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2년 말씀

영혼의 일일구 운동(요 01:35~4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2. 4. 1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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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어느 신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학교에서는 채플 시간에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설교를 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또 여기에서 통과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덩치가 크고 말이 좀 어눌한 학생이 자기 설교 차례가 되자 담당 교수님을 찾아가서 자기는 설교하는 데는 자신이 없으니 청소와 허드렛일로 대신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로 거절 되자 이 학생은 할 수 없이 나름대로 준비를 해서 강단에 올랐습니다만 교수님들과 수백 명의 눈이 자기를 쳐다보는 바람에 그만 말문이 꽉 막히고 말았습니다. 막상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고, 준비했던 것도 다 잊어버리자 이 학생이 설교랍시고 입을 열어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 제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흔들면서 아니요, 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학생도 저도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강단을 내려왔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이 학생에게 다음날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 학생이 다음날 강단에 올라가서는 또 전날처럼 꼭 같은 질문을 합니다. 제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습니까? 학생들은 일부러 모두가 똑같이 예,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이 학생은 멋 적은 듯 여러분께서 다 아신다는 데 제가 더 이상 무슨 말씀이 필요하겠습니까? 라고 말하고는 강단을 내려왔습니다
.

화가 난 교수님은 단단히 으름장을 놓으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었고 학생들도 전략을 짜서 이번에는 절반이 예, 라고 답변하고 절반은 아니오, 라고 답변하기로 했습니다.과연 그 학생은 역시 꼭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
제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습니까? 작전대로 학생들은 예와 아니오 가 반반씩 답변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이 학생은 제가 보니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면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 강단을 내려왔습니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전하시오
. 라는 말은 일약 유명해져서 그 신학교의 표어로 선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분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해주면 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맞아 이제부터 남은 시간들을 복음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채무자의 심정으로 전도생활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 제목을 영혼의 일일구 운동이라고 정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략을 편다는 뜻입니다. 더욱 공격적인 전도운동을 펼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전도의 모델을 누구로 삼을 수 있습니까?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안드레 하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서열 4위 정도에 위치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형님은 그 유명한 베드로이고요? 안드레는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서도 전도에 대한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서 관계 전도를 잘하는 대표적 제자입니다. 이 안드레는 스승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메시아라고 평가를(35,36) 내리자 즉시 예수님의 진영에 들어온 인물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안드레는 내가 만난 주님에 대해서 믿을만한 분, 섬길만한 분, 내 인생을 투자해도 될 만 한 분,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아임을 영적인 감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자기의 형님 시몬을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오병이어를 가진 어린 아이를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06:0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0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2:22절에 보면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 사람 몇이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수님께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때도 안드레가 빌립과 더불어 이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12: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안드레가 예수님께 형님 시몬을 인도한 것을 가족 전도
, 또 헬라 사람들을 인도한 것은 불신자 전도, 오병이어를 가진 한 아이를 데려 온 것은 어린이 전도라고 적용하면 어떨까요? 이렇게 안드레는 고루고루 균형 있는 전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아도 전도의 은사를 가진 분들이 많이 있고, 또 그들의 간증집회도 대단하고, 그 결과들도 대단합니다.
그런 인물들처럼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멀리까지 가서 전도의 모델을 찾을 게 아니라 먼저 가까운 성경에서 모델을 찾으면 됩니다. 전도자 안드레를 만나면 됩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들의 전도의 모델을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오늘 말씀에서 찾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또 한 사람 관계 전도의 전문가 빌립도 있습니다(45,46).
빌립은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 예수님을 같이 믿자고 전도를 합니다. 진정한 친구라면 자신이 만난 가장 귀중한 분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파악하여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라고 소개하자 친구 나다나엘이 냉담한 반응을 보입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46) 빌립이 나사렛 예수님이라고 한 말에 대한 즉각 반론(05:02)입니다.

천민들이 사는 곳,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말하니 반론을 제기 안 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럼에도 빌립은 나다나엘의 다소 부정적인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이렇게 외칩니다. 46 .와서 보라 하니라. 이런 저런 소리하지 말고 와서 한번 보면 알 것 아니냐? 그런 뜻이죠.


 

 2. 나는 영혼의 일일구 운동을 우선순위로 삼습니까?

 


0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영혼의 일일구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됩니까? 우리가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먼저 어디에 연락을 하죠? 소방서 구급대인데 그때 번호가 119입니다. 일일이 구해 준다는 그런 뜻이 들어 있는 번호로서 이 번호를 전도에 적용하여 영혼의 일일구라고 하면 전도할 영혼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구원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 마을들이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갈릴리 상류 지역의 수천 명을 군락(郡落)으로 하는 약 200여개의 마을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신 말씀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연혼구원이 우선순위였다는 말입니다.

