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주간을 기준으로 고난 주일(Dominica Passionis)이라 불렀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수난사(受難史)를 낭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지금은 종려주일(Palm Lord's day)이라고 부릅니다. 또 호산나 주일(Dominica Hosanna)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많은 사람이 겉옷을 길 위에 펴고 종려나무를 흔들며 환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요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우리는 이 말씀에 근거하여 오늘을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된다고 해서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마 21:01~11).
오늘 종려주일을 맞아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고 채찍질하고 모욕하고 십자가 사형을 선고하는 여러 장면을 성경으로 돌아보겠습니다.
빌라도와 유대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어떻게? 예수님을 박해하며 죽였는지를 살펴보면서 나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는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로 정했습니다.
1. 첫째 못을 받은 자는 자기 양심을 속이는 빌라도입니다. |
0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가장 죄질이 나쁜 사람을 들라면 누구를 들 수 있습니까?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겠지만 이권에 연루되어 판결을 굽게 하는 재판관과 거짓 증인입니다.
의로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도록 선고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굽은 판결자 빌라도입니다. 이 빌라도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빌라도(Pontior Pilatos, 재임. 26~37).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2대) 때 그 반대 세력 총리 세자누스(Sejanus)에 의하여 유대에 파송된 제5대 총독입니다. 유대인의 열광하는 신앙을 깨뜨리라는 특별 명령을 받고 잔인한 일을 행한 총독입니다.
빌라도는 전임 발레리우스 그라투스(Valerius Gratus)의 직임을 이어받아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두매를 직접 관장하며 통치권을 행사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을 사형할 수 있는 집행권과 법원(산헤드린 공회 등)의 결정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습니다. 대제사장의 임면권까지 행사하였습니다.
총독의 군영은 가이사랴에 본부가 있습니다. 만일의 민란에 대비하여 예루살렘 성전 내 안토니아 요새(Antonia fortress)에 파견대를 설치하였습니다.
안토니아 요새란 예루살렘 대성전(현 회교 대사원) 북서쪽 성전 벽의 모퉁이에 이는 공간입니다. 빌라도의 법정까지 설치되어 있습니다. 내부 폭이 약 120×45m였고 군사용 부속건물 외에 호화스러운 주거지와 목욕탕이 있습니다.
빌라도는 전임 총독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의(Valerius Gratus 14~25) 비리를 과감하게 단죄하였습니다. 대제사장직을 돈을 받고 판 일과 여러 이권에 관계하여 뇌물을 받은 일입니다.
이 빌라도가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유대인 교권자들에 의해 제소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무죄를 선언했습니다(눅 23:01~05, 요 18:38).
예수님을 반드시 석방하겠다는 소신입니다. 이에 따라 석방을 위해 힘써 수고하였음에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요 19:12, 행 03:13).
이스라엘 교권자들은 사형 집행권이 로마 총독에게 있었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사형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요 18:30~31).
예수님을 사형하라는 기소장에 보면. 예수는 스스로 왕이 되어 백성을 현혹한다. 로마 정부를 향해 납세 반대를 주도하는 자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말합니다.
요 18:38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19:04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06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그러나 대제사장의 지시를 받는 유대인의 강력한 요구와(행 13:28) 자기의 임기 중 민란이 발생할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예수님 대한 사형을 판결하고 말았습니다(마 27:24~25, 행 04:27). 그때 빌라도가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군중이 폭동을 일으킬까 두려워 대신 강도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군중을 향해 한 말입니다.
마 27: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 둘째 못을 박은 자는 유대교 교권자들입니다. |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자가 누구입니까? 첫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원로인 장로들입니다. 이들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지닌 자들입니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산헤드린 공회라는 종교, 정치 공식기구에서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올가미를 씌워 빌라도에게 기소합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사두개인들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종교의 대표 기구로서 예루살렘 성전을 관장하고 모든 제사 절차를 주관했습니다.
성전에 바쳐진 재물과 성전세를 관리했으며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배정하는 권한도 행사하였습니다. 동시에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도록 정치 통로 역할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로마에 바치는 세금이 산헤드린 공회를 통해 전달되면서 교권자들의 부정부패가 자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여 빌라도에게 넘겨준 교권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지 세속의 정권을 잡은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부패한 정권에 붙어 이익을 공유하였습니다.
사실 총독 빌라도가 악한 자임은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의 관점에서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반면 대제사장 가야바와 전직 대제사장 안나스를 따르는 무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지식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악을 행하였으므로 그 죄가 더욱 큽니다.
유대교 교권자들은 예수님을 가이사에 대한 반역자로 규정하고 이런 반역자를 용서하면 빌라도 당신도 반역자가 된다고 위협하자 빌라도가 결국 굴복하였습니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심지어는 예수님을 처형하는 일에 빌라도와 원수 관계로 지내던 헤롯 왕도 잠깐만 원수 관계에서 동지 관계로 변신합니다.
