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워너메이커가(美, John Wanamaker, 1838.7.11~1922.12.12) 사업가로서 60년을 맞은 기념행사에서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회장님,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10살 때 최고의 투자를 한 적이 있지요. 그때 나는 2달러 75센트를 주고 예쁜 가죽 성경 한 권을 구입했는데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기자가 다시 묻기를,
그렇다면 성경만 구입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실천하면서 즐겁게 일하다 보면 성공은 어느새 다가오는 법입니다. 존 워너메이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아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동안 그의 인생의 매순간을 성경 말씀을 실천하면서 꿈을 성취해 나갔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일을 하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나는 때가 많은데 여기에 우리의 고민과 안타까움이 따릅니다. 성공을 원하지만 실패로 끝나는 이유는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르겠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볼 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①첫째는 성공을 원하지만 성공적인 선택에 실패합니다. ②둘째는 성공적인 자세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③셋째는 성공적인 삶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의 씨앗을 뿌리면 행동의 열매를 얻고,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를 얻고, 습관의 씨앗을 뿌리면 성품의 열매를 얻고, 성품의 씨앗을 뿌리면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성공적인 생각은 성공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성공적인 행동은 성공적인 습관으로 나타나며, 성공적인 습관은 성공적인 삶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성공한 것 같으나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와 실패한 것 같으나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오늘 말씀으로 전하겠습니다.
1. 아브라함은 롯과의 갈등 요소를 양보로 해결했습니다. |
0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0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과 롯은 숙질간으로서 롯은 아버지 하란을 일찍이 갈대아 우르에서 여의고 삼촌 아브라함 밑에서 자란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900km)을 거쳐 가나안으로 이주를 할 때(600km) 삼촌을 따라 이사를 하였으며 지금은 같은 지역에서 목축업을 하며 지내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이 비좁은 지역에서 목초지(木草地) 문제로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아브라함은 그 지역의 불신자들 앞에서 다투는 것이 덕스럽지 못함을 알고 차라리 서로 마음 편하게 헤어질 것을 롯에게 제안합니다.
이쯤 되면 롯은 삼촌, 헤어지다니요. 같이 살아야지요. 제가 좀 더 양보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해야 할 처지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의 제안이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삼촌이 먼저 선택하십시오. 제가 어찌 먼저 선택을 한다는 말입니까? 라는 화답을 해야 합니다.
만일 롯이 물욕이 강렬할지라도 삼촌 앞에서는 체면상이라도 어떤 양보의 제스처 정도는 하여야 하는데 두 눈 질끈 감고 소돔과 고모라 성을 안고 있는 요단 평야를 향하여 떠나갔습니다.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 지라.
그동안 동고동락하던 조카 롯을 보내야만 했던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떠하였겠습니까?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으리라 여겨집니다. 고향 땅을 떠나 함께 생활해오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그들 사이의 결별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인간적인 고독과 허탈감 속으로 빠져들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목축업으로 삶을 꾸려가던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목초지 선택의 우선권을 조카 롯에게 그냥 넘겨준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지요. 롯에게 좋은 곳으로 여겨지는 목초지를 양보한 아브라함은 물도, 푸른 초장도 제대로 없는 가나안 산자락에(12절) 자리를 잡습니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은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러나 그는 우리가 생각할 때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은 그것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삼촌으로서, 윗사람으로서, 아니면 그동안 보호자요 후견인으로서 자신의 기득권을 능히 주장할 만한 위치임에도 선택권을 롯에게 넘겼으니 얼마나 넓은 마음입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속한 물질의 세계를 넓은 길, 넓은 문, 멸망의 길, 멸망의 문이라고 하셨으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넓은 길, 넓은 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넓은 길 뒤에는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반면 좁은 길 뒤에는 영생도 있고요. 불편하다고 불행한 것이 아니고, 편하다고 평안을 얻은 것이 아님을 성도 여러분은 기억하십시오.
