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8년 말씀

②노아처럼 말씀에 순종합시다(창 06:11~22)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8. 11. 29.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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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살래? 여왕으로 살래? 어디서 한 선전 같습니까? 그 광고 글 아래 보니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곽앤지 성형외과. 궁금하신 것이 있으세요. 여러분의 궁금증에 대해 진솔한 상담을 해 드립니다.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가지요?

성형수술로 얼굴에 공사를 하면 여왕이 되고 자연 그대로 얼굴을 내버려 두면 별로 볼일이 없는 여자가 된다는 이런 내용입니다.

과연 그런가요? 성형수술이 정말 그렇게 되느냐 말입니다. 사람이 작업한 얼굴이 그 인생을 결정한다면 인생 루저 모두가 공사한다고 야단일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외모를 비롯한 외적 요소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마음입니다.

좀 더 넓게 이야기하면 내 앞날을 결정하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나의 속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는 데 있다는 말입니다.

 

삼상 15장에 보면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을 사울 왕에게 전할 때 아말렉의 모든 것을 다 진멸시키라고 명한 일이 있습니다(삼상 15:09).

그런데도 사울 왕은 살진 양과 소를 남겨 놓았습니다. 이유는 그 좋은 것들을 죽이는 일은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의 물욕으로 인한 불순종은 사울 왕에게는 죽음의 덫을 놓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후회와 사무엘 선지자의 근심거리(삼상 15:11)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순종이야말로 우리의 믿음을 가늠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입니다. 오늘 말씀은 노아의 신앙 행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019일 말씀에 이어 노아처럼 말씀에 순종합시다(2).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강론하겠습니다. 함께 은혜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죄악의 종착점은 멸망입니다.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세기 06장은 그 시대 다 사람이 다 죄악으로 기울어졌음을 확인해 줍니다. 동시에 노아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여시려고 준비하십니다.

13절 마지막 부분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죄악의 종착점은 멸망임을 안내합니다. 그러나 멸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함께 깨끗한 세상, 정결한 미래를 여시겠다는 사인(sign)을 주십니다.

 

성경은 미래에 관해 기록한 책입니다. 우리에게는 과거의 역사이지만 그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미래를 디자인하고 새로운 세상을 새롭게 살 있게 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앎으로 미래를 볼 수 있고 미래에 대한 경고를 통해서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미래를 예비하게 하신 것은, 그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 기회입니다.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였음에도 바로 심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노아를 통해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도록 백 이십 년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06:03).

 

그런데 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을 그 시대 사람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데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근심은 멸망과 심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창 06:0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0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11절을 보시면 포악(暴惡)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를 특정 지우는 단어입니다. 사회 곳곳이 폭력이라면 이는 무법천지라는 뜻입니다.

무법천지는 심판이 답이고 포악의 결과는 곧 죽음입니다. 멸망의 심판은 하나님의 인내 유효기간이 끝날 때 진행됩니다. 인내의 끝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오래 기다리겠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은 새 언약의 시대인 오늘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랑의 인내 한계점에 왔습니다. 사랑의 경고가 길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합니다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믿고 행동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회를 구약 성경 전 07:23을 인용하여 의인이 없는 사회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롬 03:10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오늘 세상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노아 시대처럼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계획들이 항상 악하다고 진단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부패하여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를 심판하신 것처럼 지금의 세상도 또 한 번의 심판을 계획하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06:23).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각자 행한 일에 대하여 선악 간에 심판받습니다. 하나님은 심판 이전에 경고를 먼저 하십니다. 심판은 마지막 선택입니다.

 

 

2. 심판 속에도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께서 노아를 향하여 방주를 건조하라고 명하시는 이 말씀을 먼저 몇 가지를 전제하고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방주는 미래에 도래할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함. 노아가 구원의 방편으로 방주를 건조하였듯이 예수님도 역시 구원의 방편으로 교회를 건설하심.

노아의 방주가 완성될 때 종말의 심판이 왔듯이 예수님의 교회가 완전히 세워지고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질 때 심판의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방주(方舟)는 앞서 말씀드릴 때 운전되어 가는 배가 아니라 물 위에 떠 있기 위한 하나의 수상 건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방주의 재료는 잣나무입니다. 겉은 역청을 칠하여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수 처리하였습니다하나님의 세밀한 설계도를 따라 건조되었기에 안전합니다.

