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8년 말씀

<추수감사>하나님 참 감사합니다.(고후 09:06~1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8. 11. 1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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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일을 하는 부부가 아침에 함께 차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을 하는데 아내가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 전기다리미를 안 끄고 나온 것 같아요. 그러자 남편은 놀라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는데 집에 가보니 전기다리미는 꺼져 있었습니다. 다음 날도 아내는 남편과 함께 한참 차를 타고 가다가 여보, 오늘도 전기다리미를 깜빡 잊고 끄지 않은 것 같아야 하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귀찮고 짜증이 났지만, 불이 날까 봐 겁이 나서 집으로 차를 돌렸으나 하지만 이날도 전기다리미는 꺼져 있었습니다. 다음날, 차가 출발한 지 10분쯤 지나자 아내가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보, 전기다리미를 끄고 나왔는지 안 끄고 나왔는지 통 기억이 안 나요.

남편은 차를 도로변에 세우고 트렁크를 열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여기 있다. 전기다리미.

 

건망증이 상당히 심한 사람이죠. ,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감사하다가도 금방 잊어버리고 원망과 불평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인생길을 가다 보면 평탄한 길이 나타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광야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가는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우리는 삶의 시각을 조금만 더 긍정의 생각으로 바꾸면 얼마든지 승리의 삶, 풍요로운 삶, 행복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 교회는 다음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2008년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그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여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주일입니다. 믿음으로 동참하시는 분께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따를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1. 김해삼일교회 성도는 즐거운 감사를 하여야 합니다.

 

0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여러분이나 저나 이 말씀을 대하면 늘 부담스럽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인색함이 없는 예물을 즐겁게 드리라는 명령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드리는 일에 인색함과 억지를 버리라는 말씀을 들으면 왠지 부담도 옵니다

감사를 생활화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더욱 기가 죽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드리는 일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간에 조건 달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강도 높은 감사의 메시지를 받으면 가책받지 아니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마 그 가운데 목사인 제가 가장 많은 가책을 받을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지 못할 때가 자주 있고, 즐겁게 드려야 함에도 환경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항상 감사하십시오. 하며 언제든지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색함 없이 기쁨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령 젊은 나이에 깊은 지병을 안고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치료보다는 오히려 병은 점점 더 깊어갈 때 과연 그 입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아니면 무거운 십자가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어린 장애인 자녀로 인해 씨름하는 부모님의 입에서 제대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혹은 이력서를 수십 통 써 다니면서 취업하려 하나 회사에서 면접 한 번 제대로 못 본다면 그 입에서 과연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더 나아가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정말 감사하겠느냐 말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이런 현실에서 이 말씀을 대한다면 아무래도 범사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의 생활을 한다는 것이 현실성 없는 이상론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은 적당히 보고 넘어가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비현실 말씀처럼 혹은 이상론처럼 여겨진다고 적당히 보고 넘어간다면 괜찮은 일이겠습니까? 아무래도 아닙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성경의 말씀은 육신의 관점에 볼 때 비현실과 이상론처럼 보일 뿐이지 영의 차원에서 보면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05:20)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세상의 죄악에서 건져주신 구세주 때문에 혹 세상의 것을 다 잃어버릴지라도 예수님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0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왜 우리가 범사에 항상 감사합니까? 천지 만물의 주인 되신 전능자 하나님께서 항상 감사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것은 비현실의 일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라며 회피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 그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붙드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우리 가정에 베푸신 은혜, 가족에게 건강을 허락하신 은혜가 얼마나 귀합니까? 물론 이 자리에 계신 우리 가운데 개인별로는 슬픔과 고통과 고난을 겪는 분도 있습니다. 사업의 부진으로 힘들게 지내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08:28)는 지금의 아픔이 지난 후 크게 유익하게 해 주실 줄 믿으십시오.

 

우리 김해삼일교회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아픔의 순간들도 많았고, 속깨나 썩이는 분들로 인해 상처의 부분들이 상당 부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에 얽매여 괴로워하기보다는 믿음으로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그 아픔들이 치료될 것입니다.

저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우선순위에 두고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을 보니 금년 한 해야말로 가장 복 된 한 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금년의 추수감사 주일에 우리의 힘을 결집하고 또 GUP 30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127일 설립 기념 주일에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기를 소망합니다.

 

 

 2.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어디에 근거해야 합니까?

 

0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의 생활은 그 자체가 항상 감사의 연속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구원의 감격이 사무쳐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의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를 표현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으며 그 감사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울이 감사하는 조건은 환경의 요소가 아니라 신령한 요소에 있습니다. 자기 속사람을 하나님과 어떻게 영의 교제를 나누느냐? 에 두었습니다.

