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였을 때 헤럴드 러셀이라는 미국 공수부대원이 참전하였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는 불행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제 나는 아무 쓸모가 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무척이나 괴로워합니다. 그러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깨달음이 오기를, 그래도 잃은 것보다는 가진 것이 더 많지 않은가 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점차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합니다.
비록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의사로부터 의수를 장착하고는 글을 쓰기도 하고 타자를 치기도 하는 가운데서 하루 한 장씩 타자를 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 꾸준히 글을 쓴 결과 1946년 내 생애 최고의 해. 라는 시나리오 작품까지 내게 되었고 그 영화에서 전쟁 중 두 손을 잃고 귀향해 선원으로 일하는 제대군인 역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이 영화는 흥행을 하여 헤럴드 러셀은 많은 돈을 벌게 되자 자기와 같이 전쟁에 나갔다가 장애인이 된 사람을 돕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기자가 찾아와서 인터뷰하기를,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는 않았습니까? 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도 이와 같은 굳센 의지로서 어떤 상황을 만날지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앞세우기만 하면 답답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신 20절에 주목을 해 봅시다.
그러므로 저는 이 시간 말씀을 따라 산을 옮길만한 믿음.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모두가 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기 산(山)을 옮길만한 믿음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산이 과연 무엇입니까? 산을 문자 그대로만 이해하고, 믿음이 있다고 해서 산을 이리 저리 막 옮긴다면 이 세상에는 날마다 소동이 일어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있던 산이 내일 없어질 터이니 지도가 매일 매일 변해야하고, 그러면 등기 이전을 해놓아도 역시 아무 의미가 없을 것 아닙니까?
여기 질서를 유지하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산이라는 의미는 당시 유대인들의 격언적 배경에서 그 뜻을 찾아보아야만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주 곤란한 문제 해결하는 것을 산을 옮긴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즉 산은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커다란 문제나 난제(難題) 등을 함축하는 상징적인 표현인 셈이죠. 그러므로 산을 옮길만한 믿음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주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난제 같은 것들을 해결하는 그런 믿음을 말합니다.
교회사에 있어서 기독교를 무수히 핍박하던 로마제국은 기독교인에게 태산보다도 더 큰 장애물이었음에도 그러나 믿음으로 로마제국은 기독교화 되었으며, 이교도인 콘스탄틴 황제가 313년에 기독교를 승인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인데도 국교가 된 것은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도전하여도 쉽사리 정복하지 못하는 산과 같은 것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저는 산에 해당되는 것을 전도로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7월 1일까지 잘 정복되지 않는 산과 같은 영혼의 일일구 운동을 선언합니다.
이전과 같은 안일함과 나는 잘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작년에 장로, 권사, 집사로 선출을 받은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선출자 모두가 한 사람 이상씩 전도하지 못하면 임직식을 안 하겠다고요.
이제 무려 10개월이 지났으며 지금도 그 말은 유효합니다. 오늘부터 우리 교회가 전도의 모드로 전환합니다. 전도를 위하여 기도회, 각 기관 모임, 공적 예배, 목장 예배 등 전도를 주제로 움직여 주십시오. 협력이 안 되는 분들은 그대로 두십시오. 할 수 있는 분들과 함께 진행하여야지 같이 가려하다간 질식해 죽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 메시지를 받고 믿음으로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로버트 슐러(미국 1928,9,16) 목사는 절대가능의 신조를 가지고 일생을 산 사람으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이 앞에 가로막힌다 해도 나는 단념하지 않으리라. 나는 계속 도전하리라. 나는 산에 오르리라. 아니면 산 밑에 터널을 파고 통과하리라. 아니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그대로 산을 변화시켜 금광으로 만들리라.
여러분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자신의 장점을 꼼꼼히 따져보면 얼마든지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믿음을 현실화하지 못한 채 사장(死藏)해 놓고 있을 뿐이지요? 사용치 않고 그대로 묻어두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막 0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 어떻게 하는 것이 산을 옮길만한 믿음입니까? |
빌 0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①무엇보다 산을 옮기는 상상력을 가져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상상력을 가질 때 세 가지 이적이 우리 몸속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먼저 기회를 구하는 뇌의 활동이 머릿속에서 시작되고, 다음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뇌세포가 살아나고, 끝으로 결단을 촉구하는 화학 성분이 혈관 속에 주입됩니다. 비전을 가지면 뇌세포와 혈관이 달라진다는 뜻이지요. 이처럼 비전을 품으면 몸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고, 그래서 마침내는 환경도 변화시키게 됩니다.
②상상력만 가지고는 부족하고 그 상상력을 모험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요셉은 세계를 다스리는 꿈을 꾸었습니다(창 37:05~11). 그러나 그 꿈 때문에 형제들이 그를 노예로 팔았고, 애굽의 관리 보디발의 가정에서는 종의 처지였지만 그는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품고 있었기에 그 꿈이 현실화 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아이오와(Iowa) 주(州) 수 카운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프랑크 반다마틴이라는 소년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는데 18세 때 불행한 사고를 당하였습니다.아버지의 대장간에서 시뻘겋게 단 쇠가 손위에 떨어져 오른 손가락이 잘려 나가고 엄지손가락 하나만 남은 것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꿈이 완전히 무너진 셈 아닙니까? 오른 손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절망이에요.
