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어린이주일] 우리 아이는 천국의 주인공입니다(막 10:13~1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5. 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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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산골,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어린 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종일 배가고파 우는 게 일이었고, 그때마다 아이의 부모는 회초리로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마침 이 집 앞을 지나던 스님이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다 무슨 생각이 난 듯 집으로 들어와서 매를 맞고 있는 아이에게 넙죽 엎드려 큰절을 하였습니다.

이에, 놀란 부모가 스님에게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스님, 어찌하여 하찮은 아이에게 이렇게 큰절을 합니까? 그러자 스님은 예, 이 아이는 나중에 정승이 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곱고 귀하게 키우셔야 합니다. 라고 답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후로 아이의 부모는 매를 들지 않고 공을 들여 아이를 키웠고, 훗날 아이는 정말로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에 영의정을 둔 부모는 그 옛날 스님의 안목을 기억하고 감사의 말씀도 전할 겸 해서 수소문을 하여 스님을 겨우 찾았습니다.

감사의 말을 드리고는 바로 궁금했던 일을 물었습니다. 스님은 어찌 그리도 용하신지요. 스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우리 아이가 정승이 되리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빙그레 미소를 띠던 스님은 차를 한잔 권하며 말문을 엽니다.

이 돌중이 어찌 미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하나이지요. 이해하려 애쓰는 부모를 주시하며 스님이 다시 말을 잇습니다. 모든 사물을 귀하게 보면 한없이 귀하지만, 하찮게 보면 별반 쓸모가 없는 법이지요. 마찬가지로 아이를 정승같이 귀하게 키우면 정승이 되고, 머슴처럼 키우면 머슴이 되는 것입니다.

 

5월 첫 주일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교회가 어린이 주일을 제정하고 지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 하루만이라도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려는 까닭입니까? 아닙니다. 이 날을 통하여 아이들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고,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우리 아이는 천국의 주인공입니다. 로 정했습니다.

 

 

 

 1. 부모님은 아이들을 축복기도의 길로 이끌어야 합니다.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님 당시의 풍속은 동네에 유명한 랍비나 존경을 받는 분이 오면, 아버지보다는 주로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가서 축복기도를 받게 하였습니다. 일종의 교육방법인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 줍니다.

이분을 잘 보아라.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가?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잘 들어둬야 한다. 랍비가 옷을 잘 입었거나 잘 생겨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분이기에 아이들로 하여금 존경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먼저 열심히 듣는 태도를 보여 주고, 랍비로부터 들은 말씀을 아이가 끝까지 잘 기억하도록 도와줍니다. 오늘 말씀도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 사역을 펼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께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놓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막 열을 내며 심하게 꾸짖습니다. 갑자기 아이들이 오니 시끄러워서 그러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좀 넓혀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들이 떠들고, 시끄럽게 구는 것은 정상이고, 또 당연합니다.

아이들은 특별한 자격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할아버지 수염까지도 쥐어뜯을 수 있는 자격입니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부모들의 간절한 기대와는 달리 매우 귀찮게 여기면서 아주 심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꾸짖거늘. 이 말은 매우 강렬한 단어로서 제자들이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을 내어 쫓아 시피 해서 밀쳐내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부터 랍비라는 칭호로 불리었기에, 관례상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축복기도를 받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왜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어 내쫓았을까요? 좋은 쪽으로 이해를 하면, 예수님은 지금 아이들을 안수기도 해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고단하신 예수님이 아닙니까?

 

할 일 많으신 분이 별 대수롭지도 않은 아이들 때문에 복음 사역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유대 사회에서 여자와 아이들은 공동체의 일원에서 거의 소외되어 있을 만큼 경시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아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시는 지 봅시다.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 말은 크게 탄식하다는 뜻으로서, 예수님께서 이런 감정을 가지신 것은 제자들이 얼마 전 어린 아이에 대한 교훈을(09:36,37)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09: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예수님은 아이들 문제를 놓고 제자들에게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는 두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하실 때가 어떤 때입니까? 예수님의 심령이 십자가 대속이라는 죽음에 얽매어 있던 때입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 때는 예수님의 마음이 십자가 고난과 대속에 대한 부담감이 가득 차 있던 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눈에 과연 아이들이 들어오겠습니까? 당장 자신의 문제가 코앞에 닥쳐왔는데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나 할 때입니까?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과는 달리 아이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셨습니다. 아이를 소중히 여기시는 주님의 모습을 16절에서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어린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까지 해 주셨습니다. 아이들을 안수기도 해 주는 시간을 특별히 많이 배정을 해 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축복을 받으며 자라야 합니다. 부모의 축복이 필요하고, 목사의 축복이 필요합니다. 어른들도 축복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은 축복이 더 필요합니다. 복 받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축복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의미합니다.

 

 

 

 2. 예수님은 아이들을 천국의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제자들은 아이들이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꾸짖었습니다. 이유는 집회에 방해가 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이들을 친히 곁에 두고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설명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님은 이미 아이들의 위치를 예수님 자신과 같은 등급으로 높여주셨습니다(09:36,37).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문자적 의미보다 어린이의 성품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의 성품이 된다는 뜻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15절이 더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왜 아이들을 비유로 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십니까? 얼마든지 다른 표현을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아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예수님께 단순한 축복, 그냥 안수기도 한번 받기를 기대하고 데리고 왔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아이들을 천국 시민으로까지 올려주시고 또 축복을 해 주십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힘없고, 아무 것도 모르는 하찮은 존재로 보이지만, 이들이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게 될 자산이요, 미래의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바로 이들에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면서, 어른들의 마음이 어떠하였기에 아이들을 비유로 들으십니까? 아이들에게 있는 순수함이 어른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사람들 말고, 그래도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열두 명의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예수님 아래서 훈련을 받으므로 순수함과 겸손함이 있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09:46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누가 가장 신임을 받는 사람이냐에 대한 일입니다.

