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움츠려지는 겨울 날씨입니다. 한 해가 저무는 이 겨울 우리 김해 인근에도 영하 9도까지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겨울답다는 뜻입니다. 몸과 마음도 함께 추워집니다. 자연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어서 순회합니다.
백 년 안쪽 짧은 인생을 사는 우리도 사계절과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장년 시절 그리고 노년 시절을 거쳐 죽음에 이르는 시기 말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종말을 겨울에 비유합니다. 자연의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를 따라서 옵니다. 그러나 인생 겨울은 그런 순서가 없이 옵니다. 신약성경 인물 중 자기의 인생 겨울을 아름답게 맞이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현재 로마의 차가운 감옥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믿음으로 인생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정리하는 모습 가운데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0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바울이 처한 겨울 환경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육신의 추위와 함께 힘들어하는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도 믿음 하나는 굳건하게 붙들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바울의 인생 말년 모습을 살피면서 「우리 모두 인생 겨울이 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인생 겨울은 믿음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
0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0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은 계절의 겨울과 함께 인생 겨울도 맞았습니다. 이때 나이가 칠십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 로마의 한 지하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지금 바울 곁에 있던 동역자 대부분이 떠나고 매우 외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바울이 처한 현실은 혹독한 시련의 겨울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알다시피 복음을 위하여 결혼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니 곁에 따뜻한 아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가진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여러 이유로 떠나고 누가만이 바울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혹독한 인생 겨울을 맞이한 셈입니다.
이제 바울은 로마 감옥에 두 번째 갇혀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곧 순교하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년 봄 어느 시간쯤에는 순교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입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굳건한 천국 소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바깥 날씨가 무척 춥지요? 혹 여러분은 계절의 겨울이 아니라 인생 겨울을 만난 것은 아닙니까? 인생 겨울은 가을 다음에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름 다음에도 오고 봄 다음에도 올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 겨울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전도서 12장을 보십시오. 솔로몬은 젊을 때 인생 겨울을 준비하라고 권합니다.
전 12:0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0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성도 여러분은 건강할 때 예수님 잘 믿으십시오. 건강을 잃은 후에는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열심히 주님의 일에 참여하십시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천국 상급 받을 준비를 하십시오. 하늘나라에 상급 쌓는 일을 빠짐없이 해야 합니다. 시간은 나를 위하여 조금도 멈추어 주지 않습니다.
0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2. 바울은 디모데를 겨울 전에 오라고 부릅니다. |
0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지금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고 디모데는 지중해 건너편 마게도냐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를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부릅니다. 왜 속히 오라고 부릅니까?
①지중해의 겨울은 태풍의 위험과 함께 한파로 인해 항구가 얼어붙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7장에 유라굴라라는 광풍이 나옵니다. 주로 10월부터 4월 사이에 일어나는 바람입니다. 바다에서 이런 광풍을 만나면 항해 불가능입니다.
또한 지중해 연안은 추운 겨울을 만나면 가끔 바닷물이 얼어붙습니다. 배가 항구에 접안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항해를 중단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디모데가 바울에게 올 수가 없습니다.
②바울이 가이사랴에서 로마 감옥으로 와 2년이나 지냈습니다. 석방되었다가 다시 잡혀 네로 황제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집행 일이 임박했다고 여겨서 부릅니다(06~08).
이미 죽음을 앞둔 바울 아닙니까? 그래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필요한 부탁과 교훈을 주기 위해 부릅니다(Calvin).
외롭기도 하고 또 죽음을 앞둔 고독한 상태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믿음의 아들이며 동역자로서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온 디모데와의 우정을 나누고 싶어 부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③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외투와 영의 양식을 위한 성경이 필요해서입니다.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가보(Κάρπος)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본 절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드로아 지방의 귀한 신자로 짐작됩니다.
바울이 이렇게 가보의 집에 옷과 책을 맡긴 것은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처지에서는 그것도 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옷과 책은 안전한 곳에 보관하였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찾아서 입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감자의 생활입니다. 그 옷과 책을 가지러 갈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가져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만큼 로마의 옥중 겨울나기가 힘이 든다는 뜻입니다.
책은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부탁합니다. 책은 주로 파피루스나 두루마리 형태입니다. 고가품에 속하는 양가죽 종이입니다. 이 가죽 종이에 쓴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본문의 특성상 성경으로 짐작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에는 책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책은 원문에 비블리온(βιβλίον)으로 표기되었습니다. Bible 즉 성경이라는 뜻입니다.
당시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구약 성경은 양피지에 기록했습니다. 양가죽에 글을 새겼으니 부피가 얼마나 큽니까? 가지고 다니기에는 무거워서 가보의 집에 맡겨 두었습니다.
바울은 이제 인생 마무리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성경을 디모데에게 가져오라고 부탁합니다.
