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삽니다.(렘 42:01~1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6. 25.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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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통일이 되기 전의 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성도가 성경을 읽다가 주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는데,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는(17:20) 말씀입니다.

그는 이 말씀에 의지하여 베를린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의 장벽 앞에서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장벽아 무너져라. 하지만 끄덕도 하지 않자 그는 잠시 낙심을 했는데 이내 깨달음이 왔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네가 가 아닌 너희가 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믿음의 동료들을 모아서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장벽 앞에서 함성을 질러 보았으나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을 묵상했는데 그 말씀 속에 들어가 보니 당장 옮겨질 것이요 가 아니라 미래형의 옮겨질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그는 깨닫기를 때와 기한은 주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면서 마침내 198911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공산주의 동독과 자본주의 서독이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행동을 옮기는 믿음의 사람은 언제든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06절에 순종(順從)이란 말이 나옵니다.
한문으로 보면, 순할 에 좇을 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따르겠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교체하기 전 개역판 성경을 사용 할 때는 이 순종을 청종이라는 말로 읽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 따르겠다는 그런 의미죠. 그렇게 기억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생활이어야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성도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 하여 은혜 받는 시간되기를 축복합니다.

 


 1.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이 올 줄 믿고 있습니다.


0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본문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북 왕국 이스라엘은 B. C 721년경 앗수르에게 멸망하였고 남 왕국 유다는 B. C 586년경 바벨론에 함락을 당하였습니다.

이때 남쪽 유다의 최후의 왕은 시드기야(צִדְקִיָּהוּ 20)로서 이 왕은 참모들의 만류에도 애굽과 동맹을 맺고 당시 강성하던 바벨론 제국에 반기를 들다가 느부갓네살 2세의 예루살렘 침공을 맞아 싸우던 끝에 패배하였습니다. 그 결과 두 아들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처형을 당하고 자신도 두 눈을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맞습니다(왕하 25:01~07).

 

그 후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를 통치하기 위하여 그다랴라고 하는 사람을 총독으로 세워 나라를 다스려 나갔습니다(왕하 25:22).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흩어져 도망을 쳤던 유다의 장군들 중에 애국심에 불타는 이스마엘이 총독 그다랴를 암살하여 시체를 구덩이에 매장하였습니다(41).

이런 일로 인해 백성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보복이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위기 가운데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뜻을 알아봐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대단히 긴박한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좋든 안 좋든 간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굳게굳게 약속을 합니다.

비록 그 말씀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옛날처럼 은혜를 회복하시고, 성전의 회복을 허락하시고, 국가의 회복을 허락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비록 위급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남은 자들이 이런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이 각오에서부터 위기는 물러가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급하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대부분 원망하기 쉽고, 반항하기 쉽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면 전화위복의 길이 열릴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모든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먼저 영혼의 병을 고치고, 타락한 인생들이 치유함을 얻고, 인생을 포기했던 사람들이 회복의 길로 돌아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신기한 능력을 가져옵니다. 말씀은 불안과 공포를 이기는 능력이 있고, 절망과 고통을 이기는 능력이 있고, 사탄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불화와 부조리를 해소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듣기만  말고 실천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불구의 믿음, 불량품의 믿음으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01:0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2. 하나님의 말씀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합니다.


10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이 서약(06)을 듣고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하는데 무려 십 일 간의 긴 시간이 지나면서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여기서 우선 십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07)는 말씀을 보면서 그때의 유다의 남은 자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예레미야는 찾아온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응답을 기다리면서 기도를 하는데 긴장 속에 무려 십 일이 지나는 중입니다. 당시 유다 사람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기가 세운 총독 그다랴와 주둔시켰던 군인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언제 응징을 하러 올지 모르는 초조한 가운데서의 십 일은 얼마나 긴 시간이요 마음 졸이는 순간입니까?
아마도 백성들은 매일매일 예레미야에게 와서 물었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까? 없다면 그럼 내일 올까요? 내일은 꼭 응답이 있겠지요.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 전에 일절 자기의 주관으로 말하지를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려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 전에는 움직이지 말고 잠잠히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서두르다 망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지요? 사울 왕입니다. 삼상 13장을 보면 블레셋과 싸울 때 사무엘 선지자가 제 시간에 오지 않는다고 기다리지 않고 제사를 드릴 자격이 없는 사울 왕이 번제를 드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해서는 안 될 번제를 사울 왕이 드리고 난 후 마침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는 사울 왕을 크게 꾸짖고 사울의 왕권이 길지 못할 것을 선포합니다(13).

