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8년 말씀

➂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시 23:04~0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8. 11. 2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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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둘째 주일에 이어 말씀을 드립니다.

 

 

6. 여호와는 원수의 목전에서도 내게 상()을 차려주십니다.

 

0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05절은 원수의 목전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신령한 만족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부르는 찬양의 절정입니다.

이제 이런 의인의 즐거움과 만족 그리고 원수의 목전에서조차 평안함과 기쁨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살펴보겠습니다.

 

①0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베푸시고(עָרַך 아라크). 미완료 시제로 과거로부터 지금도 계속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앞으로도 베풀어 주실 것을 기대하는 고백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그 옛날 목동 시절 자기가 경험한 여러 일을 머릿속에 떠올립니다. 이제 시의 무대를 푸른 풀밭 들판에서 집으로 옮겨옵니다.

 

목자는 주인으로 양은 손님으로 그 배역을 바꿉니다. 동방의 풍습 그대로 주인은 손님을 환대합니다. 손님은 주인에게 영접받는 순간 주인과 동격이 됩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신다는 뜻은 원수를 물리쳐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아직도 그분을 만나지 못하여 외롭게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힘을 내십시오.

 

오늘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만나십시오. 어떤 고난의 환경이라도 말씀의 막대기와 성령님의 지팡이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마침내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는 여름에는 양떼를 고원 지대 산간 목장으로 인도합니다. 가기 전에 목자가 양들이 마음껏 먹고 마시며 쉴 수 있는 지형을 익혀 놓습니다.

 

물웅덩이를 파고 청소하여 독초를 제거합니다. 야영지를 설치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목자의 바로 이런 수고를 상을 차려주시는 일로 이해하였습니다.

특히 목자는 독초를 뽑는 일에 각별하게 신경 써야 합니다. 캄마스라고 하는 흰색의 풀은 양이 뜯어먹으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 독성이기 때문입니다.

 

②05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여기 기름은 잔치 때에나 사용되는 향유입니다. 귀족들 특히 왕실에서 지체 높은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귀중품입니다.

귀족들은 잔치에 참여할 때 이 기름을 머리나 수염 등에 바릅니다. 특별히 귀한 손님이 집에 오면 주인은 친절과 호의의 표시로 머리에 기름을 붓기도 합니다.

 

눅 07: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셨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크게 높이심에 대한 감사의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귀한 자로 인정해 주시는 은혜의 손길입니다. 목자는 일 년 중 특별히 여름 한 철에는 양들의 머리()에 때로는 기름을 바릅니다.

 

여름은 파리의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기후와 함께 많은 해충이 출현하여 가축을 괴롭힙니다. 때로는 양들의 목숨까지도 잃게 합니다.

그 기생충은 말파리, 코파리, 각다귀, 모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해충들이 양떼를 공격할 때는 황금의 여름을 고통의 계절로 바꿔 놓기 쉽습니다.

 

양들은 특히 코파리에 의한 공격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이 코파리가 양의 축축한 코점막에 알을 낳으면 이삼일 후에 가느다란 유충이 생깁니다.

이것이 마침내 콧구멍을 뚫고 들어가 자극을 줍니다. 그 고통으로 인해 양들이 더러는 죽습니다양들은 이런 코파리 공격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그러면서 서로 부딪쳐 뿔에 상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목자들은 이때 양들의 코에 기름을 발라 코파리가 접근 못하도록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양들이 안심하고 풀을 뜯어 먹습니다. 편하게 지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영혼을 해치며 괴롭히는 코파리와 같은 사탄의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기름 부음과 같은 은혜가 늘 유지되어야 합니다. 기생충으로 고통을 당하는 양들이 목자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우리를 해하려는 악의 세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변 안전까지 보장받아야 합니다. 이런 일은 목자 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요 사랑입니다. 원수가 우리를 덮쳐들 듯 것 같은 위기와 공포가 옵니까? 그럴지라도 우리를 위하여 상을 차려주시는 하나님의 보호 때문에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③05 ….내 잔이 넘치나이다.

 

잔은 기업을 비유한 말입니다(16:05). 이런 잔이 단순히 가득 찬 정도가 아니라 흘러넘칩니다. 이는 다윗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여유로움을 뜻합니다.

 

시 16:0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실제로 그가 차지한 왕실의 재산과 사유 재산은 엄청났습니다(대상 27:25~31, 29:02~05). 그러나 다윗은 풍성한 재물을 하나님의 전(殿)을 건축하는데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심과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는 하나님의 은혜는 잔이 넘치는 것과 같은 만족을 누리게 합니다.

세상 사람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므로 참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 때문에 잔이 넘치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은 신령한 구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잔이 넘칠 때까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어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여야 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 퍼주고 또 퍼주어도 마르지 아니하는 복을 받읍시다.

 

눅 06:38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7. 평생에 임마누엘의 복이 따릅니다.

 

0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다윗은 언약을 지키시고 풍성한 기업을 주신 하나님으로 인해 복 된 생애가 펼쳐질 것임을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삶의 마지막까지 이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이런 믿음이 진정한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밀려온 모든 현장이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의 손길 아래서 진행되었음을 알았습니다. 한때는 대적들로 인해 낙심될 정도의 아픔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기를 돕고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기에 넘어지지 않았습니다인생의 모든 환경은 그분의 섭리 속에서 진행됨을 보며 날마다 감사의 생활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운은(down) 되어도 녹다운(knock down)은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돌아봅시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화려한 경력도 있지만 말할 수 없는 고통의 현장은 셋째아들 압살롬의 반역입니다.

 

다윗이 근동 지방에서 영향력 있는 실세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낳은 아들에게 쫓겨 예루살렘 궁을 떠날 때는 초라한 군주로 추락하였습니다. 당시의 가슴 아픈 한 장면을 보겠습니다.

 

삼하 15:30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 가니라.

 

다윗은 이런 분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그의 정신과 육체는 실신 상태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믿고 나아가니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시편 23편을 맺습니다.

 

06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은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 성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본 구절은 이보다 더 깊은 신령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이 영원히 성소에만 앉아 있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더욱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의 자리에 들어가겠다는 각오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01).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06). 라는 고백이 얼마나 아름다운 승리의 표현입니까?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는 말은 이 세상의 삶 이상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를 내다보고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적인 삶에 자기의 에너지를 드리겠다는 고백입니다.

 

김삼일 가족의 삶과 소망도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런 신령한 은혜와 복을 잘 유지하기 세밀한 신앙의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떠나 사는 곳에는 일이 형통하는 것 같으나 불통합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의 삶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전을 떠난 삶이 생활화되면 그때는 믿음이 시들어 죽어가는 때임을 기억하십시오. 엘리 대제사장의 말년을 기억하십니까?

자식을 애지중지하여 방관한 삶은 가문의 패망이고 국가의 패망이었습니다. 마지막은 이가봇의 비극을 거두고 말았습니다(삼상 01~04).

 

시 27:0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65:0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