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돕는 자의 위치에 서십시오.(대하 24:01~1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8. 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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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가방 메이커 쿠라레(クラレ)에서 초등학교(일본은 소학교)를 입학하는 학생들과 그 보호자를 대상으로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장래에 되고 싶은 직업, 종사하고 싶은 직업이라는 앙케트를 실시하였는데 일본의 아이들은 어떤 장래희망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일본 남자 어린이가 되고 싶은 직업. 1위 스포츠 선수, 1999년부터 매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13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2위 경찰관, 3위 운전사, 4위 소방관, 5위 요리사 등. 일본 여자 어린이가 되고 싶은 직업. 1위 제과점 운영, 2위 꽃집 주인, 3위 연예인, 4위 교사, 5위 간호사 순입니다.

한편 부모님이 자신의 남자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직업으로는, 1위 공무원, 2위 스포츠 선수, 3위 의사, 4위 회사원, 5위 엔지니어 순이며, 여자는 1위 간호사, 2위 약사, 3위 의사, 4위 공무원, 5위 교사 순이었습니다.

 

한국의 부모님이나 자녀들의 장래 희망은 거의 비슷한 것 같습니다. 1위 탤런트, 2위 법관, 3위 의사, 4위 스포츠 선수, 5위 가수 등입니다. 이 가운데 섬기는 일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의 장래 직업과 건강 까지도 예측해주는 업체들이 성업 중이라고 하는데 들어보셨습니까?
첨단 기술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상술입니다. 어떤 식이냐 하면 머리카락 하나로 유전자 검사를 해서 아이가 질병에 걸릴지 안 걸릴지를 판단하고 적성도 찾아 거기에 적절한 장래 직업을 가지게 한답니다. 그러나 현재 유전자검사 하나로 이런 일들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하니 참조하십시오.

 

신앙인이게 인생을 가치 있게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특별히 세상에서 소금과 빛 된 생활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05:13,14) 이는 서로가 돕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으로서 군림 보다는 섬김이요, 낮은 자의 위치에서 조용히 뒷받침을 잘 하여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남을 돕고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돕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 대단히 자랑스럽고 축복된 일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대제사장 여호야다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의 삶을 조명해 보면 돕는 역할을 잘 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잘 돕는 역할을 함으로 나라가 든든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보게 되었는데 여호야다가 돕는 역할을 어떻게 잘 하였는지 나는 돕는 역할을 어떻게 하는 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여호야다는 돕는 역할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01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칠 세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요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어떤 사람입니까? 유다 왕국의 악랄한 여왕(7) 아달랴의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입니다. 그 쿠데타가 성공하여 아달랴를 축출하고 일곱 살 된 어린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하여 8대 왕에 취임을 시켰습니다.
이 요아스 왕은 취임 전까지 할머니였던 악한 여왕 아달랴가 왕자들을 다 죽일 때 고모 되는 여호사브앗(여호세바)과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숨겨 주므로 간신히 6년간 성전에서 숨어 지내다 하나님의 은혜로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어린 요아스 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했으니(02) 여호야다가 요아스 왕을 돕는 역할을 얼마나 잘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아스 왕이 취임할 당시 유다 왕국은 온 나라가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서 국운이 기우는 시점이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때 요아스가 왕위에 올랐으니 정국은 더욱 불안정하고 혼돈은 거듭되었지 않았겠습니까?
일곱 살이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인데 이런 아이가 왕위에 올랐다는 자체가 모순이겠지만 당시 세습적인 정황이 그러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실상은 왕이 통치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러나 뒤에서 모든 일을 사심 없이 뒷받침 하는 여호야다가 있었기에 나라가 서서히 안정을 찾아 갔습니다. 뒤에서 돕는 역할로서의 여호야다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왕이 정치를 잘하게 되고 망해가다시피 하는 유다 왕국을 일으켰다는 말입니다.

훌륭한 사람이 누굽니까? 자신이 나타나기보다 이렇게 뒤에서 남을 도와 큰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우미의 역할에 있는 자입니다. 직접 앞서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것이에요. 철저하게 자기는 감추어 희생하고 남을 앞세워 주는 이런 사람을 교회도 사회도 필요로 하는 것 아닙니까?