 

전도는 무엇보다도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아야 할 영혼을 위하여 진정으로 눈물로 기도하여 본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때가 언제이며, 지금도 그 열정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한 영혼을 전도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전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04: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우리가 영적으로 추수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면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불신자입니다. 이웃집에 살아도 불신자는 영적으로는 우리와 멀리 있는 사람이며, 한 집에 사는 가족이라도 영적으로 멀리 있는 사람이요 남남입니다. 불신 가족들이야말로 전도하기가 가장 어려운 대상자가 아닐까요?


둘째는, 믿다가 낙심한 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가 사랑의 눈을 돌려야 할 영적으로 가까운 사람입니다.


셋째는, 교회의 순례자(?) 입니다. 이사를 왔거나, 교회를 정하지 않고 이 교회 저 교회를 훑어보고 있는 사람들로서 아무래도 외형적인 조건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이 순례들은 하나님의 인도가 있어야 합니다.

불신자, 낙심자, 순례자 이 세 부류는 우리 교회의 영혼의 일일구 운동 대상자들로서 이들에게 다가가는 집념과 전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더 넓게 보면 교회생활을 하는 분들 가운데도 어쩌면 전도 대상자가 있습니다.

교회가 할 일은 이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자에게 하나님의 교회 가족으로서 정착을 시켜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일꾼으로 키워 가는 것이며 이런 일이 우리 각자의 목표이어야 합니다.

 

딤후 04:0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전도는 생각해 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무조건 하는 것이요, 특별히 하는 게 아니라 항상 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생활화가 오늘 우리가 갖추어야 할 삶의 방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영혼의 일일구 운동의 긴급성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전 0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 이로라.

 

사도 바울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요 존재 이유임을 밝히면서 자신이 이 일만은 특별히 부득불 할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부득불이란 마땅히 해야 할 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뜻으로서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억지로 라는 말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표현하는 말이 운명이라는 겁니다.

 

복음이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죄를 지었어도 용서받을 길이 있고, 죽어도 살 수 있고, 지옥 갈 자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 알려 주지 않으면 화를 당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아니하면 우리도 죽고, 교회도 죽고, 모든 영혼들이 다 죽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정체하며 퇴보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잃어버리고 영혼구원 하는 기쁨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있습니까? 나를 통해서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된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면서도 한 사람도 구원을 시키지 못했다면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영혼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실상은 병든 신자 아닐까요? 나를 통해서 구원의 열매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도도 하지 않고, 봉사도 하지 않고, 조그만 수고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편하게 교회생활 하겠다는 건데 이런 분들이 과연 지혜로운 성도입니까? 그저 그렇게 살다가 구원의 자리, 주님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아무런 상급도 받지 못하는 영원히 부끄러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성도는 반드시 전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기쁨과 소중함을 아는 사람, 은혜를 받은 성도는 이웃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반드시 전도를 합니다.
03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하여 살아가는 사람을 고친 이유로 공회원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을 온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했다는 이유로 공회에서 복음 금지령을 내리고 생명을 위협할 때 이들이 뭐라고 했을까요?

 

0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세상의 정치권력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격적인 영혼의 일일구 운동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11:38). 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최근 의학계가 발견한 호르몬 중에 다이도르핀(Didorphin)이라는 게 있습니다. 엔도르핀이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 다이도르핀의 효과는 엔도르핀의 4천배라는 사실이 발표 되었습니다.
그럼 이 다이도르핀은 언제 우리 몸에서 생성될까요? 바로 큰 감동을 받을 때입니다. 좋은 노래를 들었거나,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었을 때,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엄청난 사랑에 빠졌을 때 몸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던 호르몬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엔도르핀, 도파민, 세로토닌이라는 아주 유익한 호르몬들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굉장한 감동이 왔을 때 다이도르핀이 생성되고 이 호르몬들이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강력한 긍정적 작용을 일으켜 암까지도 깨뜨립니다. 대단한 효과이지요.

저는 이 다이도르핀이 우리 모두에게 생성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다이도르핀이 언제 생성되겠습니까? 바로 죽어가는 영혼을 교회로 데려 올 때 영적 감동이 오면서 우리 모두에게 막 생성될 겁니다. 이내 영육 간에 강건함이 오겠지요. 이 일에 성도 여러분들이 큰 역할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영혼의 일일구 운동은 한 번 와 보라고 하는 겁니다. 와서 해결하고 논해 보아야지 않겠습니까? , 일단 데리고 오십시오. 이것이 전도의 성공적 요소이고 다이도르핀이 무한히 생성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12:0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