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2년 말씀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삼상 22:01~0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 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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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에서 백이 좀 센 사람이 있다면 세상 살맛이 날 것입니다. 그 배경이 상당한 기간 지속된다면 승승장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어디를 가든 크게 기죽어 지낼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금수저 같은 배경이 있다면 세상에서 출세하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우리 가운데 그런 분들이 있습니까? 있으면 저도 덩달아 힘이 좀 생길 것 같은 데 아무리 보아도 아직은 그런 분이 안 보입니다.

복을받는 교회 성도들은, 지금까지 안 보이면 이제 그런 꿈은 접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백으로 삼고 세상을 믿음으로 도전하는 불도저 정신이 오히려 필요합니다.

 

한 위대한 인물이 등장할 때는 당사자보다 그 배후에서 이끌어준 귀한 인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베들레헴 출신 다윗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흔히 세상 말로 운이 좋아 그런 자리에 올랐습니까아닙니다.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이 등장하기까지 배후에 특별한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이라는 신령한 지도자입니다.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목동 생활을 할 때 사울의 뒤를 이을 왕이 될 것을 내다보고 기름을 부은 그 사무엘입니다. 다윗이 사무엘의 지도를 잘 받음으로 한 나라의 주권자에 올랐습니다.

 

그렇다고 단번에 그런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닙니다. 무려 10여 년을 사울왕의 추격을 당하면서 죽음의 자리를 수없이 오르내리다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살펴보는 말씀은 다윗이 한 나라의 주권자에 오르기까지의 그 인격과 품성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로 정했습니다.

 

 

 1. 다윗의 라마 나욧에서 아둘람까지의 과정입니다.

 

0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다윗은 사울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사울의 권역을 벗어나 사무엘의 라마 나욧 공동체로 들어갔습니다(삼상 19:18). 그곳에서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왕도의 길과 신앙의 지도를 잘 받았을 것입니다그런데 밀고자들이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다고 사울에게 보고합니다.

사울은 즉시 다윗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내 라마 나욧을 에워쌌습니다그러나 다윗을 잡으러 온 사울의 자객과 사울이 하나님의 신이 내림으로 예언을 하는 황홀경에 빠져 있을 때(삼상 19:20~24) 그곳을 탈출합니다.

 

즉시 이스라엘의 궁()이 있는 기브아의 요나단을 찾아가서 항의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냐?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내 생명을 찾느냐(삼상 20:01)?

다윗이 사울로부터 위험을 무릎 쓰고 기브아로 돌아온 까닭은 요나단의 도움을 받고 향후 자기의 신상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입니다다윗과 요나단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최고의 우정으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뒤를 이을 왕자입니다. 그런데도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뒤를 이을 자로 세우시는 줄 알고 그 뒤를 시원하게 밀어주었습니다.

 

결국 사울의 무너진 정신을 바로 세울 수 없음을 알게 된 요나단은 다윗을 위로한 후 눈물로서 서로를 위해 복을 빌며 헤어집니다(삼상 20:40~42). 이후 다윗은 기브아에서 동남쪽 약 4km쯤 되는 놉으로 갑니다. 블레셋의 공격으로 실로의 성막이 파괴된 이후(삼상 04:10, 11) 놉은 제사장의 성읍(삼상 21:01)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도엑이라는 사울의 목자장이 있습니다(삼상 07). 사울의 첩자입니다. 다윗이 이 도엑을 보고 위험을 감지하여 놉을 떠납니다. 이후 도엑이 다윗을 잡으려고 특공대 삼천 명을 조직하여 다니는 사울을 만납니다즉시 당시 다윗과 제사장 아히멜렉 사이에 된 일(삼상 21:01~09)을 세세하게 고해바칩니다.

이 일을 들은 사울은 무고한 제사장 85인과 놉 땅의 거민과 가축을 몰살(삼상 22:09~22)시킵니다. 도엑은 잠깐 지나는 세상을 최고의 악한 일로 마무리한 악한 자 중의 악한 자입니다.