 

02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지금 요아스 왕이 일곱 살이라 했으니 모든 국사에 관한 일은 여호야다가 다 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가 뒤에서 충실하게 돌보아 준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요아스는 이름만 왕이지 실제로는 여호야다가 왕이나 다름없지만 그러나 여호야다가 얼마나 왕을 잘 돌보았는지 그 어린 왕이 통치를 잘 했고 나라도 잘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지도자는 나이가 많든 적든, 능력이 있든 없든 뒤에서 잘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제법 유능하다 똑똑하다 해도 도우미가 잘 뒷받침해 주지 못하면 이내 무능한 사람이 되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런 지도자들을 많이 보는데 우리나라 초대 이승만 대통령 같은 분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나름대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려고 했지만 그 주변에 있던 인물들(이기붕, 곽영주)이 잘 도와주지 못해서 나라가 혼란케 되었고 독재자의 오명(汚名)으로 권좌에서 물러났습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도 지금까지 소위 말하는 회전문 인사를 함으로 인해 정국(政局)이 제법 불안정합니다. 대통령의 인격이 훌륭하고 녹색 비전을 펼친다 해도 돕는 자가 허약하면 뭐합니까?

측근들이 도와주지 않고 비리에 연루된다면 지도자 혼자서 아무리 날고뛰어도 잘 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 이상 발전은 정체 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뒤에서 말없이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2. 교회도 여호야다처럼 돕는 자가 필요합니다.


04 그 후에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보수할 뜻을 두고 05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모든 이스라엘에게 해마다 너희의 하나님의 전을 수리할 돈을 거두되 그 일을 빨리 하라 하였으나 레위 사람이 빨리 하지 아니 한지라.

 

04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보수할 뜻을 두고. 이 말은 요아스 왕이 집권 초기에 무엇보다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는 마음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구석구석 돌아보니 예루살렘 성전이 아달랴 여왕의 악정 하에서 많이 파괴되었고 성전의 모든 성물들도 바알에게 드려졌기 때문입니다(07).

그리하여 요아스 왕이 유다 여러 성읍에서 직접 성전 수리비를 거두어 보수를 명령했으나 일을 맡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왕의 재위 23년까지 지연하고 있었습니다.

 

06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레위 사람들을 시켜서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중이 성막을 위하여 정한 세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거두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마침내 요아스 왕은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질책을 합니다
. 어찌하여 ~하지 아니하였느냐? 제사장과 레위인 모두의 책임을 지적하는 아주 지엄한 책망입니다.
본문은 여호야다가 목숨을 걸고 쿠데타를 일으켰고 개혁을 추진하였으면서도 성전 보수 공사의 일에 힘을 다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드디어 제사장 여호야다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는데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0 모든 방백들과 백성들이 기뻐하여 마치기까지 돈을 가져다가 궤에 던지니라.

 

제사장 여호야다는 왕의 명을 받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 보수 헌금에 적극적 동참을 추진하였는데 모금한 헌금이 목적한 일에 쓰고도 남았더라고 했습니다(14). 여호야다는 왕의 뜻을 받들어 돕는 자로서의 큰일을 이루어 낸 것이지요.

교회에는 교회전체나 각 기관이나 부서에 있어서 리더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돕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부흥이 좌우됩니다. 또한 교회에는 많은 기관들이 있는데 알고 보면 그 기관장 혼자서 일을 다 해 낼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돕는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돕는 사람이 많으면 그 기관이 활발하게 사업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반면 돕는 역할을 제대로 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기관은 계속 시들기만 하여 연초의 계획들이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속한 기관들이 왜 활기가 없습니까? 왜 어려움에 처합니까? 그것은 돕는 자 역할을 하여야 할 분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뒤에서 소리 없이 돕기만 하는 것 이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에요. 성도 여러분 돕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아십니까? 성령님의 은사에 속하는 일입니다.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여기 보면 돕는 직분을 말하고 있는데 교회와 연결시켜 돕는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에서는 돕는 사람이 훌륭한 직분자지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잘 돕는 자의 위치입니까? 아니면 상대방을 걸고넘어지는 태클자의 위치입니까?

