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01:0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예레미야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네가 선지자 사명을 반드시 해야 되는 이유는 네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정해 놓았다. 네가 선지자의 사역을 안 할 것 같으면 너는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는 선지자의 길이다.
이 말씀에 예레미야는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하기도 싫은 일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나는 말도 잘 할 줄 모릅니다. 라고 하니 하나님이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야, 내가 네게 일을 맡긴 것이 아니냐? 내가 알아서 뒷받침을 하겠으니 너는 두려워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가라고 하면 가고, 말하라 하면 말만 해라.
본래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난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세습에 의해 아버지가 가졌던 그 제사장 직을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사명에 눈물과 기도로 순종하면서 20세에 제사장이 아닌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40년간(B. C 627~587) 유다 민족의 가장 불행한 역사에서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선지자의 음성을 듣는 날입니다.
1. 예레미야가 사역할 때의 시대적인 상황. |
렘 01: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남 유다 왕국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백성들 중 거의가 포로로 잡혀가던 암울한 시절이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시대라 할까요? 매우 어렵고 절박하였던 시대입니다. 나라가 안팎의 여러 문제들에 직면하자 지도자들은 국가의 위기 타개책을 위해 나름대로 모색하였지만 모두가 불신앙의 논의였습니다. 위기 타개책이 아니라 오히려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예언자 예레미야의 눈으로 내다 본 유다 왕국은 곧 어미가 그 자식을 삶아먹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비참함이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라의 패망을 내다보는 예레미야와는 달리 당시 지도자들은 괜찮다, 안심해라 평안하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괜찮다, 문제없다고 하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성전을 맹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만 있으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지켜주신다는 미신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감히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는가? 성전이 우리 가운데 있으니 절대 안전하다.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 성전도 많이 훼손되고 성전 기물도 거의 빼앗겨서 겉만 번지르르 했지 실제는 성전 기능이 거의 상실되었으며 하나님도 그곳을 떠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교회가 얼마나 많은데 전국 방방곡곡 고을마다 교회가 있고, 그곳에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우리에게 별 어려움이 없을 거야. 라고.
한국교회총람 전국교회 주소록에 의하면 약 4만여 개의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또 한겨레의 조사에 의하면 교회 수가 산과 강을 제외한 대지면적으로 볼 때 교회와 교회 간 평균 거리 100m 정도 사이에 하나 꼴로 있다고 합니다.
사람 사는 동네에 교회에 총총히 교회가 박혀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국가나 민족이 죄악에 놓여 있다면 심판을 안 하십니까? 성전이 아무리 웅장하여도 교회 수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고 그건 심판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유다 민족들이 이렇게 안일한 상태에 빠져있을 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기울어져가는 조국의 참담함을 내다보면서 하나님께 눈물로 나아갑니다. 자기의 처지를 놓고 울부짖는 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불행을 내다보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나님, 유다 민족들이 악한 일에 물들어 있습니다. 영적 무감각의 상태에 빠져 하나님 앞에 돌아갈 염치조차도 없는 백성들입니다. 거기다 우상까지 섬김으로 인해 감히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어 질 수도 없는 그런 모습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기도하면서 깨달음이 없는 자기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을 선포합니다. 이런 예언이 좋은 일입니까? 불행의 뉴스입니다. 몇 번이고 이런 사역을 그만 두려 하였지만 그럴수록 사명의 가슴은 더욱 사무쳐 오는 것 아닙니까?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이길 수 없어 불타는 심정으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렘 20: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2. 심령의 묵은 땅을 갈아야 합니다. |
03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유다 백성들의 심령 상태가 묵은 땅과 같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유다 백성들의 심령이 어떤 상태라는 말일까요? 묵은 땅이란 잡초와 가시덤불이 덮여 있어서 곡식을 기대할 수 없는 불모지 땅입니다.
유다 백성들 마음 상태가 이와 같아서 갈아엎지 않고는 믿음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단서를 마 13장에서 안내해 주십니다. 일명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인데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네 가지 밭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길 가와 같은 밭, 두 번째는 돌밭, 세 번째는 가시떨기 밭, 네 번째는 좋은 땅으로서 앞의 세 밭은 씨를 뿌려도 열매를 제대로 맺을 수 없는 땅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의 마음이 묵은 땅과 같다고 하심은 길가의 밭, 돌밭, 가시떨기 밭처럼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져버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굳게 닫혔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까? 무엇보다 십계명 중 제 1계명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이 생겼을 때, 하나님보다 다른 것에 마음의 전부를 빼앗기면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이 닫히게 됩니다.
출 20: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성도 여러분, 나의 영적 상태가 세상의 것을 하나님보다 우선합니까? 그저 안일하게 믿음생활 하려는 생각이 내 속에 자리를 잡았습니까? 그렇다면 내 마음에 세상적인 잡초가 생긴 것이요, 가시덤불에 뿌리를 내린 것과 같은 것임을 아십시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마음의 문이 닫히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럴 때 어찌하여야 합니까? 묵은 땅을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를 다윗의 예로 살펴보겠습니다.
