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나의 행복은 어디에서 옵니까?(신 10:12~1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10. 1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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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에서 제공하는 행복지수[幸福指數]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간단한 설문조사인데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측정하는 조사입니다. 사람이 만든 설문 조사를 통해서 행복지수를 평균으로 매기는 값으로서 60대 평균 행복지수가 백분율로 볼 때 61.4점입니다.

제가 그 설문조사에 응해 보았는데 상당히 많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나왔을까요? 72점이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증거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세상적인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도 행복한 사람보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삶에 만족하십니까? 이대로 생을 마쳐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까? 성도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Greek: Πλάτων, 기원전 428~347)은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다섯 가지의 요소를 꼽았습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 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약간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절반밖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

 

플라톤이 제시한 행복한 조건의 다섯 가지 공통점은 조금 부족함입니다. 여러분은 이 부족함이란 행복의 조건에서 얼마나 만족을 누립니까?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사람은 저마다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행복을 누리도록 창조하셨으며,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행복은 원하지만 행복의 설계도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의 설계도를 만들고, 그 설계도를 따라 행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 행복지수는 얼마나 되는 지를 말씀으로 살펴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1. 행복은 물질세계에서 오지 않습니다.

 

 

06:03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구약시대는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습니다(24:60; 29:31~35). 그리고 세상에서 장수하는 것도 행복으로 여겼습니다(11:09). 불신의 사람들도 자녀가 다복하고 장수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깁니다.

그 외에도 물질의 요소들을 행복의 필수 조건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은 행복을 가꾸는 하나의 보조수단이지 행복의 절대 조건은 아닙니다. 행복의 조건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오히려 불행의 조건으로 변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질세계의 요소들이 오히려 해가 되며 걱정도 더 많이 불러옵니다. 소유가 많으면 그 소유를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근심으로 지켜야하기 때문입니다.

 

전0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 포도원도 별장도 소떼도 양떼도 부동산도 많이 소유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요에 행복은 없더라는 것입니다. 돈을 행복의 조건으로 삼는 자, 절대로 돈으로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풍족하면 행복할 것 같아도 그 풍족함이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재산이 많다고 그것이 내 행복의 보증수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재산이 많으면 딸린 식구도 많아지고, 소비도 많아지고, 있는 그것을 잃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일은 더욱 눈물겹습니다.

 

05:12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이스라엘인들은 시간이 있고, 여유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이것이 행복이구나 하며 행복을 누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시간이 있어서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또 여유로운 마음으로 마음껏 식사도 할 것입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 친한 사람이 있어서 교제도 나누고 할 것이니 여러분들이야말로 행복한 분들입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각자 한 번씩 질문하십시오. 행복하시지요? 또 각자에게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축복을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행복론의 저자 칼 힐티(1833~1909)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추위를 막기 위해서는 한 벌의 외투면 족하나, 만약 이 경계선을 넘어 의복의 색깔이나 모양에 관심을 쏟으면 색다른 열 벌의 외투도 부족하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물욕을 내려놓으면 행복이 보일 것이나, 물욕을 너무 크게 등에 지고 있으면 그 과잉 욕망이 행복을 파괴시키고 말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행복의 조건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마십시오. 다른 사람과 비교도 하지 마십시오. 행복의 조건을 물질에 결부시키면 물질이 없는 사람은 행복의 자리에 들어 올 수 없습니다.

행복의 조건이라고 여기는 물질세계의 것들, 재난 한 번 당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마지막에 가지고 가지도 못하는 것들에(05:15) 목숨 걸지 마십시오. 돈을 사랑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맙니다(딤전 06:10).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들어 결국은 수고와 슬픔만 남는 생활에서 탈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행복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에서 옵니다.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행복을 위하여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십니다.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한 마디로 행복은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서 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의 첫째 요소가 하나님을 경외(ארי)하는 것입니다. 경외란 그 분을 두려워하다, 깜짝 놀라다. 라는 의미로서 이 경외가 하나님이나 왕을 대상으로 할 때 사용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외에는 두려움이 수반되며, 이 두려움은 하나님과 우리의 영적 관계를 좋은 쪽으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합니다. 얼굴과 얼굴의 관계가 좋아지면 그것이 행복입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입니다. 모세는 광야 생활 40년을 통하여 하나님의 압도적인 사랑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의 관계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직접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12:08).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데도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좋은 관계를 가졌는데 이런 좋은 관계의 복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지라고 주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 명령들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고, 사람으로서의 믿음의 본분을 다하는 일입니다(12:13).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얼굴과 얼굴이 편할 때 행복이 옵니다. 만일 얼굴과 얼굴의 관계가 불편해지면 이별의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그 실제적 증거가 야곱과 라반의 관계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자 결국 헤어지는 결과가 되었습니다(31:02). 우리 김삼일 가족끼리는 어떤 경우에도 얼굴을 상하지 말 것이며, 만일 상하였더라도 인내와 이해로 조건 없이 회복하십시오.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가꾸기 원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불편한 관계를 풀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습니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는 고백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작은 아들 일명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 온 것처럼 울며불며 돌아와야 합니다. , 예수님 내가옵니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하나님과 사이에 회개로 좋은 얼굴을 만듭시다. 회복합시다.

