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상당하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 da Vinci. 1452,4,15~1519,5,2)에게 플로랜스(Florence, 이탈리아의 중부도시)의 한 참사관이 와서 대형 홀을 장식할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아직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젊은 화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3,6~ 1564,2,18)에게도 소문을 듣고 가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작품하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등이 있는데 그는 과연 천부적인 재능과 명성에 걸맞을 만큼 아주 화려하게 잘 그렸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참사관들이 다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다가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표현된 불가사의한 매력과 영혼의 정열로 그린 흔적들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젊은 화가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 소식은 레오나르도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이제 늙었어.
그러자 레오나르도는 끓어오르는 질투와 풋내기 화가 미켈란젤로 때문에 자신의 명성이 실추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그만 시기심(猜忌心)에 갇히고 맙니다. 이로 인해 레오나르도는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의 천재성을 더 이상 살리지 못한 채 어둡고 우울한 생활로 지냈다고 합니다.
시기심은 질투와 같이 찾아오는 쌍둥이 형제로서 이런 것들은 주로 나보다 남이 잘 될 때나, 나의 위치가 다른 사람에 의해 흔들린다고 여길 때 잘 생깁니다. 또한 시기심과 질투, 이것은 상대방의 생각은 알지 못한 채 일방적인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인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후에는 비참함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저는 누구나가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시기심과 질투를 성경의 관점으로 살피면서 나도 시기심과 질투가 있습니까? 라는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 왕에게도 시기심과 질투가 있습니다. |
0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사사시대를 끝내고 열방과 같은 무사적(武士的) 용맹을 갖춘 자를 왕으로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외모적 중심의 한 사람을 왕으로 선택했는데 그의 키는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고, 얼굴도 아주 잘 생긴데다(삼상 09:02) 정실 지파 베냐민 출신입니다. 세상적인 조건에서 왕으로 세워진 사울이었기에 자신의 권위와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용맹성이 어느 누구보다 뛰어나야만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블레셋 군대가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앞세워 이스라엘로 쳐들어 왔고, 당장 이스라엘은 곤경에 처하여 골리앗과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다윗이란 한 청년이 등장하여 골리앗을 예상 밖으로 무너뜨립니다. 그리고는 블레셋 군대를 완전히 물리치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 도성으로 개선을 합니다. 이때 다윗을 환영하는 여자들의 노래 소리가 좀 재미있습니다.
0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노래는 항상 그 시대의 민심을 반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다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조차 다윗을 좋아하면서 깊은 우정을 나눕니다. 또 사울 왕의 딸 미갈도 다윗을 사모하는 바람에 사울 왕은 깊은 고민 속에 빠졌습니다. 다윗이 뜨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하되었다고 여겨지자 가슴에 시기심과 질투가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 시기심이 사울 왕의 마음을 아프게 하자, 다윗의 개선을 축하하는 노래 소리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08절을 다시 볼까요? 사울이 여자들의 노래 소리에 불쾌해 하면서 독백하기를,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에서 노래가 끝났더라면 사울 왕은 마음이 아주 즐거웠을 것입니다. 그렇지, 내가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야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노래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다윗은 만만이로다. 까지 나아갔습니다.
민심과 여론을 대변하는 노래, 여자들이 흥겨워 부르고 또 백성들이 따라 불렀기 때문에 사울이 결국에는 왕의 자리가 그에게 돌아가겠구나. 라는 독백이 나온 것입니다. 이 독백 속에 들어 있는 의미는 이미 사무엘에 의해 선언되었기 때문에(삼상 13:14; 15:28) 자신의 폐위와 후임자의 등장이라는 현실을 자신도 몰래 입에서 내 뱉고 만 셈입니다.
사울 왕의 입장에서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시기심과 질투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마음을 시원하게 비우면 분명히 해결되니까요. 그러나 사울은 끝까지 마음에 자리 잡은 시기심을 떨치지 못하여, 10년 동안 그 시기심의 강박관념으로 다윗을 제거하려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정치가 안 보이고, 가족도 안 보이고 오직 시기심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보다 행복하고, 누군가 나보다 더 칭찬받고, 누군가 나보다 더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까?
