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구약성경에서 모세 이후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한 선지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엘리사(אֱלִישָׁע)입니다.
엘리사는 B.C. 9세기경 북이스라엘 아벨므홀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사밧으로 열두 겨리 소를 부릴 정도의 재산가입니다. 이 엘리사가 평범한 농부로 지내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기에게 겉옷을 던집니다.
돌아보니 당대의 그 유명한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엘리사를 선지자로 불렀고 엘리사는 즉각 순응하였습니다(왕상 19:16~21).
이때부터 유다의 제9대 왕 여호람, 예후, 여호아하스를 거쳐 제12대 요아스 왕까지 무려 50여 년간 신령한 지도자로 봉사하였습니다(왕상 19:16, 21).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의 승천 후부터 특별히 선지 학교를 운영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길갈 신학교, 벧엘 신학교, 여리고 신학교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이 가운데 길갈 신학교에는 학생이 100명 정도쯤 되어 보입니다(43).
오늘 말씀은 길갈 신학교 학생 부인이 엘리사를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왜 찾아왔습니까? 01절을 보면 신학생 남편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다 많은 빚까지 남겼습니다. 이 때문에 채권자들이 당장 빚을 갚지 않으면 두 아들을 종으로 끌고 가겠다고 협박합니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홑 사모가 된 신학생 아내가 엘리사에게 찾아와서 자기의 긴급한 처지를 고합니다.
딱한 말을 들은 엘리사가 말합니다. 집 안에 무엇이 남아 있소? 신학생 아내가 말합니다. 집 안에는 딱 기름 한 병만 있습니다.
엘리사가 말합니다. 나가서 이웃 사람들에게 빈 그릇을 많이 빌려오시오. 두 아들만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시오. 문을 닫고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부으시오.
신학생 아내는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자 끊임없이 기름이 흘러나와 그릇마다 가득 채워졌습니다.
결과는 그 기름을 팔아 빚도 갚고 생활비까지 해결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신령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우리도 빈 그릇을 빌려 채웁시다.」로 정했습니다.
1. 신학생 아내는 엘리사에게 나아가 부르짖습니다. |
0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조금 전 말씀 드린 대로 신학생 남편이 죽은 후 그의 아내가 학장 격인 엘리사 선지자에게 나아왔습니다. 간절히 부르짖습니다(צָּעַק 차아크).
오늘 말씀을 강론하면서 제자의 아내를 신학생 아내로 정리하겠습니다. 이 아내에게 채권자가 빚을 갚지 않으면 당장 두 아들을 종살이로 데려가겠다고 협박합니다. 이 일을 놓고 하도 서러워서 엘리사에게 나아왔습니다. 풀릴 줄 믿고 왔습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우리도 신학생 아내와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갑시다.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하나님 손을 먼저 잡읍시다.
오늘 말씀은 북이스라엘 제7대 왕 아합 시절 때 일입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여호와가 아닌 바알 우상 숭배자입니다. 국가 권력을 함부로 남용하는 여자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암살하라는 지령도 내리는 무서운 왕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학생이 되는 것은 그만큼 경제의 곤경을 만나게 됩니다.
신학생 아내가 왜 빚을 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남편이 하나님의 일에 집중하다 보니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거기가 빚을 준 자가 가난한 집의 두 아들을 종처럼 데려다 빚만큼 부리겠다는 심보입니다. 그러나 채무 관계로 데려가겠다고 하니 사회법으로는 막을 길이 없습니다.
당시 사회는 개인 신용과 대물로 대부(貸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빚에 대한 보증은 대부분 자기와 가족의 노동력과 소속한 종입니다. 그러다 빚을 낸 자가 약속 기한까지 갚지 못하면 그에 해당하는 노동력을 제공해야 합니다.
칠 년까지 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출 21:02). 빚을 정상으로 갚지 못할 때 채권자가 채무자의 자녀를 종으로 삼는 것은 모세 율법에도 합법입니다.
레 25:39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40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엘리사는 신학생 아내에게,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02). 그러자 신학생 아내는 엘리사에게 부르짖으며 고합니다. 집에 기름 한 그릇만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 기름은 식사 준비할 때 사용하는 식용유가 아닙니다.
목욕할 때 몸에 바르거나 죽은 사람을 장사할 때 시신에 바르는 기름입니다. 기름 한 그릇이라면(אָסוּך 아수크) 매우 작은 양입니다. 그만큼 빈곤한 처지임이 짐작됩니다. 02절 같이 읽겠습니다.
0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를 내게 말하라. 엘리사는 신학생 아내에게 없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절망을 탈출할 프로그램이 있다는 뜻입니다.
기름 한 그릇 밖에 없다고 하나 엘리사는 기름 한 그릇이면 충분합니다.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남아 있는 기름 한 그릇은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엘리사를 찾아갈 정도의 건강도 일어설 수 있는 재료입니다. 아뢸 수 있는 용기도 일어설 수 있는 재료입니다.
2. 엘리사는 이웃집 그릇을 많이 빌리라고 명합니다. |
0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엘리사는 그릇을 조금 빌리지 말고 최대한 빌리라고 명합니다. 엘리사의 말을 듣고 신학생 아내는 온 이웃집을 다니면서 그릇을 빌립니다. 빌릴 수 있을 만큼 빌렸습니다.
왜 많이 빌리라고 합니까? 이 부분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 명령은 믿음의 공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세상 방법으로는 안 풀리는 구절입니다. 순종할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말씀입니다. 빌려오면 도대체 무엇을 한다는 말입니까?
