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치킨게임(chicken game)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는 1950년대 미국의 갱단 사이에서 유행했던 아주 무서운 게임입니다. 이 치킨게임은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는 게임입니다.
그러다 충돌 직전에 먼저 핸들을 접는 사람이 지는 경기인데 핸들을 접는 사람은 겁쟁이 즉 치킨으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핸들을 접지 않을 경우 물론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겠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죽음을 맞게 됩니다. 후에 이 말은 정치용어가 되었고, 요즘에는 모든 분야에 사용되면서 특히 사람 사이에 극단적인 다툼과 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해삼일교회 성도들은 주변 사람들이 치킨게임의 상대가 아니라 서로를 따뜻하게 배려하는 상생의 대상임을 아셔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불행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이가봇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에게서, 우리에게서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가장 행복하게 생각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인데 이보다 아름다운 단어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비록 치킨게임과 같은 유(類)의 환경, 이가봇과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을지라도 이런 것들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에녹은 이가봇의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모델로 소개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이렇게 정했습니다.
1.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종말의 심판을 내다봅니다. |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에녹이 65세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으니 이는 아들의 출생이 에녹의 생애에 어떤 전환점을 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이 생활하던 당시의 생활환경은 육의 계열인 가인의 후손들이 문명의 이기(利器)를 개발하여 향락을 즐기면서 완력을 마음껏 자랑하는 시대였습니다.
창 0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이와 같이 폭력이 설치는 사회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믿음의 사람 셋의 후예들이 경건한 생활을 하기에는 상당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21~24절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상황을 한 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에녹아, 이 세상이 무척이나 악해졌구나? 나 여호와는 더는 세상의 불의한 일을 용납할 수 없구나. 세상을 심판해야겠다. 네게 이 세상에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한 징표를 보여 주겠다. 앞으로 아들을 낳거든 그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어라.
드디어 에녹은 육십 오 세에 아들을 낳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습니다. 이름 뜻은 ①이 아이가 죽을 때 세상에 재앙이 임하리라. ②내 뿜는다. ③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 ④창을 던진다. 는 의미입니다.
한국인은 이름과 그의 인생의 운명이 함께하는 줄 알고 많은 돈을 드려 작명을 합니다. 저도 가끔은 좋은 이름을 지어 달라고 요청을 받고 지어줍니다.
좋은 이름을 받아 갔지만 아직까지 밥 한 끼 사는 법 없더라고요(ㅎㅎ). 또 좋은 이름 지어주면 그 이름처럼 부모나 아이가 믿음생활을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아요. 이름은 아무래도 듣기 좋고 부르기 좋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징병 검사 때 겪은 일)
이스라엘 백성은 그 이름이 그 상황과 특성을 따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이름을 보면 이름 뜻과 일생이 거의 같습니다.
아벨. 공허하다. 야곱. 꾀보 거짓말쟁이. 노아. 위안. 모세. 물에서 건져내었다. 바울. 작은 자. 등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녀를 양육하는 법은 거의 비슷합니다. 자녀라고 부모보다 반드시 오래 산다는 법도 없는 것 아닙니까?
에녹은 므두셀라를 볼 때마다 저 아이가 죽으면 세상에 재앙이 온다는 신령한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머리에 떠올렸다는 의미입니다.
종말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믿음 준비 잘해야겠다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의 초점을 하나님을 향하면서 새롭게 출발하였던 것 같습니다.
롬 08:0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0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져 옴을 민감하게 느낄 때 우리의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의 허물을 낱낱이 밝히게 될 심판을 내다 볼 때 믿음의 간절함이 더욱 살아납니다.
벧전 04:0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2.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종말의 심판을 담대히 외칩니다. |
유 01: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에녹의 삶은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보는 순간부터 전도자의 삶으로 변했습니다. 그 증거가 유다서 01:14에 이어 15절에 나옵니다. 이 말씀은 훗날 유다가 에녹의 삶을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유다는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 에녹이 종말의 심판을 내다보면서 그 심판을 담대히 외쳤다고 기록합니다. 즉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난 이후부터 오직 불의와 맞서 싸우면서 진리를 증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그런 삶을 산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때로는 고난과 고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진리의 편에 서서 원망하는 자들, 불만을 토로하는 자들,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 그 입으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담대히 심판을 전하였습니다(유 01:16).