그러나 그에게는 산을 옮길만한것과 같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손을 바꾸어 바이올린을 켜리라는 결심을 하고 모험을 해 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매우 어려웠지만 각고의 노력과 남들 보다 몇 배의 연습을 한 끝에 마침내 성공하여 수 카운티의 교향악단의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고 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이 바로 산을 옮기는 믿음과 같습니다. 산을 옮긴다는 말은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하고 절망적인 것을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비전과 함께 모험을 감행하는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만일 실천이 없는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죽은 믿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 김해삼일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잠재력이 많고 또 나름대로 수준급들 아닙니까? 또 제가 알기에는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지닌 분들도 많습니다. 다만 좀 부족한 게 있다면 꿈과 도전하는 모험심 그리고 열리지 않는 입입니다. 좋은 입술로 좋은 말을 하시되 교회를 오면서나 또 와서 예배 잘 드린 후에 부정적인 말은 일절 하지 마세요.
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교회를 오는데 아이가 장난을 치는 바람에 엄마가 화가 났습니다. 순간 엄마가 짜증을 내면서 지랄 좀 그만해 하며 실랑이를 하다 교회에 도착했는데 마침 목사님이 교회 마당에 나와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얘야 교회 오는데 몇 분 걸리니? 하고 물으시자 아이가 대답하기를 지랄하고 오면 20분이고 지랄안하고 오면 10분 걸려요.
성도 여러분은 개인의 생활에서 어떤 꿈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신앙의 모험과 실천이 있어야 열매를 딸 수 있으며, 이 꿈을 이루려면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았다는 절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기적이 나타는 믿음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갈 때 이루어짐을 아십시오. 여러분에게 혹 인생의 파도가 뛰놉니까? 바다야 잠잠하라고 선언하십시오. 문제가 닥칠 때는 산아 물러가라고 선언하십시오. 15,16절 말씀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자기들이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를 고치지 못한 것 때문에 믿음이 위축되어 있을 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겨자씨 한 알 정도의 믿음만 있으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3. 기도하고 전도하면서 영혼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는 절대 신앙이 산을 옮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공식은 기도한 후 받은 것이 눈에 보여야 만이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믿음과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기도하고 난 이후 아직 받지는 않았지만 받았다고 믿고 행동을 합니다.
히 11:0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의 미래의 약속은 현재에 이미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내 손에 없을 뿐이며, 또 알고 보면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여 믿음을 땅에 묻어 사장시키면서 서서히 형식주의자, 무능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갑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자신 앞에 가로 놓여 있는 산과 같은 문제들을 옮기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명령만 하십시오. 풀리는 현장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의심하는 자가 아니라 믿는 자가 됩시다. 보증수표에 해당하는 생명력이 있는 겨자씨 한 알 만큼만 같은 믿음만 있어도 능히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읍시다. 주님께서 이 겨자씨를 믿음에다 비교하신 것은 믿음이 지니는 생명력과 그 속에 감추어진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함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만 하나 입으로 기도를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더러 내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왜 내 기도를 안 들어 주느냐고 항변하는데 즉 입으로 구하기만 해 놓고 말입니다. 구하고 찾는 자리에까지 가십시오.
마 07:0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0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는 안 되는 것보다는 잘되는 역사가 많이 일어나고, 내 개인적인 것도 잘 되어야 하지만 나로 인해 우리교회가 더욱 잘 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낮은 산이든 난공불락의 산이든 산은 언제나 존재하며, 그것을 정복하는 일을 하다보면 적극적인 믿음과 부정적인 사고가 병존합니다.
그래서 힘이 좀 듭니다. 오늘의 말씀은 기적은 믿음과 함께 해야만 일어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기적이 우리에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자신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자부합니까?
그러면 내가 속한 일터나 직장, 어떤 현장도 전도의 터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부정적인 병이라는 내 속의 산을 믿음으로 옮겨 버리십시오. 혹 내가 부정적인 산이라는 그늘에 가려있다면 그 산을 속히 옮겨야만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서식하는 레밍이라는 일종의 들쥐가 있습니다. 매우 이상한 집단행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들쥐는 몇 년마다 급속도로 번식하여 대형 군락을 형성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몇 마리가 앞으로 달려가면 그걸 본 다른 쥐들이 저게 왜 뛰지? 하며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결국 뒤처지지 않으려고 따라서 뛰기 시작합니다.
이에 먼저 달려가던 놈들은 뒤에서 떼 지어 쫓아오는 놈들이 무서워서 더 빨리 도망가고, 쫓아가는 놈들은 낙오되지 않으려 또다시 힘을 다해 추격을 합니다. 이런 상태가 진행되면서 그야말로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는 레이스가 벌어지다가 바닷가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집단자살로 결말을 맺습니다. 말 그대로 죽음의 레이스인 셈이죠?
앞의 녀석을 따라 줄줄이 벼랑으로 몸을 내던지는 모습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합니다. 저는 이 레밍의 원리를 전도에 한번 비유해 보았습니다. 앞에서 전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저것 따져보지 말고 무조건 전도하는 일에 적극 뒤따라가는 성도가 되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앞뒤 돌아보지 않고 오직 전도만 위해서 달려가는 레밍효과가 우리 성도들에게 따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제부터 시작합시다. 7월 1일까지 복음의 전사로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막 0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 0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 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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