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6년 말씀

요셉은 마지막까지 효도하였습니다(창 50:01~1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6. 5. 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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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지킵니다. 그러나 마음 아픈 달이기도 합니다. 어린이주일은 자녀가 없는 분들에게 아픔이 되고, 어버이주일은 부모님이 안 계신 분들에게 아픔이 됩니다. 또 부모님이 계신 분들은 효도를 잘하지 못함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2023 12 20일 정년 은퇴 이후에는 어버이주일이 부담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2026년 다시 교회를 시작하여 목회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역시 지난날처럼 어버이주일을 맞은 오늘 설교자의 자리에 서니 부담이 옵니다.

50년을 매년 어버이주일을 통해서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외쳤지만 돌아보면 정작 저는 온전한 효도를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며 가식 행위입니까?

 

저는 어버이주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양심을 누르는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구성원 대부분이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그래도 유앤아이 가족은 어버이주일을 맞아 친 부모님은 아니지만, 연로하신 분들을 보살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어버이주일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을 요셉은 마지막까지 효도하였습니다.로 정했습니다. 효도를 마음에 새기는 오늘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요셉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바로 왕에게 소개합니다.

 

창 47:0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이집트(애굽)에서 실세 총리가 된 요셉은 가나안 땅 헤브론에 머무는 아버지 야곱과 그의 형제와 가족 70명 모두를 이집트로 초청합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5년의 대흉년에서 구원하기 위한 초청입니다. 요셉의 초청을 받은 야곱은 남쪽으로 직행하여 네게브를 지나 시나이반도를 거쳐 이집트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야곱은 곧장 이집트로 가지 않고 47~51km 거리 브엘세바에 들렸습니다.

브엘세바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코스인데도 브엘세바에 들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만나던 자리에서 야곱도 하나님의 인도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이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을 만나던 곳에서 제사를 드림으로 언약의 계승과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어서 이집트의 고센 땅으로 직행하였습니다. 그 거리가 무려 773km나 되는 먼 거리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 중 5명만 바로 왕에게 소개하는 일로 이집트 이주 정책을 시작합니다. 이때 바로가 머물던 왕궁은 오늘날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가 아닙니다.

고센 땅과 가까운 지역인 당시 왕조의 수도, 이 타이따위(Itjtawy)나 삼각주 지역 궁전일 것으로 보입니다. 왜 형제 가운데 다섯 명만 소개하였습니까경계심을 풀기 위함입니다.

 

여기에는 세밀한 정치적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요셉과 아버지 야곱과 그의 형제들이 모여 바로 왕 앞에 설 때의 상황을 놓고 의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46:31~34절에 의논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요셉이 형제들과 모여 의논합니다. 내가 바로에게 가서 가나안 땅에서 목축업을 하던 아버지와 형제들 가족 모두가 내게로 왔다고 보고 하겠습니다. 바로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우리는 조상 대대로 지금까지 목축업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애굽 사람 모두가 목축을 매우 싫어하므로 저희는 고센 땅에 살겠습니다. 이렇게 답을 하라는 조율입니다. 요셉의 고센 땅 정착 계획이 매우 설득력 있는 논리입니다.

 

이런 의논을 하게 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애굽은 농경문화 사회입니다. 이집트의 나일강을 기반으로 한 농경(農耕) 사회입니다. 그들은 목축업과 유목민의 집단생활을 이집트 중심부 밖의 다소 무시하는 집단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유목민이 거주하는 곳은 대부분 이집트의 북동 국경 지역입니다. 목축업자들은 이집트를 침략하는 변방의 잠재적 위협자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을 이집트의 변방 고센에 머무는 정책을 세웠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업을 가증하게 여긴다는 직업 천민 의식을 내세워 다른 이집트인과 분리하게 하였습니다. 요셉의 세밀함이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열한 형제가 아닌 다섯 명만 택한 것도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바로에게 잠재적 위협자가 아님을 은연중에 보이면서 첫인상을 잘 심어주기 위함입니다. 요셉은 이렇게 여러 일을 훗날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실 때를 대비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직업을 바로에게 소개할 때 목축업 하는 분이라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떳떳하게 목축업자라고 내세우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2.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을 믿음으로 실천합니다.

 

02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야곱은 열두 지파에 대한 축복 기도를 마치고 임종 직전 엄숙한 유언을 남깁니다. 자기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묻혀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해 달라는 유언입니다( 49:29). 요셉은 이 유언을 무겁게 받아서 실행에 옮깁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하여 경건한 장례식을 신앙의 유산을 존중하는 행위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깊은 사랑과 존경의 표현입니다. 단순히 의무나 절차를 따른 장례식이 아니라 왕족 수준의 최고 예우를 실행하는 장례식입니다.

 

수종 드는 의원. 여기 의사는 단순한 의사가 아닙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왕실과 고위 인물의 시신을 관리하던 전문 인력입니다. 이들은 일반 민간인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방부 처리(미라 제작) 기술까지 가진 고급 인력입니다.

