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4년 말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요 14:01~0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4. 10. 1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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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1992년에 세진컴퓨터랜드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전국적인 매장을 내면서 유명세를 탔던 세진컴퓨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리한 확장과 출혈 판매로 경영이 악화되어 1995년 부도 위기를 맞다가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20007월 최종 부도처리 되어 파산하였습니다.

당시 이 회사가 광고를 할 때 사용했던 것이 영리하기로 유명한 진돗개 이야기입니다. 대구에 사는 한 사람이 진돗개를 사왔는데 주인이 한 눈 파는 사이에 없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그 진돗개가 팔려서 차를 타고 왔음에도 자기가 살던 곳을 잊지 않고 무려 7백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자신이 살았던 진도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진컴퓨터랜드도 자사 제품을 구입하면 모든 지식의 길을 분명하게 찾아준다는 그런 이미지의 광고를 전달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진컴퓨터랜드는 자신의 장래의 길을 잃어버린 채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을 일명 위로 장이라고 부릅니다.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이고, 장소는 흔히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갔다가 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03).

 

물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에 관한 말씀이죠? 너희들도 들어서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04). 라고 하시자 갑자기 도마가 주님, 주님께서 고난 받으러 가신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어서 감이 오는데 도대체 가시려는 그 장소가 어디란 말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06). 그 다음에 도마가 또 뭐라고 다시 물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마의 가장 우둔한 질문에 대한 주님의 가장 위대한 답변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도마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답변의 의미가 무엇인지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나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0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믿음의 길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생각이냐면 율법이나 선지자의 가르침이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제대로 걸어 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등지는 우상의 길, 불신앙의 길을 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종교적 배경 아래서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라고 선언을 하십니다. 그런데 길과 이어서 나오는 진리, 그리고 생명이라는 단어 앞에는 특별히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냥 길, 진리, 생명이란 말이 아니라 내가 곧 그 길이고, 내가 곧 그 진리고, 내가 곧 그 생명이란 뜻입니다. 주님 외에 다른 길은 전혀 없다는 말씀이지요. 예수님 외에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고,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0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내가 곧 그 길이요 라고 하심은 사람들의 모든 문제를 완벽히 해결해 주시는 마스터키(Master Key)가 되신다는 뜻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유대인들이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완성 시키시면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19:30).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이런 유일한 구원의 길이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갈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인생의 길을 잘 찾아 갈 수 있다고 믿고 자신 만만하게 살아갑니다.

 

모르는 길을 묻지도 않고 그냥 아무렇게 운전해서 길을 찾을 확률은 거의 제로입니다. 아무리 유능해도 안 됩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려면 경부선을 타야지 호남선을 타고서야 부산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못 갑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인생의 길을 그냥 제 마음대로 운전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생의 방황이 생기고, 인생의 실패도 만나는 것입니다. 알 수도 없는 길을 묻지도 않고 제 고집대로, 제 마음대로 가는 사람이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겠습니까?

 

내비게이션이라는 게 있습니다. 요즘은 굳이 별도로 살 필요 없이 스마트폰에 그런 기능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모르는 길을 운전해 갈 때 내비게이션을 켭니다. 그리고 내비게이션 속의 여자가 시키는 대로 운전을 합니다.

틀리게 하면 틀렸다고 잔소리는 좀 하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화도 내지 않고 계속 안내를 잘 해 주는 내비게이션 여자가 좋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여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의 여자도 같은 길을 반복해서 운전하다 보면 달리 인도하는 때가 있습니다. 기계이기에 완벽할 수 없는 거죠.

이보다 더 확실하고 정확한 내비게이션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길이 되시는 예수님, 내비게이션과는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가이드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은 행복의 길, 풍요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과 더불어 가야 합니다.

 

 

 2. 나는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0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진리요.