03절을 보십시오. 기적이 일어난다는 약속이 없습니다. 빈 그릇을 빌리라는 명령만 있지 기름이 채워진다는 약속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신학생 아내는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입니다. 언제부터 이런 순종하는 마음이 생겼습니까? 엘리사에게 나오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기기 전입니다. 엘리사가 무슨 말을 할지라도 그 말을 순종하기로 이미 작정했습니다. 당장 두 아들을 지키기 위해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시키는 일에 순종하는 것이 팔려 갈 아들을 살리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지금 이 판에 돈이 필요하지 무슨 그릇을 빌린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의 말은 어쩌면 돈과 상관없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순종하였습니다.
이 순종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축복의 물꼬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릇에 기름이 나올까? 하고 의심하면 그릇 하나도 빌려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빈 그릇을 빌릴 수 있는 마음부터 가져야 합니다. 잘 모르겠으면 하나님께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감동을 주실 때 순종만 하면 됩니다.
이와 같은 순종 원리는 요 02장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칫집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때 잔칫집 혼주 역할을 하던 예수님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보고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아직 아닙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요 02:0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때가 되면 일하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 믿음대로 결국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가버나움의 백부장이 하인의 종 병 낫기를 구할 때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마 08:13). 믿으니 즉시 나았습니다.
두 맹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치료받기를 원할 때 그들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셨습니다(마 09:29). 믿음대로 그 눈들이 밝아졌습니다
수로보니게 족속 가나안 여자가 딸이 병든 일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셨습니다(마 15:28), 믿음대로 딸이 바로 나았습니다.
믿지 않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는 곳에 기적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곳에서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믿음으로 시작합시다. 믿음 안에서 성숙합시다. 믿음 안에서 완성되어 갑시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꿈을 꾸고, 믿음으로 행동합시다.
3. 신학생 아내는 문제 해결 후에 엘리사에게 나아갔습니다. |
0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풀고 정리하는 원리는 순종과(06) 믿음입니다(07). 순종으로 마무리하여야 합니다. 06절 말씀을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과 같이 읽겠습니다.
0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신학생 아내는 두 아들과 함께 집 문을 닫고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빈 그릇에 기름이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릇마다 채워집니다.
다음 그릇에 부으면 또 채워집니다. 다음 그릇에 부으면 역시 채워집니다. 또 채워지고 또 채워져서 이제 빈 그릇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적은 체험한 사람만이 압니다. 체험한 사람은 이런 일을 믿음의 기적이라 합니다.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기적의 세계를 모릅니다.
그릇에 다 찬지라. 이웃집을 다니면서 믿음의 분량만큼 빌려온 그릇에 기름이 채워졌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은 집안의 신학생 아내와 두 아들만 압니다. 기적의 현장 밖의 사람은 모릅니다.
집에서 문을 닫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놀라운 기적을 누리며 기뻐합니다.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므로 맛보는 은혜입니다. 제게는 성경에서 궁금한 곳 몇 곳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 말씀에서 빌려온 빈 그릇 숫자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빌려온 그릇 숫자만큼 기름이 채워졌습니다. 과연 그릇을 몇 개나 빌려와서 채웠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역시 모릅니다.
그러면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이 이 현장에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릇을 몇 개나 빌렸을 것 같습니까? 답은 믿음의 분량만큼입니다.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 입을 크게 여는 새끼에게 먹이를 더 준다는 사실 아시지요? 기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입을 넓게 열고 부르짖는 것은 우리의 몫인 줄 아십니까? 반면 채워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입을 크게 여는 자에게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시 81:10).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는 자는 믿음의 순종으로 마무리하여야 합니다.
렘 33:0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가…. 이와같이 이르시도다. 0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신학생 아내는 우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나에게 명령하신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후 처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신학생 아내는 엘리사에게 가서 다 채웠습니다. 하고 보고합니다. 엘리사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너는 가서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아라.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을 위해 생활비로 쓰라. 신학생 아내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넉넉한 복을 받았습니다.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남편 없지만 두 아들과 더불어 잘 지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신학생 아내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어느 교회에서 노인대학을 개설하고 할아버지들에게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그 숙제는 그동안 내조하면서 같이 살아온 할멈에게 사랑을 고백하라는 숙제입니다.
그런데 그 숙제를 받아든 한 경상도 할아버지가 한 번도 안 해 본 사랑을 고백하려니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사이다로 삼행시를 지어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노인대학에서 해 본 삼행시가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그 삼행시는 이러합니다. 사. 사랑해 당신을 영원히 사랑해. 이. 이 생명 다하도록 영원히 사랑해. 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사랑해.
저녁 식사를 한 후에 차를 마시면서 각본대로 할멈에게 삼행시(三行詩) 놀이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삼행시 제목은 사이다로 하고 운을 떼라고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운을 뗍니다. 사. 사랑해 당신을 영원히 사랑해. 생전 처음 들어본 소리에 그만 할머니가 피식 웃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기분이 상했지만 참고 다음 운을 기다립니다.
이. 이 생명 다하도록 영원히 사랑해. 순간 할멈이 자기도 모르게 놀고 있네. 하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기분이 더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운 다를 때자 이렇게 말합니다. 다. 다 뻥이야.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믿음도 이렇게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과 사인이 안 맞고, 교회와 사인이 안 맞고, 성도 간에 사인이 안 맞으면 파선(破船) 될 수 있습니다.
뻥이 되고 허사가 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에 얼마나 순종하는가를 돌아봅니다.
그러면 혹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까? 혹 내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믿음은 신령한 기쁨과 더욱 멀어집니다. 신학생 아내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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