마 0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2. 롯이 선택한 길은 파멸의 길입니다. |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 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은 자기가 보고 판단하여 선택한 그 곳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여겼으며 정말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만 합니다. ①첫째는 물이 넉넉했습니다. 물이 많다는 것은 농사가 잘되고 모든 것이 풍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②둘째는 여호와의 동산 같았습니다. 에덴동산을 생각하게 할 만큼 완벽한 조건과 환경을 갖춘 지역이라는 뜻입니다. ③셋째는 애굽 땅과 같았습니다.
아브람과 롯은 기근 때문에 한 때 애굽 땅으로 피신한 적이 있었는데 롯은 아마 그곳에서 나일강을 중심으로 찬란한 도시 문화가 꽃피었던 애굽 문명의 화려함과 편리함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롯은 물댄 동산 같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그곳에 그만 매료되고 말았으니 정말 행복이 완전 보장 된 것처럼 보이는 땅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 요단 들판이 어떤 곳일까요? 바로 소돔과 고모라 땅을 안고 있는 지역으로서 역사에서 가장 무서운 심판을 받았던 땅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도시요 매력있는 도시지만 반면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머물 수 없는 도시이며,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행복을 약속해 줄 것 같은 착각을 주는 도시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겉으로 볼 때 화려하게 보인다고 다 믿지 마십시오. 그럴듯한 곳에는 거의 함정이 있기 마련이며 이러한 유혹은 롯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우리에게도 아름답게 다가 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주지를 선택할 때는 많은 행복과 불행의 가능성이 주어지나 그 집을 어느 곳에 얻느냐 하는 것은 나 자신이 결정해야 할 몫이기에 대단히 신중해야만 합니다. 결국 롯은 만물을 지배하는 하나님을 택하지 못하고 사람의 눈에 보기 좋은 것처럼 여겨지는 행복을 찾아 소돔을 택하여 갔습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고 잘못 된 선택에는 비록 그것이 훗날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인데 롯은 그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부모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춘기 아이들처럼 아무리 이야기해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역시 알아듣지 못하는 법입니다. 롯의 비극은 아브라함을 떠나는데서 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러면 아브라함을 떠난 것이 왜 비극입니까?
예,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축복의 사람을 따라 다니면서 축복의 사람들을 만나십시오.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을 만나면 평생 후회가 없을 것이며, 영원한 축복을 소유하게 됩니다.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이제 롯은 어떠합니까? 세상과 물질을 따라가면서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다 서서히 그 장막을 소돔까지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롯이 결국은 가게 된 그 소돔이란 어떤 곳입니까? 물욕, 명예욕, 정욕 등 죄악이 차고 넘쳐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지 않고는 아니 될 멸망의 도성입니다(창 19:24,25).
성도 여러분! 우리들 주변에는 이렇게 우리를 유혹하고 매료시키는 세상의 물질과 명예와 쾌락의 자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영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고, 영안이 계속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항상 멸망의 길, 넓고 편한 길을 선택하여 나아가는 겁니다.
3.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언제 오셨다고요? 바로 롯이 떠나고 난 이후입니다. 아브라함은 롯과의 갈등 속에서 손해를 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다소의 고민을 했겠지만 결국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득권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롯은 떠나갔는데 이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행동들을 다 보고 계시다가 아브라함이 무척 외로워하는 적절한 한 시점에서 찾아오신 겁니다.
우리가 고난을 만나고, 갈등하고, 고민할 때도 하나님은 역시 그곳에 계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타이밍을 저울질 하고 계시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도 보시고, 한숨을 알고 계시며,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의 믿음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린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에게 들려진 14절 말씀이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들리는 말씀입니까? 그저 단순한 명령문의 한 문장으로만 여겨집니까? 간과해서는 아닙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임을 기억하십시오. 왜냐하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이 말씀을 내가 받을 때는 적어도 우리의 생에 있어서 축복의 문을 여는 키워드(핵심의 말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선택권을 먼저 받아 아브라함을 떠나갔던 롯에 대한 말씀은 없습니까? 13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을 향한 축복의 말씀이 나타나기 전에 롯에 대한 앞날을 미리 예언해 줍니다.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결국은 롯이 다가가서 거처한 소돔 성이 얼마나 악한 성이었는지, 영적으로도 얼마나 어두웠는지를 능히 짐작케 하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롯은 이런 악한 요소를 내다보지 못하고 다만 경제적인 가치를 최고로 여겨 그 성에 접근하고 말았습니다. 소돔 사람들이 악하고 하나님께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위험한 행동입니까? 마땅히 죽음의 길이지요.
