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6년 말씀

[어린이주일] 예수님은 어린이를 귀하게 보십니다(마 18:05~1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6. 5. 2.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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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앤아이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는 불편한 두 가지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인구 절벽이라는 거대한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안에서 점점 무너져 가는 교회학교의 모습입니다. 두 가지 다 고민거리입니다.

성경은 다음 세대를 놓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라고 명했습니다(새번역 06:06~07).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교회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인구 절벽은 단순히 사회 위기가 아닙니다. 다음 세대를 잃어버리는 영적 위기입니다. 교회학교라는 한 기관이 무너지는 것보다 믿음의 계승이 중단되는 일입니다.

 

교회의 미래가 흔들린다는 뜻입니다. 지금 세대를 붙들지 못하면 다음 세대는 교회를 기억하지 못하는 충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교회 학교를 세워야 합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일수록, 한 영혼이 더욱 소중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영혼입니다( 16:26).

한 아이의 믿음이 교회의 미래를 세울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향해 믿음을 계승시키는 일에 우리 모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6년 어린이주일입니다. 교회마다 교회 학교 운영을 놓고 근심 중입니다. 아이들이 없어서 중단해야 하는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아이들 숫자가 적어서 운영에 지장을 겪습니다. 이럴 때 우리 믿음의 가족은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까?

오늘 어린이주일을 통해서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하여야 할지를 하나님 말씀으로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예수님은 어린이를 귀하게 보십니다.로 정했습니다.

 

 

1.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자기의 대리자처럼 예우하십니다.

 

0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어린아이를 예수님처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가장 보호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어린아이를 사랑의 눈으로 보는 자세가 예수님을 향한 자세입니다. 이 의미를 좀 더 넓게 신령한 의미로 적용해 봅시다.

어린아이는 예수님 대리자.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러 주석가가 05절의 어린아이 영접하는 일을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로 간주합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한 일을 자기에게 한 일로 여기십니다. 어린아이는 예수님을 연결하는 존재요 예수님 쪽으로 나아가는 접점(接點)인 줄 아십니까?

그런 면에서 어린아이를 환대하는 일은 단순한 베풂이 아니라 예수님을 환대하는 일과 같습니다. 마가복음 09:37에서는 이 논리가 더욱 분명합니다.

 

막 0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05절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유대와 헬라 세계의 사자(使者) 개념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파송-대리 구조 말입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일이 그리스도에게로, 그리고 하나님께로 이어지는 대표성 사슬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직접 예수님을 대신하는 공적 대리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작고 약한 존재를 통해서 자기를 만나는 통로로 열어 주십니다.

따라서 어린아이는 예수님 임재를 드러내는 귀한 존재입니다. 어린아이를 환대하는 일은 예수님을 환대하는 일이 됩니다. 반면 어린아이를 멸시하면 예수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일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입니다. 반면 어린아이를 무시하는 일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린이의 인권을 옹호해 주는 엄청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 모두 다음과 같은 다짐을 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눈높이를 어른의 관점이 아닌 어린아이의 높이로 맞추는 발상의 전환 말입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합니다.

더욱 어린아이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예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심어주는 일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어린아이에게 꼭 필요한 믿음의 본을 보여줍시다. 경건의 모습과 말씀을 가까이하는 모습과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줍시다. 경건한 일꾼을 양성합시다. 세상에서 어린이에 대하여 제도를 제일 잘 만들어 놓은 나라가 있습니다.

미국입니까? 아닙니다. 유럽 선진국입니까? 아닙니다. 대한민국입니다. 그 이유는 어린이날을 만들어서 시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권이 발달한 여러 선진국에도 어린이날은 없습니다. 대단한 배려입니다. 그만큼 어린아이에 관하여 관심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교육은 갈팡질팡합니다. 그럴수록 교회가 깨어서 다음 세대 교육을 잘하여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다음 세대를 천하보다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날의 참된 의미는 어린이를 위한 날이기도 하지만 실제는 우리가 잘 못 교육한 일에 대한 경고의 날입니다. 자녀를 잘 양육하는 일은 전적 부모님의 책임임을 명심합시다.

 

 

2. 어린아이를 실족시키면 큰 심판을 받습니다.

 

0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06절을 얼핏 들으면 다소 무섭게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 죽는 것과 같은 말씀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 담긴 예수님의 사랑은 어린아이를 향한 깊은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05절의 어린아이와 06절의 작은 자가 누구인지를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05절의 어린아이(παιδίον 파이디온)는 말 그대로 나이가 어린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어린아이 특징을 천국 백성의 모습으로 비유하십니다. 즉 이런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겨 잘 받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06절의 작은(μικρῶν 미크론) 자는 작다는 뜻의 형용사 μικρός의 복수 소유격 형태입니다. 작은 자는 05절의 어린아이와 연결되어 여러 의미를 나타냅니다.

신앙 면에서 아직 믿음이 굳건하지 않은 연약한 사람, 사회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소외되거나 힘없는 사람, 아직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두 단어를 정리하겠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린 자체를 말합니다. 어린 만큼 순수함과 연약함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작은 자는(μικρν)는 어린아이가 가진 작음과 함께 연약함, 겸손함, 낮은 위치 등을 가진 사람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입니다.