그래서 견딜 수 없습니까? 그럴수록 넓은 생각을 가져야 합시다. 시기심에 대하여 누군가 이런 말을 합니다. 교수는 교수에게 시기심을 갖고, 의사는 의사에게 시기심을 갖고, 연예인은 연예인에게 시기심을 갖는다. 다 끼리끼리 시기심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와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주목을 하고,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이지 자기와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는 시기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사람,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 시기심이 생기고 괴로워하는 겁니다.
2. 계속되는 시기심과 질투는 불행을 동반합니다. |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왕에게 악령이 임하다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선지자의 지도를 받는 왕에게 사탄이 임하다니요. 이럴 수가 있는 일입니까? 예, 사울이 신하인 다윗을 사랑의 눈으로 보면 더욱 사랑스러워 질 터인데 시기심과 질투의 눈으로 보니 은혜가 아니라 악한 마음이 찾아 온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특징입니다. 사탄은 문제 해결을 죽이는 것으로 하려 합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나라를 구하는 대승리를 하였으니 백성으로 더불어 기뻐하고, 축하하고, 큰 상을 내려 최고 지도자로 띄워주어야 합니다. 이미 골리앗을 이기는 자에게 많은 재물을 내리고, 세금을 면제하고, 자기 첫째 딸 메랍을 아내로 주어 사위 삼기로 약속을 한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삼상 17:25).
그런데 그 약속을 어기고 메랍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맙니다(18:19). 한 나라의 왕으로서 이런 식으로 변덕을 부리면 안 됩니다. 거기다 사울은 사람들이 다윗을 자신보다 더 띄우자 막 화를 냅니다. 왜 화를 냅니까? 다윗을 나라를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정치적 파트너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울은 다윗을 무엇으로 봅니까? 경쟁자로 봅니다. 혹 다윗이 자기의 자리를 노릴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 심리로 봅니다.
그래서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두 번이나 던집니다. 이성을 잃은 이 사울의 행동을 놓고 다윗은 어떻게 대합니까? 그저 피하기만 합니다. 왜 대항을 하지 않고 피합니까? 정상인이 아닌 행동은 자기가 직접 대적을 안 해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처리해 주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0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주목하였다는 말은 질투하는 눈, 시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다윗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사울이 언제까지 시기심으로 바라보았을까요? 끝까지입니다. 시기심과 질투가 멈추지 않은 사울은 결국 불행한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이 시기라는 것은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인간을 괴롭혀 온 매우 뿌리 깊은 죄악의 요소라고 생각하십시오.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자 크게 시기를 하였는데 그 시기가 지금 우리의 마음에도 들어왔습니다(창 04:03~08).
그래서 형제간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에 대한 심리학 용어까지 생겨났는데 그것을 가인적 콤플렉스(Cain's complex)라고 합니다. 가인이 가졌던 시기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던 당대의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종교 지도자들이 하는 짓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는 일입니다. 사람을 보호하고 살려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술수를 연구하였는데 이것이 사탄에게 넘어간 사람들의 모습이고, 가룟 유다도 역시 마찬가지이었습니다.
눅 22:0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0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0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성도 여러분, 옆에 있는 분, 앞에 있는 분들을 보십시오. 어떻게 보입니까? 경쟁자가 아니라 나의 가족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형제자매들입니다. 이 분들이 잘되고 하나님 앞에서 좋은 일, 예쁜 짓을 하면 격려하면서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어야 합니다.
같은 신령한 공동체의 가족이고 같이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다 같이 옆에 있는 분과 손을 잡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당신과 나는 김해삼일을 섬기고 가꾸는 믿음의 동역자입니다. 당신과 나는 같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앞으로는 내가 더욱 이해하겠습니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3. 시기심과 질투를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
벧전 02:0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0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영육간의 실패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시기심과 질투,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악성 바이러스를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여기에 대한 처방전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시기심과 질투를 버리는 것이고(01), 다음으로 버렸으면 그 영혼에 신령한 젖 즉 말씀을 담아야 합니다(02). 제가 서두에서 시기심과 질투는 쌍둥이 형제라고 했죠? 이런 영적 장애 요소를 버리기 위해서는 마음을 넓게 긍정적으로 전환해야만 합니다.
