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색 옷을 입고 생활하였던 부자가 간 곳은 어떤 곳입니까? |
많은 사람의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인 지옥이 과연 어떤 곳이겠는지를 성도 여러분은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어떤 이들은 아이고 죽어 봐야 지옥이 있는 줄 알지? 누가 어디 가 보기나 했나 라고 하는데 여러분 가보고 확인할 때는 이미 늦은 줄 아십니까? 그곳에서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어요.
서울 용산에 있는 미 8군의 담에 보면 접근하면 발포한다고 써 붙인 경고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못살 때 P. X 물건을 훔치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붙여 놓은 경고문입니다.
도둑질하러 담 넘어가려는 사람에게는 그 경고문이 위협을 주지만 그러나 담 넘어갈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된 우리에게는 지옥이 두려운 곳이 아니지만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신앙적 입장에서는 지옥이 어떠한 곳인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일부의 사이비 종교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지옥이란 그저 예수 잘 믿으라고 하는 소리야. 그리고 헌금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소리지 라고 일축해 버리나 지옥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사실 지옥과 천국에 관한 설교는 성도들에게 말씀대로 살아야 함을 강요하기에 아무래도 눈치 있고 두뇌 회전이 빠르신 분들은 세상적 향락도 누리고, 교회생활도 유지하며, 또한 양심도 아프지 않는 그래서 자극이 없는 설교를 더욱 선호합니다.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아주 많은 말씀을 하셨으며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바울 등 성경의 여러 기자들이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는 대단히 실감 있게 소개합니다.
계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그 어두운 구덩이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 영원히 헐떡이면서 고통당하는 곳, 그곳은 혀가 타서 견딜 수 없고 물 한 방울 없어 애타는 곳입니다.
중국 하얼빈에 가면 과거 일본군이 동남아시아 다수 국가의 전쟁포로 및 한국의 애국지사들을 체포하여 생체 실험을 하였던 731부대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소문으로는 들었을 것인데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8월 18일 이곳을 특별히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던 여러 일들을 보전한 시설들을 돌아보는 중에 세균을 사람의 몸에 얼마나 주입시키면 죽는지 뜨거운 곳에 사람을 두면 몇 분 만에 죽는지를 실험한 곳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우나탕 같은 곳에 사람을 가둬 놓고 열을 가하면서 유리로 된 창을 바라보며 몇 분부터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고, 몇 분이 지나면 의식을 잃어버리며, 얼마나 땀을 흘리면 사람이 죽게 되는가? 등 이런 여러 가지 사항도 실험하였습니다.
더욱 끔찍한 건 무기의 성능 시험을 위해 마루타들을 세워 놓고 총의 관통력을 시험하거나 화염 방사기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마루타를 대상으로 화형실험을 하였으며 심지어는 인간과 동물의 장기를 바꾸거나 성기나 뇌를 이식하는 실험도 하였습니다. 그런 생체 실험 대상자(마루타)들은 고통 중에 지내다 죽어 갔는데 이곳을 당시의 사람들은 지옥이라고 불렀습니다.
막 09: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이 세상의 불들은 아무리 요란해도 꺼질 때가 있으나 지옥의 불은 계속해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그야말로 끔찍한 곳입니다. 지옥 불은 꺼질 날 없이 영원토록 불타는데 그래서 그 불을 아주 뜨겁다는 뜻에서 유황불이라고 하고 풀무불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며 도무지 탈출할 비상구가 없다는 말입니다.
지옥은 죽고 싶어도 도저히 죽을 수 없는 고통만 계속 되는 곳, 견딜 수 없는 신음 소리만 밤낮으로 계속 나는 곳, 어두움만이 있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입니다.
3. 지옥에서는 어떤 소리가 납니까? |
땅위의 생활은 때로는 장탄식을 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돌이킬 수 있는 때가 있고 또한 돌이키기만 하면 사는 길도 있습니다. 눅 15:11~32절에 나오는 일명 탕자를 보십시오. 아버지께 자기 몫으로 돌아올 유산을 미리 받아 가지고 나가 허랑 방탕하여 탕진하였던 자로서 그 후 먹을 것이 없어 돼지죽을 먹고 후회하면서 지냈지만 아버지께로 돌아옴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음부에서 탄식하며 후회하여 보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회개와 후회는 유용한 것이지만 음부에서의 후회와 탄식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불못이며 그곳에서 나올 수 있는 구원의 기회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지옥에서 들리는 고통의 신음 소리가 어떠한 지를 우리 다같이 들어보겠습니다.
①지극히 작은 물 한 방울을 구하지 못해 고통하는 소리가 납니다.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부자가 살아 있을 때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던 사람이 아닙니까? 최고의 음식을 날마다 배불리 먹으면서 대문간에서 기숙하고 있는 나사로에게는 개에게나 주는 음식 찌꺼기 정도를 던져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제는 한 컵도 아닌 손가락 끝의 지극히 작은 물 한 방울이라도 있으면 자기의 혀가 서늘할 것이라는 희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흔히 하는 소리로 사람 팔자 정말 알 수 없네요. 금은보화 속에 묻혀 살던 부자가 물 한 방울 때문에 극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으니 말입니다. 죽은 자의 간절한 소원 그것은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한데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던 그 부자가 어쩌다 한 그릇의 물도 아닌 한 방울의 물이 자기의 간절한 소원이 되었으며 물 한 방울에 그렇게 매달려야 합니까? 그만큼 그 음부 즉 지옥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이 크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증명하는 겁니다.