 

따라서 어린아이는 작은 자의 한 부류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작은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봅시다. 물론 여기에는 어린아이도 포함되지만,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고 작은 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작은 자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 아직 신앙이 깊지 않아 잘 흔들리는 사람, 예수님을 믿기는 했지만, 아직 신앙의 뿌리가 깊지 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실제 어린아이가 넓게는 문자적 아이로만 보지 않습니다. 작은 자는 예수님의 눈에 귀하게 여겨지는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한 절기 어린이주일은 가장 순수하고, 연약하고 아직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우리의 아이들로 연결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린아이 비유를 왜 들려주십니까? 여기서 어린아이는 단순히 나이가 어린 존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장의 흐름을 보면 어린아이는 겸손한 자, 하나님께 기대는 자, 사회에서 힘이 없는 자 즉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 속에서 가장 작아 보이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이런 작은 자를 실족시키면 예수님께서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 죽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이 부분에 대한 문장을 잘 보아야 합니다.

 

실족하게(σκανδαλίσῃ 스칸달리세). 하는 일은 넘어지게 하다, 실족하게 하다, 죄에 빠뜨리다(σκανδαλίζω) 등의 가정법 형태입니다.

즉 누군가 실족하게 하는 일을 벌이는 행위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함정에 빠뜨리고 죄의 길로 유인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무너뜨리면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연자 맷돌은 곡식을 빻을 때 사용하는 아주 크고 무거운 돌입니다.

이것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지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극단의 비유를 통하여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눅 18:16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3. 어린아이를 아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구약시대에는 한 가정을 다스리는 가장의 재산 목록에 어린아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혹 가장은 가족을 노예로 파는 일도 하였습니다. 또 자녀가 태어나면 아버지 발밑에 놓아두고 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는 일도 하였습니다.

인권이란 단어가 없던 그 옛날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10절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삼가로 시작하는 문장구조를 보십시오. 문장 첫머리 삼가는(Ὁρτε 호라테) 현재 명령형으로 단순히 보라. 이런 의미보다 주의하라, 계속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업신여기지 말라. 이 문구도 보십시오. 예의를 잃는 정도가 아니라 가치를 깎아내리고 무시하는 태도를 하지 말라. 이런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깊은 뜻은 작은 자들 즉 소외된 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 이런 뉘앙스가 아닙니다. 저들을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유앤아이교회 가족 여러분, 어린아이에 대하여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먼저 하나님께서 꼭 찾으시는 한 영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 사회의 구성 요소는 나름의 완벽한 사람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애인, 어린아이, 노인, 경제 약자 등 소외될 만한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향한 우리의 영적 관심과 책임감이 어떠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는 부분을 보십시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작은 자는 어린아이만 뜻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보잘것없는, 그러니 작은 자는 중요하지 않게 보이는 자를 말합니다. 더 넓게 적용하면 세상 관점에서 약자까지 포함합니다.

즉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말씀에서 더 나아가 무시하지 말라. 즉 업신여기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의 천사들이라는 부분을 보십시오.

전통적인 수호천사 개념이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돕는 천사가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나 작은 자, 즉 사회 약자를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는 작아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작은 자가 아닙니다.

 

잠 22:0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교회 절기로 지키는 어린이주일은 170년 전 1856년 북미(北美) 매사추세츠주 첼시()에 있는 제일 유니버설교회의 G. H 레오나르도 목사님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 믿음을 굳건히 세우기 위해 부모님이 어린아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매년 6월 둘째 주일을 정해 예배드리던 일이 오늘날 전 세계로 확산하여 어린이 주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57 2월 최초로 동화 작가인 마해송(馬海松), 강소천(姜小泉)  7명이 성문화하여 어린이를 위한 헌장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전문(全文) 9개 항의 헌장을 마련하여 같은 해 5 5일 제35회 어린이날을 공포하였습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는 피상적인 내용을 전면 개정하여 1988년 제66회 어린이날을 맞아 다시 공포하였습니다.

2의 어린이 헌장(憲章)은 전문과 11개 항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갖는 민주사회 시민으로서의 어린이상을 구체화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은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고 겨레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지표로 삼는다.

 

마 25:4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유대인 속담에 오른손으로 아이를 벌주면 왼손으로는 안아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유대인들이 자녀를 교육하는 중요한 원칙을 나타냅니다. 요즈음 부모님들, 어린 자녀들을 너무 감싸고 돌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돌보아 줍니다.

잘하는 일처럼 여겨집니까? 어딘가 모르게 좀 삶의 원리를 가르쳐 스스로 적용하여 나가는 일을 막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아이들의 삶 전체를 부모님이 대신 살아주려고 하는 일은 삼가십시오. 아무리 자녀들이 좋아도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이 나서서 해결해 주려 하면 오히려 자립을 막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며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 분명한 가치관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학식이나 명예보다 사람과 관계가 중요함을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자기보다 남을, 개인보다 공동체를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거짓과 욕심과 경쟁과 이기심과 독선과 고집과 분노와 허영을 버리십시오. 진실과 이해와 사랑과 인내하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합시다.

그리고 인성이 정상적으로 자라도록 교육합시다. 건강한 인성을 갖추는 일에 역행하는 행동을 할 때는 근실한 징계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잠 13: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