비록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삼고 그 말씀으로 힘을 얻고자 하는 노(老) 사도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삶입니다. 바울은 사람의 잘 되는 비결을 성경을 잘 배우고 익히는 데 있다고 전합니다.
스코틀랜드 보너 목사의 성경 애찬가. 내가 피곤할 때 성경이 나의 침대가 되고, 어두움이 있을 때 성경은 나의 빛이 되고, 내가 주릴 때 나에게 생명의 떡이 되었노라. 두려울 때 성경은 나의 방패가 되어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는 고쳐주는 양약이 되었고, 고독할 때는 성경에서 내가 많은 친구를 얻었노라. 성경은 무지한 나에게 학교가 되어 주었고, 풍파 일어날 때 성경은 나의 피난처 되었노라. |
바울은 본래 이스라엘의 중류층 바리새인 출신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로마의 시민권자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그 생리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추운 겨울을 나는 데 좀 도움이 될 외투 한 벌과 한 권의 책입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재산입니다.
3. 바울은 인생 마무리 전에 막혔던 인간관계를 풉니다. |
11….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까? 마가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가(요한)는 바울과 몹시 섭섭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더불어 1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수행원으로 마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힘들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행 13:13).
이 일이 문제가 되어 나중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다투고 헤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행 15:36~41). 이후로 마가는 바울의 복음 현장에서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11절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명합니다. 아마 마가가 그때 이후로 나름대로 선교의 일을 잘하여 과거의 허물을 만회하였으리라 짐작합니다. 바울이 마가를 만나 무슨 도움을 받을 것이며 또 무슨 유익을 얻겠습니까?
그저 지난 일 생각하면서 그때 자기의 마음이 옹졸하였음을 전하고 자기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풀려고 데려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마가가 바울 곁에 왔을 때 뭐라고 했을 것 같습니까? 이보게, 마가, 내가 전에 너무 심했지. 그래서 마음 많이 상했지? 내가 마음이 넓지 못해서 그래. 용서하게나.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삶의 각 현장에서 불화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살다 보면 때로는 원치 않는 일이 가끔 맺히는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젊으면 혈기 탓에 맺히고 나이가 들면 이상하게 속 좁은 아이처럼 되어 맺힙니다. 이런 섭섭한 마음의 병은 어떻게든 풀어야 합니다.
어떤 맺힘이라도 예수님의 거룩한 보혈의 능력과 죄 사함의 은혜로 풀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 혹 상처의 응어리가 있다면 녹고 풀어지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자기와 만났다가 떠난 자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떠난 이유가 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마가를 찾으면서 어떤 일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도 그리하여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혹 상처 준 일이 없는가? 나 때문에 상처받고 우는 사람 없는가? 우리는 용서하고 화해할 사람은 없는가를 이 겨울에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넓은 마음, 포용하는 마음,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네 잎 클로버에 대해 전해지는 꽃말을 아십니까? 하루는 나폴레옹이 전장(戰場)에서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신기하게 여겨 허리를 숙였습니다. 그 순간 적군이 쏜 총탄이 나폴레옹 등 위로 날아갔습니다.
죽음을 극적으로 모면한 것이 네 잎 클로버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라고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행운을 찾기 위해 애쓰고 네 잎 클로버를 보면 행운이라고 여깁니다. 어느 사업체는 네 잎 클로버의 종자를 배양해서 분양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행운은 그렇게 쉽게 찾지 못합니다. 잘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이 또한 아쉬운 일 아닙니까?
그러면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행복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하지 않은 행운을 찾으려고만 할 뿐 흔한 세 잎 클로버를 보고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흔하지 않은 행운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마십시오. 없는 것이나 찾기 힘든 것을 구하기보다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 무수히 널려있는 행복을 찾아서 누리십시오.
행운을 잡는 일에 열정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주변에 무수히 늘려있는 행복을 잘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진정 삶의 행복은 인간관계를 은혜로 풀어가는 곳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인생 마무리를 앞두고 마가를 지금 찾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옛날에 천하를 호령했던 알렉산더 왕에게 특별한 충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왕은 반드시 죽을 날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라고 말을 하게 해서 왕이 항상 각성하며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인생의 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여름이 끝없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날마다 거두어들이는 가을이 계속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이 싸늘하게 식어 아무도 찾지 않는 묘지의 관속에 누워야 하는 때가 가까워져 왔음을 꼭 기억하십시오.
로마에 가면 바울 성당이 있고 그 옆에 가면 바울의 묘가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바울의 관 밑에 디모데의 관이 있습니다.
이것은 디모데가 끝까지 믿음의 아들로서 마지막 시신까지도 바울의 곁에 있기를 원한 그의 심정을 담은 증거입니다.
내가 살아도 스승 곁에서 살리라. 죽어도 스승 곁에서 죽으리라. 그리고 천국에서 스승을 만나리라. 그 심정으로 디모데는 인생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눈을 감아도 디모데를 잊을 수 없고, 어느 곳에 있든지 잊을 수가 없어서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21)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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