한 번 물어 보겠습니다. 롯이 왜 망했습니까? 롯이 무슨 죄를 지어서 재산을 다 잃고 아내까지 소금 기둥이 되게 했느냐 말이에요. 성경은 롯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롯이 망한 이유는 소돔이 망했기 때문입니다. 롯의 죄하고는 상관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에 속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제 14절로 돌아가서 세속적인 권리와 기득권을 롯에게 양보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봅시다.
우리는 14절에서 ①첫 번째, 너는 눈을 들어 라는 말씀을 주목합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땅을 보며 살아가는 존재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령한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땅을 보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하셨습니다.
현실과 환경을 보면 좌절하게 되며,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보면 자신이 없어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그러나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그곳에는 놀라운 비전과 하나님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②두 번째는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곳에 가서가 아니라 너 있는 곳에서라 라는 말씀에 시선을 집중해 보십시오. 지금 아브라함이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곳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특정하게 설정 된 거룩한 장소이거나 축복이 쏟아지고 있는 황금 지역이 아닙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먹고 자고 생활하던 일상적인 공간 바로 그 현장으로서 하나님은 그곳에서 지금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어떤 격리 된 요지(要地)나 특정 장소에 세워 놓고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시지 않았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시되 우리들이 서 있는 지금의 자리에서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 명령을 지킴에 있어서 현재의 위치를 이탈하여 생각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다음에 성공을 해서 충성하겠다는 것과 지금의 어려운 환경 이 자리를 벗어나 좋은 처지가 되면 그때 가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장차 무엇을 하여야지, 이곳을 벗어나면 그때는 새롭게 성공적인 도전을 해 보아야지 라는 생각으로는 아니 됩니다. 성경은 오직 현재의 내가 있는 곳에서 즉 우리들의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생활 현장에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멀리 내다보라는 말씀이요 폭 넓게 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살아온 삶의 여정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또 깊이 생각하지 못함으로 인해 영 육간에 실패와 어려움을 많이 겪었으며 또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기도 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이제 좁은 근시안적인 안목에서 벗어나 좀 더 멀리 영적인 시야를 높여 보라는 의미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제 그 땅을 두루 다녀 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저 축복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의 미래를 한 번 가 보셨습니까?
어느 누구도 가 본 일이 없겠지만 그 미래의 축복은 믿음으로 밟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믿음으로 여러분의 축복의 터전을 밟으시고 우리 교회 주보에 등재되어 있는 선교지의 길도 믿음으로 한 번 밟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발을 딛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땅은 곧 창 12:07절에서 자신과 자신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땅입니다.
성도 여러분! 17절의 말씀을 나에게 영적 차원에서 축복의 터전으로, 전도의 터전으로 주신 줄 알고 함께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7절의 말씀을 이 시간부터 순종하면 내게도 주어지는 놀라운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어떤 가치관, 어떤 안목으로 살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세상의 물질보다는 믿음으로 신령한 것을 택할 때 하나님께서 더 복된 세계를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김해삼일교회가 서 있는 축복의 터전 구산동 701-1 번지에서 종과 횡으로 전도의 발길, 축복의 발길을 옮기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은혜의 강단 > 2010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령한 웃음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창 21:01~07) (0) | 2010.06.05 |
---|---|
예수님은 폭력을 원치 않습니다.(마 26:47~56) (0) | 2010.05.29 |
서로 받아들이며 삽시다.(롬 15:01~07) (0) | 2010.05.16 |
[어버이주일] 부모님께 진정으로 효도합니까? (출 20:12) (0) | 2010.05.08 |
[어린이주일] 자녀의 신앙교육은 어떻게 합니까? (0) | 2010.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