고대 이집트 사회는 죽은 자의 육체를 보존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따라서 고위직의 장례식에서는 이런 고급 인력이 등장하였습니다.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방부 처리를 위한 미라화 과정을 뜻합니다. 시신의 부패를 막고 오랜 기간 보존하기 위하여 향료, 수지, 몰약 같은 물질을 사용하였습니다. 단순히 향을 바르는 정도가 아니라 내장을 제거하고 향료를 채우는 일까지 합니다.

약롭을 이렇게 귀족 예우를 하는 것은 이집트의 실세 총리 요셉의 지위 때문입니다. 요셉은 당시 이집트의 고위 관리이기 때문에, 왕족과 귀족에게 허용되는 이런 장례식 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또 이렇게 장례식을 하는 특별 이유가 있습니다.

예우 때문이 아닙니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더운 나라의 기후 때문입니다. 시신을 보존하는 일은 미라화 방법 아니고는 부패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이 표현은 국가 차원의 공식 절차가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장례식이 아니라 공적 인물에 준하는 장례식 예우입니다. 이집트에도 얼마든지 고급 장지가 있는데 굳이 가족묘지 막벨라 굴까지 가야 합니까?

가족묘지 때문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에 대한 소망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킴으로써 그 믿음을 이어받았습니다.

효도는 단순히 부모 공경을 넘어 그 신앙관과 가치관을 계승하는 일까지 포함합니다. 요셉의 효도야말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참된 효도의 본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보십시오. 부모님의 필요를 세심히 살펴 드립니까?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효도를 하십니까? 그러면 건강부터 챙겨드리십시오. 삶의 편의도 돌보아 드리십시오.

요셉은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훗날 요셉이 임종을 맞을 때 특별히 부탁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창 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3. 요셉은 아버지의 소원을 끝까지 이루어 드립니다.

 

07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08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여기서 중요한 단어를 보게 됩니다. 07절에 장사하러 올라가니. 08절에 그와 함께 올라가고(עָלָה 알라). 올라가고(עָלָה 알라). 이 단어를 봅시다.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인 저지대에서 북쪽 고원 지대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실제 고도 차이가 약 200~1,000m 정도 납니다. 그래서 올라가다 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올라간다는 단어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로만 볼 것이 아닙니다. 신학적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올라가는 일입니다.

07 08절 내용이 반복 형태로 나옵니다. 행렬 규모가 바로의 모든 신하, 바로 궁의 원로, 전국의 원로, 요셉의 온 집 가족과 형제들 가족 규모로 보아 장엄함이 느껴집니다. 요셉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장례식을 치릅니다.

 

권한을 발동하지 않아도 알아서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미라를 만드는 일에 40일이 걸렸고 애굽 사람들이 칠십 일 동안 애도하였습니다(03).

요셉이 왜 이렇게 거대한 장례식을 치릅니까? 아브라함, 사라, 이삭 레아도 이렇게 거대하게 치렀습니까? 아닙니다. 모두 간소하게 치렀습니다.

야곱도 요셉에게 총리의 위상을 위하여 거대하게 장례식을 치르라고 유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거대하게 치르는 이유는 단순한 애도 차원이 아닙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모두에 신령한 의미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이집트에서 국부 급의 삶을 살다 임종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후에는 국부 급의 위상을 따라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무덤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의 눈에는 감동이 없는 막벨라 굴을 택합니다. 왜 거대한 무덤을 뒤로 한 채 가나안으로 이동하여 막벨라 굴에 묻힙니까?

한 마디로 이스라엘의 신앙 정체성은 이집트가 아닌 가나안입니다. 야곱은 죽음을 통해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 보입니다. 이집트인에게 여호와 종교의 가치관을 나타내 보입니다.

 

요셉은 효도를 통하여서 여호와의 종교를 확립하였습니다. 장차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정 국가가 설립될 것을 내다보았습니다.

요셉은 이 일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장차 때가 되면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가 올 것인데 그때 자기의 유골을 가지고 나가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이 유언 자체가 여호와를 선포하는 계기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서 어릴 때부터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민에게 알리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을 실현하는 효도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공포하였습니다.

 

신 27: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불효를 얼마나 싫어하시면 불효하는 일에 대하여 아멘 하라고 명령까지 하셨겠습니까? 그만큼 부모 공경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가 실천하는 일에 제일 힘들고 부담되는 일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입니다.

당연함에도 행함과 실천이 잘 안되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자자손손 후손이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엡 06:0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0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2015년 서울여자대학교 사랑의 엽서 공모전 대상작에 어머니가 선정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블로그와 게시글에 재인용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2024년과 2026년에도 블로그와 커뮤니티에서 이 작품이 다시 공유되며 현재까지도 효()와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글로 회자합니다.

글쓴이가 어머니의 위암 판정 소식을 듣고 쓴 시로서 내용은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참회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글입니다.

 

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부를 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나한테 밥 한번 사 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웠습니다. 답례하고 싶어서 불러내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지치고 힘든 어머니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

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어머니 걱정은 제대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야 알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직도 너무도 많은 것을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앤아이교회 가족은 이런 일에 연결되지 맙시다.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신 불신 간에 같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고 나를 먹여주시고 키워주시고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 다 부족하고 좀 못마땅하여도 이것만으로도 공경을 받을만한 가치가 됩니다.

돌아보면, 부모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안 하신 것 없이 하고 살아오셨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복된 어버이주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