 

통상의 의미에서 사용되는 배가 아니라 물 위에 뜰 수 있는 역할만 하면 되었습니다. 즉 하나의 큰 궤()입니다. 급하게 항해할 이유도 없기에 그저 물에 떠 있으면 되었습니다.

홍수 심판 가운데서도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예비 되었습니다. 그 기능에 있어서 신약 시대의 교회(敎會)에 자주 비유됩니다. 그 기능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규빗을 45cm로 계산할 때 방주의 규모는 길이 약 135m, 폭이 약 22.5m, 높이 13.5m입니다. 3층 규모에 중량이 약 14,000t 정도 된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당시 선박 건조 술이 크게 발달하지 못했고 동원 인력도 8(?)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 큰 방주를 건조할 수 있었습니까?

 

지난번에 노아에 관하여 바벨론 전설을 말씀드렸죠? 노아는 한 성읍의 주권자로서 상당한 인품의 사람이었으며 또 노아가 자기 사재를 틀어 방주 건조에 많은 사람을 동원하였다고당시 포악한 사람들이 심판의 방주를 만드는데 협조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노아가 소유한 재산을 구원의 방주를 만드는 비용으로 넉넉하게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많은 사람이 방주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면서도 노아 할아버지는 정신 이상자라고 놀리며 뒤에서 수군거리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오랜 세월을 인내하면서 홍수 심판을 대비하여 구원의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복음 전파와 물질을 투자한 노아의 신앙이야말로 매우 가치 있는 삶 아닙니까?

 

마 0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생명을 구원받았던 것처럼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영생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구원의 문은 아직은 열려 있습니다.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 층으로 할지니라.

 

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방주의 설계와 디자인 가운데 아주 묘한 것은 창문의 모양입니다. 대부분 창문은 옆에 붙어 있잖습니까?

그런데 방주는 창문 설계가 위를 향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창문을 위쪽에 내서 왜 밖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까? 갑갑하게 말입니다.

,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홍수가 진행되는 동안 지금 밖에는 시뻘건 홍수가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동물이 죽어 사체가 물 위에 떠다닙니다. 이때 노아가 사람과 짐승과 새의 사체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본다고 합시다.

 

그 흉측한 모습을 창문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에게 이런 흉한 장면을 보지 못하도록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대신 3층의 높은 창문을 통해 40일 동안 죄를 향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은혜를 무한히 느꼈을 것입니다.

이후 맑게 갠 하늘의 태양을 바라보며 감격의 찬송을 불렀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받은 자의 신앙 자세입니다. 신앙이란 위를 바라보고 위의 것을 찾습니다.

 

골 03:0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0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믿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 복음이 너무 독선이고 배타적이라며 비판합니다. 어째서 구원의 문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느냐고 항의합니다.

반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문이 하나라도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심판으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구원의 문이 하나라도 있으면 복 중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요 사랑의 증거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면서 세상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심판이 눈앞에 다가왔다. 회개하라. 방주 안으로 들어와야 산다(벧후 02:05).

 

노아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방주 안에 있느냐? 방주 밖에 있느냐? 입니다. 거기에 따라 심판과 구원이 결정되었습니다.

노아가 세상 사람에게 방주로 들어와야 구원받는다고 외쳤듯이 우리도 죄 가운데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향해 외쳐야 합니다.

 

세상 그 어느 이름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우리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04:12).

이 외침이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다고 전해야 합니다(04:06).

이 일은 주님 나라에 가는 동안 우리 모두 전해야 할 복음의 사명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사명을 심령에 세기는 데 있습니다. 평생의 사명으로 받는 데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22 노아가 그와 같이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다 준행하였더라. 120년 세월을 통하여 이룬 순종입니다. 노아의 인내와 믿음과 소망이 하나로 응축된 구절입니다. 심혈을 기울여 방주를 짓는 동안 세상 사람은 노아에게 갖은 조롱을 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믿음 없는 소리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약속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구원의 방주를 잘 예비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였습니다(02:17). 그 결과 자기와 가족과 각 짐승을 보존하여 후세에 번성하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이는 우리도 잘 감당해야 할 자세입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온전히 준행하는 삶을 잘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말씀에 순종하는 삶 말입니다. 110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히 01:0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특별히 이번 gup 30 기간 동안 어둠 가운데서 헤매는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이 땅에 예수님의 문화를 잘 심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노아 시대와 같은 냉담한 반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한 생명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영혼 구원 사역에 믿음으로 동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