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4년 말씀

내 이름이 하늘나라에 있습니까?(눅 10:01~2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4. 3. 22.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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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특징 중 하나가 외국이든 국내든 높은 산(건물)에만 올라가면 자신이 다녀간 흔적으로 자기의 이름을 새겨놓는 일입니다. 백두산이나 한라산, 지리산 등의 좀 평평한 바위를 보십시오. 그 곳을 오른 사람들이 어떻게든 자기 이름을 새겨 놓은 경우를 보는데 상당히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북한의 명산으로 불리는 금강산 있죠? 그곳을 다녀가는 한국 사람들이 살짝 자기 이름을 새겨놓고 오는데 이런 일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금강산에 내 이름을 남기는 게 좋다고 무리하게 적어놓고 오지만 자연을 훼손하기 때문에 삼가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금강산을 하도 이름을 많이 새겨 놓아서 名山이라고 합니다.

 

11장을 일명 믿음장이라 부릅니다.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믿음의 행적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믿음의 모델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 11장은 끝났고 더 이상 기록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에는 기록되지 못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곳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전도를 위하여 제자를 파송할 때(06:07) 둘씩둘씩 짝을 지어 파송하셨으며, 이번에는 칠십 제자들을 35개전도 팀으로 나누어 예수님이 전도하러 갈 지역들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등으로 파송하셨습니다.

둘씩둘씩 짝을 지은 것은 전도를 함에 있어서 서로 돕고 격려하며 유효한 증인이 되기 위함인데(35:30) 이들 35개전도 팀이 돌아와서 전도 보고를 합니다. 이 가운데 아주 인상적인 보고 하나가 있는데 한번 볼까요?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니 귀신들도 항복합니다. 라는 기쁨의 보고입니다. 이 보고를 듣고 예수님께서 그래 대단히 수고 했다. 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어떤 영적 의미가 있는 말씀일까요?

 

 

 1. 칠십 제자들은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합니다.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님께서 칠십 제자들을 35개전도 팀으로 조직하여 파송했던 지역이 어떤 곳입니까?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입니다. 이 가운데 고라신과 벳새다는 주님께서 소돔과 두로와 시돈보다 더 악하다고 말씀하셨고,

가버나움은 교만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말씀(14:13,15)을 적용할 만큼 사람들의 심성이 완악하고 교만한 곳입니다. 이 세 지역의 사람들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더욱 완악하고, 교만하고 심령이 거칠어서 주님도 강하게 이곳 사람들을 향하여 독설로 책망을 한 적이 있습니다.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예수님은 바로 이곳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에 전도대를 파송하시면서 내가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03).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도저히 전도하기 힘들고 복음을 듣지 않을 사람들이지만 칠십 제자들은 오직 예수님 이름 하나만 붙들고 복음을 전했더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강퍅하던 영혼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면서 그들을 사로잡고 있던 악한 귀신들이 결박되고 항복을 하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전도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하시는 원리 말입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라고 하면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가면 됩니다.

또 전하라고 하면 그 말씀대로 입을 열어 전하면 됩니다. 이렇게 전도대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순종하며 천국복음을 전파하니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역사가 나타는 것입니다. 도저히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포기를 할 수 밖에 없던 사람들이 믿기 시작한 것도 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고 주님께서 일하심으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교회에서 전도하라고 하면 나는 내성적이라 입이 안 떨어집니다. 나는 배운 게 없어서 잘 안 됩니다. 나는 성경을 잘 모릅니다. 나는 교회에 다닌 지 얼마 안 됩니다. 그럴듯한 이유입니다만 이것은 전도에 대한 오해 아닐까요?

전도를 내가 하려고 하니 부담이 되고, 그렇게 핑계가 많은 것 같습니다. 04:19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되게 하리라. 에 주목하십시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에요. 신령한 일에 속한 것은 모두가 내가 되고 싶다고, 내가 하고 싶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게 해주셔야 됩니다.

