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3년 말씀

실패는 반드시 회복해야 합니다(요 21:15~1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3. 9. 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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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시간주 앤아버(Ann Arbor)에는 1990년 설립된 특별 박물관이 하나 있습니다. 소비자의 외면으로 시장에서 사라진 13만여 점의 실패 상품을 전시해 놓은 실패 박물관입니다. 정식 명칭은 신제품 작업소(New Product Works)입니다.

이 박물관 전시품은 마케팅 전문가이자 실패 연구의 권위자인 로버트 맥매스(Robert McMath)1960년대 말부터 매년 나오는 신제품을 취미 삼아 수집한 물품입니다.

그런데 40년 넘게 수집한 신제품 가운데 80% 이상이 망한 제품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신제품을 진열해놓은 것이 아니라 망해버린 제품 집합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박물관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여러 기업 경영인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왜 찾아오는지 아십니까? 이곳은 실패 박물관인 동시에 도전 박물관이기 때문입니다.

 

라이트형제(1867.4.16.~1912.5.30. 1871.8.19.~1948.1.30.)는 비행기를 발명하기까지 805번의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거듭된 실패가 축적되어 마침내 놀라운 발명품이 세상으로 나온 셈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실패를 수없이 경험합니다. 누가 우리를 혹 성공했다고 말합니까? 그런 소리를 들어도 사실은 그렇게 보일 뿐이지 성공자가 아닙니다.

 

실패는 좌절이 아닙니다. 성공은 여러 실패를 통해서 옵니다. 실패는 무엇인가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런 교훈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가 여러 방향에서 실수나 실패의 길을 가는 자라고 말해줍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실패는 반드시 회복해야 합니다로 정했습니다.

 

 

1. 베드로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실패하였습니다.

 

마 26: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➌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➊70, ➋72).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장에서(14:27~31, 13:36~38) 열두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26:31, 34).

오늘 밤에라는 문구는 마태복음에만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아시고 특별히 오늘 밤이라고 단정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여기 버린다는(σκανδαλίζω 스칸달리조) 말은 나 때문에 걸려 넘어진다는 뜻입니다. 실족한다는(13:21, 24:10) 말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가룟유다의 배신에 못지않은 소극적 의미의 배신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과정의 출발점이 감람산 기도입니다. 감람산은 묵상과 기도의 처소인 동시에 시련과 고통의 장소입니다(21:37, 22:39).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나머지 제자와 다른 한 장소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은 기도로 무장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로 무장하지 못했습니다. 기도는 고사하고 피곤해서 잠만 자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닥친 시험을 기도로 무장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세 제자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고 말씀하셨습니다(40). 예수님께서 가룟유다가 데리고 온 무리에 의해 잡히셨습니다(50). 즉시 현직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갔습니다(57). 

 

요한과 베드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 집까지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를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집까지 따라붙었습니다. 반면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31).

베드로는 캄캄한 밤길을 들키지 않도록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동료 요한의 배려로 대제사장 집까지 들어갔습니다(18:15~16).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일입니다.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은 예수님에 대한 완전 부정입니다(26:70, 72, 74).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니 주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닭 울음소리가 두 번째 들렸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61).

이때 마주친 눈빛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주님께서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을 구약성경까지 인용하실 때 베드로가 뭐라고 답했습니까?

 

여기 있는 모두가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더는 변명할 수 없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나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제자라고 착각한 교만이 현실로 증명되었습니다.

주님 곁에서 삼 년 동안 들은 여러 감동의 말씀이 생각났겠지만, 이제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만찬장에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말이 거짓말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지 내면의 실상을 낱낱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마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2. 주님을 만나면 실패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03절을 보면 베드로를 중심으로 일곱 제자가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제자의 삶을 포기하고 삼 년 전 어부로 돌아간 것입니까? 제자의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갈릴리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메시지 때문입니다(28:07, 16:07).

 

마 28:0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일곱 제자는 무덤에 다녀온 몇 여자의 말을 기억하고(28:07, 16:07) 갈릴리로 가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02, 03).

제자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고기를 잡으러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03). 그 실패의 현장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묻습니다.

고기 좀 잡았느냐?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제자들이 그 말대로 순종하여 큰 물고기를 153마리나 잡았습니다.

그 순간 요한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주님이라고 귀띔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겉옷을 두른 후 바다로 뛰어들어 예수님께로 갑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예수님을 그리워하며 지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간단한 아침 식사까지 준비해 놓으신 후 제자들과 만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제자들에게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까?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시려고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답이 15절부터 17절 사이에 나옵니다.