 

내가 곧 그 진리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참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진리를 아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에서 성현으로 숭상을 받았던 공자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분들은 자기들 세계의 진리를 설명은 하였지만 진리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일이 있지만(18:38), 진리를 알아보고 구하기 위해서일까요? 그것은 전혀 아닙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고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밖으로 나간 것을 보아 정작 빌라도는 진리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빌라도뿐만 아니라 당시의 유대인들 모두가 진리에 대하여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대교 지도자들은 진리를 잘 안다고 자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요 08장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32)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이기 때문에 대단히 귀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에 제대로 귀를 기울였습니까? 오히려 냉담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45). 하시면서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과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진리의 말씀이 듣기 싫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07장에 보면 스데반의 순교의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구약시대부터 예언되어 온 진리의 예수님을 소개하자 무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07: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우리가 구원의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비슷한 상대적 진리가 따로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주신 진리이기 때문에(14:09),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들먹이기지만 예수님 외에 진리자로 등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반면 비 진리가 판을 치면서 진리 행세를 하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연합군들이 중동 지역 사막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뜨거운 사막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 신기루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신기루 현상은 물이 없는데도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출렁이는 호수가 보이게 하는 현상으로서 이게 대단히 무서운 것입니다.

연합군들은 신기루 속에서 그것이 진짜 물인 줄 알고 첨벙첨벙 들어가서 물을 마셨는데 실상 물을 마신 것이 아니라 뜨거운 모래를 잔뜩 먹고 기도가 막혀 죽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을 찾아온 후속부대가 보니 모두 입 안 가득 모래를 물고 죽어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이런 신기루를 만난다면 목숨을 잃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런 신기루 현상과 같은 비진리가 진리인양 우리의 주변을 미혹 할 때 진리인양 믿으면서 그런 헛된 것에 미혹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 좋은 말씀을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마음에 새기는 것을 진리라고 인정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삶의 기준은 오직 진리이어야 하며, 절대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말씀을 따르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고, 일시적으로는 힘든 것처럼 여겨져도 말씀에 전적 순종하는 삶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함을 믿고 살기를 바랍니다.

 

 

 3. 나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0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생명이니.

 

내가 곧 그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참된 생명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정복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연인을 놓고 말할 때 생명이 죽은 자라고 하며, 죽은 생명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 생명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생명이라 하심도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믿기만 하면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가 누리는 영원한 생명의 증거를 성경에서 보겠습니다.

 

0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놓고 달리다굼)

0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나인성 과부의 아들)

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나사로가 살아남)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는 것은 성도는 주님의 생명으로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시고(06:35), 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라고도 하십니다(11:25).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영적인 생명입니다. 누가 이 영적 생명, 구원의 생명을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까? 나의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것이 복 중의 복인 것은 천국 백성의 보증수표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죽어 천국에 들어가려는 순간입니다. 천사가 천국의 입구에 서서 이곳에 들어가려면 세상에서 행한 공로가 있어야 하니 대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교회에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어디에서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당신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하고 막았습니다.

이번에는 외모가 훌륭한 한 사람이 천국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자 천사가 당신은 어떤 공로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나는 성직자로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의로운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당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고 막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한 분이 천국 문을 두드립니다. 역시 천사가 공로를 묻자 할머니는 나는 내 놓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면서 대신 손을 높이 들고 찬송을 부릅니다.

 

(2523). 나의 죄 속 하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는 공로 없으니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모든 생명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살 때 오는 은혜로서 영원까지 지속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이 없는 인생, 영적 생명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늘 허전하기만 합니다. 예수님 밖에서는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른 곳에도 구원의 길이 있는가? 싶어 몸부림을 쳐 봐도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참 생명이신 예수님 밖에서는 생명 문제를 열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의 어떤 부자가 신문에 이런 광고를 내었습니다. 아무 걱정 근심 없이 정말로 행복하게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만 달러를 주겠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신은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아내가 있어서, 남편이 있어서, 부모님 때문에, 자식 때문에, 직장 때문에, 건강하기 때문에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참으로 행복하게 그리고 만족하게 산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이 부자에게서 만 달러라는 돈을 받아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자가 마지막에 던진 질문에 대답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은 당신이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그렇게 만족하다면 왜 만 달러라는 돈이 필요합니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내가 곧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놓고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독선적이라고 비난합니다만 오해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오셨으니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복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다 함께 구원의 길로, 구원의 진리로, 구원의 생명으로 오신 주님과 더불어 여러분의 인생을 열어 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