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 뉴스에 한국인의 외모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페이스 월드 매치(아이폰)라는 앱에서입니다. 여러분 믿어집니까? 여기에는 세계 각국의 일반인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 참여자 수가 15만 명이 넘습니다.
이 참여자들이 자신의 이상형 얼굴에 표를 던지는 형식으로 얼짱을 뽑았는데 세계 얼짱 1위로 한국인 남자와 여자가 선정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국가별 남녀 외모 순위가 발표됐는데, 한국 여성이 2위이고 한국 남성은 7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한국 사람이 잘생겼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좀 불편한 것이 있습니다. 이 앱에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참여하였고 또 얼굴에는 성형 여부도 상관없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외모에 대해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가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 사람은 겉 사람 즉 외모에 유별나게 관심이 많고 외모를 가꾸는 일에 공을 들이는 정성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정도입니다. 이런 한 시대의 풍조에 우리 믿음의 사람이 더 관심을 가지고 동참한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원본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외모에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왕이면 깔끔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야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입니다. 외모도 중요하나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외모보다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속사람입니다. 이 속사람은 외모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입니다. 속사람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로 정했습니다.
1. 세상 사람은 겉사람에 인생을 겁니다. |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오늘 말씀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사람은 두 가지의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겉사람 모습과 속사람 모습입니다. 이 양자 모두에게 현재형을 적용함으로써 각자의 삶이 마쳐지는 날까지 상호의존으로 살아가는 인생임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반면 육신의 원칙은 아무도 거슬릴 수 없고 막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겉모습은 계속 낡아져 간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꾼다고 하더라도 몸은 속절없이 낡아갑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서히 낡아지다 결국은 시들어 나중에는 볼품없는 모습이 됩니다.
요즘 종편 채널을 보면 회춘의 비법이나 아니면 좀 덜 늙어지는 방법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중심을 이룹니다. 그에 대한 체험자들도 나와서 소개하고요.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먹을거리가 있고, 좋은 섭생 방법을 이야기해도 육신이 쇠하여 가는 모습을 정지시킬 수는 없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가끔 예쁘다고 착각하는 분들 보고 당신 정말 아름답습니다. 라는 말을 듣습니까? 다 상대방 듣기 좋으라고 하는 립서비스인 줄 아시죠? 즉각 알아차리고 소쿠리 비행기 안 타는 사람이 내실 있는 사람입니다. 아침 안개와 같은 인생, 들에 피었다 지는 꽃과 같은 인생이 아름다운들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소모품인 이상 날이 갈수록 볼품만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만물은 그 기간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볼품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변하여 갑니다. T. V 광고에서 산소 같은 여자라는 말을 하며 화장품 선전을 하지요? 그런 화장품 아무리 찍어 발라도 산소 같은 여자 안 됩니다. 오히려 이산화탄소 같은 여자 됩니다.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요즘 불신자들 세계를 평가한다면 이미지에 끌려서 살아가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저 눈에 보이는 겉사람으로만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아도 실체를 보기보다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것에 따라 이익과 불이익이 오고 가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모에 신경을 쓰고, 그것을 가꾸는 일에 올인하는 모습이 눈물겹습니다. 외모지상주의를 굳이 나쁘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니까요? 그러나 속사람을 포기하면서까지 겉사람의 가치관에 매달린다면 그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외모지향 산업이 크게 성장합니다. 외모 산업비는 사교육비를 능가한다고 합니다. 얼짱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중국인들 의료관광 때문에 성형외과가 빛을 발한다고 합니다. 외모 산업, 얼짱 증후군 때문에 크게 재미를 본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사회는 이미 외모지상주의라는 키워드로 바뀐 지가 오래입니다. 그런데 겉사람 중심으로 진화한 사회이고 보니 숨은 인재를 사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도 이런 시류에 편승하여 겉사람에만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믿음의 모습을 잃고 생활하는 것은 아닌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벧전 03:0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0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2. 겉사람보다 속사람을 우선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
16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여기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말은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에 반하여, 영의 사람은 믿음으로 더욱 든든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비록 주름살의 골이 더 깊어지고 뱃살은 더욱 늘어질지라도 내면의 세계는 믿음과 은혜로 단장할 것을 안내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실제 걱정하고 신경을 써야 할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외모나 체질의 노화가 아니라 속사람에 해당하는 영혼이 추해지는 것입니다. 육신 나이가 젊다고 해도 그 생각이 세상 사람 모습과 같이 불신앙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믿음의 열정이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젊은 사람이 아닙니다.
육신의 나이테는 거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육신의 지붕이 날아가고 육신의 창문이 어두워지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시들어가는 겉사람의 유효기간 동안 속사람인 영혼의 나이테는 얼마든지 아름답게 꾸밀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영원을 사모하였기 때문에, 영의 생명이 더욱 든든하였기 때문에, 육신의 겉사람이 낡아질지라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보아야지, 그저 세상 속에서 육신의 모습만 본다면 무슨 삶의 의미가 있고 삶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겉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속사람을 위해 산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도는 겉사람 때문에 절망하거나 세상 가치관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지지 않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가을에 낙엽이 지고 겨울에 앙상한 가지로 되어 있어도 봄이 오면 다시 새싹이 돋아나서 왕성한 생명 활동을 합니다. 이처럼 속사람이 든든한 믿음의 사람은 겉사람은 낡고 쇠하여도 속사람은 더욱 싱싱하여 왕성한 믿음의 활동을 합니다. 오히려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사람에게는 영이 있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사람의 영은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말하는 것과 행동과 표정까지도 지배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이 어둡게 되면 모든 삶이 어둡게 되고 우리의 영이 밝으면 모든 삶이 밝아집니다.
