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를링크(벨기에)의 대본 6막 12경의 파랑새라는 동화극이 있습니다. 1908년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로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상영되어 성공한 작품입니다.
이 극에 의하면 가난한 나무꾼의 아이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남매는 마법사 할멈으로부터 병든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개, 고양이 등을 데리고 추억의 나라와 미래의 나라 등을 방문합니다. 그러나 끝내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오면서 현실의 꿈을 깨고 보니 자기가 기르는 비둘기가 파랗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파랑새는 행복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외형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세계 즉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음을 나타내는 동화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의 이상이요 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꿈꾸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찾으려고 무던히도 힘쓰고 노력합니다. 그러면 김삼일 가족에게 지금 행복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 라고 답할 분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도무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여건들이 이스라엘 앞에 가로 놓여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세가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선포한다면 좀 성급한 말 아닙니까?
그런데도 모세가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면 정말 행복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나에게 비교하여 고백하면 어떻겠습니까? 이일기,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예, 저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모세가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는지 그 이유와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로 정했습니다.
1.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도다.
여수룬(יְשֻׁרוּן)은 계약과 의의 합성어로서 의로운 백성 혹은 정직한 자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별칭입니다. 여수룬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선택되고 의로운 자를 상징합니다.
이 단어가 구약성경에 네 번 나옵니다(신 32:15, 33:05, 26, 사 44:02). 하나님께서 그들이 숫자가 많고 강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기 때문에 의로운 자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실제 모세가 거느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보십시오. 얼마나 반역함이 크고 목이 곧은 민족입니까?
신 31:27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이스라엘은 마음이 삐뚤어져 사십 년을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모세는 자기의 임종을 앞두고 그런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느 날 목이 곧은 백성이 갑자기 의로운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로 인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관점으로 보아야 알 수 있는 행복을 모세가 말할 때는 육신의 환경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라는 선언을 할 때 이스라엘이 아직 행복의 터전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넘실대는 요단강이 눈앞에 있습니다.
요단강을 반드시 건너야만 하는 난관에 부닥쳐 있습니다. 또 가나안에 들어갈지라도 원주민들과 힘든 전쟁을 치러야 하는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선언을 하는 것은 앞으로 행복할 줄 믿기 때문입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각자 한 번씩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십니까? 또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고 선언하십시오.모두가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왜 많은 사람이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답을 못합니까? 행복의 조건을 외부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행복론의 저자, 칼 힐티가(1833~1909) 이런 말을 했습니다. 추위를 막기 위해서는 한 벌의 외투면 족합니다. 만약 이 경계선을 넘어 의복의 색깔이나 모양에 관심을 쏟으면 색다른 열 벌의 외투도 부족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시지요? 물욕을 내려놓으면 행복이 보이나 물욕을 너무 크게 등에 지고 있으면 그 과잉 욕망이 행복을 파멸시키고 말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행복의 조건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마십시오. 비교도 하지 말고요. 행복의 조건을 물질에 결부시키면 물질이 없는 사람은 행복의 자리에 들어 올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을 찾고,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도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의 택하신 백성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세와 영광을 표현할 때 하늘을 타고 온다, 구름을 타고 온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입니다. 감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우시겠다는데 누가 대적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27절에 나옵니다.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 도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의 권능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도, 홍해를 가른 것도, 반석에서 생수가 한없이 터져 나온 것도 다 능하신 하나님의 팔 때문임을 체험해 보았습니다.
이런 체험을 40년이나 한 후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축복하기를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모세는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40년이나 인도하면서 사람의 힘이나 도움은 연약하고 유한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은 팔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연약함이 르비딤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출 17:08~16)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은 세상을 떠날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시는 능력의 팔은 이스라엘 위에 영원하실 것을 알고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내가 의지할 데가 없고, 나를 도울 자가 없어도 오직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나에게 있음을 믿고 살기를 바랍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앞에 많은 대적이 있었듯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앞에도 수많은 대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고난과 질병, 실패와 좌절 이런 대적부터 말할 표현할 수 없는 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겁내지 맙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하신 팔이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이 나온다면 복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과 물질 주심이 일상생활에서 피부로 느껴집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행복한 조건을 부(富)로 꼽습니다. 그 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부에는 절대적 부가 있고 상대적 부가 있습니다. 사람이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재산이 필요합니다. 재산에도 세 가지가 있는데 ①당연히 필요한 재산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일용할 양식입니다.
