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0년 말씀

주님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요 21:01~1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0. 10. 3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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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만남과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더욱 많은 만남을 가지는데 우리의 삶에서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생은 세상을 사는 동안 삶의 성공적인 요소를 말할 때 흔히들 ①때를 잘 타고나야 하며 ②환경이 좋아야 하며 ③사람을 잘 만나야 된다고 합니다.

 

애굽 왕 바로는 요셉을 잘 만남으로 국난을 극복했고, 목동 출신 다윗은 친구를 잘 만남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은 하녀를 잘 만남으로 나병을 고쳤고, 에스더는 남편(왕)을 잘 만남으로 동족을 구원하였습니다. 또 사람을 만난다고 다 기쁘고 축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실패가 따르고 불행해지는 경우도 있기에 만남에는 신중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예배당은 출입하면서도 외식에 물들어 신앙의 본질이신 예수님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경우도 더러는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혹 기쁨이 없이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혀 고달픈 생활을 하는 분이 있다면 이 시간 내 삶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행복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일곱 제자들이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0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공생애 사역 3년 동안 훈련을 시키면서 천국 운동을 전개해 나가셨고 이에 제자들도 열성으로 주님을 따랐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주님의 뜻과는 달리 어떤 신비한 이적과 권능을 주님께서 행사하여 로마 식민지로부터 고통 받는 유대 나라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지긋지긋한 세금을 내지 않음으로 나라가 경제적으로 안정이 될 것이고, 제자들도 제각기 일등 공신이 되어 한 자리씩 잡게 될 것입니다.

그런 미래의 기대감을 품고 일터와 가족들을 과감히 떨치고 따라 나섰던 제자들인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주님은, ①내 나라는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②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③나는 곧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인데 그때는 너희가 다 나를 버리고 떠나가리라(마 26:31). 고 말씀하는 겁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선생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선생님의 놀라운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우리가 선생님을 끝까지 지켜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26~35).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자 일곱 제자들은 허탈감에 빠져 실망만 안고 제각기 갈릴리의 옛 생활로 되돌아가 버렸습니다. 이제 독립운동도 허사야, 모든 것이 실패야, 우리는 우리의 분수대로 살아야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나 잡는 게 더 어울리는 거야, 공연히 헛된 꿈만 꾸었어, 하면서 3년간이나 내어버렸던 낡은 배와 그물을 정리해 가지고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과거의 경험과 실력을 되살려 그날 밤이 지나도록 깊은 데도 다니고 얕은 데도 다니면서 그물을 내려 보았지만 수고의 열매가 전혀 없었습니다. 완전히 실패한 셈이죠. 그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이렇게 물으십니다.

 

0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지금 갈릴리 바다에 와 있는 일곱 제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신앙의 훈련을 받았던 자들입니다. 한 때는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고 복음전파에 앞장을 섰던 자들이기도 하고요. 이에 주님의 물음에 이렇게 답을 합니다.
없나이다. 한 때는 이곳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에 대해선 나름대로 좀 하던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여지없는 실패를 하였습니다. 이런 실패의 모습에서 사람의 방법을 따라 살면 잘 될 것 같으나 잘되지 않는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 05절을 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2. 일곱 제자들이 왜 실패의 현장을 만났습니까?


0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왜 실패의 현장을 만났다고요?
베드로가 주동이 되어 이미 버린 것, 되찾아서는 안 될 불신앙의 일, 주님을 만나기 전의 옛 생활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본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대부분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었으나 주님은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막 0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주님은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3년 동안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다음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이미 몇 차례 예고해 주셨습니다(막 08:31). 이후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주님과의 몇 차례의 만남이 있은 후 제자들은 갈릴리로 옮겨왔습니다. 진작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 28:10 이에 예수께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제자들은 갈릴리로
온 이후 일 순간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 무너졌다고 표현할까요?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놓고 디자인 하여야 할 이들이 옛 생활이 그리워서 그만 3년 전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0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이미 3년 전 떠났던 그곳으로
되돌아갔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시몬 베드로입니다. 그는 경륜이나 연배에 있어서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점에 있어서 수장이었지 않습니까?
바로 그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하니 다른 제자들이 여섯이나 따라 나섭니다.