 

이에 위기를 감지한 다윗은 그날로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망명합니다. 그러나 그곳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다윗은 골리앗을 무찌른 맹장이니 곁에 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죽이자고 권합니다.

이 사실을 다윗이 눈치챘습니다. 그러나 이미 다윗은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신세 아닙니까? 이에 다윗은 그의 행동을 미친 체하면서 대문짝에 끄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립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돌아보십니다.

 

삼상 21: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그리하여 다윗은 미치광이 흉내로 그곳을 간신히 벗어납니다. 그리고 피난처(עֲדֻלָּם)란 의미가 있는 아둘람 굴로 피신을 합니다아둘람은 가드와 베들레헴의 중간 남동쪽 약 14km 지점입니다.

본래는 유다의 영토였으나 당시에는 블레셋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사울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로부터 쫓기고 이방으로 망명을 하여도 계속 쫓기는 고립무원의 길에서 마침내 아둘람으로 옮겨왔습니다.

 

 

 2. 다윗은 아둘람 공동체에서 신령한 힘을 회복합니다.

 

02 환란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가량이었더라.

 

다윗이 아둘람 굴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다윗 한 사람 때문에 온 가족이 역모(逆謀)의 누명을 쓰고 보복당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들었는데 무려 사백 명이나 모여들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관습으로는 여자와 어린아이를 거의 계수(計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사백 명은 전투에 참여할 만한 용사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숫자는 얼마 안 가서 약 육백 명으로 불어납니다(삼상 23:13, 25:13, 30:09, 10).

 

그런데 거기에 모인 자들 면면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뛰어난 재력가 권력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환란 당한 사람, 빚진 사람, 원통한 일 당한 사람만 있습니다.

사울의 학정(虐政)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51:13), 사울의 부당한 세정(稅政)이나 채권자의 강압적인 고리(高利)로 경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모였습니다그러면 마음이 원통한 자가 누구입니까?

사울 정권의 비도덕성으로 인해 종교 면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됩니다요즘 말로 고난 겪는 사람, 부도 난 사람, 수배받는 사람, 한 많은 사람, 억울하게 짓밟힌 사람,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 그에게로 모였고. 다윗이 억울한 일을 당하신 분들이여, 다 내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겠습니다. 라고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그들 스스로가 다윗이라는 사람이 좋아서 모여들었습니다사울의 시대는 이미 저물고 다윗의 시대가 점점 가까워지는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아둘람 굴의 생활을 놓고 보면 매우 힘든 곳입니다. 먹을 것이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다거나 병기가 제대로 있는 곳이 아닙니다.

다윗이 피해서 들어간 이 아둘람 굴은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주택이 아닙니다. 공기도 잘 안 통하고 햇빛도 제대로 없습니다. 마실 물은 물론 화장실 문제도 잘 해결 안 되는 최악의 장소입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다윗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의 관계는 주군과 신하 격으로 맺어졌습니다. 세상 그 모든 환경이 열악해도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하나로 만족했습니다.

아둘람 공동체에서 마음을 주고받는 그들의 주제가 무엇입니까억울함이나 불평을 내놓고 서로 흉이나 보는 일입니까? 다윗의 성품과 신앙 인격을 보면 오히려 그들을 다독이고 위로해 주는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아둘람 공동체야말로 다듬는 사역을 하는 곳입니다. 환란 당한 사람, 빚진 사람, 원통한 일 당한 사람을 다듬어서 새로운 인격자로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다윗은 재주와 능력이 있는 자들, 현실에서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하나 다듬어서 훗날 다윗 왕조의 요직을 맡도록 서서히 준비하였습니다.

다윗이 쫓기는 위험 속에서 아둘람 골짜기에서 세워진 아둘람 공동체는 복을받는교회의 모형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뜻을 이루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면서 후일을 기약하는 자리를 다윗의 아둘람 굴이라고 합니다.

 

 

 3. 다윗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아둘람 공동체를 떠납니다.