②나사로가 있는 낙원으로 건너가게 하여 달라는 소리가 납니다.
24절의 숨겨져 있는 내용 가운데 부자가 말하기를, 이 불꽃 가운데서 내가 너무 고통스럽게 지내니 낙원으로 건너가기를 원합니다. 라는 소리를 냅니다만 즉시 낙원에서 들리는 소리는,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물 한 방울에 매달릴 만큼 뜨거운 불길 속에 죽지도 못하고 목마른 고통을 당한다면 이는 너무나도 처참한 상황 아닙니까?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죽은 자의 그 간절한 소원이 일체 거절되고 있습니다. 그 한 방울의 물도 허락되지 않을 뿐더러 음부와 낙원을 서로 오갈 수 없도록 큰 구렁이 가로막고 있다고 했으니 이는 더 이상의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부자가 있는 음부에서 나사로가 있는 낙원까지 건너올 수 없다는 절망의 대답은 죽음 후에는 구원의 기회가 전혀 없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육체를 지니고 있을 때에 구원의 기회를 얻도록 힘써야지 사후에는 더 이상 구원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마 25: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③지상의 가족을 전도하여 달라는 소리입니다.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부자가 세상에서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였습니다만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다 일장춘몽이요 부질없는 헛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이제 자기 형제 다섯 명만이라도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나사로에게 잠깐만 낙원을 벗어나 자기 집에 가서 전도하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만 낙원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부자의 청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자로 살다가 지옥에 온 이 사람이 생각할 때는 죽었던 자가 잠깐 나가서 전도하면 다섯 형제가 모두 믿고 이곳에 오지 않을 것같이 여겨졌기에 이러한 청을 하였습니다.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 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그러나 31절 말씀에 의하면,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고 선언합니다. 여기 모세와 선지자들이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말하는데 성경을 통해 믿지 않으면 아무리 이적이 일어나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라도 허사라는 말입니다. 또한 이적을 보고 믿는 사람은 이적 떠나면 역시 떠나고 맙니다.
요 0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인생이 무엇입니까? 아침 이슬과도 같은 존재이며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 아닙니까?(약 04:14) 우리 모두가 짧은 인생을 후회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삽시다.
4.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생활하였던 부자가 왜 지옥에 갔습니까? |
우리는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날마다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살던 부자가 왜 지옥에 갔습니까? 부자가 지옥에 간 것은 사실이나 부자로서 생활한 그 이유 때문에 지옥에 간 것은 전혀 아니며 또한 성경의 정신에도 맞지 않습니다. 지옥 가는데 있어서 물질의 부유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또한 나사로가 천국에 간 것도 역시 가난하였기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①부자는 메시야를 바라보는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창 03:15절에서 나타내 보인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를 바라보지 못하고 생명 길에서 이탈하여 살았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겁니다. 이 사람도 이스라엘의 사람입니다만 그러나 이스라엘의 메시야 정신을 망각하고 살았습니다.
창 0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②부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눈이 감겼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가는 생활의 초점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 곧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삶,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었습니다.
신 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그런데 이 부자는 자신만 알았지 대문간에서 걸식하며 지내는 환자,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나사로를 구제의 눈, 사랑의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대문간을 출입하면서 이웃사촌인 나사로의 모습을 그저 무관심하게 보아 넘겼으며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면서 쫓아내라고도 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삶의 스타일이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산 것 아닐까요?
부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이 자기만의 향락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으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가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상전이 배부르면 종들의 배고픔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 사람도 자신의 부유함이 그의 눈을 가려 자기 집 대문 앞에 누워 지내는 거지 나사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나사로를 바라볼 때 그냥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로만 생각했지 자신이 그를 돌아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겁니다. 생각만 하면 무엇 하며 동정심을 가지면 무엇 합니까? 자기는 화려한 옷을 입고 친구들과 잔치를 벌이며 인생을 즐기면서도 나사로가 배고파하고 온 몸이 헐어 개가 핥아먹고 있는데 그것을 더럽게만 보았지 그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를 못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부가 그의 눈을 감겨 버렸고 그의 집에서 울려나는 풍류소리가 나사로를 돌보아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삼켜 버렸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은 이 사람처럼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거부가 아니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비유를 통하여 주님은 적당하게 풍요와 쾌락을 즐기며 자기만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닫힌 인생들, 나눔이 없는 삶을 사는 자에게 베풂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주변에는 굶주리며 신음하는 이웃은 없습니까? 우리가 돌보아야 할 나사로는 현실의 바로 지금 누구입니까?
