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5대 제사

[5대 제사 ②] 고운 가루로 드리는 소제(레 02:01~1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2. 1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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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사 지내는 방법을 다양하게 기록해 놓은 곳이 레위기입니다. 다섯 가지 제사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제사가 번제입니다. 6월 셋째 주일에 강론하였고 오늘은 둘째 제사인 소제에 대해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이 제사는 우리에게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제사이나 구약성경에 131회나 등장합니다. 가볍게 여길 제사가 아닙니다.

소제는 구약의 5대 제사 중 번제, 화목제와 더불어 제물 드리는 자가 자기의 생활 형편에 따라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앞으로 살펴보게 될 속죄제와 속건제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반드시 지내는 의무제사입니다이 제사의 특징은 곡식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하는 제사입니다.

이 소제의 의미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고운 가루로 드리는 소제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은혜를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소제(素祭)가 무엇입니까?

 

0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소제(מִנחָה 민하 素祭). 소제는 제물과 예물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경우는 제물이라 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것은 예물이라고 합니다.

민하는 창세기 0403절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가인이 하나님께 제사 지낼 때 사용한 제물이 민하이고 또 창세기 3213절에 보면 야곱이 에서에게 주는 예물에도 민하가 사용되었습니다.

 

소제에 관한 말씀은 레위기 02장과 06장에 나옵니다. 왜 두 번이나 기록합니까? 02장은 제물, 06장은 제사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소제의 강조점은 예물입니다. 제사의 원리를 보면 번제는 제물을 죽여서 제사장이 불살라 지내는 제사 자체에 의미가 있고 소제는 제물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 예물이 무엇인지 01절 보십시오. 소제의 예물은 곡식입니다. 곡식을 드리더라도 고운 가루로 만들어야 합니다. 소제에 사용되는 제물의 종류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고운 가루입니다. 여기에는 기름과 유향이 첨가됩니다. 둘째는 누룩을 넣지 않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입니다.

 

무교병을 만드는 방법도 화덕에 구운 것(02:04)과 번철에 부친 것(02:05) 그리고 솥에 삶은 것(02:07) 세 가지입니다.

셋째는 처음 익은 곡식이며, 넷째는 첫 이삭입니다. 특별히 첫 이삭을 소제의 예물로 하나님께 드릴 때는 볶아 찧은 것에다 기름과 유향을 첨가해야 합니다.

소제에 사용할 제물(ה󰖎󰘁󰗬)은 충실한 열매를 골라야 합니다. 쭉정이나 상한 곡식이 아니라 반드시 충실한 열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볶아야 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오늘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가루를 준비해서 온 사람 없습니다. 구약시대의 소제는 우리가 지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약시대 사람처럼 양이나 소나 짐승 그리고 가루를 가져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과 더불어 사는 우리는 복음 안에서 소제를 드려야 합니다. 구약시대처럼 제물 지내는 사람과 제물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이미 제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끝났습니다.

 

롬 10: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이제는 번제도 소제도 그대로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번제물로 자기를 드렸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소제물도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구약시대 방법으로 소제를 지낼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주님의 명하신 말씀을 따라 소제를 지내면 됩니다. 소제는 눈에 보이는 피가 아니라 개인의 재산을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의 의미입니다.

번제가 생명의 헌신이라면 소제는 재산의 헌신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나 찬양이나 혹 간증을 통해서 내 생명 주님께 바칩니다. 라고 고백하는 때가 있습니까?

 

그러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백만 듣고 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내 생명 주님께 드린다고 고백할 때는 생명보다 못한 재산도 드려야 합니다.

내 생명 아낌없이 드린다고 고백하면서 내가 소유한 재산만큼은 철저히 도피시키는 것은 진정한 고백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알고 신중하게 고백하십시오.

 

 

2. 소제는 고운 가루를 드려야 합니다.

 

02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고운 가루(סוֹלֶת 솔레트). 하나님께 드리는 곡식 제물은 반드시 고운 가루여야 합니다. 고운 가루라는 말이 구약성경에 43번 나옵니다.

소제를 드릴 때 반드시 고운 가루를 드리라고 하는 것은 고운 가루를 드리는 행위 속에 깃든 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고운 가루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한 행동을 한 번 떠올려보십시오. 어떻게 고운 가루를 준비했을 것 같습니까?

지금처럼 고성능 믹서기나 도깨비방망이가 없던 시절입니다. 그런 시절에 고운 가루를 얻기 위해 저들은 어떻게 하였을 것 같습니까? 바로 맷돌질입니다.

 

옛사람들은 맷돌로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소제물로 곡식을 드리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이 이 곡식을 빻는 일입니다. 고운 가루라는 말은 곡식을 빻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서 얻은 결과물입니다.

만져보아 손끝에 작은 곡식 알갱이라도 만져지면 그것은 고운 가루가 아닙니다. 적어도 요즈음의 밀가루 정도가 되어야 고운 가루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옛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소제물로 드릴 고운 가루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맷돌을 돌렸겠습니까? 아마 밤새도록 곡식을 갈고 또 갈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알갱이가 거의 없는 고운 가루를 만들었을 것입니다여러분 맷돌이나 절구질해 보셨습니까?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현대의 기계로 가는 것과 같은 고운 가루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 수준입니다마른 곡식을 여러 차례 맷돌질해도 여전히 알갱이가 굵고 거칩니다.

그런데도 고운 가루를 만들어야 했다면 맷돌질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합니까많은 시간 들여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준비하였습니다. 고운 가루를 만들기 위해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얼마나 들었겠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은 고운 가루 만드는 과정을 통해 죄인 된 모습을 깊이 성찰할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면 소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맷돌을 돌리면서 어떻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까?

