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돌직구란 말을 사용합니다. 돌+직구의 합성어로서 야구에서 아주 힘이 좋은 투수가 돌처럼 강한 직구를 던질 때 일컫는 말입니다.
채널A에서는 김진 기자가 이끌어 가는 돌직구 쇼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신문 읽어주는 남자 김진과 함께하는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를 넘나드는 고품격 시사 산책 이런 멘트로 돌직구 쇼를 소개합니다. 돌직구란 상대의 입장이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말이나 행동을 직설로 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 됩니다. 예를 들자면 소개팅을 마친 A가 소개팅 B에게 좋은 분 만나세요. 이런 식입니다. 이 말을 받으면 상대의 입장은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동안 이러한 돌직구 같은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기분이 상합니다만 그래도 참고 들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돌직구를 날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 없이 날려야 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믿음의 세계에서도 때로는 돌직구와 같은 말을 날려야 할 때가 있고 받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일단 기도한 후 돌직구 대신 변화구를 선택해야 좋습니다. 아무리 믿음의 사람이라도 자칫 인간관계가 무너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런 권면을 하였습니다.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전 06:13). 무슨 말로 들립니까? 어떤 말을 들어도 소화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가 애굽의 바로왕을 만나 단번에 돌직구 메시지를 날리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모세의 소신 있는 메시지」로 정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모세와 한판 벌이는 바로 왕은 누구입니까? |
0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먼저 모세와 한판 벌이는 애굽의 바로왕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바로에 대해서는 2020년 6월부터 8월 사이 출애굽기 01장부터 04장을 강론하면서 소개했습니다.
그렇지만 1년 정도 되었으니 기억이 잘 안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에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부터 오늘 말씀에 모세가 만나는 바로까지 몇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성경 역사에 참여하였는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바로(פַּרעוֹה 파라오). 애굽의 왕을 칭하는 용어입니다. 원래는 왕궁을 나타내는 용어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왕을 가리키는 존경어가 되었습니다.
출 01:08 절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장합니다. 이는 애굽의 18대 왕조 세 번째 왕 투트모세(Thutmose I, B.C. 1493~1482 재위) 1세입니다. 이전 셈족 중심의 힉소스 왕조(15, 16)와는 달리 이방 족속에게 강력한 탄압을 행사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모세를 나일강에서 건져준 바로의 딸(02:05)도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투트모세 I 세의 딸로서 이름은 핫셉수트(Hatshepsut B.C. 1508~1458)입니다. 핫셉수트는 아버지가 죽은 후 투트모세 2세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없이 딸만 낳았습니다.
이후 투트모세 2세는 궁녀에서 난 아들을 후계자로 점지하고 재위 10년 만에 죽습니다. 궁중에는 궁녀 출신 왕자와 핫셉수트의 양아들 모세 이 두 사람이 후계자 구도를 형성한 셈입니다.
그러자 핫셉수트는 궁녀 출신 왕자를 딸 네페르라와 결혼시켜 바로로 세웁니다. 이 왕이 투트모세 3세인데(Thutmose III B.C. 1504~1448) 당시 겨우 6세입니다. 핫셉수트는 왕이 어렸기 때문에 20년을 섭정 통치하였습니다. 이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어린 왕을 폐위하고 모세를 왕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세상 권력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먹는다면 양어머니 핫셉수트와 공모하여 권좌에 오르는 일도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그 예가 간접으로 히브리서에 나옵니다.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이런 상황에서 세월이 흘러 핫셉수트가 죽고 투트모세 3세가 확고한 왕권을 구축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자기의 최대 정적(政敵) 모세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던 차에 모세가 애굽 관리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납니다(출 02:11~15). 이 일을 투트모세 3세는 이스라엘을 향한 민족 감정으로 정치 쟁점화하였습니다.
모세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전략입니다. 이 계략을 안 모세는 애굽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였습니다. 이 부분이 출애굽기를 이해하는 실마리입니다.
미디안에서 40년 세월을 보낸 모세가 이제 애굽에 와서 바로를 상대로 출애굽을 추진합니다. 상대자는 그 옛날 잠시나마 경쟁하던 투트모세 3세가 아니라 그 뒤를 이어 18세에 권좌에 오른 아멘호테프 2세(Amenhotep II B.C. 1448~1424)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람세스 2세(Ramesses II, B.C. 1303~ B.C. 1213)라는 설과 람세스 2세의 아들 메르네프타(Merneptah B.C. 1234~B.C. 1220)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정확히 입증해 보일 자료는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아멘호테프 2세로 보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아멘호테프는 2세는 바로의 자리에 올라 27년을 통치했습니다. 특별히 강력한 외교 정책을 펼쳤으며 적대 관계인 시리아(Syria)의 미탄니(Mitanni)왕국을 여러 번 침략하여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2. 모세가 바로에게 이스라엘을 해방하라고 요구합니다. |
0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그 후에. 어느 때를 말합니까?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애굽으로 와 아론을 만나고 이스라엘 각 지파의 두령을 만났습니다.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과 메시지와 이적을 제시하여 지도자로 인정받았습니다. 따라서 그 후에라는 말은 지도자로 인정받은 후라는 뜻입니다.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모세는 대변자 아론을 데리고 바로에게 가서 말합니다. 모세가 바로를 만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 평범한 자가 대 제국의 왕을 만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바로를 만나게 된 경우는 개인 자격이 아닙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종의 처지로 전락했지만, 민족의 대표자 위치에서 바로와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당시 애굽의 행정제도는 국가 차원의 중대 사안일 경우 왕이 공개석상에서 청원을 듣고 답을 내리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 제도를 따라 모세가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정치 흥정을 할 일이 있으면 사전 작업을 하게 마련입니다. 주로 비서관이 나서서 사전 조율을 합니다. 그래도 일이 잘 안 풀리면 해결의 당사자가 직접 만나서 문제를 풀어갑니다.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려면 조금은 양보하여 상대의 이익을 어느 정도 보장해줍니다. 그다음에 문제를 테이블에 올립니다. 그렇지 않고 막 밀어붙이면 곤란합니다.
