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열두 제자

[열두 제자 ➍안드레] 전도하는 제자 안드레(요 01:35~42).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1. 1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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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한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매일 저녁 예수님을 믿을 사람을 초청했는데 한 사람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에 어린 소년 하나가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더는 결신자가 없었습니다.

한 주간 부흥회가 끝나자, 강사 목사님께서 얼마나 실망이 되었는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번 집회에 겨우 어린 소년 한 사람 외에 결신자가 없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부흥회를 인도했던 목사님은 옛날 그 교회에서 쓸쓸하게 독백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흥회 동안에 유일하게 예수님을 믿기로 한 어린 소년이 바로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 1813~1873)이기 때문입니다.

 

리빙스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당시 미개한 아프리카를 복음으로 바꾸어 놓은 인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때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하고 크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제자 안드레가 전도한 사람 중에 특별히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시몬 베드로입니다.

주님께서 장차 반석이 될 자라고 하신 인물입니다. 안드레가 전도한 베드로가 이방인 전도의 길을 열었고 기독교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우리 김해삼일교회 가족 여러분에게 전도하는 제자 안드레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복음의 열매를 맺는 일에 등한하신 분들은 분발합시다. 다 같이 옆에 계신 분과 함께 안드레처럼 전도합시다. 라는 인사를 나눕시다. 고사리 인사도 나눕시다. 불평 뚝 원망 뚝합시다.

 

 

1. 안드레(Ἀνδρέας Andrew)의 기초 이력서

 

마 0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이름은 안드레(Ἀνδρέας)로서 그 뜻은 용감한 남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주소는 갈릴리 지방 아름다운 해변 마을 벳새다입니다.

학력은 특별히 랍비 교육받은 흔적은 보이지 않고, 유대인의 기본교육인 회당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 증거로는 예수님 승천하신 후 오순절 성령님 강림 사건 때 제자들의 메시지를 들은 여러 사람이 각각 자기 나라말로 이해하고 이렇게 반응하였기 때문입니다.

 

행 02:0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0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가족 관계는 부친의 이름은 당시 흔하게 사용한 요한으로서(01:42) 요한나, 요나, 요한 등은 같은 이름의 어근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안드레의 아버지 이름이 요나입니다(16:17).

경제면에서는 눅 05:10 절에 의하면 안드레는 집안 대대로 베드로와 함께 어부의 일을 하였습니다. 경제면에서는 다소 부유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 0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서 오너라….

 

 

2. 주님과의 첫 만남의 순간

 

요 01: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안드레는 요한과 같이 일찍부터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나름 경건한 삶을 살고자 정의의 예언자 세례 요한의 문하에서 신앙수련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날은 스승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01:29, 36).

그러자 즉시 친구 요한과 함께 노선을 바꾸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여기 두 제자는 안드레(40)와 요한으로서 이들이 예수님께로 오자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무엇을 구하느냐? 그러자 두 사람이 무엇을 원한다는 현실 이익에 관하여 답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어디에서 살고 계시는 분입니까 라고 장소에 관해 질문합니다. 이 예수님의 질문에 두 제자가 어떻게 반응을 보입니까?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어디 계시오니이까? 이 말은 랍비라는 호칭과 함께 사용되는 유대인의 관용 표현입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라는 문구는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 교사에게 대화를 요청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표현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며 또한 겸손하게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즉 무엇을 취하기 위한 현실 이익이 아닙니다.

스승 세례 요한에 의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증인 된 그분 밑에서 배우겠다는 마음입니다출발부터가 어떤 물질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예수님과 사귀고 싶어서, 예수님으로부터 계속 지도받고 싶어 어디에 사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 보라…. 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오라는 초청 말씀입니다. 보라는 말은 추구하는 것을 와서 보고 확정하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39절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자들을 향한 구원의 길로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39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열 시쯤 되었더라.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예수님 말씀에 대한 순종 구절입니다. 자세한 장소를 명시하지 않고 단순히 계신 곳을 뜻하는 헬라어 관용구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예수님의 거처가 직접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 어느 거처나 장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이루어짐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받는 안드레의 인생이 펼쳐집니다.

이 만남 얼마나 놀라운 만남입니까? 얼마나 복된 만남입니까?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는 주님의 말씀에 안드레는 저는 세상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안드레는 메시아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전도자로 점점 쓰임을 받는 귀한 일꾼으로 성장하여 갔습니다.