 

이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그 뜻을 전합니다. 그것은 신앙의 센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그대로 계속 남아 있으라는 겁니다. 백성들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과는 정 반대의 말씀을 전한 거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면 인간적인 내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원하는 뜻으로 과감하게 자리 이동을 하여야 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보복이 두려워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보존하려 애굽으로 도망치려 했던 생각부터 먼저 바꾸어야만 살 길이 열립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부패의 길이 보이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결국 그 심령은 메말라 죽어 갈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하기만 하면 살 길이 열리는데 11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처리해 주시겠다고 하시니 얼마나 힘이 되는 말씀입니까? 응답은 아주 간단하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좋든 안 좋든 그대로 따를 것이라 했으니 그 자리를 지키면서 기도하고 있기만 하면 사는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복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만 않으면 사는 길이 열릴 것이요, 축복의 길도 열릴 것이라는 이 응답을 믿음으로 받으면 유다 왕국은 이제부터 회복되는 것입니다.

 

03: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3. 하나님의 말씀은 애굽 행을 고집하면 죽음이라고 경고합니다.


16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친 애굽파인 요하난을 비롯한 다수의 장수들은 애굽으로 가려는 계획이 하나님께 용납되고 승인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내심 자기들이 원하는 쪽으로 오지 않자 06절과는 달리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예레미야가 자기들을 미혹하여 예루살렘에 머물게 하고 결국은 바벨론에 의해 자기들이 죽임을 당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맙니다.

 

43:02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 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03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죽이며 바벨론으로 붙잡아가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는 몇몇 장수들이 주동하며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는데 그러나 이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되는 파멸의 길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길, 금지된 길을 그래도 계속 고집하여 간다면 그 답을 당연히 패망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 그대로 죽음의 길이지요. 결국은 애굽도 바벨론의 침략으로 무참히 무릎을 꿇게 되고 그리고 도망했던 유다의 무리들도 처참한 죽임을 당합니다(44:12).
그러면 하나님께서 살려고 발버둥 치는 유다 백성들에게 왜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겁니까?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는 땅 애굽이 그들의 눈에는 항상 좋게 보였습니다. 14절 말씀처럼 유다 사람들의 눈에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식물의 핍절도 당치 아니하는 땅으로 보였습니다.
나름대로 애굽으로 가려했던 것이 이해는 됩니다. 전쟁의 나팔 소리나 식량 부족 등이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여겨진다면 당연히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맞습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의 눈에도 애굽은 좋은 땅으로 보여 졌던 때가 있었음을 아시지요? 가나안에 흉년이 들자 식구들을 다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었으나 그 결과는 애굽에서 아내를 잃어버릴 번한 큰 봉변을 당합니다(12:10~20).

26:02~06절에는 이삭도 흉년을 만났을 때 애굽으로 가고자하는 유혹을 받은 적이 있었으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애굽 행을 포기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애굽은 영적인 면에서 불신적인 세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말씀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31:0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성경에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말씀은 세상을 의지하지 말라는 영적 의미로서 이 명령을 이탈하면 곧 패망의 길을 만납니다
. 애굽 행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악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타락이 길이요, 유다의 남은 백성들이 이곳으로 가면 결국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막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당시 유다 백성들만 이와 같은 불신의 기도를 가졌겠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식의 기도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겠다고 해 놓고 나중에는 내가 정해 놓은 코스를 따라 하나님께서 나의 맞춤 기도에 응답이 안 오면 달리 행동하는 경우 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서 그 뜻에 큰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임을 아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는 가능하면 좀 돈을 많이 주고서라도 앞좌석 티켓을 구입하여 앉으려 합니다. 대신 뒷 좌석 앉는 사람은 거의 싼 티켓을 가진 사람입니다. 교회에서도 뒷자리에만 앉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은혜의 경험을 아직 못한 사람이나 시험 중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신앙의 비용을 투자하십시오. 억지로라도 앞자리에 앉는 훈련을 거듭해 보십시오. 자신도 모르게 예배드리는 자세가 달라 졌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립니까? 앞자리로 나오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분들에게 은혜와 응답을 많이 주시는 것을 목회의 현장에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내 기대와 다르게 나왔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해서는 아니 되는 것은 하나님의 미련함이 우리의 지혜보다 훨씬 낫다고 하였습니다(고전 01:25).

 

말씀이 내 삶의 지침이 되지 못하고, 말씀보다 내 생각과 내 마음의 계획대로 행하는 길에는 시행착오가 많이 일어납니다. 왜냐고요? 말씀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내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길이야 말로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사업이 살고, 소속한 기관이 살고, 교회가 사는 비결임을 아시고 다 함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