시 06:0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다윗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으며 자기의 말로도 눈물의 골짜기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났다고 했지 않습니까? 충분히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을 의심할 수도 있을 환경이고, 넉넉히 하나님을 향한 원망도 할 수 있을 환경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항상 열고 산 그 비결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과 회개의 현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 06:06절의 고백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묵은 땅을 갈아엎는 첫 단계로 쟁기질을 합니다. 그래야만 땅이 부드러워지니까요? 내 마음의 밭에도 돌과 같은 단단한 영적 찌꺼기 요소가 남아 있습니까? 돌 같은 요소를 제거하는 회개의 쟁기질을 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의지 위에 성령님 역사와 말씀의 능력이 임할 때 내 마음을 부드럽게 갈 수 있습니다. 영적 대혁명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성령님의 역사가 닫힌 문, 굳은 마음을 열게 하고 나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여 마침내 좋은 땅이 되게 하는 복의 요소입니다
3. 마음의 할례를 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
0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한 마디로 멸망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지금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그들이 겪고 있는 재앙의 원인이 우상숭배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때문임을 지적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촉구합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 회개의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죄를 속하기 위해 7월 10일 대속죄일(레 23:27)에 금식하였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가슴을 치며 통곡함으로 하나님께 회개의 표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슬픔을 표현하기보다는 마음을 찢는 일이 없는 형식적 회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욜 0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미국 시카고의 한 작은 교회에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죽은 사람은 먹지 못해 굶어 죽은 세 살짜리 여자 어린아이입니다. 이 세 살짜리 아이의 시체를 놓고 장례식을 하는데 목사님이 기도 할 때 다들 눈을 감았습니다.
그 순간 남루한 옷을 입고 충혈 된 눈에다 거지 행색의 알코올 중독자 하나가 들어와서 아이의 신발을 몰래 벗겨 가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35센트에 팔아 술을 사 마셨습니다. 죽은 어린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세 살짜리 자기 딸이 죽었는데 그 장례식에 와서 신발을 벗겨다 팔아서 술을 마시는 인간이 과연 사람입니까? 누가 이런 사람을 사람이라 할까요? 다 끝난 막장 인생입니다.
이후 20년이 지난 어느 날, 시카고 제일장로교회에서 한 사람이 수천 명의 성도들 앞에서 간증을 합니다. 여러분, 20년 전 세 살짜리 아이의 장례식에서 신발을 훔쳐 술을 사먹은 파렴치범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접니다. 죽은 그 세 살짜리 아이는 제 딸입니다. 저는 죽은 딸의 신발을 훔쳐 술을 사 먹은 놈입니다.
세상에 이런 못된 애비가 어디 있습니까? 죽어 마땅하지요. 그런데 만물의 찌꺼기 같은 나를 주님은 살려주시고 일꾼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를 상대로 전도해서 수천 명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한 멜트라더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님, 시카고 역사에 기록되는 훌륭한 부흥사의 이야기 입니다.
고후 0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도 여러분 이 같은 사람도 주님께로 돌아오면 새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깨끗하게 되어 돌아오려고 몸부림치지 마십시오. 교회 밖에서 새사람 되겠다고 아무리 결단해도 되지 않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는 고백으로 돌아와서 새사람이 됩니다. 새사람의 사역은 오직 성령님만이 하십니다.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찢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나아갈 때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적 회개가 아닌,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아파하며 통회하는 상한 심령을 받으십니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어떤 곳인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의 품을 멀리 떠나 있는지, 혹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용기를 내어서 하나님 품으로, 말씀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이탈리아의 유명한 오페라 가수 아델리나 패티(Adelina Patti, 1843,2,19~1919,9,27)가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족들에게 우편물을 그곳으로 우송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떠난 그녀는 며칠 후 도착한 우편물을 찾으려 우체국으로 가서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아델리나 패티에게 온 우편물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만 찾으시려면 신분증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주머니에 명함이 있어서 명함을 내 보이며 내가 페티이니 우편물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직원은 그것으로는 신분 증명이 안 되니 보다 확실히 증명을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망설이던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몇 분 사이에 우체국은 사람들로 꽉 찼으며 넋을 잃고 아델리나 패티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그녀가 말합니다. 이만하면 제가 아델리나 패티인 것이 증명이 되었습니까? 직원은 감동스러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만족합니다. 아델리나 패티가 아니면 당신같이 노래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편물을 내어주었다고 합니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자신을 증명하듯이, 낙지 집은 낙지로 승부하듯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됨을 증명하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인 됨을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돌아 온 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묵은 땅을 갈아엎은 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돌아 온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믿음으로 증명하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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