곡식이 맷돌을 거쳐 잘게 부서져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의 까칠한 모습 아직도 깨어지지 못한 거친 모습을 보았을까요?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봅시다. 부서지지 않은 거친 알갱이 같은 것이 있습니까? 미움 시기 질투 다툼 교만 열등의식 이런 것들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깨어지지 못한 알갱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거친 것들을 다 빻아서 고운 가루처럼 부드럽게 정화 시키라고 소제 규례를 정하셨습니다.

 

제사가 무엇이고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 속에 들어있는 딱딱하고 거친 알갱이들을 하나님의 맷돌 아래 내려놓는 일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딱딱하고 거친 것들을 하나님의 맷돌로 갈아 부드럽게 만드는 일입니다.

소제를 지내는 방법은 다른 상번제와는 진행 과정이 다릅니다. 제물을 제단으로 가져오기 전 집에서 제물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소제의 시작입니다.

생각 없이 그냥 곡간에서 곡식 한 움큼 떠서 급하게 나온다고 소제가 되지 않습니다. 고운 가루로 만들어서 가지고 나와야 소제가 됩니다. 그만큼 준비가 동반되는 제사가 소제입니다.

 

 

3. 소제를 드리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0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소제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번제, 화목제처럼 피 흘리는 제사와 더불어 지낼 수 있고(23:12, 13, 15:05~10), 단독으로도 지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제는 단독 제사에 관한 규례입니다. 피 흘림이 없는 제사이기 때문에 죄 사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죄 사함과 상관이 없다면 왜, 소제를 지내야 합니까? 이에 대하여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집니다

첫째 목적은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물질도 주시니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지내는 헌신의 제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의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을 잘 표현하여야지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결국은 은혜가 소멸하여 심령이 굳어지고 맙니다.

 

히 03: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둘째 목적은 제사장에게 양식을 제공하여 생계를 돕기 위함입니다. 이들은 열두 지파가 땅을 분배받을 때 국가로부터 토지를 받지 않고 신령한 일에 종사하는 직분자로 지정되었습니다. 토지가 없으니 당연히 직접 경작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스라엘 전체가 이들 생계를 책임집니다. 그 방법이 소제를 지낼 때 제사장은 기념물로 한 움큼만 태워 하나님께 올리고 나머지는 제사장 몫으로 돌립니다.

반면 제사장 위임식 때 지내는 소제는 모두 태워 하나님께 올려야 합니다(06:23). 그리고 이 소제물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누룩과 꿀을 넣지 않고 소금을 치는 일입니다.

 

11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소제를 지낼 때 왜 누룩과 꿀을 넣지 말라고 합니까? 일반으로 사람이 먹는 빵은 누룩을 넣습니다. 그래야 부풀고 꿀도 넣어야 빵이 제대로 됩니다.

단맛이 없는 빵을 누가 먹겠습니까? 평소에 먹는 빵에 누룩과 꿀을 넣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소제로 드릴 때 넣지 말라는 겁니다.

이 두 가지에 대하여 먼저 누룩은 거짓 교훈과 악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삼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16:06).

다음으로 꿀을 먹는 것은 탐욕을 상징합니다. 꿀은 달기 때문에 자꾸 먹게 됩니다. 그래서 탐욕 부리는 것을 꿀에다 비유했습니다. 거짓 교훈과 악을 재물에 섞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소제물에 누룩과 꿀을 넣지 않는 법 외에 또 지켜야 할 법은 소금을 치는 일입니다. 소금은 맛을 낼 때 사용하고 부패를 방지할 때 방부제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런 가치보다는 영원한 계약을 상징하는데 초점이 있습니다(18:19, 대하 13:05).

당시 가나안을 비롯한 근동지역 사람은 친구 관계를 맺을 때 소금을 주고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서로 소금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확인했다는 뜻입니다.

소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하나님과 친구 되었음을 상징하고 죄인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에 대한 상징입니다.

더 나아가 소제의 신령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의 양식 공급자 되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명의 떡이 됨을 상징합니다(06:32~35).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구별된 존재의 정체성을 확립하여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소제물에 유향을 첨가하듯(0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세상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우리의 삶을 보고 예수님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그리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회의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 우정을 상징하는 소금은 덕과 사랑을 베푸는 삶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소제물 드릴 고운 가루처럼 나부터 먼저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고운 가루는 완전히 빻아졌다는 말입니다.

만일 빻아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소제물이 될 수 없고 소제를 지낼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양 저런 모양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여러 모양과 형태가 있습니다. 더러운 말, 악한 생각, 악한 행동의 부서지지 않은 알갱이가 있습니다. 온갖 쓰레기 같은 것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그대로 있는 한 소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소제물은 단 하나 완전히 부서져서 고운 가루의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깨어지지 않은 이대로는 안 됩니다. 덩어리 그대로는 안 됩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에 들이기 전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서 서서히 고운 가루로 만들어가셨습니다.

보름이면 넉넉히 갈 수 있는 길을 40년을 광야의 맷돌에 돌리고 부서뜨려서 고운 가루처럼 연단을 하여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가는 곳마다 내가 문제를 일으킵니까? 그 사람 그럴 줄 알았어. 라는 주인공이 알고 보니 바로 나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혈기 덩어리, 질투 덩어리, 시기 덩어리, 미움 덩어리, 교만 덩어리, 이기심 덩어리를 하나님 말씀으로 완전히 깨뜨려 고운 가루 같은 성도로 충성하기를 축원합니다.

 

히 0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