믿음의 역사(ἔργον 에르곤). 믿음이 살아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의 구원 역사에 근거하여 분명히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잃어버린 영혼들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믿음의 역사는 삶 전체를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선교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선교 프로그램을 이루기 위해 열정으로 헌신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은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구별된 생활을 하며, 옛 생활로부터 얼마나 변화를 일으킵니까?
살아있는 믿음은 가까운 것을 잘 볼 수 있는 안경처럼, 미세한 것을 잘 볼 수 있는 현미경처럼, 멀리 있는 것을 잘 볼 수 있는 망원경처럼 자기를 볼 수 있습니다.
내 속에 구원의 믿음이 자리 잡았습니까? 믿음이 일상에서 살아있으면 이전에 보지 못한 죄와 허물이 보입니다. 남의 죄와 허물이 아니라 내 죄와 허물 말입니다.
믿음이 살아있으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세미한 음성이 들리고 내 영혼을 만족하게 합니다. 믿음이 살아있는 사람은 영으로 하나님을 봅니다. 예수님을 봅니다. 성령님을 만납니다. 신령한 세계로 은혜로운 여행을 합니다. 신령한 여행을 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이란 예수님 안에서 변화된 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나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자신 있게 고백합니까? 그러면 그 고백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변화된 삶으로, 옛사람이 죽은 모습으로, 인간의 혈기가 완전히 죽은 모습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 예로 사도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사울은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죽음으로까지 끌고 가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구원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만나고 나니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니 예수님에 대한 박해자에서 전하는 자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특별히 두 가지 역사가 일어납니다.
첫째 구원의 역사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구원입니다. 비전도 중요하고, 능력도 중요하고, 복도 중요하지만, 구원은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구원받지 못했는데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세상의 행복이지 참된 행복이 아닙니다.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벧전 01:0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0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둘째 행함의 역사입니다.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지만 어디 굳은 결단을 한다고 잘 됩니까? 살아있는 믿음으로 행해야 말씀대로 사는 길이 열립니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말만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행함이 따르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함이 없이 말만 앞세우면 어떻게 됩니까?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약 02:17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 사랑의 수고가 좋은 소문을 냅니다. |
03 사랑의 수고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건강한 믿음은 놀라운 일이 나타납니다. 온전한 사랑은 예수님 안에서 행함을 동반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데살로니가교회는 복음을 받은 지 3주 만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아직은 믿음의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교회입니다.
거기다 유대인들과 우상의 세력들로부터 적대세력으로 낙인찍혀 계속 박해당하는 처지입니다. 그런 모진 고난과 박해를 당해도 성도들은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서로의 약한 모습을 돌아보고, 격려하였습니다.
사랑의 수고(κόπος 코포스). 유대인들은 약자와, 굶주린 자들 돕는 일을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구제 대상자는 외면하면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기 사랑의 수고라는 말은 구제를 뜻하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사랑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서로 돌아보고, 궁핍함은 함께 나누고, 눈물은 닦아주는 끈끈한 정으로 뭉쳤습니다. 사랑은 수고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수고는 희생입니다.
진정으로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성도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죄를 용서받은 성도는 행동하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진합니다.
우리 김해삼일 가족 주변에 사랑의 수고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습니까? 사랑은 끝까지 하여야 사랑입니다. 사랑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야 진정한 사랑입니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예수님의 사랑에 빚을 진 성도는 사랑을 말로 하지 않고 행함으로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는 주님께서 맡겨주신 이웃을 위하여 사랑의 수고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도들 간에 사랑하고, 이웃들을 향해 복음과 물질로 다가가는 행동하는 믿음을 나타내 보입니다. 주님은 내가 그런 사랑의 수고에 앞장서기를 원하십니다.
김해삼일교회 가족 여러분,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수고를 세상으로 내보내어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의 소문이 납니다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치면서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라는 찬양을 부른다고 없던 사랑이 갑자기 싹이 트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사랑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랑의 수고는 섬김과 배려와 따뜻하게 챙겨주는 행동이 동반될 때 그 가치를 발합니다.