저 북녘 땅에는 수백 만 명의 어린이와 동포들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고 하며 지금 우리 곁에는 실업대란과 경제적 한파로 생존권의 문제로 신음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③부자는 남다른 부를 가지고도 감사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렇게 많은 부를 가지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으며 본문 어디에서도 감사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학 02:0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이 주셔야만 있으며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벌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그것은 나의 소유물로 자리 잡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소유한 부에 대하여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자세가 전혀 보이지를 않으니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드려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어떤 것을 소유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로 받아 드리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염려와 욕심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고후 09:0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④사후의 일에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잘 사는 것만 생각했을 뿐 내세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그에게 관심거리가 있다면 어떤 옷을 입을까? 어떤 음식을 먹을까? 내일은 어떤 잔치를 베풀까 라는 육적 생활의 요소들이었으며 또 그것이 유일한 흥밋거리였다고 느껴집니다(19).
사실 땅 위의 육신적 쾌락의 일만 생각하면 곧 가게 될 내세에 대해서는 심령이 무디어져 하나님도 믿음도 사라져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지옥에 갔다는 것은 죽음의 문제 장래의 문제에 대해 관심 없이 그저 세상 재미에만 빠졌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현실의 우리의 주변에도 빠진 자가 많지요. 돈에 빠진 자, 부귀영화에 빠진 자, 춤, 도박, 마약, 여자, 세상 향락에 빠진 자가 많은데 이러한 것에 우리도 마음을 빼앗기면 생명의 주인 되신 주님을 모실만한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결국 부자는 하늘가는 길을 저 버렸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땅 위에 살 때에는 아무에게도 아쉬운 소리 한 번 해 본 적이 없던 그가 가난이 무엇인지 모른 채 능라주단(綾羅綢緞)으로 몸을 감고 장구 소리 꽹과리 소리가 자기 집에서 그치지 않았지만 잠시 후의 생이 이렇게 바뀔 줄이야 어디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
인생에게 있어서 세상의 일도 중요하지만 장래 일은 더욱 중요하며 사람이 장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정말로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시 103: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전 07:0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여기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온 인류가 가고 있는 두 가지의 길을 예로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야 할 말씀입니다.성도 여러분! 우리의 문제도 죽음 이후의 일입니다. 사는 것이 어렵기는 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지만 죽음 이후에는 우리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세를 부정하며 생활했던 어리석은 부자처럼 현실에만 마음을 빼앗겨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사후의 일을 미리 관리를 잘하십시오. 영원히 고통스러운 장소 괴로움과 고통만이 있는 유황불의 뜨거운 불 못에 들어가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신앙의 재출발을 다짐하여 인생 관리를 잘하도록 합시다.
어차피 우리 인간은 때가 되면 다 세상을 떠날 것이며 내가 내일 살아 있을 것이라는 것도 때와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불확실성 속에 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확실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집 곧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는 것입니다.
고후 05:0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현실에도 무수한 부자와 나사로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낙원 아니면 음부라는 영원한 처소를 향해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처소 주님과의 영원히 거할 처소가 예비되어 있습니까? 그날은 나에게 순식간에 다가올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마 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요 0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16) 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을 따라가면 마침내 구원의 길, 구원의 진리, 구원의 생명을 잃지 않습니다. 본문을 살펴볼 때 나사로의 이름은 나오는데 부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잖습니까? 이름이 없어서 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거지는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서 성경에 나오는 것이고 부자는 불신으로 구원받지 못해서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겁니다. 그러나 전설에 의하면 이 부자의 이름은 다이브스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다이브스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요약한 후 그 삶의 결과를 우리에게 소개하는 겁니다. 다만 오늘은 부자로 삶을 살았던 다이브스는 돈이 많은 사람을 대표하기보다 세상 살기가 너무 좋아 하나님을 모실 수 없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부자로 살았던 사람이 음부의 세계에서 지금도 계속 탄식하는 소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껄 껄 껄의 신음 소리입니다. 어떻게 들리는지 한 번 들어볼까요?
①이럴 줄 알았으면 하늘가는 길을 찾았을 걸. ②진작 메시야를 믿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살 걸. ③이런 세계가 있는 줄을 알았으면 나사로에게 먹을 것을 줄 걸. ④그랬으면 지금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실 수 있었을 걸. ⑤내 형제 다섯을 진작 전도할 걸.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지옥의 현장을 살펴보는 오늘의 말씀에서 들려오는 부자의 고통스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의 귀가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찰스 스펄젼 목사님은 하나님의 달력은 오늘이요 마귀의 달력은 내일이라고 했습니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어느 한 장로님이 연세가 드셔서 운명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꿈을 꾸다가 그만 천국과 지옥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온 장로님은 놀래서 많은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특히 목사님께 잘못한 것 같아서 목사님을 찾아뵈어 용서를 구하고 그리고 목사님과 화해를 하였습니다.
장로님은 꿈 이야기를 목사님에게 하였더니 잠시 후에 목사님께서 그 장로님을 서재로 부르시고는 심각하게 묻더라는 것입니다. 장로님! 정말 천국이 있기는 있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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