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각종 선거에서 가장 많은 도전을 하여 가장 많은 실패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22세의 젊은 나이로 사업에 실패하고, 23세에는 주 의회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했고, 이듬해 또다시 사업에 실패했습니다.
25세에는 두 번째 주 의회에 도전하였으나 역시 떨어졌고, 다음 해인 26세 때에는 사랑에 실패하였고, 27세에는 조현병에 걸렸습니다. 어디 사람으로서 살 만한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도전 정신으로 29세에 의회 의장 선거에 도전하였습니다.
역시 낙선하였고, 34세에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떨어졌다가 마침내 37세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39세에 대통령을 꿈꾸었으나 밀려났습니다.
같은 해인 39세에 다시 하원의원 선거에 나갔다가 역시 실패하였고, 46세에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였으며, 47세에 부통령 선거, 49세에는 상원의원에 계속 떨어졌습니다.
이게 도무지 말이나 됩니까? 이 사람은 계속된 실패를 극복하여 마침내 51세인 1861년에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그 노예해방으로 유명한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의인일지라도 일곱 번 넘어진다는 말이 나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도 많이 넘어진다는 말입니다. 의인에게도 실패가 있고, 고통이 있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승리하였습니까? 아니면 실패하였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혹 실패의 자리에 있다면 다시 일어납시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실패했습니까? 일어나십시오.」 정했습니다.
1. 인생은 누구나 실패를 거듭하면서 살아갑니다. |
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우리의 현실은 세상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성공 지상주의에 빠져있습니다. 너도나도 성공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건강을 헤쳐가면서도 쉬지 않고 달립니다.
이러다 실패라도 만나면 인생을 포기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하여 재수하면 재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사실 어느 누가 실패를 원하겠습니까? 그래서 모두가 혹 당하게 될지도 모를 실패에 대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삽니다. 때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여 우유부단한 자라는 소리도 듣습니다. 돌아보면 모두가 실패하면서 살아왔고 또 살아갑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 가운데 실패를 안 당해 본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결코 실수나 실패를 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있습니까?
예, 있다면 대단한 분입니다. 성공학에 대한 강사로 전국을 무대로 뛰어도 되겠습니다만 실수나 실패가 전혀 없는 그런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약 03:0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혹 나는 실패한 적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어떤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한 번도 모험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시시때때로 실수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일을 추진하는 데도 수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올해 초에 나름대로 믿음의 계획을 세워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6월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한 지금 어떠합니까?
많은 실수나 허물 그리고 실패의 현장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여성분은 대부분 작심한 다이어트에 실패하였을 것입니다. 혹 성공하였다면 대신 건강을 날려버렸을 것입니다.
2010년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성경을 읽는 일, 그리고 공적 예배드리는 일에 전념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안 된 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아무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 시대의 의인이며 당세에 완전하였다고 인정받은 노아도(창 06:09)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거듭 실수하였으며, 신앙의 영웅 다윗도 많은 허물과 실수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인물도 반복된 실패와 실책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실수하고 실패하는 인생인 줄 알고 살면 됩니다. 또 실패는 인생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살면 오히려 편합니다.
유능한 회계사나 건축사가 사용하는 필기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값진 금촉 파카(PARKER) 펜 종류일까요? 아닙니다. 지우개가 달린 연필입니다.
유능한 사람도 실수나 실패를 경험하며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야구장에서 공을 칠 때마다 안타를 치는 선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한 실수로 인하여 심령이 침체하거나 정열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2. 신앙인은 인생의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 있습니다. |
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의인(צַּדִּיק 찻디크)이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좋은 사람도 무려 일곱 번이나 넘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고난과 시련과 실패는 늘 동행하는 동반자로 여기면 됩니다.
일곱이란 숫자를 보십시오. 이 수(數)는 성경에서 완전을 상징합니다(잠 06:31, 26:16, 창 04:24). 따라서 일곱 번이나 넘어진다는 의미는 완전 실패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칠전팔기의 삶을 산다는 말이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결국은 일으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완전한 멸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능히 힘을 주십니다. 믿음의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역경을 딛고 반드시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실패의 현장에서도 계속 도전하면서 일어선 대표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의 전도자의 인생 여정을 한 번 볼까요?
말할 수 없는 역경과 시련과 실패의 현장에서도 주저앉지를 않았습니다. 역동적인 신앙으로 이겨내었습니다. 그 극복을 간증하는 성경 구절을(고후 04:07~09) 보겠습니다.
고후 04:0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0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0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성도 여러분, 어떤 일을 당하여 심각한 위기의 자리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포기할 때까지는 결코 실패자가 아닙니다. 실패란 내가 정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실패란 다시 일어날 의지를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가장 큰 실패는 다시 시도하지 않는 체념입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1769.8.15.~1821.5.5.)은 학창 시절 43명 중 42등으로 졸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역사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실패를 도전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 Da Vinci 1452.4.15~1519.5.2)의 최후의 만찬도 8년 동안 약 2천 번이나 스케치해 본 결과물에 의해 이루어진 작품이라 합니다.