 

0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예수님의 지도를 받는 열두 제자들조차 순수함과 겸손함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또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 백성이 될 사람은 제자들이 아니라 순진한 아이들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아이들이 들어간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좀 더 설명을 하자면 천국 백성은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욕심을 비운 사람들의 몫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기적인 너희들의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천국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져 보십시오. 우리 아이가 우리교회의 미래의 주인이다. 우리 아이가 하늘나라의 주인이다, 우리 아이가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짊어지고 갈 일꾼이다. 우리 아이를 천국의 주인공, 우리교회의 주인공으로 인식하자는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 아이가 순수함과 진실함으로 예수님을 더욱 잘 섬기는 자가 되도록 오직 말씀과 믿음으로 양육을 하고, 훈계하며 온전한 믿음의 본을 보이기를 축원합니다.

 

 

 

 3.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 알고 양육해야 합니다.

 

 

127:0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녀들을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히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고 고백 할 수 있는 믿음, 이게 중요합니다. 기업이란 의미가 무엇입니까? 일반적인 의미는 생계를 꾸리고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산업을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자영업, 중소기업, 대기업 등을 들 수 있고, 직업 수는 대강 미국은 3만 가지, 일본은 25천 가지, 한국은 1만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라고 할 때의 기업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나 재산과 같은 하나님이 주시는 유산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시 127:03절의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라는 말은, 자녀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선물이요 복의 결과이기 때문에 아주 귀하게 양육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자녀들이 있지 않습니까? 또 그들이 가정을 이루어 자녀들을 낳고 살지 않습니까? 그들이 물질적인 면에서 잘 살면 물론 좋습니다. 혹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그들이 천국백성이 되었다면 그 자체야말로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세상의 기업과는 차원이 다른 영적인 기업이기 때문에 더욱 귀하게 여기고 잘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는 좀 많이 낳아서 교회의 일꾼으로 잘 양육하십시오. 그 일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아주 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잘 양육한 결과를 놓고 자랑하고, 자녀들은 부모를 감사히 여기면서 자랑한다면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이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17:06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중국에 남방 해남(海南) 문창출신으로 한교손(1861~1918)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외종숙 송씨(宋氏)의 양자로 들어가 성명을 송가수(宋嘉樹)로 개명하였습니다.

이 분이 예수님을 잘 믿어 전도사 생활을 하였는데 끼니도 잇지 못하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힘껏 헌금하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와 함께 6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항상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잘 양육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물질적인 복도 크게 받았을 뿐더러 큰 아들 자문은 중국의 재정총장이 되었고, 큰 딸 애령은 남경 정보수석 대부호 공상회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둘째 딸 경령은 중국의 국부인 손문의 아내가 되었고, 셋째 딸 미령은 중국의 장개석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통해 큰 복을 주시고 큰 자랑이 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아갈 수 있는 증거입니다. 지금 우리의 눈에는 아이들이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훗날 이 사회를 짊어지고 나아갈 재목들이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될 것이고, 세계의 역사 속에서 일역을 담당하는 인물이 될 것임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가정의 미래요, 교회의 미래요, 국가의 미래입니다. 청소년 비행, 청소년 문제로 한시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는 것은 바로 우리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어느 길이 가장 옳은 길입니까? 지금부터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잘 인도합시다. 예수님을 대하듯 사랑과 정성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이 그들을 용납하셨듯이 우리도 그들을 용납하며 삽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토끼를 잡을 땐 귀를 잡습니다. 닭을 잡을 땐 날개를 잡아야 하고, 고양이를 잡을 땐 목덜미를 잡으면 되지만 아이들은 어디를 잡아야 합니까? 멱살을 잡히면 싸움이 나고, 손은 잡히면 뿌리치지요. 그럼 어디를 잡아야 합니까?

마음을 잡아야 합니다. 마음을 잡으면 진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아서, 성도 여러분의 마음에 인격적으로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의 교육 방법 하나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의 양육에서 남들과 비교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시기, 질투, 경쟁심 같은 것들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키웁니다. 그런 교육을 받고 성공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입니다(Albert Einstein, 1879,3,14~1955,4,18 독일).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얼마나 공부를 못했던지 성적표에 이런 평가가 나와 있었다고 합니다. 이 학생은 앞으로 무슨 공부를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음.

혹 여러분의 자녀가 이런 성적표를 받아왔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이고, 자식농사 다 망쳤네 하면서 괴로워하겠지요. 거의가 초상집 같은 분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그 성적표를 보고 얼굴하나 찡그리지 않고 오히려 걱정할 것 없다. 남과 같아지려고 하면 결코 남보다 나아질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너는 남과 다르기 때문에 기필코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 라고 격려했다 합니다.

결국 어머니가 말한 대로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어서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고, 미국의 원자폭탄 연구인 맨해튼계획의 시초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은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못 알아보고, 누구는 어떻고, 하면서 남의 집 아이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우리 집 아이의 재능을 망쳐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양육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잘 나타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