②여유가 있는 재산입니다. 이건 남에게 주고 싶을 때 주고, 남을 위해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습니다. ③불필요한 재산입니다. 꼭 없어도 되는 것으로서 이런 것 때문에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건강도 가정도 명예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백해무익이 될 때 있습니다.
인격이 감당하지 못하는 재산, 자기관리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재산은 자칫 불행한 재산에 속할 수 있습니다. 물질이란 내 인격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내 가치관이 그것을 충분히 주장할 수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겁니다. 물질에 인생을 걸지 마십시오.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붙잡고 일생을 허비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자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3. 하나님의 베푸시는 구원이 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이스라엘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이유는 바로 구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베푸신 인자와 긍휼과 섭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구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역시 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구원 문제는 우리 삶의 의미와 목표를 바꾸어 버립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마지막은 영생과 영벌의 세계로 나누어집니다. 구원 문제는 세상의 삶에 절대 영향을 미치는 대단히 크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원의 문제를 해결했으면 세상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안목이 열립니다. 산적해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도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찬양해야 할 제목입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 하나님 앞에 어떻게 감사하십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어떤 문제를 안고 있습니까? 물질의 문제입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는 많은 돈을 벌지 못할지라도 소유한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과 작은 재물로도 기뻐하는 삶을 즐길 수 있는 나름의 지혜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옮겨지는 놀라운 복을 안내합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구원받은 일에 대하여 감격해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행복에 젖어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진정 행복한 성도입니다.
신앙의 위기가 어디에서 옵니까? 구원받은 감격을 잃어버릴 때부터입니다. 부부간의 위기가 언제 옵니까? 사랑이 식을 때부터입니다. 교회에 시험이 왜 옵니까?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인간의 생각을 앞세워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바로왕 공주의 양아들로서 당시의 애굽의 권력 구도에서 양어머니와 마음만 맞추면 바로의 위치에도 오를 수 있습니다. 처신을 잘하면 왕권을 잡을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감격이 가슴에 사무침으로 공주의 아들이란 칭호를 내려놓았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하는 고난의 길을 택합니다(히 11:24~26).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은혜를 이스라엘이 잘 알기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자로다. 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직도 구원의 감동이 없는 삶을 삽니까? 그러면 아직 진정한 행복을 갖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행복의 자리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있습니다. 더러는 종교에 대해 말하기를, 아무 신앙이나 한 가지만 가지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느냐? 라고 말합니다.
행 0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예부터 길을 가다가 곰을 만나면 죽은 척을 하면 곰이 그냥 지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곰을 만났습니다. 이 말이 생각나자 길바닥에 누워 죽은 척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곰은 아주 착한 곰이었는데 사람이 쓰러져 죽은 것을 보고 양지바른 곳에 고이고이 묻어 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웃고 나니 행복하십니까? 웃음은 이미 행복의 항구로 힘차게 출발하였다는 증거입니다. 행복을 맛보며 살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전혀 행복할 것 같지 않은데 행복의 비명을 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도 불행의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세상 조건과 상관없이 행복합니다. 일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하고, 고독하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건강하면 일할 수 있다고 좋아하고, 병들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다고 좋아합니다.
하는 일이 순탄하면 만사를 형통하게 해주심에 감사하고, 역경에 처하면 자신을 단련시키고 다듬어 주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행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기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성도를 상징하는 용어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행복은 외형의 조건, 환경의 요인 물질에서, 명예에서, 권력에서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과 구원자의 능하신 팔이 나와 함께하심을 느낄 때 진정한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행복한 자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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