자신의 처한 환경이나, 건강이나, 가정이나, 재산이나, 명예나, 지위나, 성공이나 이와 같은 것들을 가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야만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바울은 세상의 좋은 환경이나 평안한 생활 때문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고후 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은 로마에서 대부분 감옥에 있었으며 핍박과 환난과 고난의 생활로 점철되어 있음에도 감사의 생활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육신이 건강하면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만 이렇게 병들고 몸이 괴로운데 무슨 감사를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또 사업이 잘되어서 많은 흑자를 내었으면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지만, 사업이 그만 부진하여서 큰 손해를 보았는데 무슨 감사를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말을 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바울의 감사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의 몸이 건강해서 혹은 사업이 잘되어서 감사의 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고후 12장에 보면 오히려 그의 육체 가운데 찌르는 사탄의 가시가 있다고 고백한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래서 이 육신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가 어떠한 응답을 받았습니까?

 

고후 12:0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0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0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 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바울은 건강하기 때문에 감사와 기쁨의 생활을 한 것은 아닙니다. 육신으로는 오히려 건강이 여의치 못한 처지였으니까요? 물론 우리 몸이 건강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한, 우리 가정이 다 평안하다면 더욱 좋은 일이며, 평안하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정에 베푸신 큰 은혜요 복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바울의 경우는 독신의 은사를 받아 일생을 홀로 지내다 보니 이 가정에서 오는 아늑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복음의 순례자로서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평안히 쉴 곳이 없는 생활을 하였음에도 감사가 떠나지 않은 것은 세상 환경의 조건을 감사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줄로 믿을 때 감사가 나옵니다.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를 마치고 고린도에 전도하러 갔을 때 그곳에는 죄악의 세력이 강성하였고 전도할 기회도 무척 많았습니다. 반면 강렬하게 대적하는 유대인들로 인하여 바울이 복음의 상당한 위축을 느끼고 있을 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0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이후부터 바울은 어떤 상황을 만나도 복음 전하는 일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다면 세상의 풍랑도 핍박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의 환경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풍랑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고 그 풍랑 속에도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43:0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0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지금의 경제가 우리에겐 지난 시절 IMF에 따르는 정도로 대단히 힘겹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기업들이, 사업들이 대단히 위기를 겪습니다. 이럴 때 우리 믿음의 가족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힘차게 찬양을 합시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마음을 크게 넓힙시다. 부드러운 심령을 가집시다.

성도 여러분! 감사는 +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복이 더해지고 원망과 불평은 -와 같아서 이미 가진 것까지 없어집니다. 힘들수록, 어려울수록 더욱더 애써 감사할 거리를 찾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많은 감사할 거리가 생기고, 감사할 일이 생기고, 복이 많아지는 기적을 체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불평의 일에 대해서는 과감히 입을 닫을 줄 아는 결단력이 있습니다.

 

감사와 불평의 공통점은 하면 할수록 더욱 불어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불평은 하면 할수록 더욱더 불평의 일이 쌓여갑니다. 반면 감사는 고백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과 복이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것 말입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복은 감사할 때까지 복이 아님을 아시지요? 감사는 마음으로 표현하고, 행동으로도 표현하여야만 진정 감사가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John Newton(영국 1725~1807)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젊은 시절 방탕하였던 삶을 살다가 나중에는 노예 무역선의 선장까지 한 극악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대상 17:16~17절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늘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그 은혜 너무 감격합니다. 하며 그 감격으로 주를 찬양하는 중에 찬송시를 썼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305장입니다.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아멘.

 

성도 여러분, 가끔은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불평할만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연약한 사람끼리 모였으니 능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 거리 때문에 감사할 거리를 잃어버리고 불평 공장을 가동하지 맙시다

왜 많은 사람이 감사의 생활에 접근하지 못합니까? 다른 사람의 환경과 비교하여 자신의 약한 모습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당면한 고난의 문제가 아무리 크게 보여도 그러한 것들 때문에 감사의 제목이 가려진다면 결국은 나만 신앙의 손해를 입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환경이든지 감사의 마음으로 보면 그 심령에는 천국이 펼쳐질 것이며, 불평의 마음으로 보면 그 심령은 고통과 불행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 50개를 선별했는데 그중에서 댕큐가 28%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감사가 몸에 배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증거입니다. 성인이 되면 평균 26,000개의 단어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중에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최고의 언어가 감사합니다. 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언어도 감사합니다. 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에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결단을 합시다.

 

0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