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9년 말씀

죄인이기에 살아야 합니다.(롬 01:18~32)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9. 10. 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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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척 가기 싫어하는 곳 중의 하나가 병원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보통 사람들이 병원에 가는 만큼 이상을 출입했습니다. 남에게 스스로 진단 받는 사실이 왜 그렇게 싫은지. 아마 여러분도 대단히 싫을 것이에요. 그러나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살기 위해서 그렇게 가기 싫은 병원이지만 가야하고 그렇게 만나기 싫은 의사지만 또 만나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종합 진단을 받으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싫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행여나 뭔가 하나 걸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신뢰하는 의사를 찾아가게 되는데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특히 부인들은 남 앞에 몸 내놓기를 그렇게 부끄러워하면서도 의사 앞에서 마음대로 하시오 하고 부담 없이 몸을 내 놓습니다. 산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지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돌려 신앙의 차원에서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 됩니까?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겁니다. 즉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한 진단 받는 것을 그렇게도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도원 집회 같은 데도 축복이 쏟아진다. 하면 무조건 달려가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투시 은사자가 있다 하면 은근히 안 가려합니다. 사실 하나님 만나기를 싫어하는 본능이 우리 모두의 마음 한편에는 있지만 그러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와야만 합니다.

 

사 55:0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1. 죄인의 길은 곧 죽음입니다.


롬 0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와야지 만일 나오지 않으면 죽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나를 정확하게 보시고 진단해서 치료해주실 수 있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사모하며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는 고백을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참된 위로와 평안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속상한 사람들, 참담한 아픔으로 한숨짓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번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아픔이나 상한 심정을 노출시키지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렇게 마음 상한 채로 살지 마시고 나오십시오. 사랑과 은혜와 용서와 위로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성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상할 때마다 겸손히 나의 모든 형편을 그대로 아뢰며, 하나님! 사랑합니다. 내게도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면 내 심령에 오셔서 치료해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천 구백 년도 초반기에 미국에 자동차가 갓 나왔을 무렵 어떤 돈 있는 사람이 자동차를 사 가지고 신기해서 저 미시간 들판을 향해 신나게 몰고 가다가 그만 고장이 났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문제점을 찾을 수가 없어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마침 잠시 후에 지나가는 차 한 대가 고장 난 차를 보고는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떤 한 사람이 내려서 차를 고치는 모습을 한 참 쳐다보더니 젊은이 잠깐 기다려요 내가 해줄 테니 하더니 무엇을 하나 슬쩍 만짐으로 인해 엔진에 시동이 걸렸습니다. 젊은이가 신기해서 선생님 언제 그런 기술을 익히셨습니까? 감사합니다. 했더니 예, 내가 헨리 포드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죠?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만들었으니 얼마나 정확하게 압니까? 소리를 듣고서도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금방 알아내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심으로 우리가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자임을 알고계십니다.

사람은 죄악 가운데서 태어나는 근본이 죄인이요,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자 아닙니까? 그럼에도 이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합니까? 교회에 나왔다가 죄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공연히 마음이 편치 못하여 안색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면 좋겠는데 한 번씩 가다가 여러분! 죄인임을 아십니까? 회개치 않으면 망하고 죽습니다. 라는 소리를 들으면 공연히 기분이 안 좋고 무척 괴롭습니다.

 

롬 0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런 말씀은 아무래도 매우 듣기가 거북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진단의 결과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의사 앞에 갔을 때 당신은 아무래도 장기치료를 해야겠습니다. 하면 그 말이 분명 듣기 싫은 소리이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 처방을 내가 수긍하고 따라야만 살 수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솔직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니 분명히 죄인이지 않습니까? 아니라고 감히 부정할 수 있습니까? 또한 우리의 마음에 왜 그렇게 악한 생각들이 많이 일어납니까? 뭔가 질이 안 좋아서 그런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악한 생각들을 다 종이에다 한 번 적어 보십시오. 얼마나 많겠습니까? 가만히 있어도 밑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이나 감정들을 테스트 해보십시오. 과연 선한 것이 몇 가지나 있다고 보십니까?

조금만 마음이 불편해도 원망이 나오고, 조금만 손해가 간다고 생각하면 참지 못하는 미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자기를 낳은 부모를 미워하는 것도 시간문제이고, 그렇게 몸을 섞어 가면서 일생을 살겠다고 약속한 부부도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원수가 되는 것 그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2. 인간의 욕심은 결국 죽음으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가 작은 평수의
집에 살아보면 조금만 더 넓은 평수로 옮겼으면 하는 소원이 얼마나 간절해집니까? 머릿속에 온 통 큰집 밖에는 안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여 큰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렇다고 그 욕심이 다 없어지고 마음에 평강이 찾아듭니까?
아니지요 오히려 더 큰 욕망이 밀려오는 겁니다.
자동차가 없을 때는 나도 자가용 한 번 몰고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자동차를 할부로 사서 처음 몇 달 동안 신나게 타고 다녔는데 그런다고 그 욕심이 다 없어지고 평안이 옵니까?