예배 후에 식사의 교제를 통하여 사랑합니다. 이 립서비스 하나로 사랑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나누지 못하면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고전 13:0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로 만들었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손과 발로 가슴으로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사랑은 수고를 동반합니다. 수고할 일이 있어도 귀찮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표 사례로서 흉년과 가뭄으로 인해 궁핍한 상황에 놓인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하여 구제 헌금에 힘써 동참하였습니다(고후 08:01~03). 그 사랑의 가치가 오늘의 우리에게도 본이 됩니다.
3.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는 좋은 소문을 냅니다. |
0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일을 소망하는 성도는 때로는 믿음의 위기를 만나도 극복할 힘이 있습니다. 그날을 바라보는 소망 때문에 유대교의 박해와 우상의 세력을 이겨 내었습니다.
그러나 한두 번 이겼다고 완전 승리자가 아닙니다. 이겨 낸 후에 또 믿음으로 이겨 낼 수 있는 믿음의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 소망의 인내는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시련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에너지입니다.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실 예수님을 사모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향한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 소망을 인내로써 이루어가는 것이 경건하게 살아가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면 주님은 오십니다. 이후에는 심판이 따릅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진노를 피할 수 있도록 건져내실 분은 예수님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의 사역 기간이 3주 정도였습니다. 짧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심판의 주님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만 굳게 붙들 것을 권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지금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지만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으로 삼고 인내로 고난을 헤쳐 나갔습니다. 비록 믿음의 현실은 막다른 골목에 갇힌 것 같아도 하늘의 소망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참고 이겨나갔습니다.
복음이 서서히 세계화되던 1세기 때는 어느 교회든지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환난과 핍박이 심하였습니다. 순교자가 속출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배고픔도 참았습니다.
매도 맞고 사람들에게 따돌림받는 일도 참았습니다. 재산을 빼앗기는 일이나 가족에게 버림받는 일, 주위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천국 소망 하나만으로 믿음을 굳게 지켜나갔습니다.
롬 0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으므로 기다릴지니라.
세상 관점으로 보는 것은 참된 소망이 아니라 향락의 요소입니다. 결국은 불타 없어질 무의미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것에 얽매여 종노릇 하며 삽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천국에서 누릴 즐거움을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는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나갑시다.
여러분이 처한 환경을 제가 잘 압니다. 매우 고달프고 힘든 생활 압니다. 눈물겹도록 어려운 일도 압니다. 그러나 인내하는 믿음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 교회를 좋은 교회로 소문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믿음 생활하는 중에 시기로 인해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미움을 받고 온갖 방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소망의 인내로 좋은 일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동물원에서 사자를 구경하던 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동물원 관리 책임자에게 말을 합니다. 내가 사자 우리 안에 들어가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사자가 좋아서 분명히 춤을 출 것입니다. 나를 믿고 우리 안으로 넣어 주십시오.
혹 사자가 달려들어 나를 찢어도 당신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그렇게 해 주시오. 그러자 관리사가 사자 우리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들어가 연주하니 정말 사자가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연주자가 계속 연주하면서 다른 사자도 들여보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자 한 마리를 더 들여보냈는데 그 사자도 들어오자마자 연주를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또 다른 사자를 들여보내라고 하자 관리사는 사자 한 마리를 더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사자는 음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연주자를 잽싸게 덮쳐서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된 것 같습니까? 귀가 먹은 사자라서 연주를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아무리 좋은 말씀, 생명의 말씀도 듣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제대로 들으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신령한 춤을 출 것이지만 마귀가 귀를 막아 말씀을 듣지 못하면 이웃을 해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의 삶이 주위 사람에게 불신앙의 모습이 아닌 믿음으로 돋보이게 하십시오. 믿음의 행동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각자가 우리 교회 얼굴인 줄 기억하십시오. 또 여러분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주변 사람이 다 보고 있는 줄도 기억하십시오. 믿음으로 인생 관리 잘하여 믿음의 소문 잘 내기를 바랍니다.
눅 08:0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은혜의 강단 > 2016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침내 백배의 복을 받았습니다(창 26:12~18). (0) | 2016.10.15 |
---|---|
나도 믿음의 본을 보여 줍시다.(살전 01:06~10) (0) | 2016.10.08 |
태양아 머무르라. 달아 머무르라.(수 10:12~14) (0) | 2016.09.24 |
나 때문에 문제가 일어납니다.(행 15:36~41) (0) | 2016.09.17 |
대 속죄일에 내어보낸 아사셀 염소(레 16:06~10) (0) | 2016.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