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부활주일>예수님의 부활은 내 믿음을 회복합니다.(막 16:09~1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4. 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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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아내 때문에 아침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이 있습니다. 아침에 이부자리도 정리 안하고, 잠옷도 아무렇게 벗어 던지고 사는 부인에게 남편이 젊잖게 말합니다. 여보, 예수님은 무덤 속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아픈 몸으로 입고 있던 세마포를 단정히 정돈하고 부활하셨음을 생각하면 좋겠어. 그러자 부인이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합니다. 여보, 미안해요. 제가 아직 부활을 못해서 그래요.

 

부활주일은 기독교에서 가장 기쁜 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근본적 문제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쁨으로 인사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사람에게 가장 큰 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죽음입니다. 이 죽음 앞에는 어느 누구든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더러 이런 말을 합니다. 죽는 것이 뭐가 무섭나? 말은 그렇게 해도 그런 사람일수록 몸이 아프면 병원에는 제일 먼저 달려갑니다.

실제로 죽음 앞에 서 보신다면 그런 말은 금방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죽음은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막아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이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이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은 기독교의 절기로서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달걀이나 삶아먹는 날이 아닙니다. 달걀을 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죽은 것 같은 달걀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처럼,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날을 기쁨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합니까? 확신 한다면 이제부터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을 중심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부활 후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0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성경에 막달라 마리아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 여자가 누구입니까? 막달라에 사는 여자로서 한 때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귀신이 쫓겨 나가서 온전한 생활을 하게 된 여자입니다. 이 마리아가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난 후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자기의 소유로 정성껏 섬기는 일을 하였습니다(08:02,03). 그런데 이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열두 제자도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제일 먼저 만나다니 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로서는 대단히 큰 복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되었습니까?

누구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에, 아직 예수님의 장례식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새벽에 무덤에 왔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우연히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만나 주신 것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07절입니다.

 

0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07절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것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예루살렘이 복음의 무대가 되어야 하는데 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합니까? 복음의 무대를 좀 더 도시화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갈릴리가 어떤 곳인지를 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달리 이스라엘의 북방 변두리이고, 예루살렘으로부터는 촌스럽다고 여겨지는 곳입니다.

가난하고 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서, 좀 무시를 당하는 곳이지요. 그럼에도 예수님은 천사를 통하여서 제자들을 이곳에서 만나자고 하십니다. 천사를 통하여 이 말씀을 전하기 전,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14:28)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굳이 갈릴리에서 만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을 돌아보십시오. 예수님이 위기의 상황에 처하자 제자들 모두가 도망을 하였고,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극구 부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는 두려워서 밖에도 채 못 나오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완전 기가 죽었다 할까요? 제자들이 이런 나약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의 세계화는커녕 이스라엘도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약한 모습을 아시고 새롭게 시작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약한 자들에게 다시 사명을 재무장시키기 위해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갈릴리로 갈 것을 명하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주신 일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들어 보세요. 베드로가 아무리 실패해도 수제자 아닙니까?

그런데도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신 이유는 베드로의 이름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베드로의 이름은 반석, 돌이죠? 돌이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할 것 같아 쉽게 깨닫는 여자에게 먼저 나타나신 거라고, 여자들은 입이 싸서 부활의 소식을 누구보다 더 빨리 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의심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께서 고난과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에서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14:50). 베드로는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오히려 세 번이나 부인하였고(26:35),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의심이 많은 제자가 누구일까요? 도마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를 부를 때 의심 많은 도마라고 하지 않습니까? 왜 그런 별명이 붙었을까요? 찬송가 135절 가사 때문입니다. 허물 많은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 확신 주시고 사랑하는 그의 제자 가슴에 안고 변함없는 영광의 주 친히 뵈오리.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들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인 곳의 문을 굳게 닫고 있었는데, 저녁 때 쯤 주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어디에 갔을까요? 다음날 제자들이 도마를 만나자 자랑스럽게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도마가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20:25).