 

 

3. 전도자의 삶을 사는 안드레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안드레는 메시아이신 주님을 따라 섬기면서 살기로 결단합니다. 자신이 알게 된 메시아에 대한 기쁨을 공유하기 위해 형님 베드로를 찾아갔습니다.

먼저. 아침 일찍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앞서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와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십 시 시쯤 되었더라(39). 고 기록된 말씀과 같이 살펴보아야 제대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안드레는 저녁에 예수님을 만나 요한과 함께 하룻밤을 지내면서 메시아이심을 확인하고 그 이튿날 아침 일찍 베드로를 찾아갔습니다.

 

찾아 말하되. 우연히 만났다는 말이 아니라 부지런히 달려갔다는 뜻입니다. 마침내 안드레가 그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데려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데리고 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입니다. 그러나 그 데려옴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열 드라크마 가운데 하나를 잃고는 그 잃은 드라크마를 찾기 위하여 등불을 켜고 쓸며 부지런히 찾는 여자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눅 15:0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성경에서 안드레가 특별히 놀라운 일을 행했다는 행적은 별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안드레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안드레 없이는 베드로가 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안드레가 대단히 큰일을 한 겁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 구주 되신 그분이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소개하고 주님께로 데리고 나오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너무 좋아서 자기의 한평생을 그분께 헌신하였던 인물입니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01:14).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음에 대해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안드레의 모습이고 전도자의 삶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0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0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믿음의 가족 여러분, 지금 주님의 다시 오심을 앞두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웃에게 증언하는 안드레의 모습과 같습니까?

아무래도 이렇게 살 때가 아니지요? 귀한 시간을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헛된 일에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십시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전 03:0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02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어려운 상황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안드레

 

요 06:0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0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06장과 요 0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벳새다 광야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 계속해서 큰 무리가 몰려옴으로 인해 식사 문제가 등장하였습니다.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제자들이 그 많은 사람의 식사를 놓고 염려하면서 예수님께 식사는 자기들이 각자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합니다.

 

막 06: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7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빌립을 향한 말씀입니다(06:05, 06). 그러자 빌립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요 06:0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은 상당한 양의 떡이 있어도 부족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리 중에 떡을 가진 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라고 하십니다(06:38). 문제가 생겼으니 그 어려움을 풀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 보라는 뜻입니다.

이에 자세히 알아보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하여 알아본 사람이 누구입니까?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직접 확인한 후 오병이어로 보고합니다.

 

08절 말씀을 보면 안드레는 어려운 상황에서 빌립처럼 비관만 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불가능한 상황처럼 보여도 그 불가능 같은 어려운 문제를 주님의 말씀을 따라 풀어나가는 길을 택합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당시의 상황에서 본다면 그 군중의 수효는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의 식사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오병이어로 찾았습니다.

오병이어는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서 여자와 아이 외에 남자 장정만 오천 명가량 먹었고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안드레가 한 역할을 나의 신앙에 적용하면 어떻겠습니까? 교회 안에는 안드레와 같은 역할자가 필요함을 굳이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신령한 눈으로 교회를 바라보십시오. 세상에는 문제 아닌 것을 문제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문제를 문제 아닌 것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동체에는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에 긍정의 사고력으로 문제를 푸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따라 우리 교회의 발전이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찾아낸 어린아이 한 끼 식사 오병이어로 일하셨듯이 우리도 안드레와 같은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일합시다.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세, 긍정 자세를 우리가 모두가 가지도록 합시다.

 

바울의 7가지 성공 비결(Rick Warren)

1. 방향 감각을 분명히 함.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03:14).

2.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함.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모든 비결을 배웠노라(04:123).

3. 분명한 목표에 헌신함.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34).

4.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함.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 13:02).

5. 열정의 신앙을 가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04:13)

6. 다른 사람을 섬김.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나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고후 12:15)?

7. 추진력을 잃지 않음. 0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0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04:08~09).

 

 

4. 사람을 주님께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안드레

 

요 12: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12:13을 보면 종려주일에 주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떠들썩하게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며 환영했습니다(12:13). 그러나 밤이 되자 그 많은 무리가 예수님에 관하여 관심을 멀리한 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20~22절에 보면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러 온 헬라인 몇이 예수님을 면담하고자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내용에서 매우 흥미로운 일은 헬라인 몇이 예수님을 면담하기 위해 먼저 제자 빌립에게 찾아왔습니다. 이때 빌립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바로 가지 않고 안드레에게 갔습니다. 이후 빌립과 안드레가 예수님께 가서 면담을 주선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안드레는 예수님의 비서 역할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안드레는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소개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거기다 안드레는 조용하게 뒤에서 신실하게 예수님 비서 역할을 잘 감당합니다.