약 0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인간이 별거 아닙니다. 잘 살면 잘 사는 대로 오히려 욕망과 악은 더 발달하고 생각은 더 간교해지고 욕심이 채워질수록 더 입을 크게 벌리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모두를 죄인이라고 단정하셨기에(롬 03:10, 05:12) 하나님 그렇습니다. 내가 나를 봐도 죄인임을 부인하지 못하겠습니다. 는 고백을 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번 자문자답해 보십시오. 하나님! 별로 걱정스러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제가 왜 그렇게 불안합니까? 라고.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너는 근본이 죄인인데다 죄악으로 인한 욕망이 마음속에 가득하여서 그렇다고 하실 것입니다.

 

롬 01:21~23절까지를 같이 볼까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알되(21)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며, 오히려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자칭 자기는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지혜가 있다고(22)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자기를 바보라고 생각은 안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스스로 지혜 있다는 것이고 자칭 지혜자라고 하는 것뿐이지 사실은 어리석은 자라는 겁니다. 기껏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질 동물의 우상 모양으로 바꾸었다고(23절) 말씀하십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죄악의 욕심이 심령 가득히 메워 있기 때문인데 인간의 사욕이 전능하신 하나님까지도 세상적인 것 보이는 것으로 대체하고 만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죄인의 신분이기에 세상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 욕심의 수준으로 격하시켜 버립니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사람들은 또한 세상 욕심에 사로잡히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하나님을 멀리 한다는 말이에요. 그때는 하나님께서도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두시면서 그러면 어디 너희들 마음대로 실컷 해 봐라 하시는데(28).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29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그 다음에 또 뭐 한다고요? 뒤에서 수군 수군을 잘한다고 말합니다. 30 또 남 비방도 잘하고 나중에는 그것이 더 발전해서 하나님의 미워하는 사람이 되고 상대를 업신여겨 욕보이고 그러면서도 제 잘난 맛으로 교만하고 그것도 모자라 제 자랑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그리고 악을 도모하고, 부모를 거역하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31 마침내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우며(우매) 약속을 마음대로 깨뜨리고 무정한 자가 된다고 하였는데 그러니까 욕심의 결과는 전부 몇 가지나 됩니까? 무려 21 가지나 됩니다.
이것은 전부가 아니라 중요한 것만 뽑아 놓은 것으로서 32절 이후를 계속하다 롬 03:23절에 가서 보면 죄인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는 진단입니다.

 


 3. 구원의 길은 피 흘림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욕심을 따라
물질적으로 잘 살고 건강하면 일 백세 이상이라도 가능하지만 그러나 한 가지 근본적으로 악한 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만일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하면 갈 곳이 딱 한 군데 있는데 여러분 어디인지 혹 아시겠지요?

 

히 0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심판 받는 자리에 갑니다. 그곳을 성경에서는 지옥(地獄)이라고 하는데 영원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지요. 성도 여러분! 오늘 저녁이라도 여러분이 이 세상을 떠나면 갈 곳이 어디인지 아시지요? 하나는 하나님 나라와 다음은 영원한 고통의 세계 지옥입니다.

여기는 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곳으로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야 하고 심판 받는 자리에 가면 영원히 지옥에서 살아야 합니다(눅 16:24~26).

 

다시는 돌아 나오지 못하는 곳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는 뒷걸음질 치지 못하는 그곳을 생각해볼 때 우리의 삶을 다시금 정리해 보아야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한다고요? 하나님의 처방을 다시 살펴봅시다.


히 0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피를 흘리지
아니하면 내 근본적인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인데 왜냐하면 육체의 생명은 피 흘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피 흘림에 있기 때문에 피를 가지고 라야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그 결과가 뭐라고요?


롬 0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동등한 값을 가진 피가 흘려지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면 그 피는 어떤 핍니까? 죄가 없는 피라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이 죄의 문제는 의로운 피를 통해서만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러면 어디서 이 피를 구할 수 있습니까?

 

롬 05:0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16대)
대통령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번은 어렸을 때 아이들끼리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 소리가 너무 요란하여
이웃집에까지 들리자 이웃집에서 무슨 큰 일이 난 줄 알고 달려 와서 이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가 일어났을 뿐입니다. 라고 했답니다. 이웃집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으니 예,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호두과자를 세 개 주었더니 두 아들 녀석이 서로 자기가 두 개를 먹겠다고 해서 일어난 싸움입니다.

탐심은 우리의 이기심을 살찌우는 바이러스와 같은 죄악 아닐까요? 탐심, 탐욕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계속해서 더, 더, 더 를 요구할 뿐 하나님 앞에 나오지를 않습니다. 성경은 지옥을 그릴 때 이따금씩 무저갱이라는 단어를 쓰잖습니까?(계 20:01,03). 무저갱이라는 말은 바닥이 없는 곳을 의미합니다.
끝없는 욕망의 세계에서 입을 벌리고 더, 더, 더 하다가 이 세상에서 그 만족을 달성하지 못한 사람들이 지옥에 가서도 끝없이 헐떡이며 불만에 차서 더, 더, 더 소리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탐심의 죄악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물질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날마다 확인하는 삶을 살면서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심판 받는 자리에 보내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의로운 피를 흘려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마침내 축복으로 행복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겁니다. 이 길 따라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