이런 원포인트 관계는 정치 세계나 권력 구도 관계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신앙과 도덕과 양심이 없는 세계에서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래서 정치 세계가 가장 비정한 세계라 합니다.
눅 23:12 헤롯과(B.C.4~A.D.39)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사실 빌라도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어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권자들은 막무가내로 예수님의 처형을 밀어붙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저들은 이방인 빌라도와는 근본이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는 더 앞장을 섭니다. 결코 유대교 지도자들과 무리의 죄를 작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선동자보다 선동당하는 자들이 더 추합니다.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 지어다 하거늘.
25절의 책임에 대한 대가가 자손들에게 얼마나 극심했는지 아십니까? 제2차 대전 때 독일군에 의하여 유대인 대학살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책임을 우리 자손에게 돌려도 좋다는 말에 대한 죗값입니다.
3. 셋째 못을 박은 자는 제자들을 비롯한 은혜받은 모든 자입니다. |
마 26: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예수님께서 원수들에게 잡히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보십시오. 열두 제자부터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독립시키는 정치 메시아로 알고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군주로 등장할 것을 믿었기에 치맛바람까지 일어났습니다(마 20:20~22)
마 20: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십자가형을 택하자 열두 제자 모두가 자기들에게도 화가 미칠까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골고다에서 예수님의 십자가형이 집행될 때 그 아래에 누가 있었습니까? 열두 제자 가운데는 요한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는 간접적으로 누구보다 은혜를 많이 받은 열두 제자입니다.
그리고 자기들 이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동원된 군중입니다.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미혹되어 수족 노릇을 하고 합니다.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겠습니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대제사장들의 선동에 추종하는 자들이 간교하게도 저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릅니다. 이성을 잃은 소리입니다.
이들이 정말 로마 황제 가이사를 지지해서 하는 말입니까?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말입니다. 오히려 신앙의 적인 가이사 황제를 극렬히 미워했습니다.
선동자에 구호에 맞추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맞장구만 칩니다. 여론 재판에 동원된 무리야말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압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놓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여론몰이에 적은 힘이지만 맞서 싸워야 할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또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은 그 많은 사람, 죽음에서 살리심을 받은 사람, 여러 모양의 은혜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안 보입니다. 분명히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왔을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듬뿍 받은 사람이라면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편에 서서 싸우든지 최소한 응원이라도 하여야 할 자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는 빌라도만도 아닙니다. 교권자들만도 아닙니다. 동원된 군중만도 아닙니다. 열두 제자만도 아닙니다.
빌라도는 불신자임에도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최고의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 현장에 우리가 있었다면 어떻게 하였을 것 같습니까? 과연 예수님의 십자가는 불가하다면 강렬하게 저항하였을 것 같습니까? 비겁하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은 사람 중에 우리도 참여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님께서 임했을 때 베드로가 한 설교를 기억하십니까?
행 0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04:10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너희는 바로 오늘의 우리입니다. 남이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나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 중 하나입니다. 이들의 반응처럼 나도 이렇게 반응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어찌할꼬(37).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어느 한 사람이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고통스러워하셨고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구나.
그때 어디선가 로마 병정 한 사람이 걸어오더니 사다리를 타고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위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런데 잠시 후에 펼쳐지는 모습을 보니 고통스러워하시는 예수님에게 다가가서 가시 면류관을 더 힘껏 누릅니다.
그런 후에 다시 못 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신음을 아랑곳없이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 사람이 너무 화가 나서 당장 멈추라고 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못 질을 하던 로마 병정이 고개를 돌렸는데 그 얼굴을 본 순간, 너무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로마 병정의 얼굴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눈이 열린 사람은 자기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약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그 시대의 일로 종결되었습니까? 예수님은 오늘의 세상을 위해 다시 십자가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은 계속 일어납니다. 개인의 이권이나 이익을 위해 믿음을 팔고 교회를 파는 일이야말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죄는 영원히 지고 가야 합니다. 사도신경은 본디오 빌라도를 이렇게 정죄합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빌라도의 허물을 분명히 적시하여 오는 세대에게 증언합니다. 그러면 오늘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이 누구입니까?
나입니다. 나도 그 죗값을 지고 가야 합니다. 멸망의 길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바로 이 순간입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내가 어찌할꼬 탄식하며 주님의 보혈에 들어가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 손들고 옵니다. 찬송을 부르며 주님께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이 기회를 계속 거부하면 히 06:06 말씀과 같이 구원의 길에 들어가지 못한 자가 아닌지 잘 살펴보십시오.
히 06:0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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