우리의 짧은 삶을 놓고 겉사람과 속사람이 함께 든든하면 이보다 좋을 데가 어디 있습니까? 나이에 비해 아주 젊게 보입니다. 라는 인사를 받으면 그것도 복입니다. 그러나 겉사람이 아무리 건강하여도 세상의 쾌락에 빠져 산다면 그 사람은 차라리 육신이 낡아지고 대신 믿음의 속사람이 살아나는 것보다 못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노래 아리랑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가사가 있습니다. 아니, 꼭 그렇게 발병이 나야 합니까? 내게 손해를 끼치고, 해를 끼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내 원수, 저놈은 꼭 망해야 해. 라고 생각해야 합니까? 이런 마음 다 겉사람 모습입니다. 우리는 좀 넓은 마음을 가져봅시다. 에라 잘 먹고 잘살아라. 복 받을 님. 하면서 양보합시다. 좋은 마음 가지면 속사람이 은혜로 회복되고 든든하게 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겉사람을 가꾸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신령한 영의 사람을 가꾸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보이는 것들에 휘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님의 은혜로 속사람을 단장합시다.
엡 03:16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3. 속사람은 영원한 소망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바울과 그의 선교팀이 돌아보고 소망하였던 것은 세상의 물질 요소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신령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보이는 것은 잠시 활용하였을 뿐입니다. 지금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앞으로 소유하게 될 영원한 것에 자산의 가치, 행복의 가치를 부여하다 보니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돌아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에 애착을 두며 어디에 목적을 두고 살아갑니까? 우리의 주목의 대상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만일 눈에 보이는 것들 가변의 것들이 행복이고 성공의 기준이라면 우리의 행복과 성공은 날마다 왔다 갔다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얼굴은 하루라도 펴질 날이 없을 것입니다. 외모를 가꾸는 일에 집착하던 마음을 이제 조금 내려놓읍시다. 아름다움은 그냥 피부 한 장의 두께입니다. 외형의 아름다움이란 껍데기 한 장 벗기면 다 똑같다는 말입니다. 신령한 내면의 속사람을 단장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신령한 것을 돌아봅시다. 신령한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삽시다.
빌 0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록펠러(1839~1937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고 부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19세기 중엽에 석유를 증류해서 가스, 나프타, 등유, 윤활유 등의 다양한 기름으로 분류하는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사업 초기에 잔인하고 무자비하고 공격 방법으로 회사를 키웠습니다.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원가 아래로 가격을 낮춰 기름을 방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다른 정유 업체를 수없이 도산하게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회사를 헐값에 사들여 몸집을 키웠습니다.
1870년에는 기름을 과잉 공급하여 석유 가격을 폭락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때 흔들리는 정유사를 또 사들이면서 록펠러는 1882년에 석유 독점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는데 그 결과 록펠러는 미국에서 가장 증오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그가 55세 때에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에 큰 변화를 주었는데 그는 걷지도 못하게 되어 휠체어를 타고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 현관에 붙어있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되다는 액자의 성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성구입니다. 록펠러가 그 성구를 보는 순간 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후일의 자서전에서 밝힙니다. 그때 마침 병든 한 소녀가 입원비가 없어서 울며 애걸하는 모습을 보고는 비서에게 익명으로 그 소녀의 병원비를 치르게 했습니다.
그 소녀는 기적같이 병이 나았습니다. 그는 모으고 누리는 것보다 베풀고 나누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그 후 그는 자선가로 변신하여 명문 시카고 대학을 설립하였고 1913년에는 인류복지를 위해 록펠러 재단을 설립하였으며 또한 3천여 개의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장차 받아 누릴 하늘나라의 상급을 내다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롬 0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한국 사람들은 돈을 셀 때, 어떻게 셉니까? 왼손에 돈뭉치를 움켜잡고 손에 침을 뱉어 가면서 앞으로 잡아당깁니다. 한 장, 두 장, 세 장, 이 돈 내꺼다. 내꺼, 이런 식입니다. 혹시 여러분, 미국 사람이 돈을 세는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까?
그들은 돈을 그렇게 세지 않고, 돈을 쥐고 바깥으로 셉니다. 그 속에는 어떤 의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라 당신을 위하여, 너를 위하여 쓰라고 주었다는 의식이 들어 있습니다. 또 미국 돈을 달러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돈은 일 달러나 백 달러나 모두 In God we Trust 즉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안에서. 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보이는 것들 세상의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면서 살겠다는 그런 뜻입니다. 하늘나라에 속한 신령한 것을 바라보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속사람을 잘 가꾸며 살아가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러면 속사람이 어떻게 새로워집니까? 말씀으로 새로워집니다. 기도로 새로워집니다. 찬양으로 새로워집니다. 새로워짐으로 영적인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들음으로 인해 믿음의 속사람을 잘 가꿀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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