 

17절을 보면 전도대원들의 사역이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하나만 걸치고 명령해도 귀신들이 막 항복하는 신비한 체험으로 흥분해 있기 때문입니다, 귀신들이 나를 알아보는구나, 주님께서 내게도 특별한 능력을 주셨구나, 내가 귀신에게 고통 받는 사람을 구해주었구나. 하는 이런 일들로 자랑하며 기분이 들떠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체험이 아니기에 격려하고 축하를 해 줄만한 꺼리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이 좀 걱정스러운가? 봅니다. 그런 것 가지고 기뻐하면 자칫 교만해질 텐데, 그런 것 가지고 자랑하느라 열을 올리면 위험할 텐데 라고 생각하시고는 한 말씀을 하십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20). 그런 체험들도 기쁨의 꺼리가 되겠지만 세상의 것에 대한 성취의 기쁨이 목적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영원히 쇠하지 않는 신령한 것으로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칠십 제자들의 전도 보고 현장에 내가 참여하였다고 가정하면 어떻겠습니까?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쁘겠지요? , 나에게 굉장한 능력이 있다. 어디 고쳐줄 병자가 또 없나? 하면서 어깨를 으쓱거리지 않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일들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덧붙이십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고, 군대 귀신들까지 쫓아냈지만 그런 것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 은혜를 받는다 해서 사람이 다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은혜를 입었다고 모두가 진실한 제자가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은혜 받았던 사람들이 몇이나 참가하였으며, 나병환자 열 명을 고쳐주었을 때 돌아와서 고맙다고 감사를 한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사마리아인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기도의 응답이 일어나는 것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큰 복을 경험하는 것 좋은 일입니다. 성령님의 은사와 능력을 받는 것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성취한 것 가지고 뽐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고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으로 기뻐해야 교만의 자리에 들지 않습니다.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기뻐하는 이유는 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살아 온 모습들에서 행여나 주님 밖에서의 기뻐할 이유를 찾고 구한 것은 아닙니까? 수명이 짧은 지극히 인간적인 기쁨, 믿음의 유익이 없는 기쁨을 주님은 버리라고 하십니다.

 

 

 2. 참된 기쁨은 내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것입니다.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기뻐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자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말씀이면서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구원을 받았느냐?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느냐? 다시 말하면 내 이름이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느냐? 입니다.

성도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중직을 받고 죽도록 충성을 하다 과로로 쓰러지는 것입니까? 물론 이런 일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가 되는 성도이어야 합니다.

 

07:21~23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리 외적인 능력을 나타내었다 할지라도 주님과 관계가 없고, 주님이 인정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것은 불법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0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제자들의 사역의 목적이나 참된 의미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천국 입성의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주님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였을지라도 이기적인 목적이거나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의 일, 하나님의 영광과 상반 되는 일이라면 그 일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도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만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는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이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여기 기록된 의 완료 수동태는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즉 생명책에 기록 되었다는 뜻인데(32:32) 그러면 내 이름도 그곳에 있습니까?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면 두 종류의 책이 펼쳐져 있습니다. 행위의 책과 생명책입니다. 행위책은 단 07:10절을 반영한 것으로 인간의 행위가 기록된 낱낱이 기록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생명책은 인간의 행위가 기록된 책과는 달리 천국 백성의 이름이 기록된 책입니다. 여기에는 오직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성도들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가 기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일로 기쁨을 누립니까? 무엇보다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대하여 기뻐하여야 합니다. 각 자가 구원 받은 사실이 가장 기뻐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내가 구원받지 못했다면, 나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다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헛것이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뜬 구름을 잡은 것과도 같지 않을까요?

 

왜 이렇게 내 믿음은 자라지 않는가? 왜 나에게는 성령님의 은사가 없는가? 왜 나에게는 물질을 안 주시는가? 왜 나에게는 건강을 안 주시는가? 왜 나에게는 길을 안 열어주시는가? 도대체 내게는 기뻐해야 할 일이 있어야 기뻐하지? 혹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주님은 20절 말씀을 주십니다.

전도자는 이 땅에서 나타난 영광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내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쁨을 누리야 한다고.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을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지만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소외 된 것과 같은 한 사람이 조용히 돌아와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때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올려놓은 글이 있어서 여기 인용을 합니다. 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예루살렘 어머니)만이 하늘 생명책에 이름이 녹명 될 수 있는 유일한 교회입니다.

수많은 교회가 하늘자녀의 출생 신고를 도울 수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나 하나님의교회는 하늘 생명책에 출생신고를 돕는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께서 영혼의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교회로 오셔서 하늘 아버지, 하늘 어머니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허락받고 하늘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에 미혹을 받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내가 남보다 많은 것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무언가 손에 쥐고는 좋아하다가도 남과 가진 것을 비교하고 자신이 가진 것이 부족하다 싶으면 그때부터 불행해지고 기쁨도 사라집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남보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안달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는 소유를 많이 늘린다 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지식이든, 재주가 되었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생활에서 무언가 가진 것 가지고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 능력이나 직분이나 은사 가지고도 비교하지 마십시오. 천국가면 다 소용없으며 오직 구원받은 것, 하늘나라에 내 이름이 기록 된 것으로만 영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