 

15….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5~17절까지 같은 말로 보이지만 그 뜻은 차이가 납니다. 사랑을 정리하겠습니다.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에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할 때 사랑이라는 단어가 같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은 단어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15 나를 더 사랑하느냐(ἀγαπάω)?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φιλέω) 줄 아시나이다. 16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ἀγαπάω)?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φιλέω)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17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φιλέω)?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φιλέω)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께서 아가페 사랑으로 묻고 베드로는 필레오 사랑으로 답을 합니다. 아가페 사랑은 목숨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주님 사랑을 말합니다. 시몬이 예수님 사랑에 화답한 사랑은 주로 친구끼리 나누는 우정의 사랑(φιλέω)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물은 사랑과 두 번째 물은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그러다 세 번째는 필레오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만 근심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실패자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 실패의 허물을 잘 알고 있으므로 망설이다 답을 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바다에서 베드로와 이렇게 만나시는 것은 실패자 베드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의 실패를 회복시켜서 다시 출발하게 하시는 회복의 은혜입니다. 실패를 회복하는 길은 오직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3. 실패를 극복했으면 영광의 길에 서야 합니다.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모두가 실패를 경험합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성공자가 없습니다,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일 뿐 어떤 사람도 성공자가 아닙니다.

이것 하나는 기억하십시오. 성공하는 사람은 실수나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있고 실패하는 사람은 실수에서 배우는 것이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비록 실패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그때는 회복이 됩니다.

우리가 계속 실패했습니까? 그래도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 인생 후반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성공한 사람 대부분이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영광의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때로는 오랜 시간 식료품을 저장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나타나는 반응이 발효와 부패입니다. 음식이 발효되면 맛과 향기와 영양이 더 좋아집니다. 우유가 치즈가 되고, 배추가 김치가 되는 것은 모두 발효하였기 때문입니다.

반면 고기나 찌개 같은 음식은 오래 놔두면 부패해서 유해 물질이 됩니다. 더 이상 못 쓰게 됩니다. 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쓰레기가 됩니다.

 

믿음도 세계도 같습니다. 나이가 들고 성품과 행실이 원숙해지면서 교회에 이바지하는 일꾼이 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교회에 걸림돌 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행적이 부패와 같은 삶이 되지 않도록 자기 관리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길에 서야 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실패를 극복한 베드로가 앞으로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를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게 될 것을 짐작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처럼 십자가에 달리는 것과 같은 죽음임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베드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베드로의 행적은 헤롯(아그립바 I B.C.11~A.D.44)의 박해로 옥에 갇혔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12:01~19). 이후 예루살렘 공의회에 나타난 것으로 행적이 마무리되었습니다(15:01~11).

외경(外經) 베드로행전에 기록되었고 가톨릭 전승으로 내려오는 일화입니다. 로마에서 기독교의 박해가 심해지자 베드로는 성도들의 권고를 따라 피난을 가는 중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환영을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로마에서 왔던 그 길을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묻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쿼바디스 Quo vadis, Domine). 그러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다시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

 

이 부분을 의역하겠습니다. 네가 나의 어린 양들을 버리고 로마를 떠나니 내가 다시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간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부끄러운 마음을 뉘우치고 로마로 돌아가 담대히 복음 전하다 붙잡혀서 순교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내가 감히 예수님과 같은 십자가형을 받기 송구스럽다. 라고 주장하여 거꾸로 못 박힌 십자가형을 택했다고 합니다.

헨리크 시엔키에비치(폴란드 Sienkiewicz, 1846.5.5.~1916.11.15.)가 이 베드로행전을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쿼바디스가 있습니다. 유명한 소설로서 190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1912, 1951, 2001년에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요 13: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2.17.~1931.10.18.)의 이야기입니다. 백열등의 필라멘트를 발명할 때 그의 조수가 선생님, 필라멘트(Filament)를 발명하려고 벌써 90가지의 재료로 실험해 보았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필라멘트를 발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같으니 중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에디슨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자네는 왜 그것을 실패했다고 여기나? 우리는 실패한 것이 아닐세. 안 되는 재료가 무엇인지를 90가지나 알아낸 아주 성공한 실험이었다네.

그러면서 중단하지 않고 연구하여 13일째 되는 날 2399번의 실패를 거쳐 2400번 만에 전류를 통해도 타지 않고 빛을 내는 필라멘트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실패는 문제 안 됩니다. 실패한 일로 인해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베드로는 도무지 저질러서는 안 될 허물이 있습니다.

믿음으로는 완전한 실패의 자리에 처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일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믿음으로 재기하였습니다. 파선한 믿음을 회복하여 초대 교회사에 큰 별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회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마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스라엘 시온산 남쪽 기슭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통곡하였다고 일컫는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습니다. 지붕은 돔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맨 위에는 황금 수탉의 모습이 만들어져 있고 입구에는 청동 문이 있습니다.

이 청동 문에는 예수님과 대화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실패를 극복하여 다시 믿음이 새 출발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