 

 

, 예수님 내가옵니다. 못 박히신 십자가 앞에 그 큰 사랑 눈물에 겨워 울며 울며 돌아옵니다. 주님 손과 발 못 박혔고 머리엔 가시관 박히셨네. 내 모든 죄와 허물 위해 말없이 피 흘려주셨네. , 예수님 나의 손잡고 이제부터 영원까지 내 구주가 되옵소서.

 

 

아직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습니까? 아직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만일 불화하게 된 원인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갔던 것이라고 깨달아지면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는 회개의 자리로 와야 합니다.

 

59:0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3. 행복은 말씀을 지키는 곳에서 옵니다.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호와의 명령과 율법에 잘 지키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살고자 몸부림을 치는 것은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자 함이 아닙니까?

불행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도 갈망하는 행복을 세상에서는 그 누구라도 보장을 못합니다. 13절을 잘 보십시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령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정말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원하시는 것은 성도의 삶을 비추어 주는 진리의 빛이자 등불인 말씀입니다(119:105). 이 말씀이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 이 성경 말씀은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과 승리를 얻는 비결이며, 장수와 번영의 지름길의 나침판입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모습을 직접 체험하는 데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요일 04:20). 그래서 진정으로 말씀을 지키는 성도에게는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실천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천국에 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다음 날 한 성도로부터 목사님, 천국의 메시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은 천국이 어디 있는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이렇게 답을 해 주었습니다.

당신을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저는 지금 오두막집이 있는 언덕에서 왔습니다. 그 너머에 가난한 교우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습니다. 당신이 좋은 음식을 가지고 가서 시편 23편을 읽은 후 기도해 주신다면 천국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되실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이 사람이 목사를 찾아와 말합니다. 목사님, 천국이 어디 있는지 알았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행하고 15분 동안 천국에서 지내다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사람에게는 다음 세상에서 천국이 예비 되어 있지만, 땅에서도 사랑을 베풀며 섬길 때 천국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0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우리가 교회를 출입한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되 생활에서 실천을 하는 데 있습니다. 제가 구약성경 신 11:26~28절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모세가 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잘 들으시오.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복과 저주 두 가지를 제시하겠소. 여러분에게 주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면 복을 받을 것이오, 그렇지 못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오. 이제 결정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메시지이지만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전해지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의 말씀 나의 말씀으로 받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복과 저주 둘 중에 어떤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때로는 알면서도 지키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삽시다. 이제부터 세상의 것들 때문에 믿음의 혼란을 겪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하며 삽니다. 약속을 바라보고 소망가운데 행복을 누리며 삽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신라시대 때 대중 불교의 기초를 닦은 원효스님(617~686) 있었습니다. 이 분이 의상과 함께 불교를 더 공부하려고 경주에서 당나라로 유학의 길을 가는 도중 충남 직산 지방에 이르자 어두워져 토굴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밤중에 너무 목이 말라 어둠 속에서 물을 찾다가 바가지가 손에 잡혔고 그 속에 든 물을 마시니 그렇게 감로수처럼 시원하고 맛이 있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날이 밝은 다음에 보니 어제 밤 바가지로 생각한 것은 오래된 해골이었고, 그렇게 맛이 있었던 물은 그 속에 고인 더러운 물이었습니다. 원효는 깊이 생각하면서 이 더러운 물을 어젯밤에는 그렇게도 맛있게 마셨는데 지금은 왜 구역질이 날까? 결국 모든 것이 마음에 달린 것이구나. 라고 깨닫고 경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가짐에 따라 세상은 행복도 되고, 괴로움의 지옥도 됩니다. 내 마음 속에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습니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이 가능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마음먹은 만큼 행복한 법입니다. 여러분 행복을 원하십니까? 여러분들 마음 깊은 곳에 행복의 열쇠가 숨겨져 있습니다. 행복해지려면 먼저 행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면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고, 또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행복은 어떤 불행 속에서도 숨어 있습니다. 굳이 은행의 예금이나, 토지나, 높은 지위나, 부자의 품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도 불행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오늘 우리를 향하여 이런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33:29).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여건들이 이스라엘 앞에 가로 놓여 있는 상황에서 모세가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아멘으로 받으면 분명 행복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나에게 비교하여 고백하면 어떻겠습니까? 이일기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 저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라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