지난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때 만일 그가 믿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지금 주님의 부활을 전하러 간다 하면서 나섰더라면 어찌되었을 것 같습니까? 다른 제자들도 함께 따라 나섰겠지요. 그런데 그가 앞장서서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 하는 소리에 다른 제자들도 바다로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미래
지향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종교이지 옛 생활로 돌아가는 종교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주동이 된 실패는 옛 생활로 회귀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그리워할 필요도 없는 것은 오늘이 중요하고, 내일이 더 가치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

 

골 0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02,03절을 보면 그날 함께 배를 타고 나선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는데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야고보, 요한, 그리고 다른 제자 둘(안드레, 빌립) 등 일곱 명입니다. 베드로의 말 한 마디에 여섯 명이 줄에 묶인 것처럼 한 통속이 되어 따라 나섰다면 당시 그들의 정신 상태가 어떠했는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누구와 함께하느냐? 누구와 작당하느냐? 누구와 친하게 지내느냐? 누구와 자주 만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과 신앙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킹슬리(Kingsley 1819~1875.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대학의 근대사 교수)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토록 아름다운 인생을 살면서 명문 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의 대답은, 나에게는 진정한 한 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한 한 친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3. 일곱 제자들이 주님을 다시 만남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0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디베랴 호수. 남북 20.8km,12.8km, 수심 60m, 해발 200m로서 디베랴라고 불린 이유는 헤롯 안티파스 왕이 로마 황제 디베료를 기념하기 위해 서편에 그의 이름을 딴 도시를 건설 한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다른 명칭으로는 갈릴리 바다(마 04:18), 긴네렛 못(민 34:11), 게네사렛 호수(눅 05:01) 라고도 합니다. 주님은 옛 생활로 돌아간 제자들, 고기잡이에 실패한 갈릴리의 현장 바로 이곳에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을 다시금 세계선교의 비전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겁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주님을 다시 만나는 갈릴리 해변의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만나면 해결이 됩니다.
아직까지 성령님의 체험이 없고, 가슴에 뜨거움이 없고, 구원의 확신이 없고, 미온적 상태에 있는 자신의 모습은 아닙니까?
믿음의 성장과 성숙이 없고, 주님의 일에 뜨거운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일곱 제자들처럼 주님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믿음생활을 함에 있어서 어떤 이들은 골방에서, 제단에서, 산상에서, 깊이 기도하다가 주님을 만나기도 했는데 우리에게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야곱은 얍복강변에서(창32장), 모세는 호렙산에서(출 03장), 기드온은 타작마당에서(삿 06), 바울은 다메섹 대로에서(행 09장), 요한은 밧모섬에서(계 01장), 삭개오는 돌무화과나무에서(눅 19장) 각기 전능자를 만났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때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옛 생활의 모습이 새로운 믿음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주님의 나라에 믿음으로 잘 쓰임을 받습니다. 축복과 은혜가 회복됩니다.

 

0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03절을 보면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으나 실패하였다는 말입니다.이제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새벽녘에 주님께서 일곱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였더니 물고기가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어질 만큼 되었다고 했습니다. 상품이 될 만한 물고기가 153마리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않고 주목해야 될 말씀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신 전능자입니다.

그 주님을 일곱 제자들이 만나니 믿음과 물질이 동시에 풀렸습니다. 이 시간 나도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문제, 물질의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우리 좀 흔들리지 맙시다. 일곱 제자들이 한결같이 주님을 다시 만나기 전에는 비겁자요, 배반자며, 회의론자들이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 믿음의 센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과 세계 선교를 디자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온 성도들이 합심 기도하는 가운데서 오순절날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능력의 충만함을 입음으로 인하여 세계 선교를 품고 출발하였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혹 우리 중에도 일곱 제자들과
같은 실패의 처지에 놓인 분들이 계십니까? 그리하여 괴로워하며 고통 합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 실상은 주님을 잊어버린 채 실패의 자리에서 헤매는 분들이 있다면 더욱 주님과의 다시 만남의 현장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을 내가 다시 만나게 될 때 근심과 걱정과 회의가 사라집니다. 믿음의 확신이 오고 영육 간에 성공이 옵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성공의 자리로, 빈손이 가득 차고 넘치는 축복으로 변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명하시는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이 말씀에 순종할 때 분명히 놀라운 축복의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 하나는 아십시오. 내가 결정한 오른편은 의미가 없고, 주님께서 결정한 오른편이어야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를 믿고, 경험을 믿고, 배경을 믿다가 실패한 사람이 있습니까? 철석같이 믿었던 조건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바람에 주저앉은 사람도 있습니까?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 실패와 허탈의 현장을 찾아주실 그 분을 만나십시오.
그 주님께서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내 경험과 내 생각과 내 상식에 안 맞더라도 즉시 지금 순종하십시오. 주님의 방법대로 다시 시작하여서 성공과 축복을 안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