문제를 타결하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고 인내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사전 접촉이나 정지작업을 아예 생략하였습니다. 바로의 측근에도 일절 침묵했습니다.
어떤 일정표도 없이 그냥 단도직입으로 말합니다. 바로와 맞서는 모세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신은 하나님의 메신저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하라. 아주 강력한 선포입니다.
이스라엘을 해방하라는 자신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밀어붙입니다. 모세의 말에 바로가 더욱 충격받았을 내용이 01절에 들어 있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던진 메시지를 보면 중대한 의전 절차를 생략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버릇없습니다. 아랫사람이 왕 앞에 나아갈 때는 기본 인사법이 있습니다. 왕이여 만세 수를 하옵소서, 만수무강하옵소서. 입니다. 성경 곳곳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느 02:0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 수를 하옵소서(왕상 01:25, 31, 34, 39), 단 06:21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하옵소서(단 02:04, 03:09, 05:10, 06:06).
그런데 모세는 애굽의 왕 바로에게 감히 왕이여 만세 수를 하옵소서, 만수무강하옵소서. 라는 말을 완전히 생략해 버립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강력한 돌직구를 날립니다.
이런 돌직구 맞으면 상대는 완전 열 받습니다. 상대가 애굽의 왕인 만큼 더욱 큰 충격 받았을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더 세게 열 받을 돌직구를 날립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니 보내라. 내 백성이라 표현한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동시에 일개 세상의 왕인 당신은 이스라엘을 압제할 권한이 전혀 없다. 이런 뜻입니다.
모세의 이런 돌발 요구는 바로의 처지에서 보면 정말 당돌한 행동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은 민족은 이미 430년을 애굽에서 살아왔습니다. 애굽 국적으로 살면서 90년 가까이 노동력을 국가에 제공하였습니다.
국가의 산업 동력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며 등장한 모세가 이스라엘을 즉시 해방하여 가나안으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합니다. 이런 말이 잘 받아들여지겠습니까?
3. 모세의 돌직구를 바로 왕이 거절합니다. |
0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사실 모세는 40년 전 애굽 관리가 동족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하여 그를 죽인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이 탄로 남으로 미디안으로 도피하였다가 40년 만에 애굽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세는 현재 지명수배자입니다. 이 모세가 지금 애굽 땅에 나타났는데 모든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바로가 이런 인물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40년 전 자기 할아버지의 강력한 정치 상대였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에게 면담을 신청할 때 얼마든지 암살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자 자격으로 면담을 요청했기 때문에 바로는 마음이 심히 불편해도 허락하였습니다. 모세와 바로 사이의 면담 결과가 어떠합니까?
모세가 일방으로 바로에게 이스라엘을 해방하라는 통보로 인해 상황만 확인하고 끝났습니다. 이 정도 되었으면 바로의 입장에서는 열 받고 길길이 날뛰었을 것입니다. 바로의 반응을 봅시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고대 세계는 민족이나 지역마다 각기 주관하는 신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를 우리는 범신론(汎神論) 사상이라고 합니다. 바로가 모세에게 몰라서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에 관하여 관심을 가져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의 처지에 놓인 너희에게 신이 있다고? 라며 비웃습니다. 또 신이 있다고 한들 애굽의 강력한 신들 앞에 감히 맞설 수 있는 존재가 되는가? 라는 비웃음입니다.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바로가 여호와라는 명칭은 당연히 들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를 침략해서 포로를 종으로 삼았기 때문에 각 나라의 신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의 실제 표현을 보면 여호와라는 이름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신을 섬긴 적이 없으며 인정할 수도 없다. 혹 그런 신이 존재할지라도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 이런 마음을 굳게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라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시 14:0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바로의 말을 들은 모세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광야에서 제사를 지내라 하십니다. 그러니 사흘 길쯤 되는 광야로 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03).
모세가 바로에게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당시 애굽인의 타부(taboo) 때문입니다. 애굽인은 몇 종류 짐승을 형상화하여 자신들의 신으로 삼고 신성시 여겼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희생 제물로 그런 짐승을 죽여 각을 뜬다면 필시 애굽 내에서 피를 부르는 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일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요청이지만 실제 모세의 의도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영원히 끌어내 가나안으로 가는 일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김삼일 가족 여러분, 모세와 같은 분명한 사명과 확신으로 교회를 섬깁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확신이 서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구원받았다는 확신입니다.
둘째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입니다. 셋째 기도가 응답받는다는 확신입니다. 넷째는 천국 소망에 관한 확신입니다. 다섯째는 신자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이런 확신을 가진 자야말로 진정한 일꾼입니다. 모세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가운데 두고 누가 이기느냐를 벌이는 신령한 싸움을 봅시다. 오늘 말씀까지는 하나님을 배경으로 한 모세의 돌직구 메시지를 바로가 거절합니다.
일견 모세가 패배한 것처럼 보입니다. 앞으로도 모세가 패배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경으로 하는 모세,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모세가 결국은 승리합니다. 이제부터 숨 막히는 신령한 전쟁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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