 

좋게 말해서 도마는 이성적 실증주의자입니다.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면 믿겠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심리를 잘 대변하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 한다면 손으로 만져보던지 아니면 최소한 얼굴이라도 본 뒤에야 믿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후 여드레를 지났지만 제자들은 계속 문을 굳게 닫고 집 안에 박혀 있었습니다. 이때는 도마도 같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도마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0:27). 그러자 도마가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만져 볼 필요가 없는 확신에 찬 고백입니다. 도마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인성으로만 알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난 후에 비로소 그리스도로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아주 귀한 고백입니다. 어디 도마만 그렇습니까? 제자들 모두가 꼭 같이 의심에 싸여 있었습니다(11,13,14).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엠마오의 두 제자).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 일러라

 

우리가 전도할 때, 더러는 하나님을 보여주면 교회에 나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도 이적을 보는 데 열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는 것이고, 알고 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도마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구약의 인물 가운데 기생 라합이 있습니다. 이 여자는 오직 믿음 하나 가지고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심령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성경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앙의 확증을 주는 날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지상명령을 품게 하십니다.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의 마지막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본문 15절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말씀을 주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라고 합니다. 지상명령이란 자기의 선택권이 없이 절대로 복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연약한 자들이요, 실패한 자들 아닙니까? 자기 믿음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새 힘을 주시면서 세계 선교의 거대한 비전을 품게 하십니다. 오늘 2015년 부활절의 메시지가 우리 모두의 심령에 깊게 새겨지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하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의 꿈이 살아나기를 축원합니다. 새로운 비전을 품는 부활주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삶속에 이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두려워 떨던 제자들이 담대함을 가졌습니다. 의심을 하던 제자들이 확신을 가졌습니다. 순간적으로 희망이 없어보이던 제자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었습니다. 만물이 새롭게 약동하듯 제자들도 새롭게 약동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자가 누구입니까? 본명은 요한이지만 일반적으로 마가로 통용됩니다. 이 마가 자신이 믿음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의 1차 선교지에서 힘들다고 다 던져버리고 예루살렘 집으로 돌아간 일입니다(13:13).

그 일로 인해 바나바와 바울이 크게 다투고 갈라서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어이없는 큰 실패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 마가가 결국은 실패의 아픔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실패의 아픈 경험을 한 마가가 일어서니 복음서 중 가장 힘이 있고, 가장 현장감 있고, 가장 무게감이 있는 지상명령을 기록하였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실패의 현장을 경험한 마가가 기록하였다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을 대신해서 전하는 이 메시지, 실패의 현장에 있는 그 누구라도 일어서라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다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약한 자들이라도 던져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자신을 부인하고 배반하였을지라도 그들을 찾아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부활절을 통하여 이제 믿음의 스타일을 은혜로 바꿉시다. 예수님처럼 서로 일으켜주고, 서로 믿어주고, 서로 세워주는 생활로 살아갑시다.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잘 읽고 해석을 잘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왜곡되게 해석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거나 큰 장애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신 후에 사도들과 믿는 자들을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 분으로 인해 대표적인 표적 다섯 가지가 따르게 될 것도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행 16:18), 새 방언을 말하며(02장 오순절 성령님 강림 사건), 뱀을 집어 올리며(28:03,05),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사도행전에 문자적인 예는 나오지 않지만 성령님의 권능의 역사는 그보다 더한 위험에서도 믿는 자들을 보호하셨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03, 09, 20).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혜로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성령님의 감동과 하나님의 합당한 뜻을 따라 능력의 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관계가 없는 시험하는 일을 한다면 성령님의 능력이 아니라 사탄의 능력이 임하여 영과 육이 함께 멸망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믿음생활의 최대 위기는 외부로부터 오는 핍박이나 환란이나 어려움이 아니라, 자신의 심령의 무감각증 즉 영적 불감증에 있습니다. 영적 은혜와 영적 감격을 상실하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감격이 없고, 십자가를 보아도 느낌이 없고, 교회의 일을 하여도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영적 위기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에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임하여 모든 영적 부분에서 은혜와 감격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모택동의 무덤이 있습니다. 썩지 않도록 방부제로 처리하고 항상 무덤 안을 섭씨 16도로 유지하여 지금도 죽을 때 모습 그대로 누워있습니다. 모스코바에는 레닌의 모습이 그렇게 되어 있고, 북한의 금수산 기념 궁전에는 김일성의 무덤이 그렇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배는 하지만 사람은 죽으면 썩어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불쌍한 처지가 되어 있습니다. 바로 믿고 바로 살면서 마지막 그날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활의 영광을 입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 우리 모두가 부활주일을 통해서 건강한 믿음으로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