우리도 하나님께서 그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을 신령한 감각을 살려 내다보면 살아가는 양식이 새롭게 달라질 것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장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보면서 전도자의 삶을 사는 생활이야 말로 진정한 가치가 있는 삶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이 말은 가정생활 건전히 유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에녹은 금욕주의자도 아니고, 신비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에녹은 자기의 믿음생활을 조금도 흔들림 없이 건강하게 유지하였습니다. 경건 생활을 잘 유지하였습니다. 아들 낳은 후 장래의 심판을 내다보며 은혜 생활 잘 유지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하기를 원하십니까? 에녹이 심판의 복음으로 그 시대의 불의한 자들을 향하여 담대히 외치며 증언 했던 것처럼 우리도 생생한 심판의 복음을 주위에 잘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쯤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그 동행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이럴 때는 성경을 성경으로 조명하는 것이 제일 무난한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일을 놓고 성경은 어떻게 해석을 하는지 보겠습니다.
히 11:0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창 0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 05:22절에서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라는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는 에녹이 옮겨지기 전에 즉 죽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생활을 하나님과 동행이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①하나님의 손에 이끌리는 생활, ②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 ③세상살이에서 성별 된 생활, ④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생활이라고 요약 할 수 있습니다.
3. 예정 된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므두셀라의 이름 뜻은 그가 죽으면 세상에 재앙이 임한다는 뜻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서 므두셀라가 969년을 살고 죽었는데 그러면 정말 그때에 세상에 심판이 내렸는지를 한 번 조사해 보겠습니다.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25),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28,29). 그러면 노아가 태어났을 때 그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는 369세입니다. 므두셀라는 성경에서 최고로 장수한 969세까지 산 인물로 이제 창 07:11,12절에 놀라운 사실이 나타납니다.
창 07: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노아가 태어났을 때 므두셀라의 나이가 369세였으므로 노아가 600세 되던 해는 므두셀라가 969세로 일생을 마감하던 해입니다(25~27).
이름의 뜻대로 므두셀라가 죽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지는 노아의 홍수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므두셀라를 통한 심판의 예언을 마침내 이루셨으며, 또한 므두셀라가 장수한 이유를 홍수 심판에서 알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가 죽으면 심판이 시작됨으로 하나님은 그를 오래 살게 하시면서 그동안 죽어가는 생명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기다리셨습니다. 그만큼 오래 참으셨다는 뜻입니다.
벧후 03:0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되 동시에 죄인 된 우리가 악한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자복하는 순간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저는 에녹이 특별히 뛰어난 거룩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도 사람이었습니다. 허물도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아들의 출생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종말의 메시지를 깨달음으로 인해 세상의 소망을 내려놓았습니다.
신령한 생각을 품음으로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이해하였습니다. 결국은 부름을 받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종말의 심판을 내다보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성경 외에 자연의 세계를 통하여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롬 0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에녹은 시대의 흐름을 보거나 자연의 세계를 통하여서도 능히 종말을 깨달을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이 감지될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런 생활이 하나님과 굳건한 동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요일 01:0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2012년 9월 12일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모 아파트에서 A씨(여·48)가 안방 문고리에 운동화 끈으로 목을 매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A씨의 여동생은 언니가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자 잠긴 현관문을 열쇠 수리공을 불러 열고 들어갔다가 시신을 발견,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부산광역시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아온 A씨가 6개월 전부터 키워 오던 애완견이 죽은 것을 크게 비관하면서 우울증을 앓다 신병을 비관해 자살하였다고 합니다.
왜 이럽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살지를 않습니다. 개가 아무리 반려 동물이라 할지라도 영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사람도 다 때가 되면 죽는데 동물이라고 어디 안 죽습니까? 생명 있는 것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에 우리의 인생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생살이를 개와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을 하다 천국으로 옮겨진 에녹을 언급한 후에 히 11:0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히 11:06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녹은 아담 후 622년에 출생하여 987년까지 365년간 살았습니다. 아담과 308년 동안 같이 살았고 셋이나 에노스와는 평생 같이 살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계속해서 찾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에게는 은혜와 복이 따릅니다. 곧 종말의 결과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복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경건한 신앙의 후손을 주십니다(창 06:09). 때로는 세상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복을 하나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죽음을 뛰어넘는 복입니다. 에녹이 이런 경건한 자녀를 받은 복과 죽음을 겪지 않는 복을 받은 것은 복 중의 복입니다. 에녹은 그 시대의 사람과는 다른 분명한 믿음의 경계가 있었습니다.
'은혜의 강단 > 2013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버이주일] 예수님처럼 효도하면 됩니다(요 19:25~27). (0) | 2013.05.11 |
---|---|
[어린이주일]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십시오(창 27:01~30). (0) | 2013.05.04 |
하나님께서 너는 안 된다고 하실 때.(대상 17:16~27) (0) | 2013.04.20 |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읍시다.(히 04:14~16) (0) | 2013.04.13 |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야 삽니다.(히 04:12~13) (0) | 2013.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