무엇이 넓은 마음인지 한 번 볼까요? 사람이 버스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멀쩡한데 자기만 다리가 부러졌으면 소위 재수 없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교통사고가 나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고 자기는 다리만 부러졌다면 그때는 정말 다행스럽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시기심과 질투의 특징은 마음을 상하게 하고 뼈도 썩게 합니다(잠 14:30). 그런데 이 두 요소를 분석해 보면 주로 자기와 상대적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서 발동합니다.
가령 과일상을 하는 사람이 어떤 택시 기사가 로또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해서 질투를 합니까? 안 하죠. 같은 동네 신발 가게가 잘 되어도 질투를 안 합니다. 그런데 이웃의 과일상이 장사가 잘 되어 장소를 크게 확장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좀 샘이 나다가 은근히 시기와 질투로 바뀌어 집니다.
믿음의 사람 마음에도 이런 것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혹 내 위치가 저 사람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는가? 나 보다 더 신앙생활 잘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목사님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구먼. 이런 생각이 들면 그 순간에 사탄이 마음을 두드리며 찾아옵니다. 내가 받지 못한 은사, 내가 받지 못한 축복을 다른 분이 받을 때 내게 시기심과 질투가 발동되기 쉽습니다.
시기심과 질투의 극복은 몹시 힘이 듭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서 느끼는 그것은 정말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해도 잘 안 됩니다. 그래도 상대방의 장점을 떠올리고, 아무리 불공정하다 해도 장점을 찾으십시오. 이 시기심과 질투의 해결책은 그 대상을 축복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 제가 시기심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시기하지 않고 늘 온유한 마음을 품고 살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심시오. 시기를 한 번 극복했다고 더 이상 안 찾아 오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사탄은 더 고차원적이고 지능적으로 찾아 옵니다.
혹 시기심과 질투에서 해방되지 못하여 내 마음이 흐려지는 것 같습니까? 이럴 때는 내 마음을 흐리게 하는 사탄아 물러 갈 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 갈 지어다. 라고 선언하십시오. 그리고 이 말씀을 내 심령에 꼭 담아야 합니다.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한 농부가 염소와 나귀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무거운 짐을 묵묵히 잘 나르는 나귀를 매우 사랑했는데 염소는 주인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했습니다. 시기와 질투를 느낀 염소는 나귀를 해칠 계략을 꾸미면서 나귀야, 너처럼 불쌍한 동물도 없을 거야. 주인은 네게 죽도록 힘든 일만 시키니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니. 내가 한 가지 꾀를 가르쳐 주지 하면서 나귀의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짐을 지고 개울을 건널 때 자꾸 넘어지렴. 그러면 주인은 네 몸이 쇠약한 줄 알고 다시는 힘든 일을 시키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귀는 개울을 건널 때마다 일부러 계속 넘어졌습니다. 주인은 평소 건강하던 나귀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의사를 데려왔는데 의사는 나귀가 기력이 약해졌으니 염소의 간을 먹이면 금방 낫는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즉시 염소를 잡아 나귀를 치료했습니다.
교황 프란체스코 1세(Jorge Mario Bergoglio, Francis 1936,12,17). 험담과 시기와 질투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마의 무기입니다. 공동체 일원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분열을 일으켜 크리스천 공동체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독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관계된 사람들에게 쓴맛을 안겨 주고 험담을 낳게 합니다. 험담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파괴합니다.
사울왕의 생애를 보면 대단히 불행합니다. 그는 청년 때 왕이 되었고, 가진 장점도 많은 왕이었습니다. 겸손도 있었고, 용기도 있었고, 담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두려움으로 시기심과 질투에 빠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다윗을 쫓는데 그의 일생을 바치며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백성을 이끄는 비전도 사라졌습니다. 이 두려움은 나만 파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파괴시키고 말았습니다.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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