 

0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선지자 갓(גָּד 행운). 여기 갑자기 등장하는 선지자 갓이 누구입니까? 가장 유력한 해석은 사무엘이 지도하는 라마 나욧 출신 선지자로 짐작합니다. 이 갓이 다윗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너는 아둘람을 떠나 유다 땅으로 가라고 합니다다윗이 여러 곳을 전전하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안정을 취하고 있는 곳이 아둘람입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은 다윗을 지지하는 다윗 충성파입니다다윗도 아둘람 굴에 모인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의리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공동운명체입니다다윗은 세상 온갖 상처를 입고 모여든 오합지졸 같은 자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심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아마 이렇게 하였을 것입니다의리로 뭉친 형제 여러분, 신세타령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새로운 역사를 세웁시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어두운 밤을 깨웁시다. 새로운 시대를 창조해 나갑시다. 이런 비전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때로는 예수님과 광야에서 동고동락하였듯이 초대교회도 함께 나누는 유무상통 생활이었습니다. 다윗도 아둘람 굴에서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그 굴에서 지은 시가 시편 57편입니다.

 

시 57:0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0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다윗은 선지자 갓의 메시지를 듣고 아둘람을 떠나 유다 경내로 들어갑니다. 다윗은 일찍 사무엘로부터 왕의 상징인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위험과 역경이 기다릴지라도 언약의 터전 유다 땅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방 지역에 머물 것이 아니라 유다 땅으로 들어와야 합니다다윗이 유다 땅에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백성으로부터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삼상 18:07, 28~30). 이 일만이 왕도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헤렛 수풀로 나옵니다. 헤렛은 헤브론 남서쪽 약 8~9km쯤에 위치하는 그일라와 인접한 모압 지역입니다. 다윗이 왜 아둘람 공동체를 미련 없이 떠났습니까?

아무리 요람처럼 느껴져도 그 위치가 사울에게 노출되었기 때문입니다다윗이 도착한 모압 땅 헤렛은 다윗의 증조모 룻의 고향이고(01:22) 다윗과는 간접으로 혈연관계가 형성된 곳입니다(04:13~22).

다윗과 함께 비전을 품은 사람은 다 동참하였습니다. 꿈꾸는 사람과 함께 하면 꿈이 이루어집니다. 인생 치수는 어떤 꿈을 꾸느냐에 달라집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 기회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큰 길이 열립니다.

 

사람은 머물러야 할 곳이 있고 떠나야 할 곳이 있습니다. 머물 때와 떠날 때를 잘 분별하여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아직 떠날 때가 아닌데도 머무는 것이 힘들다며 성급히 움직이면 가시밭길 만나기 알맞습니다. 또 떠날 때가 되었는데도 계속 머뭇거리다 떠날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도 있습니다.

머물러야 할 때 그 자리를 지키는 이가 듬직한 사람입니다. 떠나야 할 때는 미련 없이 떠나는 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혹 머물러야 할 때 떠나는 사람은 가벼운 사람이요, 떠나야 할 때 머무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이 일을 잘 분별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아둘람 굴에서 지은 시가 시편 57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가운데 01, 02절을 조금 전 인용하였습니다. 다시 01절을 봅니다.

 

0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01절 잘 보십시오. 다윗은 내 영혼이 주님께로 피합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다윗은 의기투합한 사백 명 용사들은 아둘람 굴에 숨어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그러면 어디에 있다고 생각했습니까하나님의 날개 그늘에서 휴식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생각의 차원이 다릅니다. 믿음의 사람, 은혜받은 사람은 환경과 조건을 극복합니다. 거기서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07, 08절인데 다윗의 꿈과 비전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0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0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바로 다윗과 같은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아둘람 굴에 모인 사람들의 과거가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때는 환란을 당한 자들, 빚진 자들,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지만 이미 그런 옛 모습은 다 지웠습니다새롭게 이스라엘을 다듬는 열정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나중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 아둘람 출신 구성원들이 등장하여 나라를 세워가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잘하는 일꾼들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