돕는 역할을 잘 감당하여 장차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칭찬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십시오.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 왕을 영적으로 잘 도와 준 일은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리더를 신앙적으로 잘 도울 수 있다면 정말 보배와 같은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때로는 앞서서 일하는 분들 가운데 혹 신앙이 미약하고 일이 서툴러 보기에도 안타까운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비록 그런 분이 있다 하더라도 비판하지 말고 여호야다와 같은 마음으로 신앙의 지원을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여기에서 부딪치고 넘어져요. 목회자 때문에, 장로, 권사, 집사 때문에, 회장 때문에, 목장 때문에 일하기가 힘들다고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지도력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내 할 일을 생각해 보시란 말입니다.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하기 위해 기도했습니까? 좋은 말을 해 주었습니까? 주변 정리를 좀 잘 해 주었습니까? 불평 메이커가 되지 마세요. 복이 왔다가도 떠납니다.

 


 3. 돕는 자가 없으면 무너집니다.


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세월이 흘러 요아스 왕의 일등 공신이며 정치와 영적인 면에서 후견인이었던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윗 성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었습니다(16). 여호야다는 왕이 아닌 제사장임에도 이스라엘의 역사에 유일하게 열왕의 묘실에 안치된 것은 아마 그가 요아스의 목숨을 구하여 다윗 왕권을 잇게 하고, 성전을 정결케 하며, 여호와 숭배를 회복하였기 때문에 주어진 특별한 영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상주의 간신배들이 들고 일어나 요아스 왕을 우상의 길로 미혹 합니다. 그만 왕은 하나님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국가적으로 큰 위기를 만납니다(18).

아세라(Asherah) 목상. 율법에서는 숭배가 금지되어 있는 우상으로서(16:21) 파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07:05, 12:03). 이 아세라상은 대개 나무로 만든 고대 근동의 여러 족속 중 특히 아모리족과 가나안족이 숭배하였던 우상입니다.

 

19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 하니라.

 

요아스 왕은 최고의 충신이었던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선지자를 성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이도록 하였는데(21) 이것은 요아스 왕이 패망하는 결정적인 허물입니다. 마침내 스가랴 선지자를 요아스 왕이 죽였다는 소리를 듣고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 분노를 하면서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못된 왕이 있는가? 요아스는 이제 우리의 왕이 아니다. 이런 왕은 죽어야 마땅하다. 하면서 기회를 엿보다 왕이 마침 전쟁에서 패전한 후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쳐 죽이고 맙니다.

이렇게 하여 유다의 8대 왕 요아스가 출발은 좋았지만 그 인생을 믿음으로 마무리 하지 못하여 불행한 왕으로서 막을 내립니다. 여호야다와 같은 돕는 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는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주위에 나를 영으로 육으로 돕는 자가 있다면 이 얼마나 축복된 일입니까? 반면 돕는 역할을 해 줄 자가 없다면 이 얼마나 불행이겠습니까? 여호야다가 요아스 왕을 잘 도와 줄 때는 국운이 왕성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자 요아스 왕이 타락을 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에 그를 돕는 자들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만 안타깝게도 충신의 소리를 멀리하고 악한 방백들을 가까이 하게 됨으로 결국은 패망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돕는 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한 여호야다를 눈여겨볼 것은 그가 대제사장으로서 요아스 왕을 신앙으로 잘 도와 준 부분입니다. 02절에 보면 요아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했지요.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여호와의 전을 중수하였고 또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 여호와의 전에서 항상 번제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남을 신앙적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돕는 데서 인생의 가치를 찾아야 하며, 나의 도움을 통해서 상대방이 잘되고 성공한다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돕는 것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도움의 결과를 보면 대단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회는 남을 돕는 사람들이 많으며, 아름다운 교회는 뒤에서 돕는 사람들이 많으며, 지금은 참으로 이웃을 위해서 희생하고 돕는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섬기는 자의 위치, 돕는 자의 위치에 서서 믿음의 길을 달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