안드레는 신뢰할 만큼 일꾼 이미지를 풍깁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중요한 일에는 항상 뒤에서 머물렀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앞세워 주는 일을 은밀히 하였습니다.

 

막 05:37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마 17:01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주님께서 만나실 때, 마 26:37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최후의 기도를 하실 때.

 

이만하면 안드레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베드로를 주님께 인도하였고, 삼인방에 들지 못해도 조용하게 자기 위치에 서서 처신하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를 동원하여 주님 나라의 좌우편이 되기를 청탁했습니다. 물론 주님으로부터 노라는 답과 함께 경고까지 받았습니다(10:35~40).

 

이런 형편이면 안드레가 들어가는 삼인방이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자기는 늘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사인방을 꾸리면 들어가겠지만, 예수님은 사인방은 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삼인방으로 압축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억울한 감이 듭니다.

지분으로 봐도 손해입니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시기와 질투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안드레가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 대해 질투한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실 나보다 먼저 앞서서 나가는 자에 대해 투기하지 않는 일이 어디 쉽습니까? 안드레가 좀 질투한들 누구 하나 야, 왜 질투하느냐며 비난할 정도가 못 됩니다. 그런데도 안드레는 끝까지 투기하지 않고 자기의 일만 하였습니다.

그 품격 높은 신앙 인격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아무래도 지난날 스승 세례 요한 밑에서 인격을 연마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세례 요한의 인격이 어떠한지 성경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요 0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0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5. 안드레의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막 13:03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0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안드레는 주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주관하시는가에 대해 집중하였습니다. 사도행전 01장에 보면 다락방에 모인 무리의 행적이 나옵니다.

성령님의 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제자들 명단에 안드레가 나옵니다. 또 사도행전 02장의 오순절 성령님 강림 때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후일 예루살렘교회 지도자가 됩니다. 안드레의 사역은 성경에서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교회사에서 보면 해외에서 선교 사역을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들은 후 자기만족으로 끝나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교회 역사의 증언을 보면 A.D. 260년에 기록된 안드레행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물론 성경은 아닙니다. 안드레가 선교 사역에 지대한 영향을 많이 끼쳤기 때문에 안드레 개인의 삶에 대한 자서전 형식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이 기록을 보면 안드레는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일했고 또 에베소에서 또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이후 러시아의 남부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고 스키티아라는 지역까지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을뻔한 위기도 몇 번 당했습니다.

이후 그리스의 아가야라는 지방으로 와서 복음을 전하다 페루테에서 머물렀습니다. 마침 그 도시의 주지사 에게테스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 부인과 동생을 전도하여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지사는 달갑지 않게 여겼고 주변 참모들도 이방 종교의 영향을 좋아하지 않음으로 결국 그곳에서 순교합니다

 

주지사는 안드레에게 갖은 핍박을 가하면서도 안드레의 자상함과 깨끗함과 성실함 등 복음의 인격을 존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그를 처형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므로 안드레를 사형장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사형 집행관들이 자 형 십자가를 만들고는 그 십자가 앞에서 주지사가 안드레에게 말합니다. 지사. 그대는 지금이라도 예수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고 그대의 목숨을 보전하라. 안드레. 지사님이여 그대는 그대의 영혼을 잃지 마시오.

주지사는 안드레를 향하여 목숨을 잃지 말라고 하였는데 안드레는 주지사의 영혼을 생각하여 지사님 영혼을 잃지 마시오. 라고 답하고 로 된 십자가에 달립니다.

 

안드레는 거기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하였고 그 기도문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옵니다. 돌만 뉴만이라는 역사가가 안드레의 마지막 기도문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그리스도 주님이시여, 나를 받아주소서. 내가 본 그분, 내가 사랑한 그분, 그분 안에서 나는 내가 되었습니다. 주님이시여, 당신의 영원한 나라의 평안 가운데 이제 나의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이 기도를 마친 후 안드레는 마지막 숨을 거둡니다.

 

머릴로라는 화가가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 제목은 성 안드레의 순교입니다. 그 그림에는 자형의 십자가에 안드레가 매달려 죽어가고 옆에 어린 소년 하나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 소년은 오병이어를 가지고 있었던 소년입니다.

안드레가 소년을 발견하고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와서 그것을 드렸고 그것을 통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안드레의 삶을 통한 그의 최대 교훈은 개인 전도의 중요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