순간의 실패를 했을지라도 인생 전체의 실패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 신앙인은 knock down(넘어짐)은 되더라도 knock out(실격) 되지는 않게 하시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일어섭시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는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며, 다시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성공하려면 아무래도 지능이 높아야 하고, 기술이 높아야 합니다.
여기에다 지식도 있어야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성공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실패의 현장에서 포기하지 않고 감당하는 긍정의 자세입니다.
시련을 맞는 자세가 좋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실수를 너무 심각하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나는 틀렸다, 나는 버렸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둥 한두 번의 실패를 끝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이런 실패자의 자세를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모든 형편을 잘 아십니다(시 103:14). 우리의 약점도 실수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모든 것도 다 보고 계십니다. 사람의 힘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는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3. 신앙인은 인생 실패자를 안타깝게 여겨야 합니다. |
1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실패는 누구나가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를 만났을 때 신령한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원치 않는 실패를 하였지만, 실패를 만난 이상은 우선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재도전의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실패는 나의 잘못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해결은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그런데 내가 아닌 이웃의 실패를 목격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마음 자세를 어떻게 가져야 합니까? 이웃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이웃의 실패와 불행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즐거워하지 말며. 상대의 고통과 절망 등을 보고 히죽히죽 웃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내적 만족감을 가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와 같은 미움은 거듭난 사람의 아니며 더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상대방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스라엘 사회는 나그네와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민족정신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이웃의 안타까운 일을 돌아보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혹 이웃의 실패를 놓고 고소해 하는 놀부의 마음은 없습니까?
더러는 이웃의 불행을 나의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김삼일 가족은 힘든 환경에 처한 사람을 볼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듬으시는 기회는 아닌지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실패자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업신여기는 일이요 파괴하는 일입니다. 그 마음을 외면하는 일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①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상대방의 마음을 짓밟은 후 다시 짓밟는 일과 같습니다 ②동시에 함께 실패하는 길이고 함께 불행을 불러일으키는 일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을 잘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실패로 인해 당하는 수치와 모멸감을 더욱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김삼일 가족은 이웃의 슬픔과 불행을 잘 배려해 줄 수 있는 좋은 마음을 가집시다.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다가갑시다. 실패한 그 고통의 현장에도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음을 찾읍시다.
롬 0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도 여러분의 행복과 즐거움은 하나님 은혜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원수에 관한 일은 하나님 손에 맡겨야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한 원수를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감정 상태를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마가렛 미첼(Mitchell, Margaret, 1900~1949.8.16.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생)이라는 아주 햇병아리 신문기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무척 큰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만 교통사고를 입어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되었습니다.
26살 처녀가 이렇게 다리를 다쳐 절므로 기자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으니 얼마나 낙심과 절망이 옵니까? 인생이 다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미첼은 마음을 정리하면서 그렇지, 내가 다리는 다쳤다. 그러나 글은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면서 그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생전 처음 쓰는 소설로서 십 년 만에 겨우 소설 한 권을 완성했습니다. 그 원고를 가지고 삼 년 동안 많은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소설가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초보자가 쓴 글을 누가 보겠다고 하겠습니까? 사실 시간 낭비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원고가 너덜너덜해지고 말았습니다.
한 날은 미첼이 맥밀란 출판사 사장 뤠이슨을 만나려고 했지만 만날 길이 없자 그 사장이 여행할 때 기차를 타려는 것을 알고는 역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붙들고 선생님, 이 원고를 딱 한 번만 읽어 주세요. 하며 간절히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알았다고 하면서 그대로 원고를 받아 가방 속에 넣고는 기차 여행 동안 읽지를 않았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미첼이 보낸 전보가 와 있습니다. 한 번만 읽어 주세요. 미첼로부터. 몇 달 후에 또 전보가 왔습니다.
한 번만 읽어 주세요. 세 번째 전보가 왔을 때 그 아가씨가 간절하게 한 번만 읽어 달라고 기차역에서 부탁하던 얼굴이 생각나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뤠이슨 사장은 그만 소설에 미쳤습니다. 다 읽은 후에 즉시 출판했는데 하루에 오만 부가 팔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소설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많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살아온 과거를 회상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살아온 길은 그 길이 약간 미끄러울 뿐이지 낭떠러지는 아니었다.
자신이 걸어 온 길이 미끄러워서 위태로웠을 뿐 결코 죽음으로 인도하는 낭떠러지는 아니었다는 긍정